광주공원 안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으로 이 부근은 성거사(聖居寺)터라고 전해진다. 이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聖居山)이라 불렀는데, 산의 모양이 거북처럼 생겼으므로 광주를 떠나지 못하도록 등위치에는 성거사를 세우고 거북의 목 부근에는 5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2단 기단 양식에서 기단을 1단만 두는 고려시대로의 양식변화를 보여준다. 또 지붕돌 추녀와 몸돌의 알맞은 비례감과, 위로 오르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크지 않아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1층 몸돌에서 나타난다. 즉 몸돌 전체를 아래위 2단으로 나누어 5개의 돌을 맞추고 있는데, 이러한 양식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고려시대에 흔히 나타나는 특색이다. 또한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이고 각 귀퉁이는 아래위 모두 약간씩 치켜올려진 상태이다.
1961년 해체하여 보수할 때 2층 몸돌에서 사리공(舍利孔)과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이 석탑의 연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1층 몸돌과 3층 몸돌은 보수할 당시에 보충한 것이다.
전문설명
이 탑은 단층기단(單層基壇) 위에 세워진 이형탑(異型塔)으로서 지대석 위에 큼직한 이중의 받침이 있어 기단중석(基壇中石)을 받치게 되었다.
갑석(甲石)에는 부연(副椽)이 있다. 윗면 중앙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해 각형2단(角形二段)의 받침돌을 신조(新造)하여 삽입하였다.
초층탑신(初層塔身)은 특이한 구조로 전체를 상하 2단으로 연결하되 여러 개의 석재로 결구하여 그 높이가 매우 이례적으로 높게 되었다. 또한 2층 이상의 탑신도 체감률이 작아 대체로 탑신이 높다. 옥개석은 추녀가 넓은 편이고 전각(轉角)은 상하 모두가 반전(反轉)되었다. 그리고 옥개받침은 각층 4단씩이며 정상의 상륜부(相輪部)는 현재 전부 결실되었다. 1961년 해체 보수할 때 2층탑신 상면에서 사리공(舍利孔)이 발견되고 그 안에서 사리 장엄구가 나왔다. 그리고 1층탑신과 3층탑신은 보수 당시 보충한 것이다.
탑의 조성연대는 그 양식으로 보아 고려(高麗) 초기(初期)로 추정된다. 이 석탑 부근은 성거사지(聖居寺址)라고 전한다.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탑신부 기단부 및 초층탑신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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