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사는 고란사라고도 하며, 이 절에 관한 역사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주변에 담아있는 유물들을 볼 때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받침인 귀부(龜趺)는 거북모양이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목은 앞으로 빼고 콧수염은 뒤로 돌아 있으며 눈은 크게 튀어 나와 있다. 등 위에는 3단받침을 하고 비를 얹었으며, 비머리는 네 귀퉁이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용을 새기고, 앞·뒷면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법인국사(法印國師)는 광종 25년(974)에 국사(國師)가 되었고, 이듬해에 입적하였으며, 비는 경종 3년(978)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거대하고 웅장하나 조각기법이 형식에 치우친 감이 있다.
전문설명
귀부(龜跌)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이首)를 얹은 일반형 석비이다. 목이 밭고 입이 긴 머리를 가진 귀부 위에 간단한 비좌를 만들고 그 위에 비신석을 세웠다. 이수는 운룡문(雲龍紋)이 새겨져 있다. 법인국사(法印國師)의 성(姓)은 고씨(高氏), 자(字)는 대오(大悟)이며 신라(新羅) 효공왕(孝恭王) 4년(900)에 출생하여 고려(高麗) 광종(光宗) 26년(975)에 입적(入寂)하였다. 비문은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한윤(韓允)이 썼다. 이 탑비는 비문에 의하면 고려 경종(景宗) 3년(978)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탑비 귀부의 머리 부분 탑비 이수 탑비 귀부의 배면 귀갑문 탑비 이수 중앙의 제액 탑비 비문 부분 보원사법인국사보승탑비 보원사법인국사보승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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