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만들어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이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라 불렀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문설명
봉정사의 정전(正殿)으로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건물(建物)로 추정된다.
주칸(柱間)의 창문(窓門)이나 벽체 등 일부가 초창후(初創後) 변경되었으나 골격은 전형적인 다포양식(多包樣式)을 잘 갖추고 있다. 특히 공포(공包)의 힘있고 가식없는 수법(手法)은 초기의 다포양식 특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건물 내부(內部)에서 가구형식(架構形式)이나 세부기법에서도 외부와 같이 단조로우면서 견실한 공법(公法)이 초기의 다포양식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단청(丹靑)은 창건(創建)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려적(高麗的) 요소(要素)를 지니고 있어 건물(建物)과 함께 중요한 회화자료(繪畵資料)로 주목되고 있다.
※해지사유: 국보 제311호로 승격지정됨에 따라 지정해제됨.
안동 봉정사 대웅전 공포와 처마 대웅전 안 내외출목 기둥과 천장 천장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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