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도 땅도 인연따라 만나게 된다
담양지역 음·양택 명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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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지역은 광산 김씨 김흥광이 처음 터를 잡았다는 대전면 평장리의 평장동과 천년향화지지로
인구에 회자되고 이 곳에 집터를 잡아 출생한 사람은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된다는 수북면 삼인산 아래
깊히 몸을 숨기고 있다는 ‘나대풍치형’의 양택명당 또한 유명한 길지다.
그러나 어찌하랴. 천년을 하루같이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천장지비의 터이고 보니,
아직 ‘발복’이 안돼 인물과 풍수에 해당하려면 그 시기가 언제일지 모르니….
그래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담양지역의 음택명당을 소개하려고 한다.
담양땅에는 크고 작은 음택명혈이 많이 있다고 각종 결록에 나와 있다.
아마 수려하고 후중한 산세에 기인한 것 같다.
산세뿐만 아니라 수세를 비롯한 사(砂)의 보국 또한 대단하다.
창평면 일대의 군봉을 커버하는 국수봉, 대전면과 수북면 일대의 산세를 관장하는 병풍산
또한 822.2m의 준봉이다.
월산면과 용면 일대의 군봉을 통솔하는 호남정맥의 한 축을 이루는 추월산, 무정면의 무이산,
대덕면의 연산 등 그 규모나 산세의 형세는 가히 웅봉이라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일까. 담양지역에는 호남대지 56대 음택명혈의 반열에 드는 명당만도 4소개에 이른다.
대전면의 병풍산 아래의 금채괘벽형이 호남 56대혈 중 3품3위에 드는 수혈로 꼽힌다.
창평면 매봉 아래 화양촌 뒤 화양의 운중반월형이 4품7위에 드는 명혈이다.
그리고 대전면 투구봉 아래의 장군대좌형은 호남대지 7품2위에 들고, 창평면 소재 금구형
또한 호남대지 7품8위에 든다.
이 뿐만 아니다.
일우스님과 두사충이 적성했다고 알려진 활산활수에 담양지역의 음택명당이 8개소에 달한다.
그 규모나 빼어난 산세와 혈형으로 봐 호남대지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수혈들이다.
특히 봉산면 와우리 좌편에 소재한 와우형은 수많은 풍수연구가들과 지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혈로 알려졌다.
그리고 인근 주위는 물론 혈장 가까이 수많은 산소들이 쓰여졌다.
이 음택명당은 혈의 소재는 담양땅이지만 그 진산과 후룡은 광주 월각산에서 발달해 가는 것이 특징이다.
필자도 족히 5~6회에 걸쳐 이곳을 답산했다.
교통이 편리한데다 간산코스가 크게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워낙 널리 알려진 곳이라
여러 차례 찾아갔다.
그 보다는 진혈을 찾기 어려웠고 기설 묘들에 대한 믿음이 가지 않아서였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필자의 안목이 아직 미치지 못해서 일까.
견해의 차이에서 온 점혈의 다른 관점에서 일까.
몇번을 찾아가 심혈해 봐도 진혈은 아직도 주인을 기다린채 처녀지로 남아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필자가 아무리 강변을 해도 ‘교구통맥법’ 의 오묘한 이치를 두고 서로 관점이 다르니
더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다만 소가 누워있는 모양의 와우형의 혈증에는 좌선룡의 결작인 경우 병오맥이, 우선룡의 경우
축간맥이 있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담양전역의 명당을 살펴보면 고서면 주산리 후산에 몸을 감춘 황룡부주형은 혈명과 마을이름과의
관련성에서 이미 소개된 명혈이다.
금성면 와룡리 인근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주인을 기다린다는 비봉귀소형, 대덕면 청운동
수곡촌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운중반룡형, 대덕면 운암리 석문내의 장군대좌형, 대전면 통쇠골의
장군대좌형, 월산면 홍암리 뒷산에 자리잡고 있다는
비룡체수관주형 등의 음택명당이 준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수 많은 명혈대지들은 모두 답산해 보고 간산기를 쓰는 것이 독자들은 물론 풍수지리학에
관심있는 동호인들에 대한 보답의 길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 <산도>와 함께 그 산세의 전경을 곁들여 소개하려는 음택명당은 엉뚱하게도 약마부적형,
즉 적진을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말의 형국이라는 혈이다.
이번 간산기가 행여 필자의 자기노출이나 자기과시에 연유하기라도 한다는 오해를 살까 두려워
망설였지만 체험적 교훈을 시사하고 있는 점에서 외람되게 소개하기로 마음 먹었다.
필자의 주관적 해석과 관점에 의해 그 혈의 물형을 그렇게 명명하게 된 것은 견해의 차이로
인정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음택길지를 찾아서 소점하고 재혈하고 용사까지 하게된 것은
‘사람과 땅과의 만남은 인연으로 이뤄진다’는 소박한 진리를 온몸으로 깨우치게 한 곳이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저간의 사정을 소재삼아 쓸까 한다.
이 곳에 선대의 산소를 정해 용사하게된 사람은 한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이다.
용사를 하게된 당시 그 교수와 필자는 일면식도 없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에 어느날 우연히 이뤄진 인연을 두고
‘전생에 맺어진 인연이 이제야 이뤄졌다’느니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니’라고 말한다.
그 교수는 차남이지만 선영을 길지에 이장해 묘역을 잘 관리해야 겠다는 염원을 간직한 채
수년이 지난 어느해 여기 저기 모셔진 조부모산소와 친산을 광주 인근으로 옮기기 위해 산을
매입하고 <산도>에 표기된 ‘구묘’의 영역에 이장을 했다.
하지만 이장한 산소를 다시 옮겨야할 사정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필자와 그 교수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 인연도 그 교수의 자상하고 친절한 인간미가 매개체가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느날 필자는 1만여평이 넘는 산역을 타고 오르기를 3회, 그것도 400고지가 넘는 산을 하루내내
이 잡듯이 샅샅히 밝혀 필자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3태교구혈을 소점하게 됐다.
그리고 서둘러 <산도>에 표기된 <가>지점의 신묘역에 선대를 이장했다.
마무리의 교구통맥의 선매가 병오룡(정남방에서 동남방으로 7.5도 치우쳐 내룡한 용맥)으로서
영락없는 말용이고 그 형국이 약마부적형이었다.
내룡한 용맥 또한 그 수봉을 자랑하는 서암산에서 낙맥 결인 비룡한 뒤 400고지의 중조산을 세우고
생동감 넘치는 행룡을 거듭하다가 3태교구를 형성하며 곤신작국의 대지명혈에 손색없는 음택으로
올인해 청기를 서리게 한다.
이를 두고 적덕지가에 찾아온 명혈득지라 하지 않겠는가.
그 뒤 평안하게 지내는 그 교수와 집안 이야기를 종종 전해들으면서 필자는 더없는 뿌듯함에 사로 잡힌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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