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풍수지리

도올 김용옥의 풍수(미성년자는 읽지마세여)

오늘의 쉼터 2008. 1. 30. 16:40

 

* 도올 김용옥의 풍수

 

지금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너무 서양과학적 관점에서 인식한다.

서양과학은 땅을 동질적인 구역(homogeneous region) 으로 설정하고 단순한 기하학적 형상(geometrical forms)

이나 지질학적 성분(geological components)에 따라 지도를 그려나간다.

그러나 우리조상들은 땅을 반드시 천지코스몰로지(天地宇宙論) 적인 가치체계속에서 파악하였고

그 구체적인 인식은 산수(山水)라 는 말로 표현되었다.

땅의 다른 이름이 산수(山水)이니, 산수란 곧 산과 물을 일컫는 것이다.

산이란 땅의 양(陽)이요, 물은 땅의 음(陰)이다. 동정론(動靜論)으로 말하자면, 정(靜)한 산을 음으로 항상

동(動)하는 물을 양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산이 있기 때문에 계곡의 물이 있을 수 있는 것이요, 계곡의 물이 있기때 문에만 산이 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양과학적 땅인식에 있어 서는 산맥의 흐름이 지질학적 연속성에 따라 물을 건너뛰어 연접될 수가 있지만,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아무리 미세한 물길이라도 산은 그것을 무시하고 연접될 수가 없다.

 산은 반드시 물길과의 관계에서만 파악되는 그 무엇인 것이다.

산세의 흐름도 그 기준이 되는 것은 산봉우리의 고하가 아니다.

아무리 낮은 구릉이라도 물길과의 관련에서 인식되는 산세의 흐름이라면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맥으로 나타난다.

낮은 구릉이라 해서 높은 산봉우리에 비해 무시되는 농단이 없다.

이러한 산수는 반드시 인간의 삶의 공간(Lebensraum)이라는 어떤 생명적 기의 흐름과 깊게 연계되어 있다.

서양인들이 자연을 인간에게 종속 되는 물리적인 것으로 파악했다면, 우리조상들은 자연과 인간을 모두

동일한 생명체로 파악했다.

자연도 산수라면 인간도 산수인 것이다.

이 산수의 다른 이름이 소위 풍수(風水)라는 것이다.

풍이란 물론 산의 형세에 따라 형성되는 기의 흐름이다.

그런데 바람이 항상 세차게 부는 곳에서는 지기(地氣)가 흩어져 사람의 삶이 영위되기 어렵다.

 사람으로 치면 안온한 느낌이 없고 항상 감기 걸리기 쉬운 것이다.

바람을 끌어모아 안온하게 간직하는 산의 형세, 이것을 보통 장풍(藏風)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장풍은 반드시 물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이 물의 흐름을 득수(得水) 라 한다.

풍수란 곧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라해도 과언 이 아니다.

천지코스몰로지로 말하자면, 풍(風)은 하늘(天)이요, 수(水)는 땅(地)이다.

 이를 다시 인체에서 말하자면, 풍은 기(氣)가 되고, 수는 혈(血)이 된다.

한의학의 인체관은 바로 천지코스몰로지적인 기혈론(氣血論)으로 요약되는 것이다.

기는 또다시 위(衛)라 하고, 혈은 영(營)이라 한다.

기는 인체를 외부의 한사로부터 보위하며 혈은 인체의 내부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기 영혈론(衛氣營血論)이다.

그런데 이 기혈의 흐름은 경락상의 혈( 穴)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혈을 잡는 것을 풍수론에서는 정혈법 (定穴法)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혈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산세의 형국(形局)이나 좌향(坐向)을 잘 알아야 한다.

풍수에서는 산을 용(龍)이라 부른다.

그러나 용의 외면적 형상만을 파악하는 것은 제대로 된 간룡법(看龍法)이 아니다.

 살아있는 용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속에 흐르는 맥(脈)을 알아야 한다.

 그 맥은 용의 피인 물의 흐름과 깊은 관련이 있다. 풍수는 이와같이 서로 엉켜있다.

정혈(定穴)의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선 인체에 있어서 어떤 혈이 가장 중요한 혈인가를 알아야 한다.

인체에는 정수리의 백회(百會)혈로부터 엄지발가락 끝의 대돈(大敦)혈에 이르기까지 365개의 혈이 있다고

하지만, 혈중의 혈, 혈의 왕중왕은 이 모든 혈을 뛰어넘는 명백한 구멍, 그 하나가 있으니

그것이 곧 여체 질구(膣口)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궁(子宮)으로 들어가는 길문이요, 천지생성의 근원인 것이다.

 ‘노자’ 6장에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谷神不死). 이를 일컬어 현묘한 어미라 한다( 是謂玄牝).

현묘한 어미의 문, 이것을 일컬어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玄牝之門, 是謂天地根)”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현竄? 문(玄牝之門)은 곧 여성의 질구를 말하는 것이요, 풍수의 정혈법이란

 바로 이 현빈지문을 찾는 것이다.

풍수는 바로 도가사상적 페미니즘(Taoistic Feminism)의 천지론적 표현이다.

현빈지문을 찾아야 음양의 교합이 가능해지고 천지의 생성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질구는 어떻게 찾는가?

그 가장 손쉬운 방법은 클리토리스(Clitoris)라고 하는 음핵(陰核)을 더듬는 것이다.

이 음핵의 바로 하부에는 반드시 질구(Vaginal orifice)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음경(陰莖, Penis)과 상동기관인 이 음핵이야말로 저기 저 멀리있는 머리, 우뚝솟은 코,

그리고 거대하게 솟은 유방을 거쳐, 평평한 복부를 지나 깔대기 같이 생긴 음모의 형국으로 모아지고 있는,

여체라는 대지의 기세가 한곳으로 집중하여 뻗치는 위대한 용트름의 표상인 것이다.

이 음핵을 풍수에서는 주산(主山)이라고 부른다.

이곳이야말로 입수(入首)하는 곳이니, 곧 용이 대가리를 들이미는 곳이다.

여자의 성기를 살피면 반드시 음핵양옆으로 음순(陰脣, Labium) 이 있어 요도구와 질구를 양날개처럼 감싸고 있다.

 이 음순을 풍수에서는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라 표현하는 것이다.

 음순에도 안쪽으로 좀 날카로운 소음순(Labium minus)이 있고, 밖으로 두툼한 대음순(Labium majus)이 있듯이,

 때에 따라서는 내백호·외백호가 있고 내청룡·외청룡이 있다.

주산은 대개 북에 위치함으로 현무(玄武)라 볼 수 있고, 그 뒤로는 주산의 맥을 떠 받치고 있는 거대한 준령인

조산(祖山)이 있다.

조산은 또 태조 산(太祖山)·중조산(中祖山)·근조산(近祖山)으로 나뉘어 논의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주산의 밑에는 혈이 있고 그 혈앞에는 반드시 널찍한 뜰이 있으니

그 뜰을 명당(明堂)이라 부르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용어에서는 명당이 혈 그자체와 혼동되어 쓰이고 있으나, 명당은 본시, 근정전을 혈이라 한다면,

그 앞에 품계석(品階石)이 도열되어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배하(拜賀)하고 의정(議政)하는 뜨락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명당(明堂) 건너에는 주산( 主山)을 마주보고 있는 산이 있으니 보통 팔꿈치를 기대는 낮은 책상의 형상이라하여 안산(案山)이라 부른다.

이것이야말로 주작 (朱雀)인 셈이다.

이 안산의 밖으로 외명당이 펼쳐지고 그 밖에는 다시 조산(祖山)과 짝을 이루는 객산(客山)인 조산(朝山)이 있다.

이 조산이라는 말은 임금인 주산(主山)에게 조대(朝對)하여 신하의 예를 갖춘다는 의미다.

 

자아∼ 서울을 한번 보자 주산(主山)은 명백하게 청와대 뒷켠에 삼각형으로 우뚝 솟아있는 백악(白岳)이다.

 백악의 모습이 피라밋 삼각형이래서 이를 삼각산으로 잘못 알기쉬우나, 삼각산이란

그 뒤에 있는 조산(祖山)으로 북한산정에 솟아 있는 세 봉우리, 만경대·백운대·인수봉을 일컫는 것이다.

삼각이란 삼각형(triangle)의 의미가 아니고, 세개의 뿔(tri-horns)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 주산의 양옆으로 좌청룡에 해당되는 것이 동숭동 옛 서울대 뒷켠의 낙타모양의 낙산(駱山)이요,

우백호에 해당되는 것이 인왕산(仁旺山), 혹은 그 건너에 있는 말안장 모양의 안산(鞍山)이다.

(사람에 따라 비정하는 설이 다르다).

그리고 주산을 마주보고 있는 안산(案山)이 우리가 남산(南山) 이라고 부르는 목멱산(木覓山)이다.

그리고 안산을 저 멀리서 떠 받치고 있는 조산(朝山)이 관악(冠岳)이다.

 혹자는 풍수를 그랜드 스케일로 확대하여, 주산을 삼각산(三角山)으로 보고, 조산( 祖山)을 함경도 백두산,

 외청룡을 강원도 금강산, 외백호를 황해도 구월산, 그리고 조산(朝山)을 제주도 한라산으로 보기도 하나,

그것은 백두대간의 대세를 논한 것이요 지극히 관념적인 혈세( 穴勢)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한성의 내명당을 흐르는 명당수가 바로 청계천이라는 것이다.

 이 청계천은 조선의 하천이 모두 동출서류(東出西流)하는데 반해 서출동류(西出東流)하는 역수(逆數)를

구현하고 있으니 천하의 으뜸가는 명당수인 것이다.

이 청계천은 동류하여, 수락산·도봉산과 우이의 계곡으로부터 발원하여 도도히 남진하는 중랑천(中浪川)과

 현 한양대 동편에서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한강은 또 다시 서울의 외명당을 감싸도는 객수(客水)로서, 한양을 북으로 환포(環抱)하여 남을 지나 다시 북

 서진(北西進) 입해(入海)하는 일대 곡류하천(曲流下川)이다.

이렇게 보면 서울은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천지생성의 모든 조건을 갖춘 명당중의 명당임을 알 수 있는데,

계룡산을 장풍국(藏風局) 이라 한다면 서울은 역시 득수국(得水局)이라 할 것이다.

이성계의 눈에는 답답한 계룡의 장풍국이 개경을 연상시켰고, 그보다는 광활하게 트인 서울의 득수국에서

새로운 조선의 국면을 감지했을 것이다.

하륜이 제시한 무악주산론은 결국 주산을 무악으로 삼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지금 연세대 자리가

궁궐터가 되었을 것이고 신촌일대가 명당이 되었을 것이나, 그것은 역시 대세를 잘못 본 것이다.

주산이 저미(低微)하고 명당이 경착(傾窄)하여 왕도로서는 적합치 못한 것이다.

또 무학대사는 인왕을 주산으로 삼고, 북악과 남산을 좌청룡·우백호로 삼아 도읍을 동향(東向),

즉 유좌묘향(酉坐卯向)으로 앉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도전은 난색을 표명했다:

 “자고로 제왕은 모두 남면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법식이거늘 동향이란 들어본 바가 없다

(自古帝王皆南面而治, 未聞東向也).

” 정도전은 궁궐은 반드시 남향, 즉 임좌병향(壬坐丙向)으로 해야할 것을 주장했다.

무학이 내말을 따르지 않으면 200년이 지난 후에야 내말을 생각케 되리라고 예언했다 하여 임란( 壬亂)이

일어난 것을 들먹이지만 이것은 서울의 지덕에 험이 있다하여 지어낸 후일담(後日譚)에 불과한 것이요,

역시 정도전의 백악현무(白岳玄武), 인왕백호(仁旺白虎), 낙산청룡(駱山靑龍)의 주장이 탁월했던 것이다.

삼봉 정도전은 도가적 풍수에 유가적 인의예지의 이념을 결합하고 좌묘우사(左廟右社: 좌에 종묘, 우 에 사직)의 적통을 확립했다.

그런데 남면한 서울의 가장 큰 문제는 주산인 백악보다 남산이 중후하고 지세가 강하며 관악산(631m)과 남한산(429m)이 주산을 억누른다는 것이다.

 즉 남방화(南方火)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이 남방화를 막기위해 불을 삼키는 물의 신인 해태를 궁궐앞과 모든 교량의 난간에 세웠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인 것이다.

 서울은 전체의 지세로 볼 때 주위산으로 오밀조밀 둘러싸여 불길에 휩싸인 형국이다.

이 불길을 막는 가장 주요한 방략이 청계천의 치수다.

청계천은 서울의 혈맥이요, 서울이라는 용의 얼굴에 표 현된 생명력의 분출이다.

‘청계천’이라는 명칭은 일제시대 때 정착된 것이며 그 본래이름이 아니다. 청계천은 조선조를 통하여 개천(開川)으로 불리었다.

그것은 반드시 열려있어야 하는 물길이요, 열려 화기를 제압하는 수기(水氣)인 것이다.

조선의 사람 들은 이 개천을 관리하는 것을 자신의 몸의 혈맥을 청통(淸通)케 하는 것으로 알았다.

태종의 대광통교(大廣通橋: 광교),

 세종의 수표교(水標橋) 역사, 그리고 영조의 대개천준설사업이 이러한 의식속에서 꾸준히 진행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얽힌 설화가 곧 우리민족의 문학이요, 청계천이라는 불행한 암천(暗川)을 개천( 開川)으로 되돌리는

역사야말로 개천(開天)이래 한국문명 최대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