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233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오늘의 쉼터 2008. 1. 29. 21:27




종     목

국보  제233-1호

명     칭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불상
수량/면적

1구

지 정 일 2016.01.07
소 재 지 경남 산청군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

석남암

관 리 자

석남암

일반설명


이 비로자나불상은 불상의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의 명문을 통해 766년(혜공왕 2)에 법승(法勝)과 법연(法緣) 두 승려가 받들어 돌아가신 두온애랑(豆溫哀郞)의 원을 위해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와 함께 석남암수 관음암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을 가진 중요한 불상이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 最古의 紀年銘의 智拳印 비로자나불상으로서 중요하며, 편년자료가 부족한 고대조각사 연구에도 절대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더불어 지권인을 한 如來形의 비로자나불 형식이 766년에 정립되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불교 사상과 새로운 불교사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서 주목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로자나불상은 동아시아를 통틀어 명문이 밝혀진 최초의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으로서 도상적․양식적으로 불교미술사 연구에 매우 귀중하고 획기적인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이 불상을 통해 8세기 중엽경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불상에도 납입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우리나라 불상 복장의 시원적 형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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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국보  제233-2호

명     칭영태2년명납석제호(永泰二年銘蠟石製壺)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사리장치/ 사리장치
수량/면적

1점

지 정 일 1986.10.15
소 재 지 부산 남구  대연동 948-1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

부산광역시립박물관

관 리 자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일반설명


경상남도 지리산 암벽 아래에 있는 암자터에서 불상이 없는 대좌의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때의 거무스름한 곱돌(납석)로 만들어진 항아리로 총 높이 14.5㎝, 병 높이 12㎝, 아가리 지름 9㎝, 밑 지름 8㎝이다.

몸통에 비해 도톰한 턱이 주둥이에 둘러져 있고, 밑 부분은 평편하고 넓어 안정감을 준다. 항아리의 아가리 아랫부분과 몸체의 중간, 그리고 조금 아래쪽에 각각 2줄의 가로선을 새겼다. 뚜껑 윗부분에도 2줄로 원을 그리고 안쪽 가운데에는 연꽃을 새겼다.

이 항아리 표면에는 15행으로 돌아가며 비로자나불의 조성 기록과 함께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766)>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신라 비로자나불 좌상의 제작 연대를 8세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새겨진 글자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나열되어 있어 판독이 애매한 곳도 있으나, 죽은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을 구제하길 바라는 글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제작 기법이나 뚜껑 처리 방식, 글자의 새김 등 미술사적 측면과 비로자나불의 제작연대, 석불의 법사리 봉안과 조성 등 불교사적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전문설명

부산시립박물관(釜山市立博物館)에 소장(所藏) 전시(展示)되고 있는 유물(遺物)중에 명문(銘文)을 가진 납석제소호(蠟石製小壺)가 1점(點) 있다.

이 소호(小壺)는 영태2년(永泰二年)이란 절대년대(絶對年代)를 가진 점에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불상대좌(佛像臺座) 중대석(中臺石)에 납입(納入)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注目)되고 있다. 불상(佛像)의 중대석(中臺石) 안에서 발견(發見)되었다고 전(傳)하는 바에 따라 수년간출토위치(數年間出土位置) 및 불상(佛像), 대좌석(臺座石)을 추적하여 왔는데 그 위치(位置)가 밝혀져서 김홍원씨(金洪源氏)가 현장(現場)을 답사한 후에 확인이 되었다.

여기에서 중대석(中臺石)에 납입(納入)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곳의 위치(位置)는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 지이산(智異山) 남록(南麓) 900m고지(高地)로서 매우 험준하고 길이 없는 곳이라 한다. 험준한 암벽(巖壁)밑 5~10평(坪) 남짓한 폐암자지(廢庵子址)에, 현재(現在) 불상(佛像)은 현장(現場)에 없고, 불상(佛像) 대좌석(臺座石)이 전복 확산(擴散)되어 있는데 실측결과(實測結果) 일부(一部) 파손(破損)은 되었으나 거의 완전해서 복원(復元)이 가능하다고 한다.

상대석(上臺石)은 원형(圓形)으로서 전체(全體) 크기가 폭(幅) 100㎝, 고(高) 30㎝이고, 단엽중판앙연(單葉重瓣仰蓮)을 갖추고 있는데 판내(瓣內)에는 아무런 조식(彫飾)이 없다. 뒷쪽에 두드러지게 광배(光背)를 얹었던 자리가 있어서 불상이 광배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상대석(上臺石) 하면(下面)에는 8각형의 받침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 소호(小壺)가 납입(納入)되어 있었던 중대석(中臺石)은 크기가 폭(幅) 55㎝, 고(高)19㎝이고, 일반적인 8각형으로서 각면(各面)에 양우주(兩隅柱)를 새기고 있을 뿐 다른 조식(彫飾)은 없다. 그 상면(上面) 중앙부분(中央部分)에 밑지름 12㎝, 윗지름 14㎝, 높이 19㎝의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이 구멍은 중대석(中臺石)을 관통하여 있다. 여기에 호(壺)가 납입(納入)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석(下臺石)은 원형(圓形)으로서 117㎝, 고(高) 35㎝이고, 복엽단판복연(複葉單瓣伏蓮)을 갖추고 있으며, 상면(上面)에는 2단(段)의 8각형 받침을 갖추고 있고, 하면(下面)에는 방형(方形)의 받침을 갖추고 있다.

그 밖에 석조광배(石造光背)의 흔적에 관해서는 장차 확실한 조사가 있어야 알 수 있을 것이어서 그 지형상(地形上)의 특성(特性)에서 다른 가구물(架構物)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영태이년명납석제호)

명문(말)

명문(서)

뚜껑안쪽무늬

명납석제호(밑면)

전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