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루던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1층 건물로,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2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궁궐의 정전으로서는 작은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 위의 장식적인 짜임은 그 짜임새가 매우 견실하며, 그 형태가 힘차고 균형이 잡혀 있어 조선 전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고 왕이 앉는 의자 뒤로 해와 달, 5개의 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악도 병풍을 설치하였다. 건물 계단 앞에는 신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24개의 품계석이 놓여 있다.
명정전 남측의 문정전과 주변 행각은 1983년부터 3년간에 걸친 복원공사로 대부분 복원하였고, 일제 때 격하되었던 창경원의 명칭을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창경궁의 명정전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지만,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는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전문설명
창경궁< 昌慶宮 >의 정전< 正殿 >으로 조선< 朝鮮 > 제9대 성종< 成宗 > 15년(1484)에 건축< 建築 >되었으며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光海君 > 8년(1616)에 다시 지었다. 동으로는 현존< 現存 >하는 명정문< 明政門 >을 위시하여 지금은 없어졌으나 남쪽에는 광정문< 光政門 >, 북에는 광범문< 光範門 >이 있었다. 조선시대< 朝鮮時代 >의 궁중< 宮中 > 전각< 殿閣 >은 모두 남향< 南向 >이지만 이 전각만은 지세< 地勢 >에 따라서 동향< 東向 >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정전의 정면< 正面 >에 있는 월대< 月臺 >는 다른 궁의 정전처럼 길게 다듬은 돌을 쌓아서 2단으로 만들었으나 건물< 建物 > 좌우< 左右 >와 뒷편은 지형< 地形 >에 맞추어 일단으로 하였다. 정면< 正面 > 5칸, 측면< 側面 > 3칸의 단층< 單層 > 팔작 기와지붕이며 처마의 하중< 荷重 >을 받고 장식을 겸한 공포< 包 >는 기둥사이에 두개씩 배치한 다포형식< 多包形式 >을 하였다. 내부< 內部 >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고 용상< 龍床 >과 일월도< 日月圖 > 병풍을 설치< 設置 >하였다. 계단< 階段 > 앞 좌우< 左右 >에는 24개의 품계석< 品階石 >이 있어 임금은 이곳에서 신하< 臣下 >들의 하례< 賀禮 >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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