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225호 창덕궁인정전(昌德宮仁政殿)

오늘의 쉼터 2008. 1. 29. 20:33


종     목 국보  제225호
명     칭창덕궁인정전(昌德宮仁政殿)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수량/면적 1동
지 정 일 1985.01.08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창덕궁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창덕궁

일반설명

인정전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조정의 각종 의식과 외국 사신 접견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릴 때에도 이곳을 이용하였다. 또한 왕세자나 세자빈을 결정하였을 때나 국가의 커다란 경사가 있을 때에도 왕이 인정전으로 나아가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태종 5년(1405)에 창덕궁을 세우면서 함께 지었는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2층의 높은 기단 위에 세웠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밖으로 뻗친 부재 끝이 날카롭게 표현되어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오얏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이것은 한말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던 무늬이다. 건물 좌우에는 복도(행각)가 있고, 마당에는 신하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놓여 있다.

내부 천장 가운데는 한 단을 높여 구름 사이로 봉황 두 마리를 채색하여 그려 넣었다. 뒷면의 높은 기둥 사이에 임금이 앉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그 뒤에는 해와 달, 5개의 봉우리를 그린 일월오악도 병풍이 있다.

인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덕수궁의 중화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정전다운 격식과 장식을 잘 갖추고 있는 건물이다.


전문설명


별궁(別宮)인 창덕궁의 법전(法殿)인데, 18본의 평주로 된 외진주와 4본의 고주로 된 내진주가 세워져 있고, 정면 3칸과 측면 2칸이 중앙칸이며, 그 둘레는 툇간이다. 좌우로 동행각(東行閣) 36칸과 서행각(西行閣) 38칸이 딸려 있다.

인정전은 이중의 월대(月臺) 위에 중층(重層)으로 세워져 있는데 내부는 통층(通層)이다.

공포(공包)는 아래위층 모두 외삼출목 칠포작에 내사출목 구포작으로, 기둥 사이에 공포를 배치한 다포(多包)양식이다. 외부의 쇠서는 3중 앙서(仰舌)에 수서(垂舌) 하나를 운궁(雲宮)으로 처리하였으며, 첨차는 교두형(翹頭形)이고, 보머리는 삼분두이다. 기둥머리의 안초공(按草工)이 살미 밑을 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 인정문과 다른 수법이지만, 복잡한 초각(草刻) 등과 함께 다포식의 말기적 수법이 잘 나타나 있다.

2층에는 문짝이 없으나 아래층 4면에는 칸마다 문짝이 달려 있고, 중앙간(中央間)과 좌우 협간, 뒤쪽 어간(御間) 및 오른쪽 한 간에는 출입문이 달려 있다. 여기에는 하방(下枋)만 있고 머름이 없는데, 이 이외의 간(間)에는 높직하게 머름을 짜 돌리고 분합광창을 달았다. 또, 인방과 창방 사이에는 교창(交窓)을 설치하였다.

아래위 월대(月臺)의 앞면에는 당초문(唐草文)을 새겼는데, 조선조 전기의 수법이 남아 있다. 내진의 고주(高柱) 어칸에 운궁과 낙양각을 설치하여 보개(寶蓋)천장을 꾸몄으며, 운궁판(雲宮板)에 걸코쇄련의 무늬를 그리고 궁판 풍혈(風穴)에 보상화문(寶相華文)을 투각하였다.

높은 천장은 소란반자인데, 포작으로 좁혀진 천장판에는 유운(流雲)과 봉황을 따로 도각하여 장식하였다. 고주에 대량을 내려 걸고 운궁들을 별창방처럼 짜 돌린 다음 낙양각을 해서 매우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창덕궁 인정전

창덕궁 인정전 1,2층 추녀

창덕궁 인정전 내부가구

창덕궁 인정전 옥좌

창덕궁 인정전 전경

창덕궁 인정전 처마 및 현판

창덕궁 인정전 측면

창덕궁 인정전

창덕궁 인정전 내부옥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