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209호 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

오늘의 쉼터 2008. 1. 28. 22:01


종     목 국보  제209호
명     칭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82.12.07
소 재 지 서울 중구  필동3가 26 동국대학교박물관
시     대시대미상
소 유 자동국대학교
관 리 자동국대학교

일반설명

보협인탑이란 『보협인다라니경』을 그 안에 안치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겉모습도 종래에 볼 수 없던 특이한 모습인데, 중국 오월(吳越)이라는 나라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오월국의 마지막 왕인 충의왕 전홍숙(錢弘淑)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8만 4천기의 탑에 나누어 봉안하였다는 고사를 본따 금, 동, 철 등의 재료로 소탑 8만 4천기를 만들고 그 속에 일일이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하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탑을 보협인탑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이 석조 보협인탑이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원래는 천안시 북면 대평리 탑골계곡의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절터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와 주춧돌의 일부, 기와조각들이 남아 있어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되나, 이 곳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복원된 탑의 현재 모습은 5개의 돌만 남아 있어 완전한 형태는 아니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형식과는 전혀 달라서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완전한 형태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뚜껑을 덮은 듯한 네모난 상자 모양의 돌 2개를 포개어 놓은 후, 그 위로 귀를 세운 머리장식을 얹어놓은 모습이다. 불상(佛像)이 새겨진 육면체 위에 4각형의 받침돌을 놓고, 다시 그 위에 육면체가 놓이는데 4면에 부처님의 전생설화가 새겨있다. 이 탑몸돌 윗면 중앙에는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둥근 사리구멍이 남아있다. 당나귀 귀처럼 솟은 맨 윗돌에는 그 안에 석가의 일대기가 상하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전면에 조각이 가득한 이 탑은 중국 보협인탑의 영향을 받은 듯 하고 외형도 거의 비슷하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지며,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보협인석탑으로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문설명


원래 충남(忠南) 천원군(天原郡) 북면(北面) 대평리(大平里) 탑곡(塔谷) 고려(高麗)시대의 절터에 있었던 것을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에서 수습하여 동교(同校) 박물관(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5개의 돌만 남아 있어 완형(完型)은 아니지만, 한국(韓國)에서는 유일한 석조 보협인탑이다. 맨 밑의 돌은 높이가 약간 낮은 6면체이고 각면(各面)에 불좌상(佛坐像)을 조각하였는데, 이 돌 아래로 어떠한 구조가 더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위에는 얕은 4각형의 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4면에 둔한 솜씨로 복련(複蓮)이 조각되어 있다. 다시 그 위에 놓인 4각형 탑신에는 각면에 테를 돌리고 각각 본생담(本生譚)을 조각하였으며, 다시 아래위 2단으로 당초문(唐草文)과 앙련(仰蓮)을 조각한 돌을 얹어 놓았다. 맨 위에는 네 귀가 솟았고, 그 표면은 아래위로 구분하여 조각이 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생긴 공간 아랫부분에는 여의두(如意頭)가 장식되어 있다.

이 탑의 형식은 한국(韓國) 석탑의 일반형식과는 전혀 달라서, 중국오월왕(中國吳越王) 전홍숙(錢弘淑)이 조성하였다는 8만 4천 기(基)의 보협인탑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데, 이 석탑의 원형이 된 금동보협인탑(金銅寶협印塔)이 우리 한국(韓國)에 전래하여, 그것이 모본(母本)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보협인석탑

보협인석탑

보협인석탑

보협인석탑

보협인석탑

본생도

병좌상

보협인석탑

보협인석탑

보협인석탑

보협인석탑

보협인석탑 전경

보협인석탑 전경

보협인석탑 전경

보협인석탑 월광왕본생

보협인석탑 시비왕본생

보협인석탑 수태나태자본생

보협인석탑 살타태자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