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201호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奉化北枝里磨崖如來坐象)

오늘의 쉼터 2008. 1. 28. 20:00


종     목 국보  제201호
명     칭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奉化北枝里磨崖如來坐象)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수량/면적 1구
지 정 일 1980.09.16
소 재 지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657-1
시     대신라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봉화군

일반설명

경상북도 봉화군 북지리에는 신라시대의 ‘한절’이라는 대사찰이 있었고,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다.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 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가흥리마애삼존불상(보물 제221호)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전문설명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은 원래 감실(龕室) 안의 본존불(本尊佛)로 조성된 보기드문 신라시대의 거대한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이다.

현재 감실의 돌벽(石壁)도 무너졌고, 불상에도 군데군데 다소 파괴되고 풍화되었지만, 아직도 부처의 위용(偉容)은 여전히 남아 있는 편인데 거의 원각상에 가깝게 높은 돋을새김으로 새겼기 때문에 위엄스러운 모습이 더욱 돋보이고 있다. 더구나 네모진 얼굴에 내면적인 힘과 고졸(古拙)한 미소를 은근히 나타내고 있는 점이나 오른손을 가슴에 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왼손은 무릎에 내려 여원인(與願印)을 짓고 있는 큼직한 두 손은 이 불상의 적정(寂靜)한 위용을 한결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넓은 무릎과 무릎은 덮어 내린 옷자락의 소박한 상현좌(裳縣座), 불상 주위에 새긴 옛스러운 화불(化佛)들과 함께 7세기 전반기의 삼국시대 불상양식을 나타내고 있지만, 얼굴이나 체구에 표현된 부드러운 조각력 때문에 실제의 제작년대는 7세기 후반기로 추정되고 있다.

7세기 중엽경의 위엄스럽고 자비스러운 불상미(佛像美)를 잘 보여주는 이 불좌상은 큰절의 본존불답게 신라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봉화 북지리마애여래좌상

봉화 북지리마애여래좌상

봉화 북지리마애여래좌상

봉화 북지리마애여래좌상

봉화 북지리마애여래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