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197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오늘의 쉼터 2008. 1. 28. 19:37


종     목 국보  제197호
명     칭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79.05.22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충주시

일반설명

청계산 중턱의 청룡사에 자리한 부도로,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치었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조성되었는데, 바닥돌 위에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을 얹어 기단(基壇)을 마련하고 그 위로 탑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탑신(塔身)을 완성하였다. 기단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8각으로,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가운데돌에는 사자상과 구름에 휩싸인 용의 모습을 교대로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마다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신장상(神將像)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새겨진 기둥에는 위로 날아오르는 이무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 높이 들려있는데 마치 목조건축의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살아난 듯하다.

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부도는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안되는 부도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탑 가득히 새겨진 조각과 둥글게 부풀린 외형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탑신의 기둥과 지붕의 곡선, 그리고 지붕 귀퉁이의 용머리조각 등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엿볼 수 있어 당시의 건축과 비교하여 감상할 만하다.


전문설명


이 부도(浮屠)는 고려말(高麗末)의 고승(高僧)인 보각국사(普覺國師)(1320∼1392)의 묘탑(墓塔)이다. 편평한 대지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長臺石)으로 1단의 축대를 쌓고 그 중앙에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의 부도(浮屠)를 건립(建立)하였다.

기단부(基壇部)는 복련(覆蓮)을 새긴 하대석(下臺石)과 안상(眼象) 안에 사자상(獅子像)과 운룡문(雲龍紋)을 새긴 중대석(中臺石), 그리고 앙련(仰蓮)을 새긴 상대석(上臺石)으로 이루어졌다.

탑신부(塔身部)는 반룡(蟠龍)이 감긴 엔타시스의 우주(隅柱)를 조각하였고 그 위에는 창방(昌枋)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각면(各面)에는 무기를 든 신장상(神將像)이 1구(一軀)씩 양각되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밑면 처마에 탑신(塔身) 우주(隅柱) 위의 창방(昌枋)머리와 접촉되는 부분이 보머리형을 이루고 있으며 추녀와 사래를 양각하였고 연화문(蓮華紋)을 조각하였다. 옥개석(屋蓋石)의 낙수면(落水面)은 상단부가 급경사이며 기왓골은 없으나 각 합각(合角)마루에 용두(龍頭)를 조각하였다. 옥개석(屋蓋石) 정상(頂上)에는 복련(覆蓮)을 조각하여 상륜부(相輪部)를 받치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복발(覆鉢), 보륜(寶輪),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탑신(塔身) 우주(隅柱)의 엔타시스와 창방(昌枋)의 조각, 옥개석(屋蓋石)의 보머리형 조각, 추녀와 사래의 표현, 지붕 합각부의 용두(龍頭)조각 등은 당시의 목조가구(木造架構)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부도(浮屠)의 앞에는 배례석(拜禮石)이 있고 주위에 탑비(塔碑)와 사자석등(獅子石燈)이 있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기단부

전경

탑신부와 옥개석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옥개운룡

탑신부신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