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163호 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 誌石)

오늘의 쉼터 2008. 1. 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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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국보  제163호
명     칭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 誌石)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지석
수량/면적 2개
지 정 일 1974.07.09
소 재 지 충남 공주시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시     대백제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국립공주박물관

 

일반설명

이 지석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으로 2매이다. 이 2매의 지석은 왕과 왕비의 장례를 지낼 때 땅의 신에게 묘소로 쓸 땅을 사들인다는 문서를 작성하여 그것을 돌에 새겨넣은 매지권으로,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될 때 함께 출토되었다.

왕의 지석은 가로 41.5㎝, 세로 35㎝이며, 표면에 5∼6㎝의 선을 만들고 그 안에 6행에 걸쳐 새겼다. 왕의 기록은『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뒷면에는 주위에 네모나게 구획선을 긋고 그 선을 따라 12방위를 표시하였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쪽 부분은 표시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왕비의 지석인데 가로 41.5㎝, 세로 35㎝이며, 2.5∼2.8㎝ 폭으로 선을 긋고 4행에 걸쳐 새겼다. 선을 그은 부분은 13행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공백으로 그대로 남겨 두었다. 뒷면에는 매지문(買地文:땅을 샀다는 문서)을 새겼다. 원래 매지권은 무령왕을 장사지낼 때 만들어진 것인데 그 후 왕비를 합장하였을 때 이 매지권의 뒷면을 이용하여 왕비에 관한 묘지문을 새겼던 것이다.

이 지석은 삼국시대의 능에서 발견된 유일한 매지권으로서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있게 한 것으로, 여기에는 당시 백제인들의 매장풍습이 담겨져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다른 유물들과 함께 6세기 초 백제와 중국 남조와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전문설명

왕(王)의 지석(誌石)은 표면에 5∼6cm의 계선(界線)을 만들고 그 안에 6행에 걸쳐 다음과 같이 새겼다. '영동대장군백제사 마왕년륙십이세계 묘년오월병술삭칠 일임진붕도을사년팔월 계유삭십이일 갑신안조 등관대묘입지여좌'(寧東大將軍百濟斯 麻王年六十二歲癸 卯年五月丙戌朔七 日壬辰崩到乙巳年八月 癸酉朔十二日 甲申安조 登冠大墓立志如左)

이 묘지의 내용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사와 일치된다.

뒷면에는 주위에 네모나게 구획선을 치고 그 선에 따라 십이지(十二支) 방위(方位)를 새겼으나 무슨 까닭인지 서쪽에 해당되는 부분은 생략되었다.

또 하나에는 왕비(王妃)에 관한 묘지를 새겼는데 2.5∼2.8cm 폭으로 계선(界線)을 치고 4행에 걸쳐 '병오년십이월 백제국왕대비수 종거상재 유지을유년이월계 미삭십이일갑오개장환대묘립 지여좌 (丙午年十二月 百濟國王大妃壽 終居喪在 酉地乙酉年二月癸 未朔十二日甲午改葬還大墓立 志如左)'라 새겼다.

계선(界線)을 친 부분은 모두 13행이 되지만 나머지 부분은 공백으로 그대로 남겨 두었다.

이 지석(誌石)의 뒷면에는 아래와 같은 매지문(買地文)이 새겨졌다. '전일만문우일건 을사년팔월십이일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이전건전송토왕 토백토부모상하 중관이천석 매신지위묘고립권위명 부종률령(錢一萬文右日件 乙巳年八月十二日 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以前件錢訟土王 土伯土父母上下 衆官二千石 買申地爲墓故立券爲明 不從律令)'·

원래의 매지권(買地卷)은 '무령왕(사마왕, 斯麻王)'의 장사를 지낼 때 만들어진 것인데 그 후 왕비(王妃)를 합장하였을 때 이 매지권(買地卷)의 뒷면을 이용하여 왕비(王妃)에 관한 묘지문을 새겼던 것이다.

2개 모두가 중앙보다 한쪽에 치우쳐 작은 구멍을 하나씩 뚫고 있으며 각섬석질(角閃石質)의 돌을 사용하였다.


무령왕릉 지석

무령왕릉 지석

무령왕릉 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