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보살상은 하나의 광배(光背)에 삼존상을 배치한 형식이며, 불신(佛身), 광배, 대좌(臺座)가 함께 붙어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본존인 보살은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둥근 편이다. 가슴에는 대각선으로 걸쳐 입은 얇은 속옷이 보이고, 두껍게 걸쳐 입은 겉옷은 보살상의 앞면에서 X자로 교차되었다가 새의 날개깃처럼 좌우로 퍼지고 있다. 치마는 발목까지 길게 늘어졌으며, 약간의 주름을 선으로 표현하였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어깨 높이로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보이고 있으며, 왼손은 손가락이 밑을 향하고 마지막 두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다. 머리를 깎고 합장한 채 서 있는 두 나한상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서 세부묘사나 옷주름의 특징을 살피기가 어렵다.
보살상 뒤의 광배는 가장자리에 도드라진 테를 두른 배(舟) 모양이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3줄의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머리광배 안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머리광배와 몸광배의 바깥쪽에는 섬세한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보살상이 서 있는 대좌에는 큼직한 연꽃무늬를 이중의 선으로 새기고 있다. 대좌를 이러한 양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여 부소산에서 출토된 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제196호)이나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83호)과 비슷하여 백제시대 작품일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더 섬세한 면이 있다.
이 작품은 X자로 교차된 옷, 새의 날개깃처럼 퍼진 옷자락, 왼손 손가락을 굽힌 표현 등에서 삼국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보살상을 중심에 두고 양 옆에 나한상을 배치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수법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전문설명 엎어 놓은 반구형< 半球形 > 대좌 위에 서 있는 보살< 菩薩 >인데, 좌우에는 합장배례하는 머리 깎은 비구< 比丘 >가 하나씩 서 있다. 뒤에는 큼직한 주형< 舟形 > 광배< 光背 >가 달려 있는데, 모든 것이 함께 주성< 鑄成 >되어 있다. 보살은 오른손이 시무외< 施無畏 >의 인상< 印相 >인데, 여원인< 與願印 >의 마지막 두 손가락이 꺾인 것이나 X자로 고쵸하여 또 옆으로 뻗은 천의< 天衣 >의 모습이 모두 전형적인 삼국기< 三國期 >의 불상 형식이다. 광배에 새겨진 화염문< 火焰文 >도 섬세하게 잘 나타나 있다. 보살을 주존< 主尊 >으로 하는 삼존상< 三尊像 >은 한국< 韓國 >에서 처음 보는 유례< 遺例 >이지만, 중국< 中國 >에서는 북제< 北齊 >·수< 隋 >(6세기 후반) 등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대좌의 선각< 線刻 >으로 된 중판< 重瓣 >의 8판< 瓣 > 연화문< 蓮華文 >도 6세기 말의 수불< 隋佛 >에서 많이 보는 형식이다. 연판< 蓮瓣 >은 각각 단판< 單瓣 >이면서 끝에 내선< 內線 >이 그어져 있고, 다시 중심부에 내곽< 內廓 >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복판< 複瓣 >과 단판< 單瓣 >을 합쳤다고 할 수 있는 형식으로, 부여< 夫餘 >에서 나온 정지원명< 鄭智遠銘 >의 금동석가여래입상< 金銅釋迦如來立像 >(보물 제196호), 거창< 居昌 >에서 나온 금동보살입상< 金銅菩薩立像 >(보물 제285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금동미륵보살반가상< 金銅彌勒菩薩半跏像 >(국보 제83호)에도 나타나 있는데, 이 보살삼촌의 경우는 끝에 내선이 그어진 것이 다르다. 아마도 부여< 夫餘 > 능산리벽화고분< 陵山里壁畵古墳 >이나 고령< 高靈 > 고아동 벽화고분 등에 나타나는, 끝에 진한 칠을 한 삼국< 三國 > 말기식 연화문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부여< 夫餘 > 근처에서 나온 백제< 百濟 > 작품일 것이며, 이 보살은 아미타불< 阿彌陀佛 >의 보처< 補處 >로, 시무외자< 施無畏者 >로 불리는 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 >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가 분명치 않고 광배에 금이 갔으며, 보살의 얼굴이 녹으로 상한 것이 치명적이지만, 삼존< 三尊 >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금빛이 제대로 남은 귀한 삼국< 三國 > 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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