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93호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白磁 鐵畵葡萄猿文 壺)

오늘의 쉼터 2008. 1. 24. 19:13



종     목

국보  제93호
명     칭백자철화포도문호(白磁鐵畵葡萄文壺)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백자
수량/면적 1개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국립중앙박물관

일반설명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로 적당한 높이의 아가리에 어깨부분이 불룩하고 아래로 갈수록 서서히 좁아지는 모양이다. 크기는 높이 30.8㎝, 입지름 15㎝, 밑지름 16.4㎝이다.

직각으로 올라 선 아가리 둘레에도 무늬를 두르고 몸통에는 능숙한 솜씨로 포도 덩굴을 그려 넣었다. 검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그린 포도 덩굴의 잎과 줄기의 생생한 표현으로 보아 도공(陶工)들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전문 화가들이 그린 회화성이 짙은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몸통 전면에 푸른색이 감도는 유백색의 백자 유약이 고르게 칠해져 있는 이 항아리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백자철화포도문호(국보 제107호)와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백자 항아리이다.

 

전문설명

 

유백색(乳白色)의 온아(溫雅)한 유약(釉藥) 밑에 철채(鐵彩)로 포도덩굴을 매우 활발하고 세련된 솜씨로 그려 놓았다. 포도덩굴의 잎과 줄기의 생생한 붓끝의 놀림, 포도덩굴에서 희롱하는 원숭이의 표현 등이 예사로운 솜씨가 아니다.

철화사기(鐵畵沙器)는 정부의 사옹원(司甕院)이 해마다 감조관(監造官)을 임명하여, 그가 도화서(圖畵署)의 화가(畵家)들을 거느리고 분원(分院)(사옹원(司甕院)의 분원이라는 뜻)에 나가서 어용사기(御用沙器)나 실용사기(實用沙器)에 필요한 그림을 그리도록 했으므로, 도공(陶工)들이 그린 공예 장식적인 그림이 아니라 전문화가들의 회화적인 작품이었다.

몸체에 그린 이런 회화적인 그림과는 달리, 항아리의 주둥이 언저리에는 방간(方間)의 철채문대(鐵彩文帶)를 돌려서 이 병의 조형 효과를 정돈해 주고 있다. 또한 전아(典雅)한 항아리의 곡선이나 철사(鐵砂)의 발색(發色) 등도 매우 효과적이어서, 조선자기(朝鮮磁器) 중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귀족적 취미의 가작(佳作)이다.

현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수준의 작품은 사옹원(司甕院) 직계 가마의 생산품으로 짐작되며, 따라서 이 포도 그림도 틀림없이 어느 저명한 도화서(圖畵署) 재적화가(在籍畵家)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