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의 청자 정병으로 높이 37.0㎝, 밑지름 8.9㎝의 크기이다. 원래 정병은 불교에서 모든 악을 씻어 버리는 의식에서 사용하던 용기의 하나로 중국을 거쳐 전해진 서방(西方) 양식이었으나, 고려에 와서 가장 세련되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유물 중에서도 뛰어난 걸작으로 청아한 담록색 계통의 비취색 유약에 백토(白土) 상감만으로 새겨진 버드나무와 갈대, 연꽃, 원앙새 1쌍을 회화적으로 배치해 놓고 있다. 병 목에는 앞뒤 양면에 모란꽃을 하나씩 상감했다. 물을 따르는 부리는 8각으로 기품있게 만들어 병 목 위에 수직으로 세워 놓았다. 물을 넣는 아가리는 둥근 어깨 한쪽에 아담하게 붙어 있는데, 원래 뚜껑이 있었으나 없어진 상태이다.
대체로 초기의 상감청자는 유약이나 바탕흙이 매우 정선되어 있고, 청아한 비취색 유약이 세련미를 보여주는 것이 특색인데, 이러한 바탕 위에 상감무늬가 곁들여졌던 만큼 한층 더 장식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이 정병 또한 이러한 초기 상감청자의 하나로 매우 정제되고 세련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설명 고려청자(高麗靑磁)의 상감(象嵌)기법이 이미 12세기 전반기에 시작되었으리라는 것은, 문공유(文公裕) 묘지(墓誌)와 함께 석관(石棺)에서 출토된 청자상감보상화문완(靑磁象嵌寶相華文완)(의종(毅宗) 13년(1159))이나, 명종(明宗)의 지릉(智陵)에서 출토된 상감청자기류(象嵌靑磁器類)(1197년경) 등이 보여 주는 뛰어난 상감기법으로 보아서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이러한 초기의 청자상감은 유약(釉藥)이나 태토(胎土)가 매우 정선되어 있고, 청아(淸雅)한 비색(翡色) 유약이 세련미를 보여 주는 것이 특색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 상감무늬가 곁들여졌던 만큼 한층 더 장식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이 정병(淨甁)은 이러한 초기 상감청자의 하나이며, 이 작품이 보여 주는 정제(整齊)되고 세련된 양식은 청동은입사포유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국보(國寶) 제92호)과 흡사할 뿐더러, 상감도안의 내용도 비슷하다. 이렇게 닮은 것은, 상감기법의 창안(創案)에 끼친 이들 은입사동기(銀入絲銅器)의 영향을 보여 주는 좋은 보기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러한 정병(淨甁)은 불교(佛敎)에서 비구(比丘)나 비구니(比丘尼)가 제악(諸惡)과 불선(不善)을 씻어 버리는 의식(儀式) 곧 포살회(布薩會)에 쓰이던 불구(佛具)로서, 중국(中國)을 거쳐 전해진 서래(西來)양식이었다. 그런데, 이 양식의 정병이 고려(高麗)에서 가장 세련미를 나타내, 청동금은상감(靑銅金銀象嵌) 또는 청자상감(靑磁象嵌) 등 가작이 남겨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유물 중에서도 뛰어난 걸작이며, 청아한 담록색 계통의 비색(翡色) 유약 밑에 백토(白土) 상감만으로 새겨진 버드나무와 갈대·연꽃 그리고 노니는 1쌍의 원앙새를 회화적으로 배치해 놓고 있다. 병 목에는 앞뒤 양면에 모란꽃을 1그루씩 상감했고, 병 목의 가장자리에는 백상감(白象嵌)으로 여의두(如意頭)를 둘러 놓았다. 8각으로 된 기품있는 주구(注口)는 병 목 위에 수직으로 세워져 있고, 주둥이는 둥근 어깨 한쪽에 아담하게 붙어 있다. 이 주둥이로는 물을 붓고 긴 주구(注口)로 물을 따르게 되어 있는데, 원래 주둥이에는 뚜껑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말았다.
이런 종류의 상감청자 파편은 전북(全北) 부안군(扶安郡) 유천리(柳川里)와 전남(全南) 강진군(康津郡) 대구면(大口面) 사당리(沙堂里) 요지(窯址)에서 출토되고 있다.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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