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묘지

3. 퇴계 이황선생묘

오늘의 쉼터 2008. 1. 12. 14:57

 

이퇴계 (이황)선생묘 

 

한국의 능원묘

                             퇴계 이황선생 묘

 

▲ 퇴계 종택 전경

퇴계 종택 들어서기 전의 퇴계선생 묘 1.6km도로 표지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퇴계 종택을 둘러 보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고, 도산서원의 예약 시간이 조금 남아서 퇴계선생 묘로 향했습니다.

퇴계 종택에서 1.6km를 가면 좌측으로 급 커브길이 나옵니다. 이 곳 좌측 산자락에 퇴계선생 묘소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서 산자락의 계단을 오르면 평벙한 묘가 한 기 보입니다만, 우측으로 계단이 연결되어 있어서 퇴계선생 묘는 위에 위치하고 있겠구나 하고 올라 갔습니다. 계단을 한 100여터정도 올라야 합니다.

▲ 퇴계 이황 선생의 묘역 전경

퇴계선생 묘에 올라보니 선생의 명성에 비해서 묘역도 넓지 않았으며, 석물도 단촐했습니다. 묘역 좌우로는 문인석과 망주석 한쌍이,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 그리고 동자석 한쌍이 서 있으며, 묘비는 봉분 우측에 서 있습니다.

 ▲ 묘역내 석물 전경  ▲ 퇴계 선생의 묘비

퇴계선생 정도의 명성이면 묘비 뿐만 아니라 최소한 신도비는 있을 법한데, 없었습니다. 묘역 좌측에는 비석을 세웠던 받침돌이 있는데, 아마도 묘비가 훼손되어서 후대에 묘비를 새로 세운 것 같습니다.

퇴계선생 묘는 국가 지정 문화재는 커녕 향토문화재로도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묘들을 가 보면 문화재적 가치가 없는 곳도 인물을 보고 문화재로 지정한 곳이 상당히 많은데...

 ▲ 우측에서 바라 본 묘역 전경  ▲ 묘역 좌측에 있는 비석 받침돌

이황(李滉 1501년~1570년)은 조선 명종, 선조 시대의 명신. 정치보다는 학자 지향형 인물이다.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거계상[退居溪上]의 줄임말),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시호는 문순(文純)이다.이황은 연산군 7년(1501년), 경북 예안군(오늘날의 안동)에서 이식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지 7개월 만에 마흔살의 나이로 사망하여, 이황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야했다. 이황은 열두 살 때부터 숙부인 송재 이우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송재는 그때 관직에 있었는데, 바쁜 일과 중에도 퇴계를 가르쳤다. 1527년에 소과에 입격하고 1534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 지평, 성균관 사성, 단양 군수, 풍기 군수 등을 역임하였는데, 풍기 군수 시절에 소수서원(紹修書院) 사액을 실현시켰다. 선조 즉위 직후 임금에게 올린 성학십도가 성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나타낸다.

 

조선 정치사에서 특히 남인(南人) 계열의 종주가 되었고, 사후 의정부 영의정에 증직되었으며 광해군 치세인 1609년에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이이와 더불어 한국의 성리학의 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대한민국의 1000원권 지폐 앞면에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발췌 -

 

출처 : 나홀로 테마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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