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70호 |
명 칭 | 육경합부 (六經合部) |
분 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사찰본 |
수량/면적 | 1책 |
지 정 일 | 2020.08.13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신내동 법장사 |
시 대 | 조선 1449년 |
소 유 자 | 법장사 |
관 리 자 | 법장사 |
일반설명 육경합부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혀지고 있던 6종의 경전중 핵심부분을 취합하여 한권의 책 으로 편찬한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판본이다. 6종의 경전은 『金剛般若波羅密經』, 『大方廣佛華 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大佛頂首楞嚴神呪』,『觀世音菩薩禮文』,『佛說阿彌陀 經』,『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이다. 육경합부는 1424년 전라도 고산 安心寺에서 개판된 이래 15세기에만 20여종이 넘는 많은 판본이 왕실과 전국의 사찰에서 간행되었다. 통상 첫번째 수록된 금강경을 목록의 표제어로 기입하고, 변상 역시 금강경변상을 채용하는 경향이 있다. 법장사 소장본 역시 붉은 비단 표지에 금니로 『金剛經』이라 기재하였다. 책의 순서대로 살 펴보면 본문 앞 2장으로 이루어진 변상도가 먼저 제시된 후 금강경부터 6경이 차례로 이어진 다. 금강경의 판심제는‘金’, 화엄경행원품의 판심제는‘行’, 수능엄경의 판심제는‘頂’, 관 세음보살예문의 판심제는‘口’, 불설아미타경의 판심제는‘阿’, 보문품의 판심제는‘普’이 고 그 아래에 장차를 표기하였다. 금강경 말미에는 간략한 발원문과 시주질, 연화질이 1장 포함되어 있다. 발원문은 경전 개판 의 공덕으로 시방세계의 육도중생이 함께 정토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친경하여 정법을 듣고 교 화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그 끝에 ‘留後所金沙寺開板’이라하여 간행사찰이 명기되어 있 다. 그리고 시주질이 1장 이어지는데 그 마지막에는 ‘幹善 惠頓 省厸 同願 正心’,‘刻手 司正 金戒信, 入選 克浩, 禪師 信觀’이라는 연화질이 새겨져 있어 혜돈 등 3인의 승려가 발원하고 김계신 등 3인이 판각하였음을 알수 있다. 화엄경행원품과 수능엄신주에는 기록이 없고,『관세음보살예문』말미에 克敬의 발문 1매가 있다. 예전 相國成公(성달생)이 金剛彌陀 등 經 6권 합부를 필사하고 도인 信玄이 공인을 모집 하여 전라도 花巖寺에서 간행하였는데 판이 이미 낡아 선사 正心이 선본 1부를 구하여 혜돈의 출자하고 효령대군이 함께 발원하였으며, 혜돈, 성린, 정심이 간선하여 간행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말미에‘時正統十四年己巳正月日比丘克敬謹跋’, 그리고 ‘同願 孝寧大君, 幹善道人 惠頓, 省厸, 正心’이라하여 간행년도와 발원자가 밝혀져 있다. 그런데 성달생이 서사한 초간본은 화 암사가 아니라 1424년 고산 安心寺에서 간행하였으므로 克敬이 착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미타경의 마지막 장에는 前夫余縣監 李壽山 등 이십여명의 시주자 명단이 기록되어 있으며, 마지막『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말미에‘大施主金卜山兩主 등 묵서 시주질 1장이 붙어있어 후쇄본임을 알수 있다. 붉은 비단으로 개장되었던 뒷표지는 탈락되어 있다. 권수에는 ‘金剛行願圓通普門彌陀諸經變相’이라는 경제를 넣고 변상이 전개된다. 보편적으로 변상의 앞 혹은 책 말미에 수호의 의미로 韋馱天을 배치하는데, 여기에서는 변상의 앞뒤에 모두 위태천을 배치한 점이 특징적이다.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위태천은 합장한 팔 위에 금강 저를 얹어놓은 자세인데 이러한 도상은 안심사에서 개판한 법화경이나 수능엄경에서도 공통적 으로 보여지듯 경전변상도에 표현된 위태천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변상은 祇樹給孤獨園에서의 설법장면이다. 화면의 오른쪽에 설법하는 석가모니불 주위에 좌 우협시보살과 십대제자 및 신중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 맞은편에는 여래를 향해 무릎꿇고 청문하는 須菩提를 비롯하여 승려, 천부중 및 신중 등 많은 청문중들이 밀집하여 있다. 불상의 머리 위에는 큰 寶蓋가 장엄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여러 가닥의 천의자락이 공중으로 흩날리고 있으며, 청문중들 위의 공중에는 2구의 飛天이 구름을 가르며 散花供養하며 날고 있는 도상이 다. 치밀한 구성의 도상을 유연하고 생동감있게 새겨낸 각수의 뛰어난 기량을 확인할수 있어 15세기의 우수한 경전변상도로 평가된다. 변상 하단의 왼쪽 끝에는 곽을 만들어 ‘金戒信刀’ 라고 표기하여 각수 3인중 김계신이 변상 각수임을 밝혀준다. 김계신은 1448년 효령대군과 안 평대군 등이 발원한 법화경에도 각수로 참여한 사실이 있어 궁중소속 각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변상은 경주 玉龍寺院소장 소조석가불좌상(1579년)에서 출토된 至元4년(1338) 간 행된 元代 금강경변상도의 변상과 도상이 같다. 이 금강경변상은 권수화에 이어 변상과 본문이 상하로 배치되어 전개되고 있으며 경전 말미에 신장1구가 배치된 도상이다. 참고로 이러한 원 대 금강경과 같은 도상의 금강경이 1363년 전라도 남원에서 간행된바 있고(성암고서박물관 소 장, 보물 제696호), 조선시대에는 황해도 문화 패엽사본(1564년)과 경상도 안동 광흥사본(1570 년)이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금사사 육경합부의 변상은 1338년 원대 금강경의 권수변상도에 위태천을 앞뒤로 2구 배치한 도상으로, 원대 판본의 복각본은 아니고 김계신이 그 도상을 참고하여 새로이 판각한 것으로 보인다. 1449년 개성 금사사에서 개판한 육경합부의 후쇄본이다. 표지는 붉은 비단으로 개장되었으나 이중 뒷표지는 현재 탈락되어있다. 권수변상도 첫장의 하단부분이 손상되었고 금강경 뒷부분 부터 행원품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여러 장에 걸쳐 얼룩이 있으나 본문은 온전히 판독되며 변상도 역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지질과 인쇄상태로 보아 판각후 오래 지나지 않은 시기에 후쇄 된 것으로, 그 시기는 16세기 이후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장사 소장 육경합부는 뒷표지가 탈락되었고, 얼룩 등 약간의 손상이 있으나 각 경전 사이에 발문, 간기, 시주질 등 기록이 남아있어 正統14년(1449) 비구 극경이 발문을 쓰고 효령대군을 비롯하여 비구 惠頓, 省厸, 正心이 함께 발원하여 개성 금사사에서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록 후쇄본이지만 1449년 금사사 육경합부는 현존 사례가 극히 드물며, 인쇄상태가 양호하고 간행기와 변상도가 남아있는 등 주목되는 판본이다.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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