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2154호) 남한산성 연무관

오늘의 쉼터 2023. 4. 15. 16:07

 

종    목 보물 (제2154호) 
명    칭 남한산성 연무관 (南漢山城 演武館)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수량/면적 1동
지 정 일 2021.12.27
소 재 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400-1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일반설명

「남한산성 연무관」은 남한산성을 수축하던 시기인 1625년(인조 3)에 창건되어, 그 직후 1626년에 창설된 중앙 군영인 수어청의 중심 건물로, 1795년 수어청의 경청이 폐지된 이후 수어청의 본영이자 광주유수의 집무처로 사용되었다. 창건 이래 세 번에 걸친 중수의 기록을 상량묵서와 상량문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편액에 있는 연기는 1762년(영조 2)의 것이다.

건축적 특징을 보면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정면과 배면에 퇴칸을 두고 있으며 좌・우측에도 퇴보를 설치하여 구성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연무관이 군사시설로 사용된 관영건축으로 중앙부에서 기둥을 후면으로 이주하여 벽을 세우고, 국왕이나 수어사가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한 것과 초익공을 사용한 공포의 의장형태나 단청에서 소박하지만 대량 계풍에 용을 그려 넣어 장엄을 위하여 조식한 점이다. 특히 기둥을 보호하면서 건물의 위용을 나타내는 주련은 기둥보다 더 큰 나무를 사용하여 기둥 외부를 완전하게 감싸도록 하였다.

군사시설로서의 성격, 그리고 연병장의 넓은 공간에서 국왕이 백성을 직접 대면할 수 있었던 장소로서의 역사적 성격, 연무관 뒤편에는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판관이 근무하던 곳이 있었고 주위에 향청, 작청 등의 관아시설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처럼 연무관은 군사시설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정조의 남한산성 행차 당시 국왕이 백성들과 대면하여 노고를 치하하고 지역의 오랜 숙원을 해결해 주었던 정조의 애민정신이 깃든 장소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남한산성 연무관
남한산성 연무관
남한산성 연무관
남한산성 연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