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한국의 野史

3. 黃鳥의 노래

오늘의 쉼터 2018. 12. 6. 18:40

3. 黃鳥의 노래


유리는 즉위할 때까지 비가 없었다.

 
그러므로 즉위한 이듬해 7월 다물후(多勿候)인 송양(松讓)의 딸을 비로 삼았다.
송양은 일찍이 비류국 왕이었으나 동명성왕과 무예를 다투어 패배하자
나라를 바쳐 합방하고 그의 고토인 다물후로 책봉된 것이다.
왕비 송씨는 비로 책봉된 이듬해 十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왕은 다시 두 여자를 계실(繼室)로 얻었는데
하나는 골촌(堀村) 사람의 딸 화희(禾姬)이고 하나는 한(漢)나라 사람인 치희(稚姬)였다.
 
두 여인은 다같이 남달리 투기가 심한 성질이었을 뿐 아니라
국적과 민족이 다른 처지였으므로 사사건건(事事件件) 반목(反目)하여 왕을 괴롭혔다.
그래서 왕은 하는 수 없이 양곡(凉谷)의 동서(東西) 두곳에 각각 궁실을 짓고
두 총희를 따로따로 거처하게 했다.
 
그러나 두 여인의 반목은 그치질 않았다.
한 번은 왕이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가게 되었다. 
 여러 날 걸릴 예정이었는데 그 동안 왕은 무엇보다도 화희와 치희 두 총희가
서로 다투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두 여인의 궁실을 찾아가서 단단히 당부해 두었다.
 
“내가 없는 동안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둘이 다투면 안 되오.”
 
두 여인은 투기가 심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속이 좁기도 했다.
왕의 당부를 받고도 꽁하게 입을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왕은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떨어지지 얻는 발길로 사냥터를 향했다.
 
왕의 사냥은 제법 여러 날이 걸렸다.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화희와 치희는 묘한 암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왕이 돌아왔을 때 어느 궁실에 먼저 들르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오랑캐 년 궁실에 먼저 들르기만 해봐라! 내 가만 있지 않을 테니까.”
 
 화희는 이렇게 종알거리며 독살을 피웠다. 그리고 치희는 치희대로 벼르고 있었다.
 
“멀리 고국을 떠나 외로운 몸인데 나를 제쳐놓고 화희 년만 먼저 찾아보신다면
정말 가만 있지 않을 테야.”
 
이렇게  그리고 시녀를 놓아 혹시 왕이 상대편 궁실에 몰래 돌아와 있지 않나 염탐하기까지 했다.
 
왕이 사냥을 떠난 지 엿새가 지난날 저녁이었다.
치희가 외로운 방에서 왕을 생각하며 잠을 못 이루고 있으려니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또 화희 년이 종을 보내어 염탐하는 모양이구나. 오늘은 내 가만히 두지 않겠다.”
 
늦게 돌아오는 왕을 기다리다 못해 짜증이 날대로 난 치희는 발소리를 죽이고 밖을 내다보았더니
과연 한 시녀가 방안을 엿보고 있었다.
치희는 날쌔게 달려들어 그 시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이년! 너는 어떤 년인데 감히 내 침실을 엿보는 거냐?”
 
끌고 들어가서 불빛에 얼굴을 밝혀 보니 과연 화희의 시녀였다.
치희는 분해서 치를 떨었다.
 
“여봐라! 이 도둑년을 흠뻑 때려서 쫓아 보내도록 해라.”
 
치희는 시녀들에게 명했다.
주인이 반목하고 있었던 만치 시녀들도 대립되어 으르렁거리고 있었던 터였다.
 
“그년 잘 붙잡혔군. 초죽음을 만들어 줘야지.”
 
치희의 시녀들은 모두 달려들어 화희가 보낸 시녀를 때리고 차고 할퀴고 해서
피투성이를 만들어 돌려보냈다.
총애하는 시녀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것을 보자 화희는 이를 갈고 발을 굴렀다.
 
“그 오랑캐 년이 못할 짓이 없구나. 내 그 년을 당장 쫓아버리겠다.”
 
화희는 시녀들을 거느리고 치희의 궁실로 달려갔다.
 
“이년 ! 이 배우지 못한 오랑캐 년아!”
 
화희는 소리소리 질렀다.
 
“네 년이 남의 나라에 와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것만도 감지덕지(感之德之)할 텐데
감히 내가 부리는 아이를 매질하다니 더 그냥 둘 수 없다.
 썩 돌아가라! 너희 나라로 썩 돌아가란 말야.”
 
그러나 치희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네 년이 누구라고 날더러 오라가라하는 거냐? 네년이나 나나 다 같은 처지가 아니냐 말이야?”

그러니까 화희는 싸늘한 비웃음을 띠우며 치희를 노려보더니
 
“입이 째졌다고 말이면 다 하는 것으로 아느냐? 어째서 네년과 내가 같단 말이냐?
원래 사슴은 사슴과 어울리고 이리는 이리와 어울리는 법이야.
나와 대왕의 사이는 사슴과 사슴의 사이와 같지만 너와 대왕의 사이는
사슴과 이리의 사이와 흡사하지 않으냐?
사슴의 나라에서 어찌 악독한 이리가 행세한다는 말이냐?”
 
이 말에 치희는 더 항변할 힘이 없었다.
이에 앞서 오랜 동안 한(漢)나라에 정벌되어 압박을 받아 오던 이 땅의 백성들은
차츰 민족의식(民族意識)을 갖게 되자 한(漢)을 미워하고 반항하여
독립 국가를 세우기 시작 할 시기였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두드러진 세력이 고구려(高句麗)였다.
그러니 만치 화희의 말은 비록 질투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고구려(高句麗)사람들의
민족 감정(民族 感情)의 일단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치희는 한참 동안 말을 못하다가 겨우 한마디 반발했다.
 
“네가 아무리 그런 소리를 하지만 대왕께서는 다르단 말이야.
대왕께서는 나를 극진히 아껴 주신단 말이야.”
 
“대왕께서 아껴 주신다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색다른 꽃이 신기해서 그러시는 거지
진심으로 아끼시는 건 아니란 말이야.
너희 한(漢)나라 오랑캐들을 누구보다도 미워하고 기회만 있으면 이 땅에서 몰아내려고
하시는 게 대왕의 생각이라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지 않으냐?”

치희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짐을 꾸려 가지고 그 밤으로 궁실을 떠났다.
 
그 이튿날에야 유리왕은 사냥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치희가 궁실을 나가 버렸다는 말을 듣자 크게 놀랐다.
비록 이국의 여성이지만 왕은 누구보다도 치희를 사랑했던 것이다.
 
왕은 궁중에 들어가지도 않고 말머리를 돌려 치희를 쫓아갔다.
치희의 집은 그 당시 한나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낙랑(樂浪)땅에 있었다.
그러므로 왕은 그 곳을 향해 말을 달렸다.
 
고구려의 강토와 낙랑 땅 접경을 이루고 있는 냇가에서 겨우 치희를 발견했다.
 
“치희, 나요! 그만 돌아오오.”
 
왕은 소리쳤다.
그러나 치희는 한 번 왕을 돌아보더니 그대로 냇물을 건너고 말았다.
냇물을 건너면 곧 이국땅이다.
함부로 쫓아갈 수 없었다.
왕은 냇물 이편에서 애타게 치희를 부르다가 마침내 멀리 사라져 버리자
그대로 주저앉아 넋을 잃고 말았다.
 
조용한 냇가 외로운 나무 밑이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흐르는 물소리와 나뭇가지에 모여 앉아 우는 새소리뿐이었다.
왕은 힘없는 눈초리로 그 새들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 누런 새 한 쌍이 이리저리 날면서 다정히 지저귀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왕은 지난날 치희와 정답게 지내던 일이 회상(回想)되었다.
 
왕은 그 자리에서 시 한수를 지어 자기 슬픔을 달래니 이것이 유명한 황조가(黃鳥歌)이다.
 
翩翩黃鳥(편편황조)
雌雄相依(자웅상의)
念我之獨(념아지독)
誰其與歸(수기여귀)

누런 새들은 훨훨
암놈 숫놈 어울리는데
나만 홀로 외로이 되었으니
장차 뉘와 더불어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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