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참고집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오늘의 쉼터 2018. 2. 3. 22:12

◆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석가모니의 설법 회상(說法會上)을 총칭하는 불화. 좁은 의미로는 영취산(靈鷲山)에서 석가여래가 법화경을 설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법화경변상도(法華經變相圖)’라고도 한다. 따라서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하는 대웅전 또는 영산전에 본존불화로 봉안하는 것이 원칙이나 그림의 구성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화면구성은 모두 석가여래를 중앙에 두고 그 좌우에 보살, 10대제자, 호법신(護法神)인 사천왕·팔부중 등과 화불(化佛)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하고 있으나 표현되는 권속(眷屬)의 종류와 수는 일정하지 않아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아무리 간략화되어도 보살로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 제자로는 아난(阿難)과 가섭(迦葉), 호법신으로는 사천왕이 반드시 표현된다. 영산전의 그림은 대웅전의 그림보다 권속의 수가 훨씬 많으며, 특히 설법을 듣는 국왕 및 청중 등 속인 또는 석가에게 질문을 하는 사리불(舍利弗)까지 표현되는 경우도 있어 설법의 정경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영산회상탱화를 후불탱화로 삼고 있다. 이는 이 탱화를 봉안함으로써 모든 대웅전은 영산 회상이 되고, 대웅전 영산회상탱화 앞에서의 모든 수행은 영산 법회에 참여한 수행인 것이다. 그리고 이 법회에 참여함으로써 불범일여(佛凡一如)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신행의 동기에 의한 것이다. 또한 이 탱화의 주조는 신(信)ㆍ문(聞)ㆍ주(主)ㆍ중(衆)ㆍ시(時)ㆍ처성취(處成就)의 6성취에 두고 있다.

   이 영산회상을 접하게 되는 근원은 믿음(信)에 있고 듣고자 하는 의지〔聞〕에 있다. 이에 영산 회상의 주인(主)인 석가모니불이 1만 2000의 비구와 운집한 보살 등의 청중(衆)을 대상으로 그 어느 때〔時〕든지 영산회상(處)에서 설법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산회상도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반드시 묘사하게 되어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영산회상도는 1649년(인조 27년)에 제작한 청주 보살사(菩薩寺)의 영산회상도, 1653년(효종 4년)에 제작한 구례 화엄사(華嚴寺)의 영산회상도, 1687년(숙종 13년) 작인 하동 쌍계사(雙磎寺) 탱화, 1693년에 제작한 여천 흥국사(興國寺)의 탱화, 1715년에 그린 구례 천은사(泉隱寺)의 탱화, 1729년(영조 5년)에 그린 해인사의 탱화, 기타 영국사(寧國寺)ㆍ송광사ㆍ직지사(直指寺)ㆍ선암사(仙巖寺)ㆍ부석사(浮石寺)ㆍ용연사(龍淵寺)의 탱화 등이 유명하다.


【직지사대웅전삼존불탱화-영산회상탱화(直指寺大雄殿三尊佛幀畵-靈山會上幀畵)】

   보물 제670-1호. 소재지 경북 김천시 대항면 북암길 89 직지사 성보박물관(운수리).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된 3폭의 후불탱화 중에서 가운데 위치해 있는 영산회상탱화인데,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를 말한다.

   이 탱화는 크기가 가로 300㎝, 세로 610㎝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여러 불·보살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화면중앙에 석가불이 있고 그 양옆으로 8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 등이 그려져 있으며 둘레에 많은 범문을 써 놓았다. 석가불은 악귀를 누르는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왼쪽어깨에만 옷을 걸쳤다.

   비교적 균형 잡힌 체구와 둥근 얼굴에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어서 불상과 잘 조화되고 있다. 영조 20년(1744)에 제작된 이 탱화는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과 뛰어난 묘사력, 안정감 있는 색감 등으로 당시 불화를 대표하는 걸작에 속한다.


【쌍계사팔상전영산회상도(雙溪寺八相殿靈山會相圖)】

   보물 제925호. 소재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쌍계사(운수리).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한 내용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크기는 길이 410㎝, 폭 273㎝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사천왕상, 여러 보살, 제자 등의 무리가 석가불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의 옷을 걸치고 중앙에 앉아 있으며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는 작으며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하다. 사천왕상과 여러 보살, 제자들의 모습은 석가불처럼 당당한 모습니다. 색채는 밝고 부드러운 중간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그려진 이 불화는 비교적 큰 편이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주고 공간의 처리방법과 회화기법 등 이 매우 뛰어나며 17세기 중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파계사영산회상도(把溪寺靈山會上圖)】

   보물 제1214호. 소재지 대구 동구 파계로 741, 파계사(중대동). 석가가 영축산에서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크기는 길이 340㎝, 폭 254㎝이며 비단 위에 채색되었다.

   중심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두고 좌우대칭으로 여러 보살과 무리들이 석가를 에워싸고 있다. 주로 녹색과 붉은색을 사용해 밝고 화려하며 옷에 칠해진 금빛이 매우 찬란하다. 이 그림은 다른 영산회상도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조선시대 불화에서 석가여래의 광배는 몸 뒤의 신광과 머리의 두광을 함께 표현하는데 비해 이 그림은 신광만을 표현했다. 둘째, 부처님의 옷에 밭 전(田)자 무늬가 그려져 있지 않았고 셋째는 부처의 오른쪽 발목에 꽃잎장식이 보이지 않는 점이 그러하다. 능숙한 붓놀림과 화려한 채색 등이 매우 돋보이는 18세기 초를 대표하는 불화이다.

   이 영산회상도는 조선 숙종 33년(1707)에 왕실에서 뜻을 모아 제작한 것으로 자료적인 가치도 매우 높은 작품이다.


【불영사영산회상도(佛影寺靈山會上圖)】

   보물 제1272호. 소재지 경북 울진군 서면 불영사길 48 불영사(하원리). 이 영산회상도의 석가여래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우견편단의 옷을 걸쳤으며,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석가여래 주변으로 10대 보살, 사천왕상, 상단의 10대 제자 등이 배열되어 있다.

   주로 영산회상도에서는 8대보살이 그려지는데, 이 그림에서는 10대보살을 표현한 점과 석가불 아래의 그 보살이 유난히 큰 점이 특징이다. 석가의 옷이 붉은색이고 석가 뒤의 광배가 이중으로 붉은 테를 두른 점등은 조선 후기의 불화양식보다 약간 앞선 양식적 특징이다. 채색의 사용법이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묘사법이 정밀하여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조선 영조 9년(1733)에 그려진 이 그림은 격조 있는 양식, 양호한 보존상태 등으로 18세기 초 조선불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해인사영산회상도(海印寺靈山會上圖)】

   보물 제1273호. 소재지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해인사(치인리).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해인사에 있는 이 불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길이 334㎝, 폭 240㎝이다.

   이 그림은 본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주변에 여러 무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영산회상의 법회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중앙에 있는 석가는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다른 무리들에 비해 유난히 신체가 크며, 떡 벌어진 어깨로 인해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하지만 둥근 얼굴과 엷은 미소로 부드러움과 넉넉함도 느끼게 한다.

   중앙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많은 무리들이 대집단을 이루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 모습이 서로 닮아 도식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채색은 밝은 홍색과 녹색 바탕에 흰색과 금칠을 해서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옷과 대좌 등에 표현된 색상과 문양에서 정교함과 꼼꼼함을 엿볼 수 있다.

   영조 5년(1729) 승려화가 의겸이 참여한 그린 그림으로 주변에 무리들이 많지만 적절하게 배치하여 시선을 탁 트이게 해주는 구도와 격조 높은 색채와 문양, 정교한 필치 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그림에 기록된 글로 화가와 제작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회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통도사영산회상탱(通度寺靈山會上幀)】

   보물 제1353호. 소재지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통도사 성보박물관(지산리). 탱화란 액자나 족자형태로 만들어 법당에 걸 수 있게 만든 불교그림을 말하는데, 통도사영산회상탱은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을 그렸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현보살, 10대 제자, 제석·범천, 사천왕, 팔부신중 등의 무리가 석가모니불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석가불은 높다란 수미단(須彌壇) 위의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에 앉아 있으며, 등 뒤에는 커다란 키 모양의 광배가 있다.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는 단정하며 굵은 목에는 세 개의 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손모양은 악귀를 누르는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법의는 적색 위주로 전면에 걸쳐 원무늬와 함께 잔잔한 꽃무늬가 장식되어, 기타 인물들의 무늬와 더불어 화려하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준다.

   이 영산회상탱은 그림의 내력을 적어 놓은 기록에 의하면, 조선 영조 10년(1734)에 임한(任閑)의 지휘아래 민휘(敏輝)·순백(舜白)·포근(抱根) 등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선이 뛰어나고 선명한 색채의 사용과 잔잔한 무늬를 채용함으로써 명랑한 부위기와 함께 부드러움을 제공해 주는 불화로, 18세기 전반기 불화의 흐름, 특히 임한(任閑)이 주도한 불화의 경향파악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부산영산회상도(釜山靈山會上圖)】

   보물 제1522호. 소재지 부산 서구 구덕로 255, 부민캠퍼스 동아대학교박물관(부용동2가,동아대학교). 전체 높이 : 세로 227.0cm, 가로 188.5cm

   이 그림은 가로로 7매를 이어 만든 삼베바탕에 주(朱)를 전면에 칠한 후 백색안료와 황토로 각 상의 윤곽과 문양 등 세부를 그린 불화이다. 중앙상단의 본존불이 외형상 하품중생인을 짓고 있어 아미타불로 볼 수 있으나, 하단의 화기에 ‘靈山會’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영축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영산회상 중의 석가모니불로 여겨진다.

   화면구성은 가운데 석가여래가 보단(寶壇) 위에 가부좌하였고 그 좌우에 동수(同數)로 열 구의 보살과 십대제자 그리고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묘법은 백색안료와 황토로 각 상의 윤곽과 문양 등 세부를 표현하였는데 각 존상의 신체부는 황토를 연하게 칠하고 윤곽은 먹선으로 잡았으며 머리카락은 군청을, 눈썹에는 녹청을 사용하였다.

   이 불화는 16세기의 선묘불화들이 모두 금선(金線)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백색 또는 황토를 사용하고 있고 화기(畵記) 역시 먹으로, 그것도 난필(亂筆)로 매우 형식적으로 쓰여 있다. 그러나 1565년 이라는 절대연도를 가지고 있고 국내에 있는 조선전기 불화가 불과 3, 4점(지정은 1점)에 지나지 않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하겠다.

   또한 이 그림은 백색과 황토선에 의한 현존 最古의 작품이며 궁정관련 인물의 발원에 의하여 제작된 그림과는 또 다른 화풍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당시의 불화화풍의 다양성을 짐작하는데 아주 좋은 자료로 짐작된다.


【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 및 복장유물(永川 鳳林寺 靈山會上圖 및 腹藏遺物)】

   보물 제1612호. 불화 1점, 복장유물 5종 6점. 소재지 경북 영천시 화북면 천문로 2149-368, 봉림사(자천리). 이 불화는 17세기말에서 18세기 초 팔공산 일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의균의 제자인 쾌민과 체준 등이 함께 1724년에 제작한 영산회상도로서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보살과 제자, 호법신 등이 빽빽하게 둘러싸는 전형적인 군도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본존의 키형 광배와 뾰족한 육계표현, 양감 있는 인물표현, 중후한 사천왕의 신체표현 등은 스승인 의균이 제작한 기림사 비로자나삼불회도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스승의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색채에서 적색과 녹색의 강한 대조를 이루는 색채감이나 권속이 본존을 빽빽하게 둘러싼 구성 등은 의균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와 같은 화풍적 특징은 1728년 이후 불화 화풍을 주도하고 있다는데서 더욱 큰 학술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이 불화는 화기뿐만 아니라 발원문을 비롯하여 후령통 등 격식을 제대로 갖춘 복장주머니(腹藏囊)도 가지고 있어 불화 제작의 상황을 짐작하는데 더 없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안동봉정사영산회상벽화(安東鳳停寺靈山會上壁畵)】

   보물 제1614호. 소재지 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태장리). 이 벽화는 1997년 1월 16일에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보존처리 한 후 사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화면은 중방부분이 휘어지면서 부분적으로 균열이 생기고,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아 제 모습을 상당히 잃었으나 구도 및 색채 그리고 일부의 문양 등은 판별이 가능하다. 내용은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있는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이 에워싸고 있는 도상으로, 남아 있는 화기를 통해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하실 때의 장면을 도해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전반에 걸친 무거운 적·녹색 위주의 채색을 사용하여 다소 묵직한 느낌이 강하지만, 본존불의 선홍색 법의와 호분이 많이 가미된 연하늘색과 연분홍색 등이 잘 조화를 이루며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뛰어난 필치와 밀도 높은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벽화는 현재 정확한 제작시기를 단정할 수 없지만 대웅전 해체수리 때 종보 하단에 덧댄 통보아지 상면에서 발견된 1435년의 <대웅전중창기>, 1436년의 정면 어칸 기둥 묵서명 등을 통해서 볼 때 1435년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봉정사 대웅전벽화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산회상도>로서 1476년 <강진무위사아미타후불벽화>와 함께 조선 초기 불화의 쌍벽을 이루는 벽화이며 이후 전개될 군도형식의 영산회상도는 물론 여타 불회도(佛會圖)의 조형(祖型)이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구미 수다사 영산회상도(龜尾 水多寺 靈山會上圖)】

   보물 제1638호. 소재지 경북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산 12 수다사. 1731년에 조성된 이 불화는 도익(道益) 등 4명의 화승이 제작한 석가모니후불도이다. 8보살과 범천, 제석천, 10대 제자, 사천왕, 8금강 일부, 타방불 등이 본존인 석가모니를 둘러싸고 시립하였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권속들이 작게 묘사되어 자연스럽게 본존에게로 보는 이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

   불, 보살의 원만한 상호와 녹색과 적색을 주조로 한 차분한 색조, 천의와 법의를 가득 메운 화려한 문양, 균형 잡힌 안정된 신체표현, 유려하면서도 세밀한 필치 등 18세기 전반기 불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경주 불국사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慶州 佛國寺 靈山會上圖 및 四天王壁畵)】

   보물 제1797호. 소재지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불국사. 1769년에 영조의 딸인 화완옹주와 상궁 김씨 등이 시주하여 제작한 불화로, 영산회상도와 2점의 사천왕 벽화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조성연대는 영산회상도에만 1769년이라는 연대가 있고 사천왕 벽화에는 조성연대 없이 화원의 이름만 적혀 있는데, 영산회상도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이 사천왕벽화를 그리는 데도 참여하였고 두 불화에서 인물표현과 채색 등에 유사점이 많은 것을 볼 때 영산회상도와 사천왕벽화는 같은 해에 함께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화는 18세기 중후반 통도사와 봉정사 등 경상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승들이 함께 제작한 것으로,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색감과 안정적인 구도 등 경상도 지역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영산회상도를 구성함에 있어 거는 그림과 벽화가 한 세트를 이루는 구성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조선 후기 불화조성의 한 면을 잘 보여주는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대구 동화사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大邱 桐華寺 大雄殿 釋迦靈山會上圖)】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2호. 소재지 대구 동구 동화사 1길 1(도학동) 동화사. 고종 33(1896)년 화승(畵僧) 진철(震徹)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한 내용을 묘사한 그림임. 전체적으로 원색을 사용하였으며 본존과 보살상은 가는 먹선으로 윤곽선만을 표현한 반면 십대제자와 신장상들의 얼굴은 음영처리를 하였으며, 보살상의 보관과 사천왕상의 지물 일부에는 금박을 이용하여 사실적인 표현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범어사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梵魚寺 大雄殿 釋迦靈山會上圖)】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7호. 소재지 부산 금정구 청룡동 546번지 범어사. 족자형 탱화로서 대웅전 후불벽에 걸려 있다. 그림의 가운데에는 석가모니가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양옆에는 8대 보살이 있고 그 아랫부분에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비롯해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와 8대 보살의 옆과 뒤쪽에는 다양한 크기의 십대제자 및 외호신중(外護神衆)이 자리 잡고 있다.


【장안사대웅전석가영산회상도(長安寺 大雄殿 釋迦靈山會上圖)】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7호. 소재지 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8번지 장안사. 장안사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는 크기가 4미터에 달하는 대작에 속한다. 화면에는 중앙의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의 협시보살과 사천왕을, 뒤쪽으로 여섯 제자와 타방불 2위, 그리고 4위의 팔부신장을 나누어 배치하였다. 화면은 부분적으로 약간의 훼손이 있을 뿐 전체적으로는 상태가 양호하다.

   본 작품은 장안사 대웅전 삼세불상의 뒷면에 걸려 있는 석가모니후불탱화로 채색은 전통적인 녹색과 적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부드러운 황토색을 넓게 채색하여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인물들의 비례도 조화로우며 섬세한 필선과 부드러운 채색이 마치 18세기 불화를 보는 듯하다.

   이 작품은 19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금어인 금암 천여(金魚 錦庵天如: 1794∼1878)를 비롯하여 6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이다. 금암 천여는 순천 선암사의 중창을 주도한 인물로 선암사를 중심으로 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폭넓은 활동을 하였으며, 금어로서 종장(宗匠)이 되었던 사람이다. 금어 천여의 명성만큼 이 불화는 19세기 후불탱화의 기준작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한 불화로 수작이다


【장안사응진전석가영산회상도(長安寺 應眞殿 釋迦靈山會上圖)】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8호. 소재지 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8번지 장안사. 장안사 응진전 석가영산회상도는 응진전 석가삼존상의 뒷면에 걸려 있는 석가후불탱화로, 화면 전체를 붉은색으로 칠한 뒤 흰색과 황색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인물의 얼굴과 대좌 일부분만을 채색한 소위 홍탱(紅幀)이다. 부분적으로 훼손이 확인되나 전반적으로는 양호한 상태이다.

   화면에는 석가모니와 18명의 제자만을 간단하게 묘사하였다. 본존 좌우측의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육나한상의 안면은 음영법을 사용하여 개성 있고 역동적인 표정이며, 자유로운 몸짓도 인상적이다. 특히, 화면 전면 좌우에 배치된 나한상 4위는 구름 위로 솟아 오른 연화대 위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서방극락정토의 연화화생자(蓮花化生者)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도상이다.

   이 작품은 화기(畵記)에 의해 화승 수룡 기전(繡龍 琪銓)과 관허 의관(貫虛 宜官)의 지휘 하에 1882년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기전과 의관은 해인사의 화승으로 활약한 화승이다. 아울러 본 작품은 1882년 범어사 대웅전에 봉안된 불화를 조성할 때에 같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얼굴에 드러난 다양한 표정과 몸짓, 호방한 필치가 돋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되는 문화재이다.


【홍천수타사영산회상도(洪川壽陀寺靈山會上圖)】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2호. 소재지 강원 홍천군 동면 덕치리 9 수타시. 이 영산회상도는 수타사 대적광전 내에 있는 비로자나불의 후불탱화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세로 278㎝, 가로 263㎝의 크기이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중앙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열보살과 사천왕 등을 배치하였다. 중앙의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을 걸치고 있으며,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붉은색을 칠한 옷은 각종 무늬를 두어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머리 꼭대기에 있는 육계는 높고 뾰족하며, 머리카락은 조그만 소라 모양처럼 구불구불하게 표현하였다. 몸 뒤의 광배는 연꽃봉오리 모양으로 크게 나타냈으며, 대좌는 두 겹의 흰 연꽃잎으로 장식하였다.

   석가불의 좌우에는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배치되어 각각 흰 연꽃과 여의를 들고 서 있고, 그 위쪽으로는 둥근 두광을 지닌 8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그림 아래에 있는 2구씩의 사천왕상은 갑옷의 금색부분이 입체감 있게 표현되어 있는데, 사각에 가까운 얼굴, 작은 코와 입, 콧수염과 턱수염의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석가불의 어깨 좌우에는 늙은 비구 모습의 가섭과 청년 모습의 아난이 서 있다.

   아랫부분에 새긴 기록을 통해 조선 영조 38년(1762) 금어 진찰 등이 이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진관사 영산회상도(津寬寺 靈山會上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45호. 소재지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1 진관사. 진관사의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절로서 조선시대에는 수륙재의 근본 도량이었다. 현재 대웅전과 명부전을 비롯해 홍제루, 동정각, 나한전, 독성각, 칠성각, 나가원, 객실 등의 건물이 있다.

   이 영산회상도는 가로 약 1.7m, 세로 약 1.1m 크기이며 화면 오른쪽 하단의 화기에 의하면 1884년에 왕실 상궁의 발원으로 영산전의 후불탱화로서 십육나한탱 네 폭, 석제·환인·사자탱 두 폭, 관음탱 한 폭 등과 함께 일괄적으로 조성되었다. 즉, 이 영산회상도는 원래는 나한전이 아니라 산전에 봉안되었던 후불탱화였음을 알 수 있다. 가로로 긴 화면의 중앙에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모습을 두고 그 옆에 네 보살과 사천왕, 여섯 명의 제자를 배치했으며 화면의 빈 공간에는 여러 빛깔의 아름다운 구름을 가득 그려 넣었다.


【공주 마곡사 영산회상도(公州 麻谷寺 靈山會上圖)】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1호. 소재지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마곡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대광보전 후불탱화로 걸려있는 불화이다. 화기에 따르면, 마곡사 영산회상도는 정조 12년(1788) 동홍 등 15명의 화승이 함께 조성하였다. 대형의 화면에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장면인 설법회를 짜임새 있게 그렸으며 비교적 탁한 색감과 도식적인 음영표현 등 18세기 후반기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원 청련암 영산회상도(水原 靑蓮庵 靈山會上圖)】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1호. 소재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수일로 335(조원동 474-1번지) 청련암. 영산회상도의 불화승은 19세기 전반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불화승이며 경기도 지역의 불교회화와 불화승의 계보를 밝힐 수 있는 작품이다. 전각 내부를 꽉 차게 배치한 화면의 크기는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이다.


【봉은사 영산회상도(奉恩寺 靈山會上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7호. 소재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73번지 봉은사. 이 불화는 1895년 영산전의 불상과 좌우 보처, 나한상 등을 개금할 때 나한도 4폭, 사자도 1폭과 함께 제작된 것으로, 세로 114.8cm, 가로 196.5cm의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화면에 석가모니와 6보살, 제자, 사천왕, 금강신 등을 배치하였는데, 인물들은 3열로 가지런하게 배열하여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본존 석가모니는 이중륜광(二重輪光)을 지니고 나지막한 수미대좌 위의 연화좌에 결가부좌하였는데, 정상계주 위로 여러 갈래의 빛이 위로 향해 뻗어나가고 있다. 나발(螺髮)의 머리는 위가 뾰족하며, 얼굴은 둥근 편으로 이마부분이 다소 넓고 턱 아래 부분이 좁아져서 원만한 상호를 보여주고 있고, 가늘고 긴 눈썹과 눈, 코와 입 등이 작게 묘사되었다.

   신체는 어깨가 넓고 장대하며 적당한 볼륨과 안정감있는 비례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착의법은 우견편단으로 드러난 오른쪽 어깨 위에 대의(大衣)자락을 살짝 덮고 있는데 대의 가장자리는 아름다운 연화문이 화려하게 시문되어 있다. 가슴은 넓게 드러나 있고, 평행하게 처리된 군의(裙衣) 윗부분에도 꽃무늬가 시문되었다.

   수인은 오른손은 가슴 가운데로 들어 올려 손가락을 마주잡고 있으며 왼손은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맞잡고 길상좌(吉祥坐)를 취한 오른쪽 발목 위에 대었다. 석가모니가 이처럼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 아닌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을 수인을 결하고 있는 예는 조선후기 불상과 불화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이 불화에서 석가모니의 수인을 아미타구품인으로 그린 것은 화장사 아미타후불화(1870년), 서울 미타사 대웅전 아미타후불화(1873년)의 초본을 그대로 이용하여 제작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두광은 녹색으로, 신광은 황색으로 아무런 무늬도 없이 간단하게 처리하였다.

   석가모니 옆으로는 제자와 보살, 사천왕, 금강 등이 좌우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최상단에는 제자들이 좌우로 나란히 서있는데 언뜻 보면 마치 14명인 것처럼 보이지만 화면 가장자리의 2명은 8금강 중 2구를 표현한 것으로 총 12명의 나한을 그렸다. 나한들은 젊은 사미승에서부터 나이가 든 비구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이 다양하며, 상반신 밖에 묘사되지 않아 형태를 자세히 알기는 어렵지만 붉은색의 장삼을 입고 합장을 하거나 병, 좌고 등을 들고 있다.

   본존의 신광 좌우로는 6보살이 본존을 향하여 나란히 시립하였다. 본존 바로 옆에 있는 보살은 석가모니의 좌우보처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로 생각되며, 그 옆에는 각각 아미타불과 정병이 그려진 보관을 쓰고 있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가장자리의 보살들은 지물이 명확하지 않아 존명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법화경>에서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보살 중 2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보살은 모두 녹색의 두광을 지니고 붉은 색의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살이 많은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등 비슷한 모습이다. 관음보살이 백련이 꽂힌 정병을 들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합장을 하고 있다.

   사천왕은 하단의 양쪽에 2구씩 큼직하게 묘사되어 있다. 화면이 가로로 길어서인지 4구 모두 금색의 탁자 위에 앉아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향우측의 천왕은 비파와 검, 향좌측의 천왕은 당(幢)과 탑(塔), 용(龍)과 여의주(如意珠)를 각각 들고 있다. 다른 권속들이 매우 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비하여 사천왕은 과장될 정도로 몸을 굽히거나 다리를 벌리고 있어 정적인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지만 천의의 휘날림이 번잡하여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많은 인물들을 배치하면서도 위로 갈수록 인물의 크기를 작게 하여 답답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채색은 녹색과 적색이 주조색을 이루고 있으며 청색과 살색, 흰색이, 황색, 금니와 금박 등이 어우러져 있다. 보살의 두광과 붉은 천의로 인하여 다소 어두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본존의 신광 내부를 옅은 황색으로 칠하고 사천왕이 앉아있는 탁자와 갑옷 일부, 무기 등에 금니를 설채하여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인 느낌이 든다. 필선은 철선묘를 사용하여 곧고 강한 편이며, 특히 사천왕의 얼굴에 음영법을 사용하고 수염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등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안성 칠장사 대웅전영산회상도(安城七長寺大雄殿靈山會上圖))】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39호. 소재지 경기 안성시 칠장사. 불화의 설채법, 화면구성, 필선 등이 19세기 전반의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불화승의 계보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나주 죽림사 극락전영산회상도(羅州 竹林寺 極樂殿 靈山會相圖)】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1호. 소재지 전남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 산 1번지 죽림사. 나주 죽림사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부처가 주재하는 영축산 설법장면을 그린 것이다. 세로로 긴 화면 중앙에 대좌에 앉은 부처의 모습을 크게 그리고 그 주위에 문수· 보현· 미륵· 제화갈라보살과 10대 제자· 범천· 제석천· 사천왕· 용왕과 용녀, 건달바와 긴나라 등이 둘러싸고 있는 구도이다.

   죽림사 영산회상도는 18세기 중엽의 작품이다. 광배 등 초록색을 사용한 부분이 약간 훼손된 상태이기는 하나 전체적인 색감과 화면구성은 18세기 전라도 지방의 불화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영광 불갑사 팔상전 영산회상도(靈光 佛甲寺 八相殿 靈山會上圖)】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7호. 소재지 전남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로 450 불갑사. 화기의 기록으로 제작자와 제작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작품으로 1777년에 비현 등 15인의 불화승에 의해 제작되었다.

   영산회상도는 안정된 구도와 화면의 변화, 양록ㆍ선홍ㆍ양청과 같은 선명한 색조의 사용, 등장인물들의 상호의 표정묘사, 가늘고 섬세한 세필의 선묘 등 18세기 후반의 회화양식을 구사하고 있으며 회화적으로도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의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은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까지 활동한 비현, 복찬, 쾌윤 등으로 이들은 조계산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경상도 지역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던 불화승유파의 작가들이다. 보존 상태도 양호하고 회화작품으로서 예술적 가치도 클 뿐만 아니라 뛰어난 화승들의 작품으로 보존가치가 크다


【진주 청곡사 영산회상도(晉州靑谷寺靈山會上圖)】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9호. 소재지 경남 진주시 금산면 월아산로 1440번길 138 청곡사. 청곡사 대웅전의 후불탱화로 제작된 ‘영산회상도’는 길이 410㎝, 폭 273㎝로,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지옥을 다스리는 시왕상이 그려진 대작이다. 비단 바탕에 화려하게 채색된 이 그림은 조선 영조 26년(1750)에 제작된 것으로 내용이나 규모면에서 보기 드문 불화이다.


【정수사 영산회상도(淨水寺靈山會上圖)】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1호. 소재지 경북 의성군 정수사. 이 불화는 상대에 결가부좌한 석가불을 중심으로 권속이 좌우로 둘러선 구도로서 이러한 형태는 희귀한 예에 속하며 특이한 법의문양, 문수보살을 장식한 금채 등 장식적으로도 독특한 면이 보인다. 당시 영산회상도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판단되므로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


【마하사 영산회상도(摩訶寺靈山會上圖)】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5호. 소재지 부산 연제구 연산동 2039 마하사. 이 영산회상도는 면 바탕에 채색하여 그려진 것으로, 화면은 중앙에 석가여래상이 연꽃무늬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그 전면 좌우측에는 문수ㆍ보현보살이 안쪽을 향한 모습으로 연꽃무늬 대좌 위에 반가좌하고 있으며, 그 위쪽으로 사천왕상과 관음ㆍ세지보살, 그리고 아난ㆍ가섭상을 비롯한 제자상이 본존을 에워싸고 있다.

   본존의 육신부는 황색을 바르고 먹선의 하묘선 위에 붉은색 선으로 윤곽선을 처리하였다. 머리 부분은 입자가 거친 군청안료를 바르고 윤곽선은 녹청으로 융기되게 표현하였다. 눈썹·수염 역시 녹청을 그어 약간 솟아오르게 표현하였고, 입술은 밝은 붉은색이다. 가사는 붉은색 바탕에 황백색을 바르고 그 위에 꽃무늬를 삽입한 이중 원형 문양을 흩뜨려 장식하고 있다. 본존의 광배는 녹청색의 머리 광배와 물결무늬로 장식되어 있는 몸 광배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외곽의 주위에는 붉은색ㆍ군청ㆍ백색 등으로 테두리선을 두르고 있다.

   보살상의 표현 역시 본존과 거의 유사하다. 나한상들과 사천왕상의 얼굴 부분은 백색·분홍색(주구) 등으로 표현하고, 육신선과 주름선은 붉은색으로 바림하여 주름진 육신 세부를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보살·사천왕상의 보관 구슬장식 표현은 호분을 두껍게 바르고 녹청안료를 칠하여 매우 양감 있게 표현하였다. 보살의 보관과 사천왕상의 보관은 일부 금색을 사용하였고, 사천왕의 지물 중 용의 표현은 호분을 두텁게 발라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단색으로 처리하였다.

   화면 아랫부분 좌우 양쪽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이 영산회상도는 광무 10년, 즉 1906년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하사 영산회상도는 조선후기 부산·경남지역의 불교미술 양식과 계보를 살필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마하사 응진전영산회상도(摩訶寺應眞殿靈山會上圖)】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6호. 소재지 부산 연제구 연산동 2039 마하사. 마하사 응진전에 보존되어 있는 그림으로,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이 영산회상도는 면 바탕에 채색하여 그려진 것으로, 화면은 중앙에 석가여래상이 연꽃무늬 대좌 위에 앉아 있고, 그 앞쪽 좌우측에는 총 4명의 보살상이 지물을 쥔 채 시립하고 있으며, 뒤쪽 좌우측에는 아난·가섭 등 총 4명의 제자상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화면 좌우측 가장자리에는 사천왕상이 2구씩 각각 위치하고 있다.

   본존의 육신은 황색 바탕에 가는 붉은색 선으로 육신선을 표현하였다. 머리 부분은 군청을 바르고 윤곽선은 먹선으로 처리하였다. 눈썹과 수염은 녹청색을 한 줄 그어 두드러지게 표현하였고, 입술은 분홍색(주구)으로 표현하였다. 가사의 표면은 붉은색을, 이면은 군청을 발라 표현하였다. 보살상의 얼굴 부분 표현은 본존과 거의 유사하다. 불·보살상을 제외한 존상 표현은 분홍색(주구) 바탕에 붉은색으로 바림하여 음영을 표현하고 붉은색으로 육신선과 주름을 나타내었다. 화면 상단부에는 녹색·자주색의 구름무늬가 배치되어 있다.

   색깔은 녹청ㆍ군청ㆍ붉은색ㆍ황색이 많이 쓰였으며, 보살상의 보관 장식ㆍ문수보살의 지물ㆍ사천왕의 보관 장식과 갑옷, 지물 등에 금박을 표현하였다. 특히 향좌측 다문천왕이 들고 있는 깃발에 황토 바탕에 백색으로 연화당초문을 두텁게 양감 있게 표현하였고, 주름잡힌 부분 역시 아주 섬세하게 묘사하였으며, 눈썹·수염의 모근표현은 먹으로 도드라지게 인상적으로 표현하였다.

   화면 아랫부분 좌우 양쪽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이 영산회상도는 불강세후(佛降世後) 2937년 경술, 즉 1910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문천왕을 섬세하고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마하사 응진전 영산회상도는 조선후기 부산·경남지역의 불교미술 양식과 계보를 살필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연등사 석가영산회상도(燃燈寺釋迦靈山會上圖)】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3호. 소재지 부산 동구 좌천동 839-3 연등사. 그림 가운데에는 석가여래가 연화좌 위에 설법인(說法印)을 한 채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육계가 비교적 높이 솟아 있다. 이마 가운데에는 눈에 띄는 백호(白毫)가 있고 옷은 변형 통견이다. 두광(頭光)은 녹색이고 신광(身光)은 금박이며 가장자리에 색 띠가 있다.

   석가여래의 양옆에는 6대 보살과 사천왕이 있다. 보살은 녹색의 원형 두광을 갖춘 채 지물을 들고 장식이 많은 보관을 쓰고 있다. 6대 보살의 양옆에는 비파를 든 동방지국천왕, 긴 칼을 든 남방증장천왕, 용과 여의보주를 쥔 서방광목천왕, 보탑과 보차를 든 북방다문천왕 등 사천왕이 여래를 향해 서 있으며 화려한 갑옷과 천의를 입고 있다. 석가여래의 두광 양옆에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포함한 5위의 제자, 그리고 재관형 도상 11위가 배치되어 있다.

 

【복천사 석가영산회상도(福泉寺釋迦靈山會上圖)】

   부산광역시 문화재재료 제35호. 소재지 부산 영도구 신선동 3가 산 6 복천사.  석가여래는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머리의 육계는 높이 솟아 있고 얼굴은 직사각형이며 이마 가운데에는 백호를 나타냈다.

   목에는 삼도(三道)를 활등처럼 휘어지게 나타냈다. 석가여래의 양옆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 지장보살과 타방불(他方佛)이 있으며 각각 보관을 쓰고 지물을 들고 있다. 그 외에도 그림의 가장자리에는 사천왕과 범천, 제석천이 있으며, 석가여래의 두광(頭光) 양옆에는 10대 제자와 사자왕(獅子王), 상왕(象王), 용왕(龍王) 및 용녀(龍女)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부산과 경남 지방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던 수화승 완호가 1921년에 제작하였다


【남해 용문사 건양2년영산회상탱(南海龍門寺建陽二年靈山會上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7호. 소재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 용문사. 건양(建陽) 2년(1897)에 조성된 작품으로 화면 중앙에 위치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전방 좌우측에 협시인 문수ㆍ보현보살과 사천왕 중 2구가 배치되어 있고, 그 상단에는 미륵ㆍ제화갈라ㆍ관음】지장보살 4구가 각각 2구씩 배치되어 있으며, 가장 상단에는 대제자상】8금강(4구)ㆍ사천왕상(2구) 등의 권속들을 꽉 차게 배치하고 있다. 권속들의 모습은 화면 아래에서 위쪽으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하여 상승감을 주고 있다.

   색채는 백색ㆍ녹색ㆍ적색을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청색과 회색을 사용하고 있다. 본존의 육신부는 백색바탕에 굵고 가늚이 없는 먹선으로 윤곽선을 묘사하고 있다. 두부는 흑색을 머리는 흑색으로 바른 뒤 녹청선으로 가장자리의 윤곽선을 둘렀다. 우견편단식의 홍색대의는 가장자리에 화문을 장식하여 화려하게 처리하였고, 대의 이면은 청색을 발라 홍색과 강한 대비를 이루며, 접히는 부분을 음영으로 표현하여 의습 자락을 나타내고 있다.

   본존의 협시보살과 권속보살의 경우도 본존의 기법과 거의 흡사하며 방형 화면의 모서리진 4곳에 각각 배치된 사천왕상 가운데 하단 좌우측 가장자리에 전신을 드러낸 광목천왕(향좌측), 증장천왕(향우측)은 홍색ㆍ청색ㆍ녹청으로 배색된 갑주를 입고, 회색 구름위에 시립하고 있는 모습이 화려하다.

   안면은 백색에 담갈색으로 음영처리를 하여 굴곡을 나타내고, 붉은 입술에 가늘고 짙은 먹선으로 파상형의 수염 형태를 반복하여 그렸다. 바닥과 천공의 여백에는 청색을 바르고, 화면 상하단과 중간에 구름을 배치하여 도상 간에 경계를 짓고 있다. 구름은 적운문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담황색과 회색의 농담을 사용하여 음영표현을 나타내고 있다. 현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표현기법이 전통화법에서 근대수법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경주 불국사 영산회상도) 



(공주 마곡사 영산회상도)


(구미 수다사 영산회상도)



(나주 죽림사 영산회상도)



(남해 용문사 영산회상도)

 


(대구 동화사 영산회상도)



(부산 마하사 영산회상도)



(부산 범어사 영산회상도)

 


(부산 복천사 영산회상도)



(서울 봉은사 영산회상도)



(경북 울진 불영사 영산회상도)



(수원 청련암 영산회상도)

 


(경남 하동 쌍계사 영산회상도)



(경북 안동 봉정사 영산회상도)



(경기도 안성 칠장사 영산회상도)

 


(부산 연등사 영산회상도) 



(전남 영광  불갑사 영산회상도)

 


(경북 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



(부산 장안사 영산회상도)



(경북 의성 정수사 영산회상도) 



(경북 김천시 직지사 영산회상도)



(서울 은평구 진관사 영신회상도)



(경남 진주시 청곡사 영산회상도)



(경남 양산 통도사 영산회상도)



(대구시 파계사 영산회상도)



(경남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

 


(강원도 홍천 수타사 영산회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