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참고집

200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창림사 '무구정탑원기' 실물이 발견됐다.

오늘의 쉼터 2012. 4. 9. 20:54


금석학에 조예가 깊었던 추사 김정희(1786~1856)는 1824년 경주 남산 창림사를 찾았다.

때마침 삼층석탑이 석공에 의해 해체되면서 추사는 그 안에 1000년 가까이 보관됐던 9세기 통일신라시대 금석문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ㆍ855년)'를 볼 수 있었다.

옛 글씨에 흠뻑 빠진 추사는 그 글씨를 그대로 모사해 두었고, 지금까지 그 모사본만 일반에 전해졌다.

200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창림사 '무구정탑원기' 실물이 발견됐다.

외부에 공개되기는 무려 1200년 만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는 '한국의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사업'을 벌이던 중 경기도 화성 용주사 효행박물관이 보관 중인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를 발견했다고 28일 말했다.

'무구정탑원기'는 신라 제46대 문성왕이 855년 지금의 경주 남산 창림사에 삼층석탑을 건립하면서 그 조성 내력을 적어 탑 안에 봉안한 금동판 형태의 발원문이다.

'경응(慶膺)'은 문성왕의 '휘(諱)'며 무구정(無垢淨)은 통일신라시대에 탑을 세우는 근거가 된 불교 경전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의미한다.

이 발원기는 세로 22.4㎝×가로 38.2㎝에 두께 0.08㎝의 순동에 금을 입힌 판형이다.

앞면에는 탑을 세우게 된 배경과 발원 내용이, 뒷면에는 조탑(造塔)에 관여한 인물들을 적었다.

추사가 베껴 적은 이 발원기는 보고서 '경주 남산의 불적'(1940년)에 수록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이 발원기는 용주사 말사인 이천의 영원사(靈源寺)에서 1968년 대웅전을 해체하다가 기단에서 발견된 것이다.

발견 직후 영원사에 비밀리에 소장되다가 지난해 용주사 효행박물관에 기탁됐다.

경주에 있던 '무구정탑원기'가 이천에서 발견된 까닭은 무엇일까.

 연구소는 "김정희가 줄곧 가지고 있다가 그와 돈독한 우정을 나눈 김조순의 아들 김유근 집안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했다.

영원사는 조선후기 명문 거족인 안동 김씨의 원찰(願刹)로 1827년 김조순이 시주함으로써 중건됐다.

1200년 세월이 지났는데도 보존상태가 뛰어나고 글씨가 육안으로 읽힐 정도로 또렷하고 생동감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