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설명
양여창(梁汝昌, 1434-1522)은 자가 백륭(伯隆)이며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조부는 생원 양준이고, 아버지는 정략장군 양덕부며, 사헌부 감찰 성자량의 외손이다. 진사 양담이 그 아들이다. 양여창의 부인은 병정교위 배경불의 딸이다.
묘소는 쌍분인데, 양여창의 묘갈은 쌍분의 가운데 세워져 있지 않고 양여창의 묘소 정면에 세워져 있다. 묘갈은 비수와 비신이 한 덩어리인 일체형으로, 비수가 투구 모양으로 되어 있다. 묘갈에는 전면에만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묘갈의 좌대석과 이어진 가로 세로 2m의 기단 위에 상석이 얹어져 있다. 상석의 아래 기단이 전면는 2단으로 되어 있고 후면에는 1단으로 되어 평형을 맞추었다.
1. 두전 : 양군지묘(梁君之墓)
2. 묘갈제 : 조선국고양군묘갈명병서(朝鮮國故梁君墓碣銘幷序)
통선랑행승문원검교이태찬병서(通善郞行承文院檢校李迨撰幷書)
3. 황명가정삼년갑신이월이십이일건(皇明嘉靖三年甲申二月二十二日建)
4. 본문의 구성 : 묘갈제 포함 총 14행으로 되어 있으며 행당 최대 36자씩 음각되어 있다.
5. 찬자 및 서자 : 월연(月淵) 이태(李迨, 1483-1536)가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 이태는 본관이 여강이고, 1507년 진사에 입격하고 1510년 문과에 급제하여
1531년에는 홍문관 전한을 지냈던 인물로, 양여창의 아들 양담(梁澹)과는 1507년에 같이 진사에 입격한 동방(同榜)인데, 묘갈명의 서문에서 이태가 양담을 자신의 지기(知己)라고
표현하고 있다.
6. 크기 : 전체 높이 151cm, 비신의 중앙 높이 109cm, 비신의 측면 높이 98cm
비신의 너비 46.5cm, 비신의 두께 14.5cm, 비수의 전체 너비 71cm
좌대석의 가로 75cm, 세로 44cm, 높이 6cm
7. 상석 부분은 가로 200cm, 세로 180cm, 두께 11.5cm의 기단 위에 가로 114cm, 세로 66cm, 두께 13cm의 상석이 얹어져 있으며,
가로 184cm, 두께 24cm의 아래기단이 전면에서 보이도록 축조되어 있다.
그리고 가로 200cm의 기단은 가로 각각 100cm, 세로 각각 66cm와 58cm의 석재 둘을 붙여 둔 것이며, 뒤쪽으로는 묘갈의 중앙 밑까지 이 기단이 모두 깔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경사가 있는 곳에 묘갈과 상석을 배치하기 위하여 쌍분의 묘소 전면 전체에 축대를 쌓은 후 양여창 묘소 앞부분에만, 묘갈과 한 세트로 이중의 석조 기단을 설치한 뒤
상석 받침돌을 사용하여 상석을 매우 품위 있게 얹어둔 형태다.
양여창 묘의 비석은 양여창의 아들 양담과 함께 당시 밀양의 명문장가로 이름난 월연 이태의 글과 글씨로서, 이태의 글과 글씨가 지금은 남아 전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상석의 배치가 매우 치밀하고 화려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문화재로서의 역사성과 예술성이 아울러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