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하늘의 道]

제13장 화광동진(和光同塵) 2

오늘의 쉼터 2016. 8. 6. 13:41

제13장 화광동진(和光同塵) 2



조광조는 갖바치 집에서 오랜 만에 회포를 풀었다.
 
  한천 또한 두 스승 사이에서 사람다운 격조와 향기를 맡았다.

나이로 따지자면 늙은 갖바치가 당연히 윗자리에 앉아야겠지만

그는 한사코 30대의 젊은 조광조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불가에서는 도 닦은 법랍에 따라 상하가 구분되지만 유가에서는

정해진 신분과 계급에 따라 자리가 구분되기 때문이었다.

갖바치는 언제나 조광조 앞에서는 자신이 불도임에도 불구하고

유가의 예를 지켜주었다.

  "빈도는 유자(儒者)를 만나면 유가의 법을 따릅니다.

그래서 한사코 문에서 가까운 곳에 빈도가 앉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대사님을 뵐 때는 불가의 법도를 따르겠습니다.

저는 불도가 일천하니 대사님을 상석으로 모시겠습니다."

  " 이 토굴은 빈도의 처소이니 여기서는 빈도의 생각대로 행동하겠습니다."

  갖바치와 조광조가 실랑이를 하는 동안 한천은 모지랑붓과 벼루를 가져와 갖바치 앞에 놓았다.

  "등불도 밝지 않은데 이것이 무엇이냐."

  "큰스님께서 금강산으로 다시 입산하시면 언제 뵙게 될지 모릅니다.

큰스님이 안 계시면 무엇을 의지해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나더러 경책하는 말을 써달라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자나 깨나 마음에 새길 수 있는 글을 원합니다."

  "좋다. 먹을 갈아라."

  갖바치는 눈을 감았다.

묵향이 방안에 잔잔하게 번질 무렵에야 눈을 뜨고 끝이 뭉툭한 모지랑붓을 들었다.

그의 붓은 한 호흡지간에 움직이다가 멈추었다.
  
  조고각하(照顧脚下).
  
  "무슨 뜻이옵니까."


  "한자대로 읽으면 된다.

 발밑을 잘 살피는 말이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지 않느냐.

밑을 잘 살피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이다."

  윗자리에 앉아 불편해 하고 있던 조광조가 말했다.

  "불가에 전해지는 말입니까."

  "<무문관>이란 선서(禪書)에 나오는 화두지요.

한 중이 각명(覺明)선사에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하고 묻자

선사가 '네 발 밑을 보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활구(活句)입니다.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한 말일 것입니다.

원오선사도 '알지어다.

발밑에서 대광명이 나온다는 것을' 하고 말했습니다."

  "저에게도 글을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갖바치는 다시 붓을 들어 써내려갔다.

이번에도 모지랑붓은 네 글자로 끝났다.
  
  화광동진(和光同塵).
  
  조광조는 갖바치의 심중을 알 것 같았다.

 갖바치가 '화광동진'이란 성어(成語)를 고른 것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조광조를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빛이 먼지 속에 섞이듯 그렇게 살라는 뜻이었다.

  "빛은 차별이 없지요.

무엇에나 평등하게 비칩니다.

그런 빛이 되십시오.

그리하면 청사에 이름이 빛날 것입니다."

  "대사님, 귀한 법문을 주시어 고맙습니다."

  삼경이 조금 지나 조광조와 한천은 갖바치의 집을 나왔다.

세상을 비추고 있는 달을 보자 '화광동진'이라는 말이 다시 새겨졌다.

달빛이 어둠에 섞이어 있기 때문에 길이 밝았다.

조광조는 달빛에 드러난 길을 걸으면서 말했다.

  "한천아, 이것이 바로 화광동진이구나. 그렇지 않느냐."

  "조고각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부리에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하하하. 네 말도 맞다."

  조광조는 성균관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천의 집으로 갔다.

숙직하는 아전을 깨우지 않고 한천의 집에서 한숨 눈을 붙이고 난 다음 돌아가도 될 것 같아서였다.

  "한천아, 부탁이 하나 있다."

  "무엇입니까."

  "나를 비웃는 시는 이제 잊어버리자. 시비는 시비를 낳는 법이다."

  "마음이 약해지셨습니까."

  "나는 조지서로 출근하지 않을 것이다.

벼슬을 거둬들이면 나를 비웃는 말들도 곧 시들고 말 것이다.

대사님께서 화광동진하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몸에 먼지가 좀 묻었기로서니

그걸 묻히고 다닌들 무슨 큰일이 있겠느냐."

  "그러하겠습니다만."

  "너무 걱정 말거라.

가을에 있는 알성시에 급제하면 더 이상 소문은 돌지 않고 사라져버릴 것이다."
  
  가을이 되자,

조광조는 한천에게 말한 대로 알성시를 보았다.

그해 알성시는 성균관 문묘에서 석전제를 치르고 난 다음 길일을 택하여 시행했다.

결과는 유생 장옥(張玉)이 1등을 했고 조광조는 2등을 했다.

 2등이라 하더라도 1등군에 속하는 갑과이기 때문에 시험성적은 응시생 중에서 우수한 편이었다.

  알성시 내용은 정책을 논하는 책문(策文)을 짓는 것이었는데,

책제(策題; 주어진 시험제목)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길었다.
  
  <왕이 너희들에게 말한다.

공자님은 만일 나를 등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몇 개월로도 어느 정도 일을 이룰 만하며

3년이면 목표한 바를 성취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성인께서 어찌 단지 말로만 했으리요.

그 규모와 베풀 방도에서 행하기 전에 반드시 미리 정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남김없이 말할 수 있겠는가.

주나라 말년의 쇠퇴한 때를 당하여 기강과 법도가 이미 모두 퇴락했는데,

부자(夫子; 공자)께서는 오히려 3년이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만일 3년이 지난다면 그 정치의 효과가 어떠했겠는가.

역시 이미 행한 자취에 볼만한 것이 있었겠는가.

성인이 지나면 감화되고 신성해진다는 묘리(聖人過化存神之妙)는 쉽게 허용되는 논의가 아니다.

내가 적은 덕으로 조종의 기업(基業)을 계승하여 정치에 임해서 잘 다스려지고자 하기를

지금까지 10년이 되었지만, 기강은 세워지지 않은 바요,

법도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와 같다면 목표한 바의 효과를 성취하기가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여러 유생들은 뜻이 있을 것이니 3년이면 목표한 것을 성취한다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때를 당하여 만일 옛날의 융성했던 정치를 이루고자 한다면 무엇을 먼저

힘써야 할 것인지 남김없이 말하여 보라.>
  
  시험을 보고 온 조광조는 급제 턱을 낼 만큼 기분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장옥에게 1등을 놓쳐서가 아니라 한천의 집으로 오다가 초설의 쪽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김식과 박훈, 기준, 김구, 양팽손 등이 의아해 할 정도였다.

조광조와 가장 스스럼없이 지내는 김식이 물었다.

  "정암, 축하하네. 이제야말로 자네의 앞길이 훤해졌네."

  "고마우이."

  "헌데,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는가."

  "알성시 급제도 했는데 무슨 언짢은 일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왜 그리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는가."

  조광조는 초설의 심부름을 한 여인으로부터 받은 쪽지를 펴보였다.

그러자 다들 크게 웃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감축 드리옵니다.

한천에게 기쁜 소식을 들었사옵니다.

좋은 날에 한 상 올리고 싶사옵니다. 명경에서 초설.>

  박훈이 말했다.

  "정암,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아니오.

명경 주인 초설이 한 턱 내겠다고 하는데 얼굴 좀 펴시오. 아니 그렇소."

  "나는 이미 아내가 있는 사람이 아니오.

헌데, 초설이 결혼하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니 어찌 마음이 가볍겠소.

나는 초설이 이미 다른 사내를 만난 줄 알고 있었소."

  몇 년 전 여름에 책을 싸들고 성거산과 천마산을 오가며 함께 공부했던 인연으로

더욱 가까워진 기준이 말했다.

  "용인에서부터 사모했던 여인이 아닙니까.

그 정도면 여인의 진심을 받아들이십시오.

저 같으면 그러하겠습니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네.

아내 하나도 사랑하고 호강시켜주지 못하는 위인이 어찌 또 다른 여인을 맞아들인단 말인가."

  조광조는 누더기 저고리를 입고 있는 아내를 떠올렸다.

 어머니 시묘살이 뒷바라지를 3년 하고 나서 더욱 초췌해져버린 아내였다.

고운 얼굴은 이제 마른 과일처럼 쭈글쭈글해져버렸고, 가끔 천식에 들려 기침까지 해댔다.

  반면에 초설의 몸은 아직도 풋과일처럼 탱탱했다.

머리카락은 윤기가 자르르했고, 옷은 대궐의 여인들 못지않게 화사하게 입고 있었다.

조금 전 부끄러운 듯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녀에게서는 무르익은

여인의 냄새가 물씬 나고 있었다.

  김식이 농을 걸어 말했다.

  "아, 이 사람아. 초설은 자네가 생각하는 초설이 아니네.

명경을 가보지 않은 벼슬아치들이 없을 정도로 크게 성공한 여인이네.

장안의 큰 부자가 되었어. 그렇다고 그녀가 돈만 아는 장사치냐 하면 그것도 아니네.

우리 동지들이 가면 술값을 받지 않는다네. 다만 장부에 기록만 하지."

  "장부에 기록만 한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외상값만큼 훗날 정치를 잘하라는 뜻이라네.

갖바치 대사가 그리 시켰대. 초설에게 직접 들은 얘기네."
  "나도 초설이 갖바치 대사의 제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네."


  "자, 따분한 얘기는 그만하고 오늘 시험 문제는 어땠는가."

  "임금님의 답답한 심정을 보는 듯했네.

책제에 임금님께서 즉위한 지 10년이 지났건만 기강도 세워지지 않았고,

법도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탄하는 글이 있었네.

마음이 급해지신 모양이네.

3년 안에 옛날의 융성했던 정치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묻는 시험이었네."

  "우리가 늘 얘기했던 대로만 하면 3년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지치를 이루는 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아니, 3년이 뭔가, 임금님이 우리 동지들을 믿고 1년만 맡겨 주신다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양팽손도 거들며 말했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개혁이라 부르고 혁명이라 할 것입니다.

마당에 난 잡초를 뽑듯 유도(儒道)에 어긋나는 것들을 타협하지 말고

점진적으로 제거하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언젠가 나라에 공맹의 도가 바로 서고 인륜이 샘물처럼 맑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기준은 과격했다.

  "개혁을 하는데 점진적이라는 말은 개혁의 대상과 타협하자는 말밖에 안 됩니다.

그리 한다면 검은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회색이 되고 맙니다.

권력을 잡았을 때는 백성과 대의만을 생각하고 일거에 밀어붙여 바꿔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아니 됩니다."

  "무거운 바윗덩어리를 저 산에서 이 산으로 옮기자면

몇 사람이 밀어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위를 옮기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의 힘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동참시켜야만 더 큰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개혁은 설득하고 타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느리다고는 하지만 빠른 길입니다."

  "나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바위를 옮긴 뒤 그들은 대가를 바랄 것입니다.

그들은 조정의 이 자리, 저 저 자리를 여전히 차지할 것입니다.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개혁입니까.

설령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바위를 옮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바위가 옮겨가야 할 방향만 정해주어도 뒷사람들이 따라 줄 것입니다.

그러니 당장에는 실패하더라도 개혁은 순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김식도 기준과 양팽손의 논쟁에 끼어들었다.

  "기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비감한 생각이 드는군.

 순도가 높은 개혁일수록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네.

아, 비극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조광조도 한 마디 했다.

  "비극이라고 말하지 말게. 역사는 개혁의 방향이 옳았고 순수했다면

반드시 부활시켜놓고 말 것이네.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잖은가."

  "그래, 오늘 시험에서 정암은 무어라 했는가."

  "임금의 마음부터 강조했지.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정치를 하는 사람 중에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임금이 아닌가."
  
  알성시 책제에 대한 조광조의 답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유도의 근본 원리부터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늘과 사람은 근본에서 하나인지라,

하늘의 이치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임금과 백성도 근본은 하나여서, 임금의 도가 백성들에게서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성인들은 천지의 큰 것으로써 만백성들을 하나로 삼았을 뿐이니

그 이치를 보고 그 도리에 따라 대처하였습니다.

이치로써 보는 고로 천지의 뜻을 짊어질 수 있고 신묘하고 밝은 덕에 통달할 수 있었습니다.

도리로써 대처하는 고로 정밀하고 거친 사물의 몸체를 잘 이루고 윤리상의 예절을

 이끌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로 해서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며 착한 것은 착하고 악한 것은 악해서

나의 마음에서 벗어난 바가 없었습니다.

천하의 일이 모두 그 바른 마음에서 벗어난 바가 없었습니다.

천하의 일이 모두 그 바른 이치를 얻고 천하의 사물이 모두 그 평안함을 얻으니

이것이 만 가지 변화가 서는 까닭이요,

다스리는 도리가 이루어지는 까닭입니다.

비록 그렇다고는 해도 도리는 마음이 아니면 의지할 데가 없고 마음이 정성스럽지 못하면

또한 의뢰해서 행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임금이 되는 사람이 진실로 하늘의 이치를 봄으로써 그 도리에 따라 처리하고

그 정성스러움을 통해서 그 일을 처리한다면 나라를 다스림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이어서 조광조는 욕심이 없는 하늘의 마음이 성인의 마음,

즉 공자의 마음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니까 임금이 공자의 마음만 받들어 행하다면 옛날의 융성했던 정치를

다시 이룰 있다고 주장했다.
  
  <부자(夫子: 공자를 말함)가 내세운 도리는 천지의 도리이며 부자의 마음은 천지의 마음입니다.

천지의 도리라, 만물이 많다고 해도 이 도리를 따라서 완수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지의 마음이어서 음양의 감응함 역시 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조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만물이 도리를 따라 완수된 후에는 어느 하나의 사물도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으며 그 사이에 조리가 정연해서 구별이 있습니다.

하물며 부자는 본래 가지고 있는 도리로써 인도하니 그 효과를 얻기가 쉽고,

본래 가지고 있는 마음으로써 감응시키니 그 효험을 얻기도 쉬운 것입니다.>
  
  또 이어서 조광조는 성군의 정치를 얻기 위해서는 근본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하의 일은 일찍이 근본이 없지 않았고 또한 말단도 없지 않습니다.

그 근본을 바르게 하면 비록 느리고 더디더라도 실제로 일은 쉽게 되고,

그 말단에 힘쓰면 비록 금방 되더라도 공을 이루기는 힘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정치를 잘 논하는 사람은 반드시 근본과 말단의 있는 바를 밝혀서

먼저 그 근본을 바르게 하는 것이니,

근본이 바르면 말단은 다스리지 않아도 우려할 바가 아닙니다.>
  
  근본을 바르게 함과 동시에 마음의 정성도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조광조는 계속해서 주장했다.
  
  <정치를 함에 문자,

도구의 말단으로써 기강과 법도를 삼지 마시고 한 마음의 묘한 것으로써

기강과 법도의 근본을 삼으셔서 이 마음의 본체로 하여금 광명정대하게

두루 사방에 흐르고 통달케 하며 천지와 그 본체를 같게 하여 그것을 크게 쓴다면

일상생활과 정치를 하는 사이에 모두가 도리를 활용하는 것이 되어 기강과 법도를

세우지 않으려 해도 섭니다.

비록 그러하나 그 정성스러움이 있은 후에야 그 마음의 도리가 굳게 세워져서

결국 그 성취를 보게 됩니다.>
  
  조광조는 마침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는 4시(네 계절)와 같습니다.

하늘이 스스로 행한다고 해도 4시가 움직여 돌아가지 않는다면 만물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임금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하더라도 대신들의 보좌가 없다면 만 가지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성으로써 도리를 밝히고 혼자 계실 때를 삼가는 것으로 마음을 다스림의 요체로 삼으시면

조정을 위해 그 도리가 세워져 기강을 세우기가 어렵지 않고, 법도를 정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즉 부자께서 3개월이면 일을 이룰 만하며 3년이면 목표한 바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한 것

역기 여기에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김식은 조광조가 진사시에서 지은 <춘부>를 보았을 때처럼 흥분하지 않았다.

조광조가 작성한 책문의 문장은 유생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낯익은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

마음은 정치를 나오게 하는 근본이 된다(心爲出治之本)'는 문장이나, 주자의 상소문에

'인주의 마음이 하나로 바르면 천하의 일에 바르지 않는 것이 없다

(人主之心一正 則天下之事無有不正)'란 말도 있고, '인군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기강을 세운다(人君正其心術以立紀綱)'란 문장도 흔히 보아온 글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아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하는 조광조의 마음과 나라의 기강과 법도를

바로 세우고자 조급해하는 중종의 마음이 맞아떨어진 것은 머잖아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하는

태풍의 눈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