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하늘의 道]

제13장 화광동진(和光同塵) 4

오늘의 쉼터 2016. 8. 6. 15:26

제13장 화광동진(和光同塵) 4



사역원에서 퇴청한 한천은 바로 명경으로 갔다.
 
  요즘 한천의 업무란 역과를 응시하고자 사역원으로 모여든 응시생들에게

중국어를 강의하는 일이었다.

아무라도 사역원에 들어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품계가 높은 관리의 추천이나 면접을 정식으로 통과해야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수강생 중에는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자가 가장 많았다.

한때는 몽고어 반으로 수강생들이 몰렸으나

지금은 중국어가 다른 외국어보다 단연 인기가 좋았다.

  초설이 한천을 별당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알아보았느냐."

  "누님, 정암 선생님 바로 위 상관인 사간 김내문도 만나보고,

헌납 유돈도 만나보았습니다."

  "뭐라고 하더냐."

  "정암 선생님과 간관(諫官)들 모두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용납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들 얘기로는 정암 선생님의 고지식한 성격이 문제라고 합니다."

  "심정 나으리 얘기가 사실인 모양이구나."

  며칠 전 심정이 명경에 들러 초설에게 좌충우돌한다는 조광조의 소식을 들려주었던 바,

초설은 걱정이 되어 한천을 간관들에게 보내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게 하였던 것이다.

  "빈손으로 찾아갔느냐."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중국에서 올 때 가져온 여우털붓을 선물했습니다."

  "잘했다. 이 돈이면 다시 중국에 갈 때 붓을 사고도 남을 것이다."

  초월이 돈 꾸러미를 내밀자 한천은 펄쩍 뛰었다.

  "누님, 제가 대가를 바라고 심부름한 줄 아십니까.

누님이나 저나 오직 정암 선생님이 잘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까."

  "네 마음을 안다.

그래도 받아두어라. 돈이란 돌고 도는 것이다.

오늘은 내 주머니에 있지만 내일은 어느 주머니로 갈지 모른다.

다만 좋은 곳으로 가게 된다면 그것도 복을 짓는 일이라고 갖바치 어른께서 말씀하셨다."
  
  초설이 심정에게 들은 조광조의 근황은 이랬다.

최근에 사간원의 좌정언으로 임명받았으나 간관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여 외롭게 지내고 있다는데,

심정은 그 원인을 조광조의 곧은 성격 탓으로 돌렸다.

심정은 한때 청년 시절의 조광조를 아꼈으나 지금은 그를 은근히 비난하고 다녔다.

그것은 조광조도 마찬가지였다.

조광조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서슴없이 할 사람이 바로 심정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심정 나으리 말이 사실이구나."


  "그렇습니다만 심정이 왜 누님에게 정암 선생님의 소식을 얘기해 주었을까요."

  한천은 조광보 옥사 사건 이후로 심정을 믿지 않고 있었으므로 그 동기부터 의심했다.

조광조의 집안 형님뻘인 조광보는 심정과 남곤이 무고하게 고변하여 죽임을 당한 선비였고,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내가 정암님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분이다."

  "누님, 심정은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 복잡한 계산이 있을 것입니다."

  "계산이 있다니, 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심정과 대사간 이행은 교분이 자못 두텁다고 합니다.

그런 사실에서 무엇을 계산하고 있는지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한천은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초설은 한천이 명경에서 집사 노릇을 할 때부터 외상장부를 외워버리곤 하여 놀라곤 했지만,

만날 때마다 번번이 그의 족집게 같은 판단과 수를 집어내는 명석함에 혀를 내둘렀다.

  "대사간 어른이 심정 나으리에게 정암님의 고집을 꺾어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단 말이냐."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암 선생님께서 양사의 의견에 영향을 미칠 만큼 벼슬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박상 선생님이 올린 상소문만 하더라도 정암 선생님을 아예 무시하고 양사의 간관들이

임금님을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심정 나으리가 내게 얘기해 준 이유가 무엇이란 말이냐."

  "간관들과 타협하는 것이 신상에 편할 것이라는 암시 같습니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임금님이 내려준 벼슬인데 정 맞다니 무슨 말이냐."

  "누님은 관청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십니까."

  "정암님을 도울 수 방법이 무엇이 있겠느냐."

  "박원종 사람인 대사간 이행과 대사헌 권민수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 밑의 간관들을

선생님 편으로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인데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내문 사간은 어찌 생각하더냐."

  "선생님의 곧은 성격이 문제라고 합니다.

양사 간관들이 의견을 모으면 거기에 따라야 하는 것이 관례인데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헌납 유돈 나으리는."

  "듣기에 거북하시지만 선생님이 잘난 체 하고 있다고 혀를 찼습니다."

  "양사 간관들과 정암님이 왜 등을 돌리고 있는지 안타깝구나."

  초설은 대궐 안의 일에는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더구나 명경과 과천의 기방을 운영하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이다.

박원종이 죽자, 애첩이었던 지월심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바람에

초월은 과천 기방까지 떠맡아야 했다.

착실하여 믿음을 주는 소옥이 있었지만 그녀에게 기방을 맡기기에는 아직 일렀다.

나이도 어리고 춤과 노래 등 잡기가 부족하여 기방의 책임자가 되기에는

경험을 더 쌓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양사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냐."

  "누님은 아직도 듣지 못했습니까.

김정과 박상 선생님께서 임금님이 구언을 내리자 폐비 신씨를 복위시키자는

상소문을 올렸던 것입니다."

  "당연한 상소가 아니냐."

  "허나 양사에서는 평지풍파를 일으킨 박상과 김정 선생님을 문책하여

죄를 주자고 간언한 모양입니다."

  "구언으로 올린 상소문은 그 내용이 어떠하더라도 문책하지 않는 것이

조정의 법도가 아니더냐."

  "그러게 말입니다.

헌데 임금님은 간관들의 합계를 받아들여 김정과 박상 선생님을 귀양 보내고 말았습니다."

  "정암님께서는 당연히 반대하시고 계시겠구나.

틀린 것을 가지고 틀렸다고 하는데, 그게 어찌 잘난 체하는 것이냐."

  "누님,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정암 선생님께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제야 초설은 간관들과 조광조의 갈등을 이해했다.

그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조광조의 성격으로 보아

반드시 시비의 중심에 설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임금님이 간관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옳은 일이 아닌데도 임금님께서는 왜 간관들의 의견을 따랐다고 생각하느냐."

  "제 생각입니다만 임금님은 대군시절만 해도 신씨와의 정분이 두터웠습니다.

그러다 신씨는 반정공신들에 의해 대궐에서 쫓겨난 폐비가 됐습니다.

임금님이 원한 것이 아니라 박원종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협박하니 그리했던 것입니다."

  "헌데도 임금님께서는 왜 신씨를 복위시키자는 김정과 박상 나으리를 문책하자는

양사의 합계에 동조한 것이냐."

  "누님, 저는 임금님께서 간관들의 의견이 옳기 때문에 허락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뼈아픈 과거를 거론하기 싫으신 것입니다.

또한 대사간 이행과 대사헌 권민수는 신씨를 폐비시킨 박원종의 패악을 덮어두고

싶어 했을 터입니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까.

이 일은 불행하게도 임금님의 마음과 대간들의 계산이 서로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임금님을 이해할 수 없구나.

 그러신다고 잘못된 과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나는 정암님의 생각은 물론 행동까지 옳다고 믿는다.

그러니 당분간 지켜보자꾸나."

  한천은 초설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는 간관들에게 외면당하는 조광조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보라고 하고는 이제는 조광조의 행동이 옳으니 지켜보자 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님, 간관의 벼슬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인 줄 아십니까.

비록 품계는 낮다고는 하지만 정승과 판서들의 언행을 탄핵하는 자리입니다.

선생님께서 그런 자리에 올랐으니 지킬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넌 아직도 정암님을 모르고 있구나.

정암님은 자리에 연연하여 틀린 것과 타협할 분이 아니다. 두고 보아라."

  "중국에서 어렵게 구해 온 여우털붓만 날려버린 셈입니다."

  "한번 주었는데 잊어버려야지.

그들과 타협하라고 함은 정암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그런 부탁을 너에게 하지 않을 것이다."

  "누님, 무얼 믿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정암님을 간관들이 경원하는 것은 정암님이 옳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헌데도 옳지 않은 길로 가는 그들의 뒤를 정암님이 따라가야 한단 말이냐.

나는 정암님을 믿는다. 나에게 할 일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그래도 한천은 양사 간관들 사이에 외톨이가 된 스승 조광조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이제 막 출세의 길로 접어든 스승이 양사의 수장은 물론이고 모든 간관들에게

견제와 수모를 받고 있다니 참을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면 스스로 사임을 청하거나 한직이나 외직으로 밀려나고 말 터였다.

  "선생님께서 몇몇 간관들을 우군으로 만들어 놓고 당신의 주장을 해도 늦지 않을 터인데….

솔직히 걱정이 앞섭니다."

  "한천아, 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그것은 스승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스승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제자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한천은 초설이 현실을 모른다고 도리질을 했다.

스승 조광조를 사모한 나머지 그를 맹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님, 선생님께서 당신의 뜻을 펴시려면 계책도 필요하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비를 가리는 것만으로는 세상의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곧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는 말입니다. 제 눈에는 그것이 보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정암님을 믿고 따를 뿐 그 나머지는 모르겠구나.

그것이 정암님의 운명인데 어찌하겠느냐."

  "스승님이 외직으로 밀려날지도 모릅니다. 내 걱정은 오직 그런 것입니다."

  "옳은 일을 하다 그리 된다 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지 않겠느냐.

갖바치 스승님에게 들은 얘기다.

사즉생이란 말도 있고 사필귀정이란 말도 있어.

정암님은 그들이 가는 길을 결코 가지 않을 것이야."
  
  한천은 밤늦게 명경에서 나왔다.

그런데 며칠 후 조광조는 간관들에게 자신의 뜻을 굽히기는커녕

초설이 짐작한 대로 강경하게 나갔다.

조광조는 자신의 이름과 직을 걸고 승부를 걸듯 나섰다.

낮 경연 자리를 이용하여 중종에게 김정과 박상이 부당하게 죄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하, 언로가 통하고 막히는 것은 나라에 가장 관련이 깊은 일이옵니다.

통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편안하나 막히면 분란이 일어나고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임금 되는 이는 언로를 넓히고자 힘썼고 위로는 공경(公卿)과 여러 관료들로부터

아래로 일반 시정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언로를 얻도록 해 왔습니다.

그러나 책임지는 언로가 없으면 스스로 뜻을 다할 수 없는 고로 간관(諫官)을 설치하여

이를 주로 하도록 맡기는 것이니

그 말하는 바가 좀 지나치더라도 모두 마음을 비워 놓고 우대하여 용납하는 것은 언로가

혹 막힐까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박상과 김정 등이 구언의 명이 내려 진언을 드렸는데,

그 말이 만약 지나친 바가 있으면 쓰지 않을 뿐이지 어찌 다시 죄를 주겠습니까.

대간이 이를 잘못으로 여겨 죄주기를 청하여 금부의 낭관을 풀어 잡아오게 하였습니다.

하오나 대간을 한다는 것은 언로를 넓힌 후에야 능히 그 직책을 다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정 등이 한 일에 대하여 재상이 혹 죄를 청하더라도 간관은 마땅히 이를 구해서 풀어주어

언로를 넓혀야 할 것이지만 도리어 언로를 스스로 헤쳐 그 직분을 잃었습니다.

신이 이번에 정언이 되어 어찌 감히 그 직분을 잃은 대간과 같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용납될 수가 없으니 청컨대 양사를 파한 후 언로를 열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사간원과 사헌부의 간관들이 모두 잘못했으니

양사를 파하자는 조광조의 비장한 간언은 중종을 몹시 난처하게 했다.

박상과 김정을 처벌하자는 양사의 합계를 받아들인 중종 자신의 과오도 시인하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중종은 조광조의 때 묻지 않은 태도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간언을 선선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중종은 '아, 선비다운 선비가 없는 줄 알았는데 이런 신하를 만나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구나'

하고 내심 조광조의 간언에 크게 만족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달랬다.

  "언로가 통하고 막히는 데 대한 말은 옳다.

그러나 김정과 박상은 아랫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말을 논하였으므로 대간이 죄주기를 청한 것이다.

이것으로 해서 간관을 모두 교체한다는 것은 지나친 듯하며 또 어찌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인가."

  조광조는 사임할 각오를 하고 있었으므로 물러서지 않았다.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상대의 장점만 보게 되면 깊어지고 단점만 보게 되면 멀어지는 법이었다.

대세를 좇는 신하들과 달리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조광조의 태도는 중종에게

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조광조는 그러한 중종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느끼며 얘기를 계속했다.

  "김정과 박상 등이 말한 일이 비록 부당하더라도 그 상소문을 버려두어 불문에 부쳐야

그 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전하의 덕이 밝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재상도 상(上)께서 그 말을 쓰지 않을 것을 알고 시비를 논하지 않았는데,

간관이 강경하게 청하여 죄를 주어 임금님을 불의에 빠뜨리고 간언을 거절하는 일이

점차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만세에 걸쳐 성덕에 누를 끼쳤습니다.

 이후 국가에 비록 큰일이 있더라도 어찌 감히 구언을 할 수 있겠으며 구언을 하더라도

누가 감히 말을 하겠습니까. 지방의 초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일에 대하여 말하려는 자가

길에서 김정 박상 등의 일을 듣고는 곧 그만 둘 것이니 치세에 어찌 이런 일이 있습니까.

그 당시의 대간들이 아직 모두 그 직에 있으니 신이 어찌 서로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외직에서 올라온 장령 유옥과 정언 박명손도 별 이의 없이 지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그대도 용납하여 일을 함께 할 수 없겠는가."

  그러나 조광조는 끝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신의 말은 다른 뜻이 없사옵니다.

당시 외방에 있다가 온 대간들은 비록 용납하더라도 사람의 소견은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니

신은 서로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신이 여쭙는 바는 언로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어찌 구차스럽게 더불어 같이 일을 하겠습니까."

  중종은 의정부 대신들에게 판단을 미루었다.

그러나 의정부 대신들 대부분은 이미 김정과 박상의 처벌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었으므로

조광조의 간언은 중종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며칠 뒤 중종은 대신들의 공론이라 하여 양사의 간관들을 모두 교체해버렸다.

  이로써 조광조는 하루아침에 낮은 품계와 상관없이 권력의 한복판으로 부상했다. 그

것은 그의 소신과 용기 때문이었다. 간관들의 잘못을 알고도 대부분의 벼슬아치들은

임금에게 직언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조광조를 시기하는 벼슬아치들도 이때부터 생겨난 것도 사실이었다.

이행, 권민수, 이언호, 심정 등은 조광조의 등장을 마땅찮게 여겼고,

이장곤, 김안국 등은 그 반대였다.

그런가 하면 양비론을 펴는 직제학 김안로 같은 사람도 있었다.

김안로는 중종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광조가 언로를 위하는 것과 권민수와 이행이 종사를 위하여 죄 주자 하는 것이

둘 다 그른 일이 아닙니다."

  이에 좌의정 정광필은 양시론을 편 김안로를 비판했다.

  "홍문관에서 둘 다 옳다는 설을 내놓아 판단하지 아니하는 것도

또한 취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옵니다."

  결국 중종은 정승들의 의견을 따르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조광조의 손을 들어주었고,

김정과 박상 등은 바뀐 간관들이 방면하기를 간언하므로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그들의 뜻에 따랐다.

정언 박세희도 이 일로 사직하면서 중종에게 아뢰었다.

  "신이 전에 부수찬으로 있을 때 직제학 김안로가 둘 다 옳다는 설을 내놓았는데

당초 신의 뜻은 그렇지 않았으나 김안로에게 구애되어 감히 따로 저의 의견을 아뢰지 못하여

죄가 죽어도 마땅합니다."

  중종은 박세희를 평가하는 데는 인색했다. 조광조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조광조는 간관들이 잘못하고 있을 때 그것을 지적하는 결단력을 보여주었는데,

박세희 같은 이들은 대세를 좇아 자신의 의견을 슬그머니 내놓는 기회주의적인 면이 있었던 것이다.

중종은 박세희를 나무랐다.

  "제 뜻에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으면 제 뜻대로 해야 옳을 것이지

그때는 말하지 못하고 지금에 와서 내 뜻이 본래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냐."

  대부분의 벼슬아치들은 박세희와 같았고, 당시 간관으로 있던 모두가 박세희와 같은 이유로

사직을 청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갈아치울 수는 없었다.

대세를 좇는 처세도 세상을 사는 한 방법이고 대부분의 벼슬아치들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겨울이었다. 박상과 김정은 조광조의 강력한 간언으로 양사의 간관들이 모두 바뀐 뒤,

그들의 공론으로 조정에 들어왔다.

그들을 죄 주자고 주장한 권민수는 충청감사로 나갔다가 죽었고, 이행은 파직을 당했다.

모호하게 행동한 김안로는 이조참의에서 경주부윤으로 밀려 옮겨갔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사중득활(死中得活), 즉 죽을 각오로 정면 돌파한 조광조가

거둔 원칙의 승리였다.

철옹성 같은 기득권의 성벽을 무너뜨린,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던 일이

단 한 사람 조광조로 인해서 실현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