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하늘의 道]

제12장 반정공신들의 몰락 4

오늘의 쉼터 2016. 8. 4. 00:20

제12장 반정공신들의 몰락 4



성거산 서산사에서 하룻밤을 보낸 조광조는 <맹자>를 읽었다.
 
  그러다가 맹자가 공손추(公孫丑)에게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말하는 부분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지극한 정치를 바라는 조광조에게 관심이 가는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공손추는 맹자가 제나라로 온 뒤에 비로소 제자가 된 사람으로 환공(桓公)을 도운

관중(管仲)과 경공(景公)을 도운 안자(晏子)를 무척 존경했다.

관중은 환공을 오패(五覇)의 으뜸으로 만들었고 안자 또한 경공을 보좌하여

강국이 되었으므로 제나라 백성들은 모두 관중과 안자를 칭송했다.

  반면에 맹자는 왕도를 존귀하게 여기고 패도를 천박하게 여기는 귀왕천패(貴王賤覇)의 이론가였다.

왕도란 백성을 사랑하고 선정을 베풀어 민생이 안정되고 사회가 정화됨으로써 천하의 백성들이

감화되어 따라오게 하는 것인데,

패도는 무력으로 사람을 굴복시키고 힘으로 천하를 지배하려는 것이었다.
  
  <공손추가 스승인 맹자에게 묻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제나라의 관직에 오르신다면 옛날의 관중이나 안자와 같은

공업(功業)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관중은 환공을 도와 9번이나 제후들을 모으게 하여 제나라의 욱일승천하는 기상을 천하에 알렸고,

도전하는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낸 공로가 큰 대인으로서 패도를 천하게 보았던 공자까지도

관중의 공만은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맹자는 왕도를 귀히 여기는 유가의 입장에서 관중과 안자를 비판했다.

그러니 제나라 사람인 제자 공손추는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는 진실로 제나라 사람이로다.

관중과 안자만을 알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어떤 사람이 증서(曾西; 공자의 제자인 증삼[曾參]의 손자)에게 묻기를

'선생과 자로(子路)는 어느 편이 어진 분입니까' 하였더니

증서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표정으로 '그분은 우리 선조부께서도 경외하신 분이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선생과 관중과는 어느 쪽이 더 어진 분입니까'하고 물었더니

증서는 발끈 화를 내면서 '그대는 어찌 나를 관중에 비교하는가.

관중은 환공의 신임을 받아 전횡하면서 40여 년 동안이나 제나라의 정치를 도맡아 했으면서도

그 공업이라는 것이 겨우 그의 임금을 비천한 패자로 만드는 데 그친 위인인데,

그대는 어찌 나를 그와 같은 사람에게 비교하려 드는가'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관중은 증서도 본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대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공손추는 맹자가 관중을 업신여기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관중은 환공을 도와 그를 패자가 되게 했으며 안자는 경공을 도와

그 이름을 천하에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래도 관중이나 안자가 본받을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까."

  "제나라로서는 천하의 왕자가 되는 것이 손바닥을 뒤집는 것같이 쉬운 일이었으니라."

  공손추는 맹자의 그와 같은 비판에 더욱 의문이 깊어갔다.

  "그렇다면 제자의 의혹은 더욱 커집니다.

문왕이 어진 덕을 가지고 100년이나 사신 뒤에 돌아가셨지만 왕천하(王天下)의 큰일을 못하시고,

그의 아들인 무왕과 주공이 계승하고 나서야 비로소 왕천하를 이룩하셨습니다.

천하의 왕 노릇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문왕도 본받을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까."

  "문왕인들 어떻게 당해낼 수 있었겠는가.

은나라는 탕(湯) 임금으로부터 무정(武丁)에 이르기까지 어진 성군이 예닐곱 명이나 나와

선정을 베풀어 온 천하가 은나라로 돌아간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무엇이나 오래 되면 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무정께서 제후들의 조화를 받고 천하를 보유하시는 것이 마치 손바닥을 움직이는 것과 같이 쉬우셨다.

  주왕(紂王)이 아무리 포악하다 하더라도 무정으로부터의 시대가 멀지 않았으니

옛날부터 내려오는 좋은 풍속이라든지 전통, 그리고 어진 정치가 아직 남아 있었으며

또 미자(微子). 미중(微仲), 왕자비간(王子比干), 기자(箕子), 교격(膠"730;) 등이

모두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들로 주왕을 도와 서로 보좌했기 때문에 주왕은 오래 된 뒤에야

나라를 잃게 된 것이다.

  한 치의 땅도 주왕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었으며 한 사람의 백성도

그의 신하가 아닌 이가 없었는데, 그런 환경에서 문왕의 경우는

겨우 사방 100리밖에 안 되는 작은 영토로 일어나셨으니,

주왕을 제거하고 천하의 왕자가 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맹자>의 이 장은 문왕이 비록 어진 임금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시대배경이나

문왕에게 주어진 여건이 천하의 왕이 되기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맹자는 공손추에게 제나라가 패도정치를 벗어나 왕도정치로 나아갈 것을 조언했다.

  이 부분도 연산주의 패도정치를 경험한 조광조에게는 눈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맹자가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 같기도 했다.
  
  <"제나라 사람의 말에 '비록 지혜가 있더라도 시세에 편승하느니만 같지 못하고,

비록 농기구가 있다 하나 때를 기다리느니만 같지 못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아주 쉽게 풀려나갈 수 있는 때다.

  하, 은, 주는 한창 융성했을 때도 왕이 거느리는 영토가 천 리를 넘지 못했는데,

제나라는 이미 그만한 땅을 차지하고 있다.

닭이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 사방 국경지대에까지도 미치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제나라 백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땅을 늘리고 백성을 더 모으려 애쓰지 않아도 어진 정치를 행하여 왕 노릇만 잘한다면

제나라를 향하여 천하의 백성이 모여드는 것은 누구도 말리지 못할 것이다.

  왕도정치를 베풀어 왕 노릇하는 왕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이때처럼 오래 된 적이 없으며

천하의 백성들이 이처럼 학정에 시달린 때가 일찍이 없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는 일이야말로 쉽지 않은가.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어진 덕이 퍼져나가는 것은 역마를 주어 명령하는 것보다도 빠르다'고 하셨다.

  그러니 문왕에 비해 시대배경이 이처럼 유리한 시기에 만승(萬乘)의 나라인

제나라와 같은 강국에서 어진 정치를 베푼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기뻐하는 것이

마치 쇠사슬에 거꾸로 매달렸던 사람이 풀려난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왕천하의 큰 사업을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일은 옛 사람의 반밖에 안 하고도 공은 반드시 그 배가 되리라는 것은

이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공손추에게 한 맹자의 이 말은 결국 관중이 환공으로 하여금 한때의 패자가 되게 하는 데

그쳤을 뿐이니 숭배나 찬양을 받을 만한 가치는 없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조광조와 기준은 이 부분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맹자님 말씀이 오늘따라 가슴을 치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는 일처럼 쉬운 일이 없다는 말씀 말이네.

배고픈 자가 단 것 쓴 것을 가리겠는가. 목마른 자가 찬 물 더운 물을 가리겠는가.

사실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허나 폐주들은 그처럼 쉬운 일을 하지 않고 학정을 펴다 망했던 것을 보면

오늘 따라 맹자님의 말씀이 더욱 가슴에 와 닿네."

  "공자님 말씀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어진 덕이 퍼져나가는 것은 역마를 주어 명령을 전하는 것보다 빠르다니 말입니다."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다가 입을 다물었다. 방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문을 열자 매미소리가 따갑게 들려왔고 주지가 감자를 들고 들어왔다.

  "이곳 화전 밭에서 캔 감자입니다.

공부하시다가 출출하시면 드시라고 가져 왔습니다.

두 분은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씨감자 같은 분이 되셔야 합니다."

  매미가 아침부터 자지러지게 우는 것을 보니 오늘도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칠 것 같았다.

주지는 매미소리를 가지고도 한 마디 했다.

  "두 분은 저 매미소리가 시끄럽지 않습니까."

  "글을 읽는 데 방해가 됩니다."

  "소승은 저 매미소리가 정진하는 데 방해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단 말입니까."

  기준이 의아해 하자 주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목숨을 내놓을 듯이 토해내는 소리로 들리지 않습니까.

소승은 매미가 목숨을 걸고 소리 지르듯 정진하려고 합니다.

그리하면 근기가 부족한 소승도 언젠가 깨달음이 오지 않겠습니까."

  "화상의 얘기를 흘려들을 것이 아닙니다.

십여 년을 어두운 땅속에서 번데기로 살다가 세상에 나왔으니 짧은 생이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그러니 저리 아쉽게 우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주지는 조광조의 말을 받아 달리 말했다.

  "짧은 생이 아쉽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고 떠나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 아닐까요.

우주의 무시무종(無始無終)을 생각한다면 우리 인생이란 한 티끌에 불과합니다.

중은 중대로, 선비는 선비대로, 임금은 임금대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터인데 따지고 보면

얼마나 절박한 시간입니까.

소승은 매미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야지' 하는 마음뿐입니다."

  조광조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주지의 법명을 물었다.

  "법명이 어찌 되십니까."

  "공파(空波)입니다. 지족노사의 상좌이지요."

  "화상의 말씀을 들으니 지족대사의 법이 얼마나 깊은지 알만 합니다."

  "천만에요.

우리 노사께서는 화담선생을 으뜸으로 치십니다.

항상 소승에게 화담 선생을 은사이듯 받들어 모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소승이 화담 선생의 방을 마련하여 시봉하게 된 것입니다."

  그제야 기준도 부모를 버리고 무위도식한다는 승려에 대한 선입견을 버렸는지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

  "생원이나 진사 정도로는 이곳에서 일합을 겨루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오죽하면 저희들 스스로를 도가 가난하다 하여 빈도(貧道)라 하겠습니까.

빈도가 잠시 두 분의 공부를 방해해서 송구합니다."

  주지가 물러가고 난 뒤 기준이 말했다.

  "화담이 이곳 천마산과 성거산에서 방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화담은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해.

어젯밤 화담이 즉흥시를 읊조리며 의심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여 마음이 쾌활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마음을 얻기가 어디 쉽겠는가."

  두 사람은 다시 <맹자>을 읽어 내려갔고 이윽고 조광조는 혼잣말을 했다.

  '화담은 자신의 쾌활함이 이치에 의심 없는 경지에 이르자 생겨난 것이라고 했지.

그 호연지기를 맹자는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감히 여쭈어 보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합니까."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 기는 지극히 크고 강해서 올바르게 길러 해침이 없으면 하늘과 땅 사이에 충만하게 된다.

  그 기는 정의와 정도에 부합되는 것으로 이것이 없으면 기가 쇠해질 것이다.

이것은 마음속에서 의(義)를 모아 생기는 것이지 의가 밖에서 엄습해 들어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동하여 마음에 쾌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기가 허탈해지고 만다.

그러므로 나는 고자(告子; 인성 문제로 맹자와 논쟁을 벌였던 사람)가 의를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가 의를 외재적(外在的)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호연지기를 기르는 사람은 반드시 의를 행하는 것에 힘쓰되 갑자기 이루어지기를

예기(豫期)하지 말고, 마음속에서 잊지 말 것이며, 그렇다고 무리하게 기르려고 하지도 말아

송나라 사람이 한 것처럼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송나라의 어떤 사람은 곡식의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싹을 뽑아 올려 놓고

피곤한 모양으로 집에 돌아가 집안사람들에게 '오늘은 지쳤다.

나는 곡식의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고 왔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그 사람의 아들이 부지런히 논으로 달려가 보니 싹은 이미 다 말라버렸더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싹이 빨리 자라도록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다만 이익 될 것이 없다고 버려두는 사람은 비유컨대 밭에 김을 매지 않는 사람이요,

무리하게 자라게 하는 사람은 싹을 뽑아 올리는 자다.

이것은 비단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되는 것이다.">
  
  기준이 말했다.


  "호연지기라는 것도 정의와 정도에 부합되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시들어버리는 것이군요."

  "그래서 맹자님은 정의와 정도에 따라 행동할 것을 공손추에게 당부하신 것이네."

  "호연지기가 술이라 하면 정의와 정도는 술을 담아 두는 주병이 되겠습니다."

  "하하하. 자네의 표현이 그럴듯하군. 정의와 정도의 그릇이 깨져버리면 호연지기라는

술도 쏟아져버리는 것이겠지."

  "맹자님의 호연지기와 화담의 그것은 무엇이 다릅니까."

  "맹자님은 의(義)와 도(道)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호연지기가 길러지지 않는 것이라고 보는 것 같고,

화담은 격물함에 의심이 사라져야만 호연지기가 생겨난다고 보는 것 같네."

  "화담의 생각은 유도의 입장과는 조금 다른 것이 아닙니까."

  "맹자님은 마음이 쾌한 경지를 호연지기라 보는데, 화담은 걸림 없는 경지를 호연지기로 보는 것 같아."

  "그렇다면 화담은 불도 쪽에 가까운 것이 아닙니까."

  "불도에 해탈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자네 말도 일리가 있네."

  서경덕의 호연지기는 맹자가 말하는 '쾌활한 마음'보다는 '걸림 없는 마음' 쪽과 흡사했다.

그러니 서경덕의 호연지기는 불도의 해탈을 연상케 했다.

볕이 뜨거워지는 듯 매미가 더욱 날카롭게 울었다.

  맴맴 매엠-.

  조광조는 기어이 큰소리로 우는 매미를 살펴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서산사 마당가에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매미는 고목 등걸에 바짝 달라붙어 날개를 부비며 울고 있었다.

  십 수 년을 땅속에서 번데기로 있다가 성충이 되어 한 철을 살다가는 매미였다.

  "왜 웃고 계십니까."

  기준이 씁쓰레하게 웃고 있는 조광조를 보고 말했다.

  "저 매미가 우리 인생 같지 않은가."

  "말씀이 비장하십니다."

  "그렇잖은가. 결국 자네나 나의 인생도 한 철 살다 가는 저 매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조광조는 문득 자신의 인생이 매미와 같이 느껴져 비감한 생각이 들었다.

한 철을 비상하기 위해 십 수 년을 땅속에서 번데기로 살아야 하는 매미와 흡사하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기준이 웃으며 말했다.

  "수컷이 암컷을 만나는 것이 매미의 큰일이라면 우리도 인생의 일대사(一大事)를 마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대장부의 삶이겠습니다."

  "공파화상의 말이 맞네. 짧은 생을 아쉬워할 것이 아니네. 매미도 큰일 해내고 생을 마치지 않는가."

  "우리의 큰일은 무엇입니까."

  "도학으로 군자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큰일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지치를 이루어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는

왕도정치를 펴는 것이 선비의 일대사가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만 반정공신들이 아직도 조정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어진 생이 절박한 것이 아닙니까."

  "절박하니까 더욱 철저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서산사에 와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 이번 여름은 헛되지 않았네.

천마산에 와서 지족을 만나고,

화담을 만나고, 공파를 만났으니 말이네."

  조광조는 <맹자>를 보면서 호연지기가 정의와 정도의 실천에 짝하여 길러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화상들과의 만남에서 선비의 일대사가 무엇인지를 새삼 다지고 깨달았다.

  "노천은 지금 용문사 산방에 있을 거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시간이 난다면 들려보세. 김구는 인왕산에 들어가 있고,

양팽손은 능주 쌍봉사로 내려가 대과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네."

  조광조의 동지들 모두 생진사시에 합격한 유생들이었으므로 틈나는 대로

대과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기준이 서울의 소식을 물었다.

  "박영문 등은 지금 어찌 되었을까요."

  "화담이 그러지 않았는가. 그들은 지금 가을이네. 추풍낙엽 같은 신세겠지."

  그러나 박영문이 그대로 주저앉을 위인은 아니었다.

반정의 동지들을 찾아다니며 음모를 꾸미고 다녔다.

그런데 서리가 내리면 가을이 더 깊어지는 것처럼 몰락이란 그렇게 해서 더 빨라지는 법이었다.

그것은 두툼한 두루마기를 입어야 할 겨울에 철을 모르고 옷을 벗어젖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