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五 章 劍魔의 洞府
철그렁,
철그렁!
싸늘한
쇠사슬의 부딪침 소리와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 냉기가 어울어진 고해금마옥(苦海禁魔獄)의 안쪽.
-괴인(怪人)!
세상에
이토록 섬뜩한 기운과 참담한 몰골을 지닌 괴인이 존재했던가?
장작개비처럼
앙상하게 마른 몸에 걸친 적의는 헤어질대로 헤어져 중요부분만 가렸고,
제멋대로
이지러진 괴인의 이목구비는 도대체 어떤 부위에 무엇이 박혀있는지 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츠츠츠!
다만
칼날처럼 예리하고 싸늘한 눈빛만이 부딪치는 것은 무엇이나 태워버릴 듯
강렬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바닥까지
치렁치렁 늘어진 적발(赤髮)과 깡마른 몸에
십자(十字)로 비켜 꿰뚫어진 수십 개의 만년철삭(萬年鐵索)!
검푸른 쇠사슬에 비파골(琵琶骨)이든 척수(脊髓)든간에 마구 꿰뚫고 지난 괴인의 몰골은
참으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이 괴인,
그가 바로
전설적인 살인마왕인 아수라마존(阿修羅魔尊) 검마(劍魔)였다.
번쩍!
문득
죽음같은 침묵을 흘려내던 검마의 두 눈이 벼락불 같은 광망을 일으키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렇다.
저벅저벅!
석실로 들어오고 있는 백의를 입고 키보다 큰 장도를 등뒤에 짊어진 한 명의 소동,
바로
소일초를 발견한 것이다.
"..."
"..."
두 가닥의
눈빛이 하나로 엉키고 소일초의 영악한 얼굴에 경악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아!
정말 무서운 기도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애!
우광이란
중은 검마라는 이 늙은이가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 같다더니 전혀 아니올씨잖아!'
소일초의
눈이 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쇠사슬을 발견했다.
순간,
소일초의 얼굴에 경악이 걷히고 가득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불쌍한
영감이네. 저렇게 쇠사슬로 칭칭 묶여있다니!'
그는
알리가 없었다.
그 쇠사슬은 검마가 스스로를 묶은 것이라는 것을!
검마는 세상에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서
쇠사슬로
자신의 요혈을 뚫어 묶어놓았던 것이다.
소일초는
겁도 없이 적발의 검마를 향해 다가가 천진하게 물었다.
"영감이
바로 검마야?"
순간,
새파란 안광을 작열시키며 소일초를 노려보던 검마의 눈빛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허허허허...
검마라! 네가 지금 본좌가 검마냐고 물었느냐?"
"그래!
본 신행마동께서 영감을 검마라고 불렀어."
두려움도
없이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일초,
"크하하하하!"
순간
검마는 돌연 고해금마옥(苦海禁魔獄)을 통째로 허물어 뜨리는 듯한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윽!"
그 광소의
엄청난 위력을 견딜 수 없는 듯 소일초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웃지마!
영감! 왜 웃는 거지?
내가
검마인 영감을 검마라고 부른 것이 무어 잘못 된 것이라도 있는가?"
티없이
맑은 동공에 분노한 기색이 가득 실리자 검마는 문득 웃음을 멈추었다.
하나 그는
곧 차갑고 날카로운 일갈을 터뜨렸다.
"네
녀석은 누구냐?
엄마품에
있어야 할 녀석이 어떻게 이곳에까지 왔느냐?"
소일초는
검마의 싸늘한 물음에 오히려 장난기어린 웃음을 피워올렸다.
"나는
소일초야, 당금 무림에서 불세출의 악명(惡名),
아차
실수! 악명이 아니고 위명(威名)을 떨치고 있는 신행마동이 바로 나야!"
순간,
검마의 두 눈에서 새파란 광망이 사라지며 주체하지 못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
불세출의 악명을 떨치는 하하... 신행마동이라고... 네가?"
"물론이지.
무림에서 신행마동은 오직 나 소일초 뿐이야."
검마가
웃음을 멈추고 소일초를 유심히 보면서 말했다.
"확실히
이제보니 대단한 꼬마로군,
그 나이에
내공이 이미 육갑자에 달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군."
검마는
산더미 같은 기도를 전신에서 폭풍처럼 흘려내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엄청난 기도는 소일초가 여태껏 그 누구에게서도 느낄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소일초가 일전에 만났던 혈기자(血旗子)외에 검마에 필적할 만한 고수는 오백년 내에 없었다.
그리고 혈기자는 반로환동한 후에는 기도마저 부드러워져 전혀 위압적이지 않았다.
자연히
지금 검마가 풍기는 압도적인 기도같은 것은 혈기자에게도 없었다.
소일초는
정말 검마가 무서운 고수라는 것을 실감했다.
어느정도 위축이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까지와는 전혀 달리 저절로 아버지에게 대하듯이 말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일초는 애써 당당함을 유지하려고 하면서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검마
할아버지를 만나볼려고 남황까지 내려왔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도대체
검마라는 이름조차도 이곳의 석문 앞에서야 알게 된 그였다.
"나를?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우광선사 외에는 아무도 모를 텐데?"
"내가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분명히 알아버지를 찾아왔잖아요."
검마로서는
이 꼬마가 천하제일의 거짓말장이의 제자라는 것을 알리가 없다.
소일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까
꿈에 사마귀를 만나는 꿈을 꾸었더니 이렇게 거짓말 할 일을 만나게 되는구나.'
"너는
어떻게 이곳을 알았느냐?"
"세상에는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잖아요.
나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라구요."
득의
만만하게 소일초는 다시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다.
"배우지
않고도 안다고? 푸하하하!"
검마는 또
한바탕 소용돌이치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네
이놈! 지금 감히 노부를 우롱하려고 하는 것이냐?"
이어
웃음을 멈춘 검마는 심장을 뜯어내는 듯한 섬뜩한 목소리로 소일초를 다그쳤다.
그러나,
소일초는 오히려 천진스러운 얼굴로 반문했다.
"할아버지!
내가 무엇을 우롱한다는 거지요?"
순간
검마의 차가운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할아버지?
저... 쥐방울만한 녀석이 또 본좌를...'
비정(非情)과
살륙(殺戮)과 유혈(流血)로 무림을 종횡하다가 남황으로 들어와
고독하게 살아오기만 했던 검마...
그가 언제
이처럼 가까운 혈육의 호칭을 들어 본 적이 그 얼마만인가?
비록
소일초가 거짓으로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할 지라도
검마는
그의 호칭에서 심연의 깊이에서 잊혀졌던 어떤 감정을 되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심과 달리 검마의 얼굴에는 더욱 새파란 빛이 가공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가증스러운
녀석! 어려서부터 거짓부리부터 배우다니...!
네가 아무리 본좌를 속이려 해도 소용없다.
장차
네녀석으로 인해서 무림이 얼마나 소란스러워질지 모르겠구나."
"...?"
"예전
같으면 당장 네놈을 죽여야 하겠으나...
노부와
함께 처절한 수행을 거치도록 해서 네 놈의 심성을 바꾸어 놓겠다."
"꽥!
수... 수행이라니요? 무...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이놈!
내가 한때의 광기를 억제치 못해서 저지른 만행을 참회하기 위해서라도
네 녀석을
장차 무림에 복이 되는 인간으로 만들어 놓아야겠다."
검마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하나, 소일초는 오히려 환한 미소를 검마에게 던지는 것이니...
설마
그렇게 될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고 녀석
참...!'
그런
소일초를 새파란 안광을 폭출시키며 바라보던 검마의 눈가로 따스한 정감이 스쳐갔다.
그것은 평생을 살륙과 세상에 대한 증오로 살아온 검마가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기이한 감정이었다.
-검마!
일백육십여
년 전 무림천하를 한자루의 검으로 무자비하게 휩쓸어
천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일초무적(一招無敵)의 살인마!
비록 그
활동기간이 이 년이란 짧은 시기였지만
천하의
모든 명인, 고수들이 두려워 해 마지 않았던 고금제일의 검수(劍手)!
소림의
불세기재로 불리웠던 우광이 동귀어진할 작정으로
축융화탄을
목탁속에 넣고서 찾아 다녔던 공포의 거마(巨魔)!
뿐인가?
당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백인장의 도객들이 비밀리에 검마를 잡기위해 나섰으나
삼십여명의
도객들이 역시 단 일초를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검마의
어마어마함을 더이상 설명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런
그가,
그토록 강인함과 피와 잔인으로 점철되었던 그가
냉혹하고
비정한 응어리를 드리운 얼굴에 따스한 기온을 피워내다니!
백 수십여
년의 세월을 처참한 형극(荊棘)의 길을 걸어오며 참회를 한 때문인가?
그의 불성이 이미 깊은 경지에 다다랐음인가?
그것도
아니면 인간의 정이 너무 그리워서인가?
이것은
기변 중에도 경악할 기변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석실은 무림의 큰 죄인인 노부가 일백오십년을 참회하고 있는 곳이다."
검마는
소일초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고의
재질을 가졌음에도 정기(正氣)가 부족한 네 녀석...
앞으로 나와 함께 삼 년 동안 참회로 보내도록 하라!
내가 네
놈의 심성을 바로 잡아놓겠다."
"히액!
삼... 삼 년? 그것도 쇠사슬을 몸에 칭칭 감고 말예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단지
여기서 노부와 함께 삼년을 지내기만 하면 된다."
'흐유!
하여간 사마귀(四魔鬼)를 꿈에서 보는 것이
확실히
재수없는 일이라는 것을 일찍 짐작했어야 하는 것인데...!'
검마의
말에 소일초는 한바탕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해내었다.
하지만
소일초는 이내 불안한 얼굴에 애써 미소를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저...
할아버지 사실은요."
"무엇이냐?
그리고 앞으로는 사부라고 불러라."
무시무시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말하는검마의 음성에
소일초는
오히려 주저하는듯이 웃음을 흘려냈다.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실은 저도 무공이 만만치 않걸랑요?"
소일초의
장난기 섞인 음성과 침착하고 조용한 태도에 검마는 어처구니 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은 혹시 내가 검마라는 사실을 잊어먹은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마 자기
앞에서 무공을 자랑하는 놈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하나
검마는 이내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서?
나와 한번 겨루고 싶다는 말이냐?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아!"
"예!"
소일초는
큰 소리로 당당하게 대답하며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혹시
너는 나와 겨루어본 사람은 모두 땅에 누운채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소일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의
검법은 오직 일초뿐이고, 나는 또한 더이상의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일백 팔십
세에 이른 검마에게도 그 사실은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저 보고
제자가 되라고 하고도 저를 죽일 것인가요?"
"물론
그래선 안되겠지."
"저에게도
무공을 펼칠 기회를 주세요.
그리고
나서 내가 깨끗이 승복하게 되면 앞으로 삼 년 동안 잘 모실께요."
검마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음...
이런 예는 없었지만 하는 수 없지.
네 녀석을
마음으로 부터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될테니까!"
"그럼
먼저 공격하겠습니다. 할아버지도 검을 뽑아요."
소일초가
한 걸음 물러서며 등 뒤의 어린보도를 뽑았다.
츠츠츠-!
어린보도에서
새파란 도광이 일어나 어두운 고해금마옥의 내부를 스산하게 비추었다.
마치
고기비늘(魚鱗) 형태로 무지개처럼 번져나가는 삼엄한 도광(刀光)이었다.
"훌륭한
보도(寶刀)로구나."
검마가
어린보도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할아버지도
어서 검을 뽑아요!"
소일초는
자기 키만한 어린보도를 꼬나들며 말했다.
"노부의
검은 필요하면 절로 나타나니까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검마는
웃으며 끄덕였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후회하지
말아요!"
쉬이잉!
소일초가
당차게 기합을 지르며 어린보도를 휘둘러 공격해왔다.
그가 펼친 제일초는 며칠 전에 혈기자에게 배운
용형삼도(龍形三刀)
중의 제 삼초인 백룡승천(白龍昇天)이었다.
파츠츠츠!
고오오오!
어린보도에서
엄청난 도기가 뻗어나오며 백룡이 하늘로 올라가듯 검마를 휘감아 왔다.
검마는
깜짝 놀랐다.
이 작은 꼬마가 어떤 기연으로 내공은 깊어졌으리라 생각했지만
절학을
능숙하게 구사해 낼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쇠사슬에 감겨있던 오른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쩌러렁!
쉬이잉!
순간
검마의 오른손에서 검은 빛이 일렁이더니 어느새 한 자루의 철검이 나타나
소일초가
일으킨 백룡승천의 초식을 마주 쳐갔다.
따다당-!
무시무시한
기세로 검마를 덮쳐오던 백룡승천의 도세(刀勢)는
검마의 초식에 부딪히자 눈녹듯이 사그라들더니
철검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옆의 석벽으로 날아가 사라져버렸다.
"아이쿠!"
쿠당탕!
어린보도도
방향을 잃고 튕겨져 나갔으며 소일초는 소일초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쳐졌다.
검마는
검마대로 깜짝 놀랐다.
방금 소일초가 펼친 도법은 그조차도 난생 처음보는 절세적인 도법이었던 것이다.
검마가
감탄을 발했다.
"옛날에
전설적인 도문(刀門)인 백인장의 도객들에게도 그와같은 도법은 없었다."
"백인장의
늙은이들 따위가 무어 대단하다고 그래요.
나에게는
모두 꼼짝도 못하는데..."
소일초는
잽싸게 어린보도를 꼬나들고 제 이초를 펼치면서 말했다.
제이초 역시 혈기자가 전수해 준 육풍장(六風掌)의 수법 중
제 육초인
북풍한빙(北風寒氷)을 어린보도로서 펼친 것이었다.
검마 역시
철검을 마주 뻗으면서 말했다.
"네가
전설적인 백인장의 도초마저 알고 있단 말이냐?"
북풍한빙의
절초가 어린보도의 끝에서 펼쳐지자
살을 에일듯한 한기가 석실안에 가득차면서
앉아있는
검마를 갈가리 찢어버릴 듯이 흉폭하게 몰려갔다.
그러나,
검마는 역시 검마였다.
고오오오!
그의
손에서 철검이 뻗어나오자마자 북풍한빙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소일초는
눈앞에서 불쑥 떠오르는 철검에 깜짝 놀라 뒤로 미끌어지듯이 물러나며 피했다.
소일초는
이를 악물었다.
검마의 물음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사실 그가
알고 있는 절학이라고는 혈기자에게서 훔쳐 배운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사마귀들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들은
무중일전신법(霧中一電身法)과 도귀(賭鬼)의 수정검우(水晶劍羽)외에는
그다지
뛰어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백인장의
도객들도 소선풍의 명을 어기지 못하여 무공의 요결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오직
육갑자에 이른 공력과 금강불괴지체의 몸뚱이,
그리고
총명한 머리가 그의 전 재산이었던 것이다.
소일초는
잇달아 혈기자에게서 배운 수법들을 펼쳐내었다.
검마는 모두 일초에 그 수법들을 풀어버리기는 했지만 갈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느 초식이나 듣도 보도 못했던 기초(奇招)였고, 절묘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창안한 무공인지 절로 흠모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삼십여초가 지났을 때였다. 돌연 소일초가 크게 외쳤다.
"이것도
한 번 받아보시지!"
그의 손에
들려있던 길다란 어린보도가 허공으로 높이 들려지자
검마는
내심 긴장된 표정으로 소일초의 손에서 펼쳐질 절초를 기대했다.
그러나,
피핑!
쐐애액!
뜻밖에도
소일초의 몸이 뿌연 안개에 휩싸이면서
그대로
열려진 석문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검마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싸우다가 그렇게 도망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촤라라락!
검마가
손에 든 철검을 쭉 뻗자
검신에서
강인한 흡입력이 생겨 문 밖으로 날아가는 소일초의 몸을 휘감았다.
바로
그때,
스팟!
소일초의
왼손에서 무엇인가 반짝했다.
"수정검우(水晶劍羽)!"
검마가
경악하며 외쳤다.
소일초는
허공에 뜬 채 수정검우를 뒤쪽으로 맹렬히 던져내었던 것이다.
휘이잉!
하지만
검마가 선뜻 소매를 젓자 소일초가 발출한 수정검우는 빨리듯
그의 손으로 들어가 버렸고 검마는 다시 철검을 한 번 떨쳤다.
"아이쿠!"
콰당탕!
그러자
소일초의 날아가던 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진 후 검마의 앞으로 질질 끌려왔다.
콰쾅-!
뒤이어
굉렬한 소리를 내며 고해금마옥의 육중한 석문은 그대로 닫혀버렸다.
헌데,
"수정검우(水晶劍羽)!
아아!
이것이 백오십년만에 노부의 수중에 다시 들려지다니...!"
검마는
웬일인지 깊은 감회에 젖은 채 왼손에 들어온 수정검우를 쓰다듬고 있지를 않은가?
소일초는
검마의 검기에 혈도를 찍혔으나 이내 풀어져 있었다.
그러나,
내색할 수도 없고 그냥 정신을 잃은 척 가만히 누워있었다.
잠시 후,
검마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너는
정말 이상한 아이로구나.
이
수정검우는 또 어떻게 해서 네 손에 있게 되었느냐?"
"내
사부가 준 것입니다."
검마가
소일초에게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바른대로
말해야 한다. 원래 이 수정검우는 내가 만든 것이니까."
소일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정검우가
검마가 만든 것이라니...
소일초로서는
검마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백인장에서의 일은 물론이고 사마귀, 그리고 최근에 만났던 혈기자에 대한 말까지도...!
검마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 천하의 소일초로서도 고분고분해 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모든 말을
다한 소일초는 도망치는 것도 포기하고 풀이 죽어 바닥에 앉아서 손장난을 하고 있었다.
검마는 묵상에 들어가 전혀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사실,
도귀(賭鬼)는 검마의 후손이었다.
검마가
남황으로 들어오기 전에 남겨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었으니
검마의
신물이었던 수정검우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검마는
천지간에서 가장 예리한 만년정모(萬年晶母)를 깎아 수정검우를 만들었으나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날이 무딘
철검 한 자루 만으로도 적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몇년을
걸쳐 겨우 만든 수정검우를 임신한 아내에게 주고는 이곳 남황으로 와버렸던 것이다.
검마는
지금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한때 무림에서 검마란 이름을 얻었는데
그의 후손마저 사파의 인물로 악명을 떨친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자기가 자행한 살겁에 대한 응보인 것 같았다.
* * *
그날
이후, 소일초는 검마의 억지제자가 되어 수행을 쌓게 되었다.
그로서는
검마의 검법이 탐이 났으나
검마는
오직 바른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풀풀
뛰어다니고 훨훨 날아다니는 것이 천성에 맞다고 생각하는 소일초로서는
처음에는
그같은 생활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발작을 하지만 검마의 곁을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곧잘
갑갑함에 발작도 했지만 이내 다시 주저앉고는 했다.
하여간
발작에서 다음 발작까지의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은
그가 조용히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불만을 품으면서도 그는 지루하고 따분한 생활에 점차 적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동안 비성성(飛猩猩)이라고 불리는 괴물들이 번갈아가면서 매일 과일을 들여주어
그가 배고픈 일은 없었다.
하지만,
검마는 음식이라고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이미 긴
세월을 벽곡(劈穀)으로 지내온 것이다.
소일초도
벌써 세 달 동안 아무말 없이 묵묵히 앉아있었다.
그동안 그의 마음에서 없어져야 할 것은 없어지고 튼튼해져야 할 것은 튼튼해져 왔다.
침묵과 고요는 참고 견디기만 하면 사람을 가르치는 최고의 스승인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일년이 채워지던 날이었다.
"그동안
잘 참았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을 쌓도록 하자."
소일초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부터
소일초는 검마의 무적검법을 배우게 되었다.
우선
검마는 소일초에게 검을 쥐는 법 부터 가르쳤다.
그리하여 검이 손의 연장(延長)이고 마음으로 움직이는 도구(道具)라는 것이 느껴질 때까지
자신이
사용했던 녹슨 철검을 쥐고 있게 했다.
소일초는
그때부터 철검을 한 시라도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
"노부의 검법은 검벽신공(劍壁神功)이란 것으로서 분명 단 일초뿐이다.
네 이름
역시 일초(一招)이니 천리(天理)의 오묘함이 노부와 네가 만나게 한 것 같구나."
검마는
소일초가 전생에서부터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자신의 검법이 진정한 주인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검법은 단 일초 뿐이지만 그 일초를 위해서 익혀야 할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검마의
일초검공은 내가검공(內家劍功)의 최정수였다.
이름하여
검벽신공(劍壁神功)-!
무림에서는
아수라마검식(阿修羅魔劍式)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무적검결이 바로 그것이었다.
검벽신공의
초식(招式)은 단 한가지지만 내공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스물 네가지의 요결에 따라서 운용되는 일초검공은
천하의
어떤 무공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절세무적의 검공이다.
소일초는
검벽신공의 스물 네개의 요결을 익혀가면서 일곱 번의 주화입마의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그만큼
검벽신공은 운공행로의 섬세하고 까다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연공
도중에는 어떠한 잡념도 가질 수 없음은 물론이고 털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
과정으로만 말한다면 정통무공이라기 보다는 사공(邪功)에 가까운 것 같은 일초검공이었다.
다시
이년여의 세월이 꿈결같이 흘렀다.
피나는
고련끝에 소일초는 마침내 검벽신공의 이십사개의 운용검결(運用劍訣)을 모두 연성해냈다.
이제 초보적이나마 검벽신공,
즉
아수라마검식을 펼쳐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온갖
무학의 원리를 담고있는 검벽신공을 통해서 소일초가 깨달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어떤
무공이든 간단히 그 약점을 찾아서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안목이 크게 성장한 것이다.
검벽신공이
완성된 후에는 소일초가 동굴밖으로 나와서 비성성들과 노는 때가 많아졌다.
뜨거운
햇살과 뜨거운 바람...
그곳에는 계절의 분간이라고는 없었다.
푸른 거목의 숲에서 검벽신공을 연습하고 호수위에 뗏목을 띄워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소일초의
체격도 어느덧 어린 아이에서 벗어나 당당한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으니...!
그
와중에도 사부인 검마의 기력은 날이 갈수록 쇄해지고 있었다.
유수와도
같은 세월은 어느덧 검마가 약속한 삼년을 후딱 지나간 것이다.
"억지로라도
너에게 장안은신술(帳眼隱身術)을 가르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걸리는구나."
어느날
소일초를 불러앉힌 검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안색은 흡사 썩은 고목(古木)과도 같았다.
이미 사신(死神)의 그림자가 이 절세무비의 검마의 몸에 그득히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장안은신술(帳眼隱身術)!
그것은 저 진주배교(秦州拜敎)에서 유래한 사술의 일종이었다.
그것을
완벽하게 수련하면 어떤 절정고수의 이목이라도 속여넘길 수가 있다.
검마는
소일초에게 만일을 대비하여 그 장안은신술을 가르치려고 했었으나 소일초는 질색을 했다.
무공은
오직 검벽신공만 있으면 될뿐 다른 잡술은 배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그것을 다시 떠올리고 검마는 안타까워 했다.
"지금의
네 실력이라면 무림에 나가서도 특별히 신경을 쓸 대상은 없을 것이다만,
혹시나 천년마교(千年魔敎)라는 무리들을 만나게 되면 신중하게 대처해야만 한다.
그자들은 아주 사악(邪惡)한 조직으로서
백오십년전에는
이 사부마저 납치하려고 기도한 적이 있었단다."
검마는
감회에 잠기는데 소일초는눈이 휘둥그래졌다.
세상에 감히 검마를 납치하려 한 자들이 있었단 말인가?
"사부를
납치해요?"
"그렇다.
물론 그자들은 모조리 사부의 손에 죽고 말았지.
하지만
그자들의 마공은 아주 기괴하고도 사이한 것이었단다."
검마는
천년마교(千年魔敎)란 비밀결사(秘密結社)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사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일초는 퍼뜩 등천마교(騰天魔敎)를 떠올렸다.
그자들은 자칭 자신들을 마교(魔敎)의 후예라고 하지 않았던가?
"네가 신주사패천중 백인장의 작은 주인이라니까 달리 당부할 것은 없다만,
이
한마디는 꼭 기억하도록 해라."
검마의
안색이 아주 엄숙해졌다.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의 피는 네 몸을 적시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네 영혼은 이미 피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네 생명은
초개(草芥)처럼 여기더라도 남의 생명은 보배(寶盃)처럼 여겨야만 한다."
검마는
가볍게 탄식했다.
"언젠가는
네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 내가 죽거든 우광과 함께 화장하도록 해라."
"사부님!"
소일초가
검마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돌아보니
남은 것은 악업(惡業)이고 남길 것은 씨앗(種)뿐이로구나."
검마는
잔잔한 음성으로 내뱉은 다음 입을 다물었다.
다급히
그의 손을 잡은 소일초의 손으로 벌써 찬기운이 전해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벽곡을 하면서 시체같은 삶을 영위해 왔기에
죽음과 동시에 몸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이다.
검마는
세수(歲數) 일백 팔십 오세로 기나긴 생을 마감했다.
소일초는
사부인 검마의 유해와 다비를 미루어 왔던 소림사의 파계승 우광(宇廣)의 유해를
함께 화장했다.
불법을
깨닫기위해 그토록 몸부림 쳤던 우광의 몸에서도 사리(舍利)가 나왔고
수 많은
살행과 수 많은 고행과 수 많은 참선을 했던 검마의 몸에서도 여러개의 사리가 나왔다.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을 때 신행마동 소일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난 삼
년의 세월 동안 검마의 깊은 정과 가르침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죽음의 그
순간까지 감고 있었던 쇠사슬을 소일초가 검마의 몸에서 풀어내었을 때
사부인
검마의 몸은 마치 장작개비처럼 가벼웠다.
몸의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은 막혀지지도 않았었다.
그토록
깊던 내공도 흩어지고 혼자서는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못할 노인으로 검마는 죽었다.
검마의
마지막 수발을 들면서
소일초는
정말 자기가 이 사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부의
사리와 우광스님의 사리를 각기 나우어 품에 넣은 소일초는
검마의
동굴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의
뒤에는 열 여덟 마리의 비성성(飛猩猩)이가 주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서 있었다.
"가자!"
소일초는
이제 자기의 키보다 훨씬 작아진 어린보도를 어깨에 메고
왼쪽
허리에는 사부의 유품인 닮아서 이가 빠진 철검을 매었다.
오른쪽
허리에는 술병 대신 축융화탄이 가득 든 목탁을 차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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