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신행마동

第 四 章 密林속에서의 긴 꿈

오늘의 쉼터 2016. 6. 1. 23:40

第 四 章 密林속에서의 긴 꿈

 

한편, 소일초는 기다란 어린도를 등에 매고 남만(南蠻)의 밀림 속을 헤매다니고 있었다.
{제길, 되게 덮군.}
그의 손에는 난도질이 된 표범의 가죽이 들려있었다.

아마 표범가죽이 좋은 줄 알아가지고 벗기다가 다 찢어 버린 모양이다.
하늘도 보이지 않는 빽빽한 밀림 속을 그는 벌써 며칠 째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저 괜찮은 짐승 한 마리 잡아서 돌아갈 생각으로...
몇 번 인가 사람 같지도 않은 만족(蠻族)을 만났으나

오히려 그를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 버렸다.
커다란 비단뱀도 그를 만나자 마자 몸뚱아리가 토막토막 나버렸고

사자(獅子)도 목이 짤린 후 탐스러운 갈퀴를 소일초에게 바쳐야만 했다.
그의 행로에 돌아가는 길은 없었다.

무조건 길도 없는 밀림속을 직진(直進)해 나갔다.
독충들이 그의 몸을 무는 경우도 있었으나

오갑자의 내공을 가진 그는 날 때 부터 금강체(金剛體)였고 만독불침(萬毒不侵)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몇 시간을 똑 바로 걸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그 흔한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맹수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밀림은 마치 죽은 듯이 고요했다.

어디에도 짐승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숲은 다른 곳 보다 더욱 우거져 있었다.

갑갑함을 느낀 그는 호신강기를 강하게 일으킨 후 그대로 돌진해 버렸다.
{와아아...!}
잡목들은 칼에 베인듯 잘려져 나가 버리고

큰나무에 그의 몸이 부딪혔을 때는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부러져 나갔다.
쾅! 우두두둑!
한데 갑자기 그의 눈 앞이 탁 트이면서 밀림이 끝나고 작은 호수가 나타났다.
그러나 전력으로 질주하던 중인지라 멈추지 않고 호수 위를 그대로 날아넘어 건너편에 내려섰다.
역시 그곳에도 숨막힐 듯한 적요가 감돌고 있었지만

나무들은 여태까지 봐 왔던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어린 소일초는 고개를 들어 까마득히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거목들을 바라보았다.
작아 보이는 것도 높이가 삼십 장은 족히 될 것 같았고

큰 나무들은 오십 장 정도 돼 보였다.

밑동도 장정 오십 명은 서로 손을 맞잡아야 될 정도로 굵었다.
그가 감탄을 하면서 입을 딱 벌리고 있다가,

갑자기 입을 <딱> 소리가 나도록 다물면서 오른 팔을 홱 돌렸다.
캑! 끄륵!
이어 고개를 돌리고 보니 난생 처음 보는 해괴한 동물이 자기의 작은 손에 매달려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 동물이 뒤에서 기습하는 것을 소일초가 먼저 알아채고 목을 잡아버렸던 것이다.
[꽥!]
소일초는 그 괴물의 너무도 이상한 모습에 기성을 지르며 땅에 패대기를 쳐버렸다.
그놈은 윤기가 반지르 도는 검은 털을 가졌는데,

겨드랑이에는 자기 몸 만한 날개를 달려있고 사람을 닮은 얼굴에 손과 발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박쥐와 원숭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 같은 괴상한 동물이었다.

땅에 패대기 쳐졌던 그 괴물은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새 그놈의 동료들로 보이는 것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괴물들의 눈에서는 파란 불꽃이 이는 것 같아서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놀랐던 소일초,

그러나 이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남만까지 온 보람을 이제서야 느끼는 것이다.

자기를 둘러싼 검은 괴물들을 오히려 음흉스런 눈초리로 처다보았다.

날개 달린 검은 괴물들,

이놈들의 키는 큰 놈도 넉 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덩치로 본다면 열 한 두 살 짜리 애들만 했다.

그리고 키에 비해서 유달리 다리가 짧은데 팔은 반데로 길었다.
헤아려 보니 널부러져 있는 놈까지 해서 모두 열여섯이었다.
소일초가 천천히 다가서자 오히려 그놈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착각일 뿐이었다.

놈들은 아주 영리했다.

동료중의 하나가 그에게 단번에 당하는 것을 보았는지라

정면 대결을 피하고 차륜전을 펼치려 하는 것 같았다.
끽끽!
한 놈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자 다른 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날개짓을 했다.
원래 놈들은 이 밀림일대에서 흉폭한 성격과 강한 힘,

그리고 영리한 두뇌로서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사자도 그들을 보면 도망가기에 바빴고 열 놈이면 코끼리마저도 죽여버리는 맹수들이었다.
그들의 날개바람은 무척이나 강해서 주변에 가득 흙먼지가 일었다.

뿌연 먼지 속에서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렵게 되자,

그 놈들은 날개와 긴 팔을 이용해서 소일초를 공격해 들어왔다.

그러나 소일초에게는 단지 신기한 장면의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었으니...
덤벼드는 놈마다 소일초의 손아귀에 목을 틀어잡혀서 땅에 패대기 쳐지고 말았다.
캑! 끽! 끄윽!
금방, 소일초의 주변에는 밀림의 왕으로 군림하던 괴물들이

일제히 손 발을 허공으로 올린 채 바르르 떨고 있었다.
{하하하하!}
쓰러진 괴물들 사이에서 소일초는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품속에서 가늘고 긴 줄을 꺼냈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괴물들의 손과 날개를 한꺼번에 묶어서 일렬로 죽 눕혔다.
손바닥을 탁탁 턴 다음 제일 앞에 누워있는 괴물의 배위로 풀쩍 뛰어 올라가며 노래를 불렀다.

-일 년은 삼백 오십 육일, 봄 여름 가을 겨울,
남자는 배를 타고 여자는 파도친다.
일 년은 열 두 달, 달거리도 열두 번...

꽥! 꽥!
소일초가 노래를 부르며 괴물들의 배에서 배로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 다니자

정신을 잃었던 놈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떴다.
그놈들에게는 이처럼 재수 없는 날은 평생 처음 이었다.

골치덩어리 신행마동에게 걸렸으니 껍질이

벗기지 않으면 조상님은덕이라고 제사라도 지내야 할 판이었다.
소일초의 무게야 열 살 짜리 아이가 몇 근이나 나가겠냐 만서도

그의 등에 매어져 있는 어린도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칼이었다.

어린도 전체가 하나의 만년한철로 돼 있는데 무려 칠십 근이나 되었다.

소일초는 한 놈을 건너 뛰기도 하고 두 놈을 건너 뛰기도 하며,

어떨 때는 한 놈을 죽으라고 밟아 대기도 했다.
괴물들은 손과 날개가 동시에 뒤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두려운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자기의 배를 밟지 않고 지나가면 안도의 눈빛을 보냈고 여러 번 밟힐라 치면 죽는 소리를 냈다.
소일초의 노래소리에 맞춘 괴물들의 효과음향은 한 동안 계속 되었고,

그놈들은 이제 아예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어떤 놈은 까무라치기도 하고 비명소리 마저 잘 새어나오지 않았다.
소일초는 신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괴물들은 밟혀 죽을 지경이었다.
괴물들이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려 더 이상 신나는 비명이 나오지 않자 소일초는 그 장난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제일 끝에서 부터 하나 씩 하나 씩 차례대로 잡아 일으켜 세웠다.
괴물들은 눈초리는 아예 공포에 젖어 있었다.

진짜 괴물 같은 꼬마놈이 또 무슨 짓을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괴물들은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정신을 차렸다.
호수가에서 소일초가 불을 피우고 악어 한 마리를 통째로 굽고 있었다.

어른의 허벅지 만큼이나 굵은 나무에 매여져 있는 악어는 아직도 살아 있는 듯 몸부림치고 있었다.
옆에는 마른 나무가지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소일초는 입맛을 다시면서 화력을 높이고 있었다.
괴물들도 그에게 혹사를 당한 뒤라 몹시 배가 고팠고

게다가 아직 살아 있는 악어가죽 굽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자 군침을 삼키며 악어를 보고 있었다.
지글지글! 직지글!
마침내 악어는 축 늘어져 노글노글하게 익어버렸다.

순간 소일초는 손에서 아주 밝은 빛이 반짝 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얇고 날카로운 깃털모양의 수정(水晶)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길이는 약 두치 반 정도, 너비는 한치 못되어 보였다.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수정검우(水晶劍羽),

바로 사마귀(四魔鬼)중 도귀(賭鬼)의 수정검우였다.
그의 손에서 다시한번 깃털 모양의 수정이 반짝 하다 사라졌는데,

악어의 살점이 뚝 떨어졌다.

냉큼 받아서 입에 넣고 씹어보니 보기보단 영 맛이 없었다.
{쳇! 이러면 헛수고 한 거잖아.}
고개를 쓱 돌려 한 줄로 나란히 누워있는 괴물들을 보았다.
{저 놈들은 숫자가 많으니까 한 마리 쯤 잡아먹어도 괜찮겠지.}
그가 입에 넣었던 고기를 뱉고 눈빛을 번떡이며 자기들을 노려보자

괴물들은 무엇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일초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저놈들을 집에까지 끌고가서 키워야 되는데

눈앞에서 동료가 잡아먹히는 것을 보게되면 자살해버릴 지도 몰라.

맛이 좀 없더라도 오늘 저녁은 이걸로 떼워야겠군.}
사실 그는 조금전에 악어의 질긴 가죽을 씹었던 것이다.

그것이 맛이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는 석달 쯤 굶은 후 일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연해 보이는 곳을 찾아서 살점을 베어먹어 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즉시 휴대했던 소금을 꺼내놓고 본격적으로 악어를 파(?)먹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그가 먹는데 열중하는 것을 보고서야 긴장을 풀고 팍 늘어졌다.
실컷 먹은 소일초는 괴물들을 힐끗 보고는 엄청나게 굵은 나무둥치 밑으로 가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렸다.

하는 짓에 비하여 잠자는 모습은 여느 어린 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 × ×

-정뇌(井牢)!

무림에서 가장 험난한 뇌옥이자 백인장의 금역이다.

수백 년 전, 백인장이 무림에서 암중리에 활동하던 때부터 무림의 최고 거마(巨魔)들을 가둬온 뇌옥이다.
수직으로 밑으로 파내려간 우물처럼 된 이 뇌옥은 모두 구층(九層)으로 되어있으며,

각 층마다 팔 명 씩의 혼세거마를 가둘 수 있다.
이 곳에 갇히는 마두들은 그 한 명 한 명이 무림을 완전한 피의 혈풍에 휩싸이게 할 수 있음은 물론

무림천지를 사마(邪魔)의 땅으로 바꾸어 버릴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이었다.
때문에 정뇌를 지키는 엄중한 경비는 백인장은 물론 중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백인장의 최일류 도객들의 온 힘이 기울어져 있다는 표현이 옳았다.
십여 년 전 도(刀)의 하늘인 백인장(百刃莊)이 무림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후에는

오히려 정뇌에 잡혀 들어오는 마두의 수가 격감했다.

아마도 백인장 도객들이 무서운 힘이 강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자 사마가 숨을 죽인 때문일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백인장의 원로도객들이 정뇌를 관리해 왔는데

각 층 마다 한 사람의 원로가 직접 거처하면서 관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로 도객들은 모두가 백인장의 전대고수들로 지금은 자기의 지위를 후손에게 물러주고

오직 도법의 연구와 장원 내의 중대한 일에만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인장(百刃莊)에는 백 명(百名)의 도객들 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를 이을 젊은 도객들과 은퇴한 노도객(老刀客)들도 있기 때문에 실제의 도객 수는

수 백 명 이었고, 백인장의 식구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도법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게다가 백인장의 도객들의 도법은 각기 다른 것이었으니...

백인장에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절세의 도법들만 해도 백 가지나 되었던 것이다.
백인장은 실로 무림에서 최강문파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정뇌에는 불과 십 여 명의 마두들만 갇혀 있는데...

× × ×

쿠르르!
돌연, 백인장의 절대금역인 정뇌의 여러 문들 중 하나가 둔중히 열렸다.
콰아아!
동시에 뭉클뭉클한 기운이 음습하고 사이로우며 마기로움의 구름덩이를 만들어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리고 어디선가로 부터 들려오는 전율의 호곡(乎哭),
{으흐흐흐흐...}
한꺼번에 매케한 냄새에 실려오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괴성(怪聲), 절규, 울부짖음...

마치 저 십 팔 층 지옥유부(地獄幽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때다.
자박자박!
돌연 검은 마기와 소름이 끼치는 울부짖음이 소용돌이 치는 사이를 뚫고

자그마한 인영 하나가 화섭자를 손에 들고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모든 소리는 그의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불과 오 세가 넘지 않았을 것 같은 어린아이가 아닌가?
일신에는 눈보다 흰 백의를 걸쳤고,

머리에는 두 마리의 학이 허공을 향해 날개짓을 하는 듯한 백학건(白鶴巾)을 늠름하게 쓴

이 소동(小童), 밝고 천진하며 천상의 선동(仙童)처럼 아름다움을 지녔으나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짙은 호기심이 어려 있었고 볼에는 장난기가 가득 배어 있는 듯 했다.
헌데 무슨 일로 이토록 깨끗하고 고아하며

그러면서도 장난 꾸러기 같은 어린 아이가 이 음습한 정뇌에 모습을 나타낸 것일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적지 않는 어려움을 겪은 듯,

그의 깨끗한 백의가 먼지로 인해 몹시 더럽혀져 있었다.
헌데 일순간 이 어린 아이의 앞으로 한 명의 노인이 소리없이 날아내렸다.
그는 단아한 백색장포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인이었는데,

마치 그의 몸의 일부인양 자연스럽게 장도(長刀)가 허리에 걸려져 있는 그의 모습은

기품이 이를 데 없었으며 눈빛은 맑고 고요했다.
거기에다 온화로운 얼굴, 마치 신선을 직접 대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노인이었다.

사실 신선같은 이 노인은 날아내렸으나 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허공에 뜬 채 유령처럼 떠있었다.
노인은 다섯 살 정도의 꼬마가 정뇌에 들어오자 아주 이상한 듯 했다.
번쩍,
그의 맑은 두 눈에서 날카로운 섬광이 작렬했다.
{애야 너는 누구냐? 누구길래 감히 정뇌에 들어왔단 말이냐?

허참, 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뭘 하기에 어린아이가 이곳까지 오게 한담!}

노인은 혀를 차면서 싸늘하게 목소리를 깔았고

어린 아이는 밝고 천진한, 그러면서도 장난기가 짙은 얼굴을 들었다.
{영감이 원로십팔도객(元老十八刀客) 중 막내 도객인 백승옥도(百勝玉刀)인가?}
비록 장난기가 들어있는 하대(下待)였지만 조용한 미소에다 행동은 침착하고 유연했다.
백승옥도의 몸이 어이가 없는 듯 가는 진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내 소동을 보고는 절로 흠칫 했다.
(이 어린애! 오오! 저 뛰어난 기품과 아름다움! .

그리고 천부적인 골격! 그런데 이 어린아이가 어떻게 노부를 대번에 알아보는 것인가?)
백승옥도은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학(鶴)처럼 단아한 기품의 소동을 세심히 살폈다.
(아무튼 간에 이 정뇌에는 기관이 없어서 탈이야.

위에서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해서 이 아이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이녀석! 나는 백승옥도가 맞는다 마는 너는 누구길래 그처럼 어른도 몰라보고 말을 막 하느냐?}
백승옥도는 어린아이에게 크게 감탄하고 있었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 겠다는 듯이 물었다.
순간 백의 소동의 얼굴에 영악한 웃음이 환하게 스쳐지나갔다.
{믿지 못하겠지만 이 정뇌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영감처럼 나에 대해 물어본 사람이 없었지.}
{뭐야?}
{또 나는 내가 누구라고 남들에게 한 번도 말할 필요가 없었어.}
환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가던 백의 소동이 돌연 어깨를 흔들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낭랑한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한참 후에야 그쳤다.

백의 소동은 웃느라고 빨갛게 변한 얼굴에서 애써 웃음을 흐트리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백승옥도에게 말했다.
{왜냐하면 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알고 있었고

나에 대해 모른다는 것조차 그것은 내게 큰 죄에 해당되었어으며,

또한 당연히 가혹한 형벌로 이어졌지.}
순간 백승옥도의 깊은 동공에서 가는 파장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너는...?}
백의소동은 백승옥도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환한 웃음을 빨개진 얼굴에 다시 피워올렸다.
{그렇지. 이제야 나를 알아 보는군.

백인장의 모든 사람은 나를 며칠 전 부터 소일초(蘇一招)라고 부르지.

그 전에는 소태봉(蘇太峰)이라 불렀고...!}
단아한 가운데 듣는 이를 압도하는 위엄이 서린 목소리...
백승옥도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이어 그의 얼굴에 가득히 번져오는 격동의 물결,

그는 그 자세로 소동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그 자리에 정중히 무릎을 낮추고 눈을 마주했다.
{십팔원로 중 백승옥도가 소장주(少莊主)를 뵙겠소.}
소장주!
그렇다.

이 아름답고 천진하며 환한 웃음과 장난기 어린 소동은

바로 백인장의 절대고수인 도왕 소선풍의 일점혈육인 마동(魔童) 소일초였다.
{영감은 너무 겸양을 부리는군.}
그때 소일초는 하얀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어 백승옥도의 어깨를 두드렸다.
백승옥도는 장주인 소선풍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원로도객인데

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어깨를 두드려 주자 어이가 없었으나

귀여움만 받고자란 철부지의 행동이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았다.

{내가 태어나기전에 영감이 이 정뇌에 들어왔을 테니까 나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
이제 소일초의 말을 듣는 늙은 도객 백승옥도의 얼굴엔 인자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정뇌에 들어온 후 벌써 칠년의 세월이 흘렀다오.

앞으로 삼년이 지나면 다시 밖으로 나가 소장주를 만나게 되겠지요.}
{내가 태어나던 날 원로들이 옥소도(玉小刀)을 전해 축하해 주었다고 하는 것 같더군.}
소일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 크기의 반투명한 하나의 옥으로 된

소도(小刀)를 백승옥도에게 내밀었다.
그 소도를 받아든 백승옥도의 얼굴에 짙은 감회가 서려왔고,

그는 추억에 잠기듯 소도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그랬었지. 소장주의 탄생을 이 늙은이도 정뇌 안에서 소문으로 알게 되었는데

당시 후사가 없어 애태우시던 장주께서 후사를 얻으셨으니 정말 큰 경사였지.}
이때 소일초는 얼굴을 찌푸리며 재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엣취! 엣취!}
백승옥도은 황망히 소일초를 부축하려 했으나 소일초는 씩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찬아 이런 재치기 쯤은!

그런데 이 정뇌 안은 너무 환기가 안되는 것 같애. 공기가 나뻐!}
염려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소일초를 부축하려던 백승옥도,

헌데 다음순간 그의 안색이 홱 변했다.
{소...소장주! 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 소도에 산공산(散功酸)을 바르셨소?}
느닷없는 백승옥도의 음성과 태도에

소일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붉은 입술을 꽃잎처럼 나풀거렸다.
{왜 나는 아직도 영감이 반응이 없을까 걱정을 했어.}

{소...소장주!}
백승옥도의 부처처럼 자비롭던 얼굴은 분노로 새파랗게 질렸다.
허나 소일초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시선을 환한 미소로 백승옥도의 얼굴에 던졌다.
{미안, 미안! 그 산공독은 만지는 순간 혈맥을 타고 약효가 번진다지 아마?}
순간 백승옥도의 얼굴이 더욱 참당하게 일그러지고,

급히 그는 내력을 돋구어 삼매진화로 산공독을 태워버렸다.
푸지지직!
옥소도를 쥔 그의 손에서 연기가 뭉텅 피어오르는 찰나,
{헉...!}
백승옥도은 푸석한 신음성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소일초의 고사리 같은 손이 백승옥도의 마혈(痲穴)을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찍어버린 것이다.
{소...소장주!}
아득히 정신이 달아나는 속에서도 백승옥도는 두 손을 내저었다.
순간 소일초의 얼굴에 환히 피어있던 미소와 천진과 장난기가 걷히고,

대신 이제 조금 안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백인장의 다른 곳은 다 가보았지만 여기는 구경을 못했거든...!

얌전하게 구경만 하고 갈거니까 너무 화내지마.

위 층에 있는 영감들도 지금 똑 같은 신세니까!}
{소...소장주...!}
{위층에는 마음에 드는 마두(魔頭)들이 없었어.

여기서 괜찮은 마두를 만나면 잠시 놀다가 갈께.}
마음에 드는 마두라니?
마두와 놀다가 간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소일초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한 명만 세상에 빠져나가도 온천하가 피로 잠길 거마들과 놀다 가겠다니!
어쨌거나 소일초는 완강한 걸음으로 음습한 뇌옥문을 향해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백승옥도는 혼절해 가는 영혼을 붙들고 마지막 기력을 다해 두 손을 휘저었다.
{소...장주! 위...위험... 무서운 일이... 제...발...}
허나 소일초는 등을 돌리고 그를 힐끗 보면서 손을 마주 흔들어 주고

가벼운 걸음으로 지하 구층의 뇌옥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어 소일초의 한개의 문앞에 가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두드렸다.
그런데,
퉁퉁!
그의 손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전혀 뜻 밖에도 마치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그 문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관을 휙 돌려서 문을 열어보아도 텅빈 곳이었다.
대충 두드려가며 조사해본 결과 그래도 구층의 석실에는 네 명의 죄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어느 층 보다 많은 것이다.

위의 팔층까지는 기껏해야 열 두 명의 마두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정뇌의 구층 석실에는 바로 무림에서 기이한 악명을 떨친 바 있는 사마귀(四魔鬼)가 감금되어 있었다.
{안에 있는 놈은 어떤 놈이냐?}
앳되지만 낭랑한 목소리가 정뇌안에 길게 울려퍼졌다.
{누군가?}
{누가 십 년 동안을 이 저주 받을 뇌옥에서 갇혀지낸 우리를 부르는 건가?}

{우하하하! 이 뇌옥에서 그렇게 소리치는 놈이 있다니 대체 어떤 놈이냐?}
세 가닥의 종잡을 수 없는 음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안에 있는 네 놈들의 이름을 물었다.}
소일초가 소리쳐 물었고,

석실 안에서는 당당한 어린애의 목소리에 어리둥절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착 가라앉은 음성이 들려왔다.
{우린 사마귀(四魔鬼)다. 너는 누구냐?}
이 음성은 먼저 들린 세 음성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귀(魔鬼) 네 놈이라고? 그럼 너희들은 지옥에서 잡혀왔단 말이냐?}
{와하하하! 이곳이 지옥이지 다른 지옥이 어디있단 말이냐? 이 꼬마놈아!}
순간 끝없이 울려퍼지는 웃음과
철컹! 철커덩!
소름이 끼치는 금속성에 불쾌함을 느낀 소일초가 고함을 쳤다.
{시끄럽다. 못된 것들!}

-시끄럽다!
-시끄럽다!

소일초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는 어둑어둑해 오고 있었는데 한 쪽에서 괴물들이 눈을 동그랗게 떠고 고함치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길 꿈이었군. 그 때가 언젠데 꿈을 꿔? 사마귀가 또 정뇌로 잡혀 들어갔나?}

아직 정신이 덜 들었는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그때 아버지한테 얼마나 혼났는데...씨! 또 잡혀 들어가도 나는 모르는 일이야.}

밀림에서는 해가 지는 저녁에도 무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워있는 괴물들 옆으로 가서 발로 툭 찼다.
{일어나! 일어나!}
괴물들이 그의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다.

설사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두릅모양으로 엮인데다가

손과 날개가 함께 묶인 상태에서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 씩 잡아 일으키자 괴물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 낮의 악몽이 되살아난 때문이었다.
낮에 그 때,

소일초는 역시 괴물들을 세워놓고 차례대로 박치기를 해서

놈들을 모두 묵사발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렬로 세워진 괴물들의 뒤에서 줄을 잡고 남은 자락으로 채찍 질을 했다.
영특한 괴물들은 그가 집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짧은 다리로 줄지어 어둠이 깃드는 숲으로 걸어갔다.
거목이 줄지어 있는 사이를 얼마동안 걸어가자 정말 거대한 나무가 나타났다.

장정 백 명이 손을 맞 잡아도 다 두르기 힘들 정도로 굵고 큰 나무 였다.

나이가 몇이나 된 것인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적게 잡아도 수 천 년은 됐을 것 같았다.
거목의 밑동 주변에 드러나 있는 뿌리들도 무려 사 오 장의 높이가 되어 보였다.

괴물들은 그 뿌리들이 엉켜있는 사이로 차례대로 들어갔다.
거대한 나무의 뿌리 근처에는 흙이 오랜 시간을 두고 갈라지고

붕괴되어 천연의 동굴을 형성하고 있었다.

{제법 괴물다운 곳에 사는데...}
소일초는 어두운 동굴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는 내공이 깊어서 어둠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지라 두려울 것이 없었다.
동굴의 처음 얼마동안은 토굴이었으나 조금 더 들어가자 석굴(石窟)이었다.
동굴안은 괴물들이 살고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인공이 가미된 흔적마저도 보였다.
과연 동굴의 안쪽에는 사십여 평 정도 되는 넓은 곳이 나왔는데 그

곳에는 수십 개의 야명주가 천정에 박혀 있어 전혀 어둡지 않았다.

누군가가 여기서 살았거나 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괴물들은 거기서 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멈추어 섰는데,

소일초는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경각심을 일으켰다.
야명주가 빛을 발하고 있는 광장의 저 편,

다시 하나의 작은 석동이 있었고 흰 그림자 두 개가 네 개의 눈을 반짝이면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괴물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 흰 그림자는 두 마리의 흰털을 가진 박쥐원숭이같은 괴물들이었다.
소일초가 앞서 잡은 검은 색의 박쥐원숭이 괴물들보다는 훤씬 인간의 모습에 근접해 있었고

나이도 많은 듯했다.

아마도 이놈들이 날개달린 원숭이들의 장로쯤 되는 몽양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괴물들은 소일초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단지 그를 노려보다가 등을 돌려 작은 석동 안으로 더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를 따라 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소일초는 흥미를 느끼고 괴물들을 묶었던 줄을 놓아 버리고 흰 털의 괴물들 뒤를 따라갔다.

동굴은 아주 깊었다. 침묵과 고요가,

그리고 앞서가는 두 괴물의 숨소리가 긴 메아리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좁은 동굴을 따라,

두 괴물과 한 사람의 아이가 무거운 침묵으로 걷고 있었다.
박쥐와 같은 모양이면서도 학처럼 하얀 날개를 가진 온통 하얀 몸을 가진 두 괴물과

비록 호기심과 장난기가 얼굴을 덮고 있지만 단아하고 고고로운 기풍을 지닌 백의를 입은 소일초,
자박 자박!
무거운 침묵으로 음습한 동굴 통로를 해치던 두 괴물은 이윽고 하나의 석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고해금마옥(苦海禁魔獄).>

석문에는 그같은 다섯자의 글이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투박하나 패기와 강렬한 기상이 서린 서체였다.
한데,
시체(屍體)-!
고해금마옥이라 쓰여진 그 석문 앞에는 한구의 시체가 기대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승인(僧人)은 승인이로되 전혀 승인같아 보이지 않는 한구의 시신이!
그 승려는 아주 오래전에 죽은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살아있는 듯이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이 백발(白髮)과 백미가 가슴까지 칭칭 늘어진 노승(老僧)이었다.
파계승이었던가?

시신의 허리춤에는 두어개의 호리병이 매달려 있었다.

회색의 승포는 얼룩덜룩한 것이 죽기전에 많은 술을 엎지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함부로 경시할 수 없는 웅장한 기도를

죽은 다음까지 지니고 있는 이 노승은 누구인가?
소일초는 누군가를 만날 거라는 느낌을 가졌지만

죽은 중을 여기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었기에 어리둥절했다.

두 백색 괴물은 멈추어서서 고해금마옥의 문을 가리키며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중의 시체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소일초는 노승의 시체를 세밀히 살펴보았다.

과연, 노승의 옆에 떨어져 있는 검은색 목탁에는 손톱으로 긁어서 새긴 듯한 글이 촘촘히 적혀 있었다.

<노납은 소림승으로 제십칠대제자인 장경각주(藏經閣主) 우광(宇廣)이다.
노납은 나이 칠십에도 깨닫지 못하는 불법에 회의를 느껴 마침내 파계를 하고 말았다.

승인이로되 승인의 법도(法度)에 따라 생활하지 않았으며

술과 고기를 주식처럼 즐기고 사는 파계승이 된 것이다.
주육(酒肉)은 고사하고 살생(殺生)도 마다하지 않으니 소림사에서 어찌 노납을 용납하랴?

마침내 소림사에서는 노납을 입적한 것으로 꾸미고는 노납에게 중원에서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에 노납은 중원을 떠나 변황을 수 없이 떠돌았지만

늙은 목숨은 쉽게 끊어지지 않고 인생의 고해속에 머물러 있었다.>


글을 남긴 인물은 백여년전의 전설적인 소림신승(少林神僧) 우광선사(宇廣禪師)가 남긴 것이었다.
달마와 육조(六祖) 혜능(慧能)이래의 고수로 알려진 우광선사는

그 무공의 탁월함 뿐만 아니라 주육과 살생을 마다않는 괴승으로도 유명했다.

결국 그 같은 기행이원인이되어 소림에서 쫓겨난 그는 변황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해, 우광선사는 우연히 남황에 내려왔다가

한명 전설속의 거마(巨魔)의 종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검마(劍魔)!

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이름인가?
달리 아수라마존(阿修羅魔尊)이라 불리던 백 육십여년 전의 살인마왕(殺人魔王)!
그는 저 혈기자(血旗子)보다도 한시대 전에 전무림을 공포로 휩쓸었던 일대거마(一代巨魔)였다.
그가 무림에 활동한 시기는 불과 이년이었지만,

당시 그의 일검을 피한 인물도 일 검에 죽지 않은 인물도 없었다.

만일 그가 계속 무림에 남아있었다면

혈기자가 과연 천하제일인의 명예를 차지할 수 있었을지 의문시 될 정도였다.
이년! 그 짧은 시간동안 헤아릴 수도 없는 숱한 무림고수들이

검마의 마검(魔劍) 아래에서 목숨을 잃고 불귀고혼(不歸孤魂)이 되었었다.
검마의 마검식(魔劍式)에 희생당한 무림명숙들의 시체는 너무나도 참혹한 모습이었다.
검마에 의해 살해 당한 흔적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다.

검마의 마검이 머리를 스치면 스친 상처 부분이 동그랗게 파여 나갔고

가슴과 배를 스치면 그 부분에 동그란 구멍이 뚫리면서 내장이 아주 깨끗한 모습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름하여 아수라마검식(阿修羅魔劍式)-!
그 저주의 검법은 너무나도 무시무시하여 누구나 검마를 두려워 했다.
하지만 공포와 전률의 상징이던 검마는 어느날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어 버리는 바람에 서서히 무림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게 살해당한 시체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검마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납은 검마의 종적을 발견했을 때 전율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아수라의 화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오랫동안 삶과 불법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노납은

마지막으로 보살행(菩薩行)을 하고 해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노납이 비록 소림칠십이절기 중에서 육십삼종을 익혀

감히 달마조사와 육조 혜능께 비견된다 하나 검마를 이길 자신은 없었다.

검마의 아수라마검식(阿修羅魔劍式)은 이미 인간의 검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죽음을 각오한 노납이 아니던가?

노납은 그 길로 화기(火器)의 명가인 축융장(祝融莊)에 숨어들어가

그들 일족 최강의 화기인 축융화탄(祝融火彈)을 훔쳐내어 목탁에 가득 채웠다.

최악의 경우 그것을 터트려 검마와 동귀어진할 각오였다.
하지만 노납은 검마의 얼굴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노납이 문앞에 당도했을 때 검마는 이미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담담히 한 수의 선시(禪時)를 읊었다.

-방안에 가득하니 그저 지고 난 매화향(梅花香)이로구나.
사람이 떠나고난 뒤에도 거울에는 그 얼굴이 남았도다.

깜짝 놀라서 노납은 묵상에 잠겼었다.

이미 그는 검을 놓고 세상을 버렸다는 것을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사실 검마는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에 대한 복수심으로 세상을 피보라에 잠기게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행위에 회의를 느끼고

중원에서 머나먼 이곳 남만으로 내려와 스스로를 고해금마옥에 가두어버렸던 것이다.
노납은 검마가 던진 시구를 되뇌이다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진정으로 대도(大道)는 무문(無門)이요 불법(佛法)은 무상(無想)이라는 것이다.
노납은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알량한 영웅심으로

이곳 고해금마옥을 찾아왔다가 오히려 노납 자신이 구제를 받은 격이로다!

이제 노납은 비로소 해탈하여 입적하게 되나

다만 노납의 피륙을 추르려 줄 사람이 없음을 아쉬워할 뿐이로다.


임인년 계축월 파계승 우광 절필.>

우광선사의 유언은 그렇게 끝나 있었다.

햇수로 추스려 보니 그가 입적한지는 어느덧 팔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였다.
"여기가 검마라는 사람의 동굴이었구나."
우광선사가 남긴 글을 읽은 소일초는 목탁을 집어들며 중얼거렸다.
"한데, 중은 시체를 불태운다고 하던가?

밖에 악어를 굽던 나무가지가 남았으니 나도 좋은 일 한 번 해보자!"
몸을 일으킨 소일초는 힐끗 두 마리의 흰 괴물을 보고는 석문을 밀쳤다.
그가 석문을 미는것을 보고서야 두 마리의 괴물은 동굴을 되돌아 나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