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 38장 애인 [6]
(792) 38장 애인 - 11
“부끄러워서 그랬습니다.”
이제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 함봉만이 김광도를 보았다.
“형님을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때 김진봉이 헛기침을 했고 김명도는 딴전을 피웠다.
주방에서 여자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은 이쪽이 조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윽고 김명희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냈을 때 김광도가 물었다.
“거기 추운데, 견딜 수 있겠어?”
“처자식을 위해서라면 얼음 구덩이 속이라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똑바로 김광도를 응시하면서 함봉만이 말했다.
흰 피부 갸름한 얼굴형에 날씬한 체격, 대화할 때 거의 상대방의 눈과 부딪치지 않았던 함봉만이다.
함봉만의 시선을 받은 김광도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이봐, 거긴 큰 곳이야.”
함봉만은 시선만 주었고 김광도의 말이 이어졌다.
“남자가 살 만한 곳이지. 하지만 견디지 못할 때는 내 동생하고는 떨어져야 될 거다. 알겠어?”
“알겠습니다.”
함봉만이 바로 대답했으므로 김광도가 김명희를 보았다.
“너도 생각 다시 해보고 나한테 연락해라. 알았지?”
“알았어. 오빠.”
김명희의 눈에 물기가 가득 차 있다.
그것이 흘러 떨어질까 걱정이 된 김광도가 시선을 돌렸다.
“너, 잘했다.”
화장실로 가는 김광도의 뒤를 따라오면서 김명도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명희가 너한테는 연락을 못했지만 ‘오빠한테 말해달라’고 어머니한테 졸라왔던 모양이다.”
김광도가 화장실에서 나와 마당으로 나갔더니 김명도가 따라왔다.
“거기, 내가 할 일이 있겠냐?”
“형, 학원이 안 돼?”
“난 선생 체질이야. 너하고는 달라.”
둘은 정원 구석에 서서 저택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는 대청과 주방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선생 월급으로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그런다.
애들은 커가지, 태기 교육비가 벌써부터 한 달에 30만 원씩이나 들어.”
“한랜드에 다 갈 수는 없어. 형.”
“하긴 그렇다.”
김명도는 착하고 뒤가 무르다.
공부도 잘해서 명문대 수학과를 졸업했지만 본래의 꿈인 대학교수는 되지 못하고
학원에서 고등학생 수학을 가르친다.
그렇다고 잘나가는 강사도 아니어서 생활난에 쪼들린다.
김광도가 정원석 위에 앉았더니 김명도도 옆에 앉는다.
“집 좋아.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해.”
김명도가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했다.
“네가 덜컥 집 살 돈을 보내왔다고 하길래 믿기지가 않았지.
내가 장남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우선 신부터 나더구나.”
김광도가 쓴웃음을 지었다.
대전 부동산에 연락해서 매물로 나온 저택 사진을 받고 흥정을 한 다음에
어머니한테 이 집을 사라고 돈을 보냈다.
어머니도 집값을 치르고 이곳에 이사를 오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고 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때 김명도가 말을 이었다.
“이제 곧 너한테 결혼 문제를 이야기할 거다.
어머니가 봐둔 데가 많아. 네가 성공했다는 소문이 나서 후보자가 수십 명이야. 줄을 서 있어.”
그 순간 김광도의 눈앞에 장현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장현주는 아무도 모른다.
(793) 38장 애인 - 12
과연 저녁 식사가 끝났을 때 김광도를 안방으로 데려온 어머니가 여자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본론을 꺼냈기 때문에 김광도는 오히려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결혼해야 된다는 등 서론부터 시작했다면 아예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만나만 봐.”
어머니가 방바닥에 사진 석 장을 늘어놓으면서 말했다.
“내가 열 몇 명 중에서 셋을 골랐어. 다 마음에 들더라만 이 셋을 추리는 데도 며칠 걸렸다.”
아마 집안 식구들도 거들었을지 모른다.
어머니가 사진을 짚으면서 말을 이었다.
“얘는 약사, 얘는 중학교 교사, 얘는 대학 조교다. 세상에, 이런 애들이 네 신부 후보로
사진을 보내오고 엄마 친구를 통해 부탁까지 하는구나, 글쎄…….”
“무슨 부탁요?”
“딸 이야기하라는 거지. 네 앞에 후보자가 줄 서 있는 걸 다 아니까 말이야.”
“이 사진들은 어떻게 얻었는데요?”
김광도도 호기심이 일어났다.
어머니 심연숙이 그다지 활동적인 성격도 아닌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 몇만 만날 뿐으로 집에서 살림만 해왔다.
심연숙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너, 기숙 아줌마 알지?”
“알지.”
심연숙 친구 이기숙이다.
심연숙이 기숙이, 기숙이 하는 통에 김진봉은 물론 자식들도 기숙이 아줌마로 부른다.
“기숙이가 결혼정보센터에 부탁해서 후보자들을 가져왔다. 걔가 거기 다니거든.”
“그렇구먼.”
“앞으로 백 명도 더 있어.”
“아이고, 맙소사.”
“내일 떠나기 전에 얘들 중에 두 명만, 아니 하나라도 만나고 가라.”
심호흡을 한 김광도가 심연숙을 보았다.
방바닥에 깔린 사진들은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
만일 장현주하고 한시티에서 혼인신고를 했다고 말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부모는 배신감보다도 못난 탓에 결혼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는 열등감으로 낙담할 것이 분명했다.
“한 명만 만나지요.”
김광도가 말하자 심연숙이 얼른 사진 한 장을 집었다.
“그럼 얘부터 만나라. 대학 조교라는데 셋 중 가장 싹싹하고 이쁘더라.”
“어머니가 먼저 다 보았구먼.”
“기숙이가 자꾸 보라고 해서.”
심연숙이 다시 얼굴을 펴고 웃었다.
“잘난 자식 대신해서 며느릿감 선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넌 모를 거다.”
“그래요?”
“그게 어머니가 가장 기쁜 때 중 하나야.”
“그럼 계속 봐도 되겠네.”
그랬다가 심연숙의 눈치를 본 김광도가 손을 저으며 웃었다.
“농담요, 어머니.”
“내일 11시쯤 만나기로 하자.”
정색한 어머니가 사진을 집으면서 말했다.
“얼른 연락을 해야겠구먼.”
그러더니 사진을 쥔 채 김광도를 보았다.
“너, 사진도 안 봐?”
“사진은 뭐하러 봐요? 내일 못 찾을까 봐? 어머니하고 같이 나가잖아.”
“아이고.”
심연숙이 사진 한 장을 빼내 김광도의 무릎 위에 놓았다.
“얘야, 봐.”
“젠장, 여기가 하와이야? 사진결혼해?”
“27살, 날씬해. 삼화여대 영문과 나왔고 거기 조교야. 박사과정이란다.”
“이 집에 시집오면 가장 학벌이 좋은 위인이 되겠구먼.”
사진을 쥔 김광도가 심연숙을 향해 웃었다.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0> 38장 애인 [8] (0) | 2016.01.16 |
---|---|
<399> 38장 애인 [7] (0) | 2016.01.16 |
<397> 38장 애인 [5] (0) | 2016.01.15 |
<396> 38장 애인 [4] (0) | 2016.01.15 |
<395> 38장 애인 [3] (0) | 2016.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