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3
유미는 쇼핑백을 열어보았다.
쇼핑백 안에는 비닐봉투에 봉해진 낡은 노트가 있었다.
노트와 수첩의 중간 정도 되는 크기였다.
아마도 오래 어둡고 습한 곳에 처박혀 있었는지, 글씨는 번져 있고 곰팡내도 났다.
노트를 펼쳐보니 일기나 메모를 간단히 적은 것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잉크가 번져서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겨우 엄마의 필체라는 걸 알아보았다.
노트의 표지를 두른 비닐 안쪽에 사진이 몇 장 들어 있었다.
어린아이의 백일 기념사진이었다.
자세히 보니 유미의 어릴 때 사진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학창시절 사진과 처녀 때의 사진이 몇 장,
이모네 식구와 찍은 가족사진이 나왔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할 사진 한 장이 보였다.
중산층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진이었다.
어린아이를 안은 부부와 사내아이가 찍힌 사진이었다.
어린아이는 강보에 싸여 잘 보이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그 사진 중에 남자의 얼굴이 찢어져 있다는 것이다.
여자는 잘 눈에 띄지 않는 얌전하고 평범한 얼굴이었다.
어떤 충동으로 손으로 사진을 찢어 얼굴만 도려낸 걸까.
엄마가 한 짓일까? 알 수 없다.
“뭐 별건 없지?”
어느새 샤워를 끝낸 수민이 다가와 있었다.
“그게 왜 식당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우리 엄마 말은, 아마도 이모가 조씨 아저씨 손 타는 걸 싫어했던 거 아닌가 그러던데….”
조씨? 조씨라면 조두식? 아마도 엄마는 무엇이 조두식의 손에 들어가는 걸 꺼린 걸까?
틈나는 대로 유품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참, 조씨 아저씨 만나봤어?”
수민이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아니, 왜?”
“지난겨울에 너 부산 다녀가고 나서 얼마 안 있다 날 찾아왔더라고. 나 일하는 가게로….”
“그래? 언니한테 볼일 있었어?”
“그냥 우연히 술 한잔 하러 온 거라고 둘러대긴 하더라만, 너 얘길 물어보더라.
자기는 외국에 오래 나가 있었다나 어쨌다나.
마침 너 만난 지 얼마 안되었다고 근황을 얘기해줬지.”
“외국? 배 타고?”
“글쎄, 모르겠어. 나랑 같이 살던 남자,
그사람도 배 탔잖아. 그이한테 물어보니까 그 아저씨 한동안 배는 안탄 거 같던데.
모르지, 뭐. 빵에 갔다 좀 썩다 나왔는지.”
“다른 얘긴 안해?”
“뻥 치는 건 여전하지 뭐. 자기가 정계, 재계에 선 안닿는 데가 없다. 자기만 믿어라.”
“내 연락처 가르쳐줬어?”
“응. 핸드폰 번호 줬어. 나 잘못한 거야?”
“아냐. 어차피 알아냈을 텐데 뭐.”
“너 일하는 방송의 국장을 잘 안대나 뭐래나.
득이 되게 잘 얘기해주겠다고 하기에….
아 참! 그리고 너한테 뭐 전해줄 게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가르쳐줬지.”
“전해줄 거?”
“응. 분명 그랬어. 얘! 이모 팔자가 참 안됐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아저씨가
마지막 남자로 이모 옆에 있었던 거 아냐? 너도 너무 미워만 하지마.”
“마지막 남자….”
“그래, 마지막 남자. 최종 학력이 중요하듯 우리 나이도 마지막 남자가 누구냐가
인생을 결정하잖니.”
“벌써 마지막 남자를 신경 써야 하남?”
“이제 우리 나이도 장난 아니잖니. 나 정말 자야겠어. 유미야 잘자.”
“그래, 굿나이트!”
유미도 잠자리에 들려고 엄마의 노트를 정리하였다.
그때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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