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카르페 디엠 (Carpe diem)-14
“오유미, 너 말 함부로 하지 마. 누구 때문에 이런 지옥에 발 한짝을 넣었는데?”
“이거 놓고 얘기해.”
유미가 캑캑거리며 도리질을 쳤다. 인규가 손의 힘을 풀었다.
“말 바로 해. 그게 전적으로 나 때문이야?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며?”
“지금까지는 사랑의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해서 참았어.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니야. 이제부터는 일방적인 사랑은 없어.
날 더 이상 모욕하거나 내 인생을 이용하면 너 죽을 줄 알아!”
“인규씨, 무슨 소리야. 내가 인규씨를 이용했다구?”
“그래. 넌 한번도 진심으로 날 사랑한 적이 없어. 내가 사랑한 만큼!”
“그건 억지야. 사랑이란 상대적인 거야.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그래서 그렇게 상대를 바꿔가면서 사랑하냐?”
허걱! 인규의 마음속에는 유미를 향한 원망이 가득하다.
그날 밤 윤동진과 함께 있는 것을 본 게 틀림없다.
“만약 사랑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라면….”
인규가 뜸을 들였다.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는 것이라면 언제든 약속도 상황에 따라 변하는 거야.
난 그걸 얘기해주고 싶었어.”
유미가 인규의 마음을 날카롭게 간파했다.
하지만 차분하게 말했다.
“황인규씨, 머리를 어떻게 맞았기에 더 똑똑해진 거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해는 하겠지만 섭섭하네요.”
“이게 모두 다 너 때문이야.”
유미는 갑자기 열이 확 올랐다.
“그래서 지금 와서 자수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니면 나한테 다 책임을 넘기고 싶다는 거야? 비겁하게시리.”
“비겁해도 할 수 없어. 너 때문에 죽을 순 없잖아.”
“황인규가 이렇게 배신을 때리네.”
“널 지킬 수 있으면 지키겠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 난 모든 게 다 두려워.”
인규는 정말 떨고 있었다.
“그래. 이번 일은 내가 미안해.”
막연하지만 일단 유미는 사과했다.
“난, 난, 한 발짝도 못 나가겠어. 왜 그런지 갑자기 절벽이 눈앞에 다가온 느낌이야.”
“너무 과민한 거 아닐까?”
“모두 다 날 속였어. 너도 마누라도.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하고….”
인규가 몸을 떨었다. 유미가 인규를 달랬다.
“집에 가서 술 한잔 할까?”
“아냐, 싫어. 마누라도 신경 곤두세우고 있을 거야.”
“지완이 그렇게 무서워?”
“약 먹어야 해. 약 없으면 나 잠도 못자. 갈래.”
“태워다 줄게.”
“아냐. 그때로 리와인드할 수 있으면 인생을 편집하고 싶어.”
인규가 허겁지겁 내렸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유미는 아득한 절망을 느꼈다.
유미를 막고 있던 바람벽 하나가 소리 없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인규라는 남자가 무너지고 있다.
그는 말했다. 유미가 단 한번도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유미는 핸들에 고개를 묻었다. 열심히 살고 누군가를 늘 열심히 사랑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남겨진 것은 늘 외로움에 젖은 육신과 불안한 영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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