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9
조수석에는 빨간 장미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유미는 리본에 적힌 글자를 보았다.
“백마(白馬)가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그 어디로든 데려다 줄 것이오. --백마를 선물한 왕자님이”
글귀를 읽은 유미는 윤 이사의 센스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백마 탄 왕자님이 말을 태워 주었지만, 요즘 왕자는 아예 백마를 선물한다.
아무리 사랑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 하지만,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가 이 정도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꽤 괜찮은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에 그가 화를 내고 전화를 끊은 후, 유미도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밀고 당기기의 전략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유미의 상황이 복잡 심란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은 유미에게 펼쳐진 인생이라는 책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야 할 때다.
솔직히 윤동진의 센스는 가끔 귀여운 데가 있지만, 그의 취향은 유미와는 잘 맞지 않는다.
벤츠는 돈 많은 꼰대들이나 타는 차 아니었던가.
이 자동차만 해도 돈 많은 그의 허세가 좀 느껴진다.
자동차 마빡에 박은 삼각별은 왜 이리 큰 거야.
그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인지 모른다.
속물이면 어때. 절에 가서 놀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난 속세의 여자인데.
그래도 이 모델은 좀 경쾌해 보이긴 한다.
그러나저러나 걱정이다. 중고 중형 국산차를 타다가 갑자기 벤츠라니.
남들이 뭐라고 입방아를 찧을까.
유미는 시동을 걸고 시운전을 해 보았다.
묵직하면서도 중후한 부드러움으로 차가 나갔다.
이 느낌은…그래 남자의 물건이 들어올 때와 비슷하다.
더도 덜도 없이 충만한 만족감이 밀려왔다.
가슴이, 온몸이 뿌듯해졌다.
그래, 이 맛이야.
그 생각을 하자 유미의 아랫도리에서부터 묵직한 그리움이 밀려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동네를 잠시 돌다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일단 들어왔다.
일단 윤동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윤동진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자 로밍 서비스 안내가 나왔다.
그가 잠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머! 미안해요. 어디세요? 유미예요.”
“으음…여기 미국.”
“잠 깨워 미안하지만, 전화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선물, 백마 고마워요.
에구, 근데 전화해서 윤 이사님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고 했는데….”
“맘에 들어요?”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아직까지 나한테 화나 있어요?”
“그러면 내가 미쳤다고 선물을 보냈겠어.”
“너무 과한 선물 같아서 부담스러워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선물하겠지. 난 사업가요.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사랑도 일종의 거래지. 기브앤 테이크.”
“틀린 말은 아니에요. 명심할게요.”
“이건 계약금에 불과해. 아직까지 안심은 안돼요.”
“아파트 짓는 회사라 그런가? ㅋㅋ…날 부동산 취급하네.”
“유미씨가 부동산이면 좋겠어. 꼼짝 안 하게.”
“그런데 자동차를 선물한 그 아이러니는 뭐죠? 아니면 깊은 뜻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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