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홀리데이 콜렉션-8
미안해하는 지완을 보자 용준도 슬그머니 미안해졌다.
파고드는 지완이 싫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상황은 급하고, 행복은,
아니 욕망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유미가 일등이지만,
사실 이 여자만 해도 자신의 급수에 과분한 여자다.
가만히 따져보면 자신이 여자 복이 없는 놈은 아니다.
여복이 넘쳐 여난(女難)이 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가.
어제 미림이 늦은 밤에 전화를 했다.
못하는 술을 한잔 걸쳤는지 코맹맹이 소리로 징징댔다.
“쭌….”
미림은 용준을 ‘쭌’이라 불렀다.
술에 취하면 더욱 더. 처음엔 혀 짧은 소리로 그렇게 부르는 게 귀여웠는데,
‘쫑’의 정체를 알고 난 후엔 징그러웠다.
전 남편 하민종을 ‘쫑’이라 부르던 여자였다.
이 여자는 좋아하는 남자의 이름을 경음화하는 버릇이 있다.
아니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만약 장동건이라면 ‘껀’, 정우성이라면 ‘썽’, 비라면 ‘삐’… 인간의 버릇은 참 무섭다.
“쭌. 나의 쭌! 보고 싶다. 언제 돌아올 거야?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새해도 되었는데…
계약기간 이런 거 따지지 말자. 언제든 돌아와. 기다릴게. 그렇다고 날 물로 보진 마.
내게도 아직은 남자들이 꼬인다는 거 잊지 마.
쭌! 쭌! 듣고 있어?
쭌! 우리, 결혼할까?”
허걱! 결혼?
술 취한 미림은 생전 입에 담지 않던 말을 뱉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결혼정보 회사의 유능한 커플매니저인 그녀는
자신의 결혼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쥐뿔도 없는 자신에게 결혼을 하자고 한다.
용준은 황당했다.
선택의 여지가 많을 때 인간은 오히려 방황한다.
1번 오유미, 2번 유지완, 3번 성미림. 3지선다형의 정답은 무엇일까?
당장 결혼을 한다고 하면 오유미의 조건이 제일 나을 것이다.
하지만 오유미는 그림의 떡이다.
그게 서글프다.
생각이 복잡하다 보니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대충 끝내고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지완이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 생각해 봤는데… 어쩌지…? 이제 자기 없이 못 살 거 같아.”
지완은 유미에 비해 개발이 덜 된 여자일까.
그렇게 따지면 성미림은 지완에 비해 더욱 황무지라 할 수 있다.
평범한 여자들은 섹스 자체보다는 다정다감하고 따스한 남자와의 정서적 교감을 더 즐기는 거 같다.
일단 한 번 마음을 주면, 여자들은 남자에게 감정까지도 다 의존한다.
그러나 남자라는 동물은 더욱 더 육체적인 자극을 원한다.
그날 밤, 유미와의 정사가 은근히 그리웠다.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밤이라 생각하니 용준의 몸은 괴력을 발휘했다.
하룻밤에 네 번을 발사했다.
그때마다 새롭게 그를 받아주는 유미가 신기했다.
“젊으니까 리필이 빨리 되네.”
칭찬이라 생각되니 더 잘됐다.
이렇게 잘하면 어쩌면 유미가 약속을 무효로 하고 만나자고 할지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희망이 조금 생겼다.
그러나 그 다음날 오전,
늦잠을 자고 났더니 유미가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자신도 체크아웃하고 나갈 거라고 했다.
호텔 리셉션에서 유미가 체크아웃을 할 때였다.
용준은 소파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 남자가 유미에게 다가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유미도 그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용준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용준의 눈에, 남자는 신사복 광고에서 방금 빠져나온 모델처럼 멋져 보였다.
순간, 용준은 바로 눈을 내리깔았다.
상대는, 상대가 되지 못할 상대다. 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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