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7. 심야의 저격

오늘의 쉼터 2014. 12. 8. 17:34

7. 심야의 저격  (1)

 

 

 

 

술잔을 내려놓은 박용근은 술병을 들어 잔에 술을 채웠다.

벌써 얼굴에 취기가 번진 듯 붕어처럼 튀어 나온 눈 주위가 빨갛게 달아을라 있었다.
"솔직히 이철우씨가 나한테 그런 요구를 해왔을 때 난 거절하려고 했어요.

그 사람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이쪽 기반을 굳힌 것은 나란 말이오.

그가 계기를 만들어 주었을지 는 몰라도 피땀 흘린 것은 나요."
"이해합니다. 그래서 내가 찾아온 것 아닙니까?"
안정태가 부드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김윈국이 살아 있는데 우리끼리 다틀다면 모양이 좋지 않아요.

서로 협조하고 뭉쳐야 합니다. "
"내 말이 그것이오. 하필 이런 때에 찾아와 업체를 나눠 달라고 하다니

더구나 기껏 남이 기반을 굳혀 놓은 알짜배기 업소들을."
안정태가 술잔을 들고 위스키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이곳은 박용근의 거점 중의 하나인 파라다이스살롱이다.

시설과 장식이 뛰어난 특급 름살롱인데 회원제로 손님을 받는 곳이었다.
"박 사장님, 그 동안 우리한테서 소외감을 느끼시고 계셨던 것, 잘 알고 있었어요.

말씀 안하셔도 압니다. "
두 시간 동안 둘이서 세 병째의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참이었다.
안정태나 박용근 두 명 모두가 위스키 한두 병쯤으로 취태를 부릴
약골은 아니었지만 마시는 속도가 빨랐으므로 안정태의 얼굴도
상기 되어 있었다.

마주 보고 있자니 어색해서 술잔들만 연거푸 비웠던 것
인데 둘이서 술을 마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늘은 안정태가 비밀리에 박용근을 방문한 것이다.
"글쎄, 소외감이라면 하지만 어쨌든 외롭기는 했어요.

김원국이 날뛰지, 안형은 안형대로 따로 놀지."
"나중에는 이철우씨까지 자리를 잡고 앉으니까 더욱 그러셨겠지는 요.
"그래도 이무섭씨를 믿었으니까 견디어 온 거요.

나하고는 쾌 오래 사귀어 온 사이였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
   "언젠가는 나도 도태될 것이라고 부하놈들이 말합니다. 나는 한마
디로 일축해 버렸지만."
   "이젠 단단하게 기반을 굳히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살찐 손을 뻗어 술잔을 쥔 박용근이 진홍색 액체를 한모금에 삼키
고는 비대한 상체를 세웠다.
   "내가 안형보다 나이가 위니까 먼저 본론을 꺼내야겠는데, 지금까 
지 안형이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하지 않으셔서 말이오."
   "이젠 안형도 불안해지는 것 아닙니까? 나처럼 외롭다저나? 왜냐
하면 이철우씨가 자리를 넓혀 가는 중이니까 말이오."
   "이철우씨는 내 윗분입니다. 그분이 내 구역이나 업체들을 모두
인수해 가고 내가 아랫사람이 되어야 정상이지요."
   "사회가 어디 그렇습니까? 됫물결이 앞쪽을 치는 것이 보통인데."
   안정태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쓸면서 자리를 고쳐 앉았다.
   "내 말씀을 잘못 알아들으셨군요. 저나 박 사장님은 곧 그분의 통
제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
    "이철우씨 말이오?"
    "그럼 또 누가 있습니까?"
    "그것이 이무섭씨의 구상이었소?"
    "잘은 모릅니다만 아마도‥‥‥‥
    "역시 나는 꼭두각시였군 "
    "아닙니다. 조역이었지요, 나처럼 ."
    시선을 마주친 두 사람은 제각기 머리를 돌렸는데 똑같이 술잔을
 쥐었다.
    "시기는 언제요?"
    손에 술잔을 쥐었으나 마실 생각이 달아난 듯 박용근이 물었다.
    u그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조만간에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점
 진적으로요."
    "이를테면 이번 일처럼 말이지. 하나씩 둘씩 업체들을 솎아가는
 식_f_a‥‥‥
    234 밤의 대통령 제2부 -111
   "그렇다면 나는 나중에는 껍질만 남게 되겠구만. 아니, 경리 용역
회사도 그 친구가 장악하게 될지 모르겠는데 "
   "그럴 리가 있습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단장님
이 반발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 아까 말씀 드렸던 대로 같
은 식구끼리 뭉쳐야 합니다. 불만이 생기면 허점이 보이고, 그렇게
되면 조직은 깨집니다. 이것은 단장님 말씀입니다. "
   "이철우씨는 제 상관이었고 일 때문에 가족까지 잃었습니다. 만나
보셨겠지만 물욕이 없고 강직한 분입니다. "
   박용근이 손에 들고 있는 술잔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한입에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이제 안정데가모처럼 찾아온 목적은 드러났다 그는 이무섭의 뜻
을 전하려고 온 것이었는데 그것은 결정 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미 자신의 운명은 진작부터 이무섭의 머리속에서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박용근은 술병을 들고 빈진에 술을 채웠다.
   "어디 가는 거냐?"
   뒤에서 부르는소리에 백동혁은 몸을 돌렸다. 손채석이 넓은 얼굴
을 뒤로 젖히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배가 나와서인지 그가 움직일 때
는 턱이 들린 것같이 보인다.
   "혼자 가는 것은 위험해. 검문에 걸린단 말이다. "
   바짝 다가선 손채석한테서 술냄새가 났다. 조웅남의 직속 부하였
                                               심야의 저격 235
 으므로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들이키는 그가 건네 주는 술을 한모금이
 라도 마시지 않았다가는 미움을 받게 된다. 어느덧 손채석도 술꾼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봐라, 단단하게 차려 입었구만 그래. 작대기에다, 권총, 이건
 수류탄이로구만."
    손채석이 백동혁의 코트를 들치더니 안에 찔러 넣거나 매달고 있
는 것들을 살피고는 머리를 들었다.
    "서울의 밤거리를 다시 난장판으로 만들 작정이냐?"
    "말이 쾌 많구만, 주정뱅이 놈이."
    "이 시키야, 보고도 하지 않고 나가서 어쩌려고 그래?"
   "네가 내 감시역을 맡았구나, 이제 보니."
   "개새끼 ."
   손채석이 사이가 한껏 떨어진 두 눈을 치켜떴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횟집 바깥의 샛길이었다. 사물이 어둠에 묻히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어서 강에서 퍼져 올라온 물안개가 그들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말고 들어가서 저녁 먹어. 너, 큰형님의 명령을 거역
할 작정이냐?"
   손채석이 턱을 내밀고 바짝 다가서자 백동혁이 웃었다.
   "가서 밥먹고 자라고?"
   "네 일은 큰형님 옆에 있는 거야. 웅남 형님도 그렇게 말했잖아?"
   "내가 어떻게 함마 형님 대신이 된단 말이냐, 이 자식아."
   백동혁의 눈썹이 곤두섰고 입술이 뒤틀렸다.
   "함마 형님을 잡히게 한 것이 어느 놈인데 내가 감히‥‥‥‥
236 밤의 대통령 제2부 -lif
    그는 한걸음 다가서면서 손채석의 어깨를 두 손으로 밀었다. 뒤로
한걸음 밀린 손채석이 턱을 아래로 당기자 몸이 둥글게 되었다. 그가
 잇사이로 말을 뱉었다.
    "이 시키, 너 말 안 들을 거야?"
    "날 가게 해줘, 채석아."
    "씨발놈아, 내가 본 이상 못 간다. 이 시키, 알고 보니 의리가 없는
 놈이여 "
    "무엇이?"
    한걸음 백동혁이 다가서자 손채석이 두 팔을 늘어뜨린 채 멍한 표
 정이 되었다.
    손채석은 씨음에서 져본 일이 없다고 소문이 났다. 때리기도 잘하
 지만 맞는 데도 도사여서 팔 다리 한쪽이 부러지거나 어져도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대든다는 것이다. 그는 무기를 쓰지 않았다. 비록
 요즘은 허리춤에 권총을 찔러 넣고 다니지만 예전에는 수틀리면 상
 대방의 아무 곳이나 물어뜯어서 살점을 씹어 버렸다.
    "백동혁이, 너 나를 눕히고 갈 것 같여? 천만에 말씀이다. 그 작대
 기로도 안돼, 이 시키야."
    "채석아 제발‥‥‥‥
    백동혁의 목소리가 갑자기 누그러졌으므로 손채석이 다시 턱을 들
 었다.
    "채석아, 내가 견딜 수가 없마서 그래 . 형님들 얼굴만 보면 온몸에
 서 식은땀이 나고‥‥‥‥
    "니가 죄를 지었으니 당연하게 견디어야지 이 시키야,그런다고
 도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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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식아, 나는 내 죄T:을 치르려는 거다 "
    "치르려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어.도망쳐서 너 혼자 지랄하다가
 다시 형님들 속썩이게 되면 넌 목숨이 열 개 있어도 못 치러,이 시
키야."
    손채석의 말투는 느렸으나 다부졌다.
    "이 시키가 대갈통에 뭐가 조금 들은 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순전히 두부찌개인 모양이구만 "
   어느덧 손채석의 한쪽 손이 백동혁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다.
   "가자, 형님들 지금 소주 마시고 있어.우리도 뒷방에 가서 소주
대포로 몇 잔씩만 하자."
   "고맙다, 채석아 "
   "나는 대가리가 넓어서 머리가 좋다고들 하더라, 몸은 둔해 보이
지만. "
   "그래, 견디었다가 나중에 죽을테다. "
   "이 시키야,죽는 것도 천천히 죽어야 허는 거다. 한국 영화같이
말이다. "
   그들은 다시 횟집의 뒤뜰로 들』섰다.
   김칠성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젯밤의 술기가 가시지 않아 눈
의 흰 창에 실핏줄이 여러 갈래로 얽혀 있다.
   "형님, 청장이 대통령의 결정이 나지 않았다면서 사흘만 더 여유
를 달라고 하는데요."
   "지랄허고 있네, 개자식 야, 쓸디옳다. 저 새끼를 여 뚜러."
   조웅남이 대뜸 소리를 쳤으나 김원국은 잠자코 앉아 있었다. 아침
238 밤의 대통령 제2부 -3f
식사를 마치고 방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참이었다.
   김칠성이 방바닥에 널린 신문들을 치우고 앉았다
   "형님, 함마를 당장 데려와도 우리가 곤란해요. 치료해 줄 수도 없
고 숨길 데도 마땅치 않습니다. 솔직히 저는 청장이 연기해 달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어요."
   김칠성이 말하자 김원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저쪽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입장으로는 거동이 자유로운 최
순태를 데리고 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
   김원국이 조웅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최순태는 청장의 심복이다. 청장뿐만 아니라 이무섭이나 안정태,
박용근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 자야. 며칠 더 데리고 있으면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을 게다. "
   "그 자식 요즘 식사도 제대로 안합니다. 아마 견디기가 힘든 모양
입니다. "
   김칠성이 말하자 조웅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요즘 말수가
부쩍 줄어들어 있었는데 걸핏하면 화부터 내었다.
   "형님, 지가 임종휘인가 종이인가 그농헌티 가봐야겄어요. 그 시
키가 대장인지 알었으은 어뜨케 허더라도 요절을 내야지라우."
   김원국이 머리를 들었다.
   "가서 윌 하려고 그러냐?"
   "기회 봐서 괜찮으은 쳐들어가고, 또‥‥‥‥
   "지금은 안된다, 최순태 사건으로 경비가 부쩍 강화되어서. "
   "그러은 구경만 허고 오지요, 시내 구경이라도."
   "형님, 일 일으키지 말고 돌아만 보고 오세요. 요즘은 놈들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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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기를 가지고 있어요."
    김칠성이 한마디 거들자 방문을 열던 조웅남이 몸을 돌렸다.
    "뭐?일 일으키지 말라고?야,이 시키야,너 나헌티 훈계하는 거
 여?"
    "동생이 충고하는 겁니다. "
    "저능의 시키는 요짐 건방져졌어."
    눈을 부릅뜨고 어깨를 들어올렸던 조웅남이 김원국을 힐끗 바라보
 고는 몸을 돌렸다.
    "웅남 형님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진득한 데가 있었는데 한곳
에 오래 앉아 있지도 않아요. 어제도 술먹고 울었습니다. "
    그가 나간 방문을 바라보며 김칠성이 말하자 김원국이 머리를 들
었다.
    "울다니? 같이 있을 때는 웃고 떠들었지 않았냐?"
    "예, 하지만 끝나고 방으로 들어갔을 땝니다. 웅남 형님하고 한잔
더 마시려고 방으로 찾아갔더니 ‥‥‥‥
    "만철이 생각이 나는 모양이구나."
   "예, 그리고 형님한테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되어서요. "
   "이렇게 되다니?"
   "지금 상황 말입니다. "
   "나아지고 있어,"
   김원국이 머리를 들고는 김칠성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이철우를 만나겠다. 놈이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의 자료도
보았을테니까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겠지."
   "이철우를 말씀입니까f"
240 밤의 대통령 제2부-템
   김칠성이 번쩍 눈을 치켜뜨고는 상체를 세웠다.
   "그놈을 무엇 때문에‥‥‥ 그놈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요. 구태여 형님에서‥‥‥‥
   "나라고 해서 만나지 못할 것도 없다. "
   "만나서 어쩌시려구요?"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그저 놈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것
밖엔 ."
   "굳이 만나시겠다면 형님 지시대로 연락을 하지요. 그놈이 승낙할
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을 거다. "
   "그놈도 준비를 하고 나을 겁니다. 형님이 위험을 무릅』실 가치
가 없는 놈입니다. "
   "그런 위험을 겁냈다떤 내가 너희들의 형님이 되지도 않았어."
   "형님, 그놈이 이무섭이나 안정태를 상대로 하게 내버려 두시지
요. 지금은 만나실 때가 아닙니다. "
   "놈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것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 거야, 지
금쯤은 "
   "형수님을 살해한 것은 그놈입니다. "
   김원국이 머리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김칠성의
시선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밖으로 나간 조웅남이 손채석을 손짓으로 부르자 주방에 있던 그
가 달려나왔다. 입술을 우물거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
가 나온 것 같았다.
                                               심야의 저격 241
     "이 시키는 맨날 무얼 처먹어? 한시도 주댕이가 가만 있덜 안혀. "
    "형님, 어디 가시게요?"
    조웅남의 잔소리를 막으려는 듯 그가 숨가쁘게 물었다.
    "그려 . 아들 세 명만 데꼬 와라. 순찰 나가는 거여."
    "예, 그런데 형님, 저는 다리가 좀 아파서, 저 대신 동혁이를 데리
 고 가시지요."
    조웅남이 손채석의 다리를 쏘아보았다.
    "이 시키가 무신 소리여? 다리는 멀정허고만."
    "무릎이 저려요,쑤시고.걸음을 걸으면 송곳으로 찌르는 것같이
아픔니다 "
    "야, 이 시키야, 금방 너 뛰어왔잖여?"
    "아픈 것을 참은 것이지요, 형님이 부르시니 까."
    "좇같은 소리 허고 있네, 이 시키가. 야, 그리고 동혁이 그 시키는
칠성이현티 야기혀야 돼, 골치 아프다. "
   "형님이 데리고 가시는데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
   "그 시키, 요짐 안 피던디, 어디 있냐?"
   손채석의 두 눈이 치켜뜨여졌다.
   "예, 형님, 저기 끝쪽 방에 ‥‥‥ 제가 가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
   이맛살을 찌푸린 조웅남이 아래쪽으로 달려가는 손채석의 모습을
흘겨보았다. 이제 그는 다리를 심하게 절름거리고 있었다.
   이철우는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휴지로 입가를 닦았다. 밥그릇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고 식탁 위에는 밥알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엽차잔을 들어 두어 모금을 마신 이철우가 문득 생각난 듯이 머리를
242 밤의 대통령 제2부 -3
들어 서대식을 바라보았다.
   "오전에 안정태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박용근이가 엔젤과 청수를
인계한 것에 대해서 불만이 대단한 모양이라고 하더구나. 나보고 조
심하라는 거야 "
   "물론입니다, 대장님 이번에 대장님이 하시는 행동은 시기가 좋
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하신 것이‥‥‥‥
   "그럴까?"
   이철우가 머리를 한쪽으로 눕히면서 한쪽 입술 끝을 약간 비틀어
올렸다.
   "박용근이가 날 칠까? 업체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말이야."
   "그럴리가, 제놈이 죽으려고 눈이 뒤집혔다면 모를까 말도 안되는
소리지요."
   "안정태는 그놈이 위험하다고 했어."
   "안정태씨가 과민해 있군요.그 사람답지 않습니다. 대장닝을 걱
정해 준다는 것도 그렇고."
   "그 친구는 내 직속 부하였다, 너처럼. 하긴 너도 그 친구의 부하
였지, 서열로 따지면."
   "그 사람의 지휘는 받지 않았지요. 부대가 달랐습니다 "
   "너, 날 위해 여태까지 애 많이 썼다. "
   식탁에서 조금 물러나 앉으면서 이철우가 말했다.
   회사 근처의 한정식 집이었는데 늦은 점심을 먹는 탓인지 식당 안
은 조용했다. 물론 식당이 부하들에 의해서 경비되고 있기 때문이기
도 했다.
   서대식이 눈썹 사이를 좁히면서 이철우를 바라보았다. 식사하는
                                               심야의 저격 243
동안 내내 입을 다물고 있어서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있
던 중이다
   "저야 대장님을 끝까지 모시기로 맹세한 놈 아닙니까? 저뿐만 아
니라 다른 동료들도."
   "너희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
   "새삼스럽게 왜 이러십니까? 어색합니다, 자꾸 그러시면."
   "난 배신당했다, 내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에게서."
   서대식이 상체를 세우더니 이철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 눈을
잔뜩 치켜뜨고 있었다.
   "말씀 안하셔도 압니다. 우린 대장님을 따릅니다. "
   "내 개인의 복수를 하자는 것은 아니야.나는 이미 잊었어,내 가
족을."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김원국의 조직은 사회에서 매장되었지
이재영 기자의 기사는 사실이었어."
   침을 소리내어 삼킨 서대식이 잠자코 그를 노려보았다.
   "나는 김원국의 가족을 죽였다. 스스로 함정에 빠져든 셈이지. 이
무섭이나 안정태가 좋아했을 거야. 어쨌든 김원국과는 원수지간이
되었으니까."
   마치 먼 곳을 바라보듯 이철우의 시선은 허공에 머물렀다.
   "대장님."
   서대식이 허리를 펴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지시만 하십시오. 어떤 일이든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
   "난 이무섭씨와 안정태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이 일에 대해 확인을
244 밤의 대통령 제2부 -템
할 것이고 그때에는 내 목숨도 보장할 수가 없어."
   "제가 따르지요. 동료들도 있습니다. "
   "이건 나와 그들과의 문제야. 이제 너희들의 일은 끝났어 ."
   "끝나다니 요?죽어야 끝납니다. 저희들은 물러나지 못합니다. "
   서대식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인도네시아에 저도 갔습니다. 이럴 때 저희들을 버리시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우린 개죽음을 당할 겁니다. 이무섭이나 안정태에
게 말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이 개떼처럼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지
요.
    "지금 안정태는 간계를 꾸미고 있어 첫째로 나와 박용근이 양쪽
을 충동질시키고 있다. 내가 군시절에 놈에게 가르쳤던 작전이야."
    이철우가 말머리를 돌리자 서대식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철우가 말을 이었다.
    "안정태는 나와 박용근의 사이가 나쁘다고 소문을 낼 것이다. 그
리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박용근의 소행으로 돌리겠
    "개자식 . 대장님, 놈을 칩시다. "
    서대식이 이철우를 쏘아보았다.
    "우선 쳐죽이고 봅시다. 조직이고 지랄이고 저는 아무 미련도 없
습니다. "
    "놈들이 철저히 감시하고 있어.어디에 도청 장치를 설치해 놓았
 는지도 모른다. 조심해야 돼 ."
    "염려 마십시오, 대장님."
    서대식이 기운이 난 듯 말했으나 시선은 방안을 분주하게 훌었다.
                                                심야의 저격 245
한정식 집은 조용했고 가끔씩 밖에서 들리던 인기척도 이제는 들리
지 않았다.
    "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박용근이 묻자 여자가 시선을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혜경이에요."
    얼마 전에 긴 머리를 짧은 커트 스타일로 바꾸어서 목의 부드러운
 선이 한눈에 드러나 있다.
    "그런지. 그런데 카프리에서 이쪽으로 옮겨왔다구?"
    "네 . "
    "하긴 카프리보다 여기 명성 클럽의 수준이 낫지. 거긴 삼류야."
    박용근은 술잔을 들어 한모금을 삼켰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했기
때문에 명성 클럽은 비상이 걸려 있었다. 클럽의 안팎은 백여 명의
부하들이 깔려 있어서 일반손님들은 살벌한분위기에 질려 아예 들
어오지 않거나 자리를 떴다.
   "이봐, 너는 안정태씨의 애인이었다고 소문이 났던데,그렇지 않
Lf"
   술잔을 내려놓은 박용근이 묻자 이혜경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랬어요. 그 사람과 몇 번 잠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
   "몇 번 했어?"
   "여섯 번요."
   "세고 있었구만, 금방 말하는 걸 보니."
   "그래요."
   이혜경은 서슴없이 대답했고 물어 보는 박용근도 사무적인 표정이
246 밤의 대통령 제2부 -3
었다. 그는 술병을 기울여 잔에 술을 채웠다. 밀실에 마주 앉아 있는
것은 두 사람뿐이어서 술을 따르는 소리도 귀에 들렸다.
   "네가 카프리에서 왜 애를 먹인 모양이던데, 춤도 성의없게 추고,
화장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말이야. 일부러 그런 거겠지, 물론."
   "네,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쪽에서 널 놓아 주었다니, 그것이 이상하지 않니?"
   "쓸모없는 여자니까요. 귀찮기만 했을 것이고."
   박용근은 턱을 내밀고 앞쪽에 앉은 이혜경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여자 문제에는 담백하다고 소문이 난 안정태가 한동안이나마 데리
고 놀 만한 여자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용수니 까 몸매는 말할 것
도 없겠고 얼굴도 어느 한군데 모자라는 곳이 없다. 그리고통통 튀
는 말대답이 묘한 자극을 주는 여자였다. 금방 섹스를 연상시키는 여
자인 것이다.
   "요컨대 너는 안정태씨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야. 그렇
a1?"
   "그래요. 저도 알 만큼은 아니까요."
   긴장으로 굳은 어깨를 내려뜨리면서 이혜경이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저, 시징힘, 술 한잔 마셔도 될까요? 목이 말라서요."
   "그래, 따라 마셔 ."
   술병을 들어 잔에 술을 채우던 이혜경이 다시 머리를 들었다.
   "오늘, 절 보러 오신 거예요?"
   박용근이 눈을 점벅이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붉은 입안을
보이면서 웃었다.
                                               심o떠 저격 247
"그것 참 당돌한 계집이구만. 듣던 대로야."
    "그것이 네 명줄을 길게 해주었을 것이다. 네가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너는‥‥‥‥
    "없어졌겠지요?"
    "벗어 보아라."
    소파에 등을 기댄 박용근이 불쑥 말하자 이해경이 잠시 그를 바라
보다가 술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녀는 입고 있던 원피스의 앞쪽 단추를 하나씩 풀어 내렸다. 검
정색 원피스가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안의 흰 피부가 드러났는
데 이혜경의 손놀림은 침착했다.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동작으로 그녀는 원피스를 벗어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블래지어와 팬티만을 걸치고 서서 그를 바
라보았다. 마치 무대 위에서 스트립 쇼를 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몸놀
림이었고 표정이었다.
   "다 벗어 "
   박용근이 말하자 그녀는 블래지어의 훅을 풀었다. 블래지어가 벗
겨지자 박용근의 눈에는 마치 젖가슴이 튕겨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짙은 색의 포도 같은 젖꼭지를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
혜경은 허리를 굽히면서 팬티를 벗어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
   "과연‥‥‥‥
   머리를 11덕인 박용근이 술잔을 들었다.
   "다리를 벌리고 서라. "
   이혜경이 두 다리를 벌리고 섰다. 두 팔은 허리 위에 올려놓았고
248 밤의 대통령 제2부 -3
조금 턱을 치켜든 얼굴이어서 비스듬한 시선으로 박용근을 내려다보
고 있다.
   "숱한 사내들을 겪은 년치고는 괜찮은 몸매야. 카프리에서도 웨이
터 몇 놈한테 그것을 주었다던데, 그것도 잘한 짓이다. 넌 머리가 좋
은 년이야."
   "저 , 이대로 서 있어요?"
   "그대로 서 있어. 오랜만에 나도 열이 오른다. "
   박용근이 다시 붉은 입안을 보이며 웃었다.
   "넌 자극을 주는 년이야. 정말 오랜만이군. 내가 널 건드린다면 아
마 한 시간 안에 안정 태에게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고마워하겠
지. 우린 동서간이 되었으니까 "
   이혜경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 그대로 이쪽으로 와."
   술잔을 내려놓은 박용근이 말하자 이혜경이 탁자를 돌아 그에게로
다가왔다. 짧은 거리였으나 그녀의 출렁이는 젖가슴과 좌우로 흔들
리는 엉덩이, 그리고 잠간씩 보이는 그녀의 깊은 숲속의 살점들이 박
용근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다.
   이혜경이 그의 옆에 앉았다.
   "어떻게 해드려요?"
    "서두르지 마라. 시간은 많다. "
    "그러실 것 같았어요."
    술병을 쥔 이혜경이 그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웃었다.
조운경은 손에 배인 땀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고는 다시 방아치
                                                심야의 저격 249
 에 손가락을 걸었다. 총신 위에 부착된 망원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대
 자 길 건너편의 빌딩 창문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창살의 흠집까지도
 똑똑히 보인다.
    조금 총신을 돌리자 베란다 쪽의 유리문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커
 튼 안쪽으로 서너 사람이 모여 앉아 있었지만 얼굴의 윤곽은 확실하
 지 않았다.
    "이것, 오늘도 공치는 것 아냐?"
    옆에 앉아두 눈에 망원경을 대고 있던 김창석이 혼잣소리처럼 말
 했다. 말소리에 짜증기가 섞여 있다.
    "기다려, 서두르지 말고. "
    조운경이 다시 총신을 돌려 창문 쪽을 겨누면서 말했다. 창문에는
 커튼이 걷혀져 있어서 방안의 천정에 달린 형광등까지 보였다 사흘
째 이곳에서 진을 치고 있었으나 이철우는 렌즈의 초점 안에 들어오
지 않았다.
    두 번의 기회가 있기는 했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이었다. 한번
은 베란다에 나와 바깥 바람을 쏘일 때였는데 그때는 조운경이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었고 오늘 아침은 그의 이마가 초점 안에 들어온 순
간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었다.
   "이봐, 나는 조금 쉴게, 눈이 아파서 그래 ."
   김창석이 만원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펼쳐 놓은 간이 침대로 다가가 누웠
다. 20평의 셀렁한사무실이었다. 방의 이곳저곳에는 먹다 만 빵조
각과 빈 음료수 깡통들이 굴었고 불을 켜지 않아서 더욱 스산하게
보였다.

 

그러나 이철우의 사무실과 직선거리에 있는 이쪽 오피스텔은 저격
 하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더욱이 사무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 방이 비어 있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운경은 조준경에서 눈을 고는 두 손으로 눈을 눌렀다. 군시절
에 특등사수로서 저격병 훈련을 받은 그에게 50미터가 조금 넘는 거
리의 목표는 열 발을 쏘아서 열 발을 모두 명중시킬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침대에 드러누운 김창석이 뒤치락거리는 소리가들려 왔다. 조운
경은 다시 조준경에 눈을 대었다. 응접실에서 누군가가 일어서더니
시야 밖으로 사라졌고 이내 다시 나타나 자리에 앉았다.
    "자, 한잔씩 들어 "
    술병을 들고 온 이철우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안주는 없지만 술은 많다. "
   "박용근이는 지금 명성 클럽에 가 있다는군요."
   손의열이 술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부하놈들을 백 명쯤 끌고 갔다고 합니다. "
   "어중이 떠중이 백 명이면 뭘 해? 오함마 수류탄 한발이면 모조리
도망칠걸."
   서대식이 말을 받았다가 힐끗 이철우의 눈치를 살폈다.
   "오함마와 최순태를 교환하자고 김원국이 요구해 온 모양이야. 아
까 이 단장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
   이철우가 박진찬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하자 모두들 그를 바라
보았다.
                                               심야의 저격 251
    "전화가 왔었습니까?"
    그렇게 물어 본 것은 서대식이다.
    이철우가 빙그레 웃었다.
    "당연하지. 그런 정보는 나에게 줘야 할 것 아니냐? 다른 건 몰라
도 말이야."
   "대장님,시기를 끌수록 우리가 손햅니다. 아직 그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때 ‥‥‥‥
   "한가지씩 처리하겠다. 우선은 안정태부터‥‥‥‥
   "놈은 철저하게 경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여섯 명으로는 치고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
   손의열이 머리를 들고 말했다. 체격은 작았으나 다부진 표정의 사
내였다.
   "불가능하지, 우리 여섯 명으로는."
   이철우가 잔을 들어 위스키를 한모금 삼키고는 둘러앉은 부하들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난 김원국을 만날 작정이다. 아침에 김칠성이한테서 연락이 왔
어, 만나자고."
   모두들 잠자코 그를 바라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술잔을
내려놓은 서대식이 입을 열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지요. 하지만 대장님, 선후만 바뀌었을 뿐
이지 김원국이와는 결코 융화될 수 없습니다. "
   "알고 있다. 하지만 그도 지금 내가 필요한 입장이야."
   "저희들이 따라가지요."
   "한 사람만, 서대식이 네가 따라오는 것이 좋겠다. 저쪽은 백동혁
252 밤의 대통령 제2부 -lB
인가 하는 건달이 온다고 했다. "
   "개 백정이라고 불리는 놈입니다. 김칠성의 부하지요."
   "덥다. 누가 베란다 문을 열어라."
   한명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의 유리문을 열었다. 커튼이 밤
바람에 펄럭이며 안쪽으로 펄럭였고 차가운 밤공기가 응접실로 쏟아
져 들어왔다.
   위스키의 열기에 달아오른 그들은 가슴을 젖히고 찬 공기를 들이
마셨다.
   조운경은 펄럭이는 커튼에 가린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짙은 눈썹
이 보였다가 이내 커튼 자락에 가려졌다. 그러나 사내의 전신은 모두
이쪽으로 노출되어 있다. 신장과 체격, 모두 이철우와 흡사했다.
   조운경은 사내의 가슴에 조준을 맞추었다. 일초,다시 일초,사내
가 베란다의 문을 잡고 닫으려는 몸짓을 했다. 얼굴의 윤곽이 불을
등지고 있어서 어둡게 보이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시 몇 초가 지나
사내가 문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운경은 방아치를 당겼다. 사내의
가슴에 총알이 관통하고 반듯이 뒤로 넘어지는 것을 확인한 조운경
은 총구를 창틀에서 빼내었다
    "야, 일어나! 가자!"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침대에 누워 있던 김창석이 두 다리를
 공중으로 흔들었다가 내리면서 일어섰다.
    "했니 ?"
    그가 외마디 소리로 물었다.
    "했어 ."
                                               심야의 저격 253
   그들은 분주하게 총을 접고 가방을 챙겼다 이제는 떠나기만 하면
되었다.
   "함마는 병원에 있는 것이 낫어. 지금 우리가 데꼬 온다고 혀도 복
잡혀 . 안 그러냐?"
   조웅남의 말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횟집의 마크를 붙인 승합차는
강남대로를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채석이 갸가 얼굴은 가오리같이 생겼지만 속이 넓어. 안 그러
나?"
    "예, 형님 ."
    백동혁이 대답하자 조웅남은 의자 밑의 상자에서 소주병을 꺼내더
니 이빨로 뚜껑을 뜯어내었다.
    "야, 임마, 술 한잔 마셔."
    "예, 형님 ."
    조웅남이 내민 술병을 받아 쥔 백동혁이 병을 기울여 두어 모금을
삼켰다.
    "술이란 것이 좋은 것이여."
    술병을 건네 받은 조웅남이 몇 번인가를 꿀커덕거리자 병이 비워
졌다.
    "너, 함마 엄시 그러는 것 같은디 ."
    술병을 차 바닥으로 던지고 난 조웅남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내가 최순태를 잡어 왔응게 쌤쌤이다. 비겼단 말여. 알겄냐?"
    "예, 형님 . "
     승합차는 신호등에 걸려 멈추어 섰다. 밤거리에는 행인들이 많았
254 밤의 대통령 제2부 -lH
는데 건널목에 둘셋씩 서 있는 경찰들도 보였다. 조웅남이 머리를 들
었다.
   "야, 저그 서초동으로 가자. 거그 술집에서 한잔 혀야겄다. "
   "형님, 어디 말씀입니까?"
   손채석이 없었으므로 이제 그를 보좌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백동혁이 묻자 조웅남이 빙그레 웃었다.
   "괜찮다, 사고 안 칠팅게. 쬐간헌 디가 있어, 조용허고."
   "형님, 어쨌든 위험합니다, 술집에서 술을 잡수신다는 것은."
   "이 시키야, 시끄러. 며칠 전에도 거그 가서 마셨어. 내가 잘 아는
디여."
   "그러시다면 더욱‥‥‥‥
   그러나 승합차는 서초동 쪽으로 우회전해 들어가고 있었다. 백동
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승합차에 타고 있는 다른 세 명의 부하들이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제각기 머리를 돌렸다. 승합차가 다시 신호등
에 걸려 멈춰 섰으므로 백동혁은 머리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차선 길은 오가는 차량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는데 50미터쯤 앞
쪽의 신호등은 푸른색 이었다. 그는 목을 세우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좀처럼 차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형님, 앞쪽에서 검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
   교통 경찰관의 붉은색 수신 호등이 차량 사이로 얼핏 보이자 백동
혁이 말했다.
   "차에서 내리시는 것이 낫겠습니다. "
   "야, 이 시키야, 음주 운전 단속일 거여."
   "그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형님."
                                                심야의 저격 255
      조웅남이 상반신을 세우고는 앞쪽을 노려보았다
      승용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앞쪽을 가로막은 경찰들
  이 보였다. 완전 무장을 한 기동대원들이었고 도로의 양쪽케 늘어서
  있다
      "열 명이 넘습니다, 형님. "
      승합차 안의 부하들이 몸을 틀어 이쪽저쪽을 바라보는 통에 분위
  기가 수선스러워졌다.
     조웅남이 머리를 들었다
     "내리자,하나씩, 영문아, 너도 차 내버리고 내려, 만일 흩어지은
 알어서 횟집으로 가그라. 인자는 별디서 다 검문을 허네 잉 , -
     뒤쪽도 차들로 확 막혀 있어서 어차피 내리는 수밖에 없다.
    문을 열어 젖힌 백동혁이 먼저 내리자조웅남이 따라 내렸다. 마
 침 차도의 옆에 조그만 골목이 있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선 백동혁이
 몸을 돌리자 차도를 건너 이쪽으로 다가오는 부하들이 보였다. 마지
 막 부하 한 명이 차에서 내리고 있다. 그러나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들렸다. 부하들이 달리기 시합의 출발 신호를 들은 듯이 전속력으로
이쪽으로 뛰어왔다.
    "a171 rl . "
    옆에 서 있던 조웅남이 낮게 투덜거렸다. 그의 입에서 술범새가
풍』 왔다.
   "뛰자!"
   그들은 한덩어리가 되어서 골목길을 달려나갔다. 이쪽의 지리는
손금을 보듯이 훤했고 어느 목에 경찰의 검문소가 있는지도 알고 있
다. 그들은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반대쪽의 골목
   256 밤의 대통령 제2부 -3
 으로 들어섰다
    "형님, 승합차가 체크되지 않을까요?"
    백동혁이 묻자 조웅남이 입맛을 다셨다.
    "모르겄다, 횟집 이름은 들어냈는디. 니가 형넘헌티 이야기를 혀."
    "예, 형님 ."
    골목을 빠져 나간 그들은 다시 이차선의 도로로 나왔다. 그러자
앞장서 가던 부하 한 명이 흠칫 멈춰 서는 것이 사람들의 사이로 보
였다.
    그쪽은 왜 번화한 곳이었다. 유흥가가 밀집해 있었고 군데군데에
몰려 서 있는 경찰들이 보였다. 백동혁은 골목의 입구에서 다시 안쪽
으로 돌아왔다.
   "형님, 경찰들이 좌악 깔려 있습니다. 이쪽으로 나가면 안되겠어
요. "
   "그러은 여그서 쪼골티고 있으란 말이여?"
   "아닙니다. 제가 어디에서 차를 한 대 가져올테니 까 그때까지만
이곳에 계십시오."
   "왜? 나는 손발이 없냐?"
   "형님은 금방 눈에 띕니다. "
   의외로 조웅남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백동혁은 부하 한 명과 함께
골목을 나섰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는데 백동혁의 눈에
는 그들이 만세상 사람들처럼 보였다.
   경찰청장 박동호가 서 초로에서 김원국 일당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사건이 일어난 지 5분 후
                                                심야의 저격 257
였다. 마침 집에 들어와 저고리를 벗던 그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의
자에 앉았다.
   "몇 놈이야?"
   "네, 대여섯 명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
   서초 경찰서장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들려 왔으므로 그는 수화기를
귀에서 조금 떼었다
   "영동 지역 전체를 봉쇄해, 골목골목의 모든 입구와 출구를 막고.
내가 병력을 지원해 줄테니까."
   "네, 청장님."
   "뛰어서 도망쳤다니 차를 잡으려고 할 거야. 차량 검문도 강화
해 . "
   "알겠습니다, 청장님 ."
   "반드시 잡아. 알았어? 이번이 좋은 기회란 말이야. 알겠지?"
   "네, 청장님 ."
   수화기를 내려놓은 박동호는 옷을 벗을 생각도 잊은 듯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벗고 씻으세요, 피곤하실텐데."
   다가온 아내가 말했으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탁자 위에 놓인 비상용 전화기가 아니라 자신의 바
지 호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진동으로 떨고 있는 것이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어 귀에 대었다
   "여보세요."
   "박 청장이시오?"
   낯선 목소리여서 박동호는 눈썹을 찌푸렸다.
258 밤의 대통령 제2부 -lB
    "당신 누구요?"
    "난 백동혁이오, 개백정 ."
    " 0)01, "
    그러다가 박동호는 숨을 들이마셨다.
    "이런 건방진 놈, 버르장머리 없이 어디에다 대고‥‥‥‥
    "개수작 마라, 이 새끼야."
    "무엇이?"
    그러나 맞대놓고 욕설을 주고받아서 손해를 보는 것은 이쪽이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너, 용건이 뭐냐? 어떻게 내 전화 번호를‥‥‥‥
    그러다가 박동호는 머리속에 최순태가 잡혀 있는 것을 떠올렸다.
김칠성도 몇 차례나 전화를 해온 것이다.
    "경찰의 검문을 풀어. 길을 내란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당장에 최
순태의 머리통을 박살낼테니까. 알았어?"
    "너, 이 자식 , 어린 놈이 ‥‥‥‥
    "지금 당장 강남역 근처의 병력을 모두 철수시켜.그리고 올림픽
도로와 강남대로의 검문도 풀고. 10찰 간의 시간을 준다. 10분 후에
도 그대로면 최순태를 죽이겠다. "
    "너, 이 자식 ."
    그러는데 전화가 끊겼다.
    박동호는 어금니를 물고는 방의 한쪽을 노려보았다. 그러던 그의
시선이 떨어져 탁자 위의 비상전화에 닿았다.
    그는 손을 뻗어 전화기를 쥐고는 다이얼을 눌렀다. 전화는 금방
서초 서장과 연결이 되었다.
                                                심야의 저격 259
   박동호가 소리치듯 말했다.
   "난데, 작전을 변경시 켜라. 강남역 근처에 있는 병력을 모두 이태
원으로 이동시켜 이태원의 사방을 막아라."
   "이태원입니까?"
   "그래, 이태원이다. 놈들이 이태원으로 옮겼다는 정보가 왔다. "
   "네 , 그렇습니까?"
   서장의 말투에 미심쩍어하는 기색이 보였으므로 박동호의 눈썹이
곤두섰다.
   "서장, 10분 안이야! 내 말 알아듣겠어?"
   "청장님, 10분 안에 이태원으로 옮기기에는‥‥‥‥
   "10분 안에 철수하라고 했어! 알았어? 서두르란 말이야!"
   내던지듯 수화기를 내려놓은 박동호는 의자 위에 던져 놓은 휴대
폰을 들고 다이얼을 눌렀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두 번 두드리다가 이번에는 네 번씩 연속으
로 두 번을 두드린다. 이혜경이 머리를 들어 박용근과 시선을 맞추었
다.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일어나."
   위에 앉아 있던 이혜경이 조심스럽게 하체를 들어올리자 박용근의
남성이 그녀에게서 빠져 나갔다.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으므로 박용
근은 술병을 들어 문을 향해 던졌다. 술병이 박살이 나면서 노크 소
리도 그쳤다.
   이혜경이 서둘러 옷을 걸치는 것을 바라보면서 박용근은 무릎 아
래로 내렸던 팬티와 바지를 끌어당겨 입었다. 바지의 혁띠를 매고 지
260 밤의 대통령 제2부 -fU
퍼를 올리고 나자 다시 조심스럽게 두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
때에는 이혜경이 시치미를 떼고 앞자리에 앉아 있을 때였다.
   "들어와 "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재일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의 시선이 곧장 박용근에게만 향해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혜
경을 의식한 것으로 보여졌다.
   "사장님, 비상이 걸렸습니다. "
   "무슨 비상?"
   서두르는 듯한 그의 말에 박용근도 눈을 치켜떴다.
   "예, 회장님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모든 부하들을 강남역 부근
에 풀어 놓으라고. 이것은 저희뿐만이 아니라 이철우, 안정태의 모든
조직에 게 ‥‥‥‥
   박용근의 시선이 이혜경에게로 가자 안재일이 말을 멈추었다
   "넌 잠간 나가 있어."
   이혜경이 잠자코 방을 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강남역에 김원국이가 나타났어?"
   박용근이 다그치듯 물었다.
   "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왜? 경찰은 윌 하고?"
   "경찰은 철수한답니다. 벌써 철수했겠는데요. 그래서 강남역 근방
을 우리가 맡는 겁니다. "
   "아니 도대체 ‥‥‥‥
   "김원국이가 협박을 했답니다. 경찰들이 강남역 근방에 일씬거리
기만 하면 최순태를 죽이겠다고. 그래서‥‥‥‥
                                               심야의 저격 261
"그래서 우리가 맡는다고? 우리가 김원국이를 잡는단 말이지?"
"예, 사장님 ."
"김원국이가 강남역 근방에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
    "안정태의 부하들은 이미 모이고 있답니다. 구역을 삼등분하고 암
 호도 정하기로 했습'키다. 제가 나가 볼까 하는데."
    "그들의 계획대로 되어 가는구만."
    박용근이 뱉듯이 말하고는 술잔을 쥐었다.
    "점점 그들의 기반이 굳어지고 있어. 이무섭치 조직은 이제 밤의
 경찰전까지 사용하고 있단 말이야."
    "사장림, 어쩔 수 없습니다, 어서 지시를 내려 주셔야‥‥‥‥
    "그들의 기반이 굳어질수록 내가 점점 위축된단 말이다. 이건 같
이 성장하는 것이 아냐. 약속이 틀려 ."
    "사장림."
    "안정태 이놈은 나와 이철우를 싸움 붙이려고 했어.그것이 그놈
개인의 생각인지 어쩐지 알 수도 없고."
   안재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사장님, 애들을 보내겠습니다. "
   술잔을 든 박용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재일이 밖으로 나가자 박용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의 거창한 행차는 시위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스스로를 위한
것도 되었다. 그러나 이무섭과 그 배후의 힘은 그에게 더욱 좌절감만
느끼게 해줄 뿐이었다.
262 밤의 대통령 제2부 -lB
    "이것봐라, 경찰이 없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혀도 새까맣게 있었
는디 ."
    조웅남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하자 부하들도 골목 밖으로 머리
를 뽑고 밖을 내다보았다.
    "내 참 귀신이 곡헐 노릇이여. 이거 점찜헌디."
    조웅남이 골목의 벽에 둥을 기대며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밤 12시
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동혁이 이 씨발놈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여?혹시 잽힌 거 아
Lf?"
    ‥‥‥‥‥
    옆에 서 있는 부하에게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좁은 골
목이었고 양쪽이 길고 높은 청량 음료 회사의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서 지나는 행인은 드물었으나 양쪽 입구로 경찰이 밀려온다면 꼼짝
할 수 없는 단점도 있다.
    그때 골목의 뒤쪽 부분에서 수선거리는 인기척이 들렸다. 벽에 붙
어 서 있던 세 명 모두가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는데 그쪽과 제일 가
깝게 서 있던 주영문이 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경찰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여?"
    "잘 모르겠습니다. "
    이젠 조웅남의 눈에도 사내들의 모습이 보였다. 골목을 가득 메우
듯이 다가오는 사내들은 모두 7,8명이 넘어 보였다. 그들은 말소리
 하나 내지 않았는데 언 땅에 부딪치는 발자국 소리만이 어지럽게 들
 려 왔다.
                                                심야의 저격 263
     조웅남은 직감으로 사내들에게 풍겨 오는 살기를 느꼈다. 그들과
 의 거리는 이제 20미터로 좁혀졌다. 이쪽은 벽에 달라붙어 있었으나
 굴곡도 없는 시멘트 벽이다. 앞장선 사내들의 발길이 주춤거리며 늦
 춰졌다. 이쪽을 발견한 것이다
    "당신들 누구야?"
    앞장선 사내 한 명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은 이제 곧
 장 다가왔다.
    주영문이 머리를 돌려 조웅남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조웅남은 벽에 기대었던 등을 떼었다. 사내들은 좁은 골목에 좌악
 벌려 서듯이 대형을 잡고 다가왔는데 조웅남은 앞장선 사내가 쥐고
 있는 권총을 보았다. 그의 옆에 선 사내의 손에도 묵직한 물체가 들
 려져 있는 것이 바깥쪽 차도에서 흘러 들어온 불빛에 비쳐 보였다.
    "아이고, 형님 아녀?"
    갑자기 골목이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른 조웅남이 손에 쥐었던 수
류탄을 사내들의 사이로 던져 넣었다 거리는 10미터 정도였고조웅
남의 소리에 멈추어 섰던 사내들이 그들의 발 사이로 굴러 들어오는
물체를 의식한 것은 조금 후였다.
   "아아, 수류탄!"
   누군가가소리쳤고 주영문이 이쪽으로 몸을 굽힌 채 땅바닥에 엎
드렸다. 조웅남이 땅을 끌어안듯이 엎어지자 귀청이 떠나갈듯한폭
음이 울렸다 시멘트 덩어리가 어지럽게 날아 조웅남의 등판 위로 떨
어졌다
   "탕, 탕, 탕."
264 밤의 대통령 제2부 -lU
   권총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조웅남은 몸을 굴려 호주머니에 든
권총을 꺼내어 쥐었다.
   "탕, 탕, 탕."
   골목 안은 화약 냄새가 진동했고 벽의 한쪽이 무너져 내려서 골목
은 반으로 길이 끊겨져 있었다. 이곳저곳에 쓰러진 사내들이 신음 소
리를 뱉어냈다.
   "영문아!"
   엎드린 채 조웅남이 버럭 고함을 쳤다.
   "영문아! 죽었냐?"
   "예 ! 형님 ."
   옆쪽에 엎드려 있던 주영문이 일어섰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
   그의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중식이는?"
   "증식아! 중식아!"
   쓰러진 사내들 틈에서 사내 한 명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가자!"
   뛰쳐 나갈 길은 차도가 있는 쪽의 큰길밖에 없다. 벌써 폭음을 듣
고 골목의 입구에는 사람들이 몰려 서 있었다. 그들이 입구를 향해
뛰쳐 나가자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섰다.
   "저71다!"
   오른쪽에서 그들을 향해 누군가가 소리쳤고 머리를 든 조웅남은
이쪽으로 달려오는 7,8명의 사내들을 보았다.
   "이런, 지기미 ."
                                               심야의 저격 265
    조웅남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인도에는 시민들이 웅성거리고 있
다. 달려오는 사내들은 제각기 손에 권총을 쥐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수십 명의 민간인이 살상될 것이다.
    시민들은 조웅남의 일행과 달려오는 사내들을 바라보더니 물고기
가 돌멩이에 흩어지듯이 사방으로 갈라졌다. 여자들의 비명 소리
도 들렸다.
    "야,쏘지 마!"
   조웅남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주영문이 겨누었던 권총을 거둬 들
이면서 조웅남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울상을 짓고 있었다 사내들과
의 거리는 10미터 정도로 가까워졌다.
   조웅남은 점퍼의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인도의 한복판에 두
다리를 벌리고 섰다. 주영문과 채중식이 그의 뒤쪽에 서서 달려오는
사내들을 맞았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거나 벽에 붙어 서 있는 시민들
과는 2,3미터도 안되는 거리였다 사내들이 총을 겨누며 다가와 멈
추어 섰다.
   "너희들은 누구냐?"
   앞장선 사내가 권총으로 조웅남의 가슴을 겨누면서 물었다. 30대
초반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였다.
   "이런 지기미 씨발놈 봐라, 나보고 누구냐고 묻네 잉?"
   조웅남이 이를 드러내 보이며 으르렁대듯 물었다.
   "야, 이 시키야, 넌 신문도 안 보냐?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여?"
   사내의 시선이 두어 차례 흔들리는 것을 느낀 조웅남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예상과는 다른 것이다. 손에 든 총으로 핀든지 붙잡든지
했어야 정상이다.
266 밤의 대통령 제2부 -lU
   "어어, 김형, 빨리 저쪽으로 가봐."
   사내가 갑자기 팔을 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대기하고 있어, 어서!"
   목을 뽑아 뒤쪽을 바라본 조웅남은 사거리를 초가는 차량들을 보
았다 폭음과총성을듣고 모여든 군중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 빨리 ! 따라와!"
   권총을 움켜쥔 사내가 소리치면서 골목으로 뛰쳐 들어가자 일행들
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이거 어뜨케 된 거여?"
   조웅남이 주영문을 돌아보았다.
   "저 시키가 사람을 잘못본 모양인디 ."
   "형님, 뛰어요!"
   주영문이 그의 어깨를 밀면서 낮게 소리쳤다. 그러자튕기듯이 앞
발을 뻗은 조웅남이 일직선으로 인도를 달려 내려갔다
   그의 뒤를 주영문과 채중식이 따랐는대 큰 몸집에 비해 조웅남의
달리는 속도는 놀랄 만큼 빨랐다. 약간 배를 앞으로 내민 자세로 조
웅남은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얼굴은 신바람이 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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