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6. 새구의 시체

오늘의 쉼터 2014. 12. 8. 12:57

6. 새구의 시체  (1)

 

 

 방안에 둘러앉은 사내들은 모두 입을 열지 않았다.

열 평 정도의 왜 큰 방이었고 가구가 놓여 있지 않아서인지 더욱 크게 보였다.

아래쪽에 벽을 등지고 앉아 있던 김원국이 머리를 들었다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방심했던 것이 잘못이야.

하지만 다시 이렇게 모였으니 지난일만 탓할 수는 없다. 그럴 시간도 없어 "
"형님, 함마가 잡혔습니다. 부상당하고 잡힌 모양인데요."
김칠성이 첫발선 눈을 들었다.
"구하러 가야 합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어린애 같은 소리 마라."
이맛살을 찌푸린 깅원국이 그의 말을 잘랐다.
"이 집도 위험하다. 일단 이곳에 모인 사람들부터 다른 곳으로 옮』야 한다. "
그가 머리를 돌려 백동혁을 바라보았다.
"웅남이한테 연락을 해라. 우선 그쪽의 은신처를 사용하기로 하자. "
"예 ."
백동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부상당한 사람이 있지? 상태가 좋지 않으면 병원으로 보내라.
잡히더라도 목숨은 살려야 한다. "
김원국이 방에 앉은 부하들을 둘러보자 모두들 입을 열지 않았다.
하룻밤이 지난 다음날 아침이었다.

굿집을 빠져 나와 숲과 개울을 건넜는데 굿집에서,

또는 숲속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고 뿔뿔이 흩어져서 이곳에 모인 것은 열다섯 명밖에 되지 않았다.
아침 신문에 보도된 대로라면 다섯 명이 죽고 세 명이 잡혔는데
이쪽에서 보면 아직 세 명이 모자란다.

아마 그들은 아직도 숲속을 헤매고 있거나 아니면 움직이지 못할 사정인지도 몰랐다.
"장우길이, 네가 다친 애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라."
김원국이 말하자 구석 자리에 앉아있던 장우길이 머리를 들었다.
그는 길을 잘못 들어 산을 두 개나 더 넘고는 한 시간 전에야 이곳에 도착했다.

얼굴에는 긁힌 상처가 선명했다 
"애들만 버려 두고 옵니까?"
"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치료받게 하는 것이지.저대로 두었다가는 개죽음이다. "
김원국이 턱으로 바깥쪽을 가리켰다.
세 명이 총에 맞았는데 두 사람은 중태였다.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장우길과 함께 도착했던 것이다.

장우길이 일어서서 방을 나가자 그와 엇갈려서 백동혁이 들어섰다.
"형님, 연락이 되었습니다. "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김원국에게 건네 주었다.

김원국이 휴대폰을 귀에 대었다.
"여보세요."
"형님."
조웅남의 외치는 듯한 목소리가 앞에 앉은 김칠성에게도 들렸다.
"형님, 이리로‥‥‥ 제가 모시러 갈텡게로."
"그럴 필요는 없다. 네가 있는 곳은 어디냐?"
"여그는 양평인디요, 거시기 횟집들 있는 디 ‥‥‥‥ 
"당분간 너한테 신세를 져야겠다, 이 집도 위험할 것 같아서."
"신세라니요, 형님 "
조웅남은 고래고래 악을 쓰듯 말했다.
"거시기, 함마가 점혔다는디, 자를 어뜨케 혀야‥‥‥‥ 
"우리가 오후에 그쪽으로 간다. "
"예, 형님,해운대 횟집에 오시은 돼요.

검문서 옆길로 빠져 나오시야 허는디, 내가 아들현티 알켜 줄텡게."
"알았다. "
휴대폰의 스위치를 내린 김원국이 잠자코 앉아 있는 김칠성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애들 준비시 켜라. 우선 양평으로 가자."
"형님."
김칠성이 대답하는 대신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백동혁이 입을 열었다.

시선이 똑바로 김원국을 향해져 있다.
"제가, 제가 어제 여자를 찾아갔었습니다. 당분간 못 만난다고 이야기를 하러 갔었는데 ‥‥‥‥ 
방안에 둘러앉은 사내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백동혁이 상체를 반듯하게 세웠다.
"제가 경찰을 달고 왔습니다. 저를 죽여 주십시오."
"여자를 찾아가? 이 와중에?"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은 김칠성of다.

백동혁 쪽으로 몸을 기울인 그의 손이 바람을 일으키며 백동혁의 뺨을 쳤다.

무시무시한 악력이었다.
"죽여 주십시오, 형님."
"오냐, 이 새끼야. 죽여 주마."
눈 안에 불이 켜진 듯 눈알을 번들거리며 김칠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김원국이 머리를 들었다.
"그만둬라."
"형님."
상기된 얼굴로 씨근거리며 김칠성이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그만두라고 했다. "
김원국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이강일은 폰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김칠성이 털썩 주저앉았다.
"모두 제 책임입니다. 제가 이런 놈을 동생이라고 데리고 있었습니다. "
"그만둬 !"
이제 김원국의 목소리는 한 계단 높아졌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방안에 모인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한 명이 아쉬운 때다. 책임을 느편다면 큰일로 갚아라. 알았느냐?"
김칠성을 제외한 모두는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백동혁이 얼굴을 들었다.

코와 입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예, 예, 형님, 갚지요. 갚겠습니다,

형님, 제 목숨으로.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그의 눈에서 눈물이 홀리내렸는데 이강일의 눈에는 핏물같이 보였다.

피투성이의 얼굴에 흘러내리기 때문일 것이다.
"놈들은 다섯 명이 죽고,세 명이 부상을 입고 잡혔습니다.

잡힌 놈 중에 오함마가 있습니다. "
안정태가 환한 얼굴로 이철우를 바라보았다.
"김원국이를 잡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놈들의 전력은 쉽게 회복될 수 없게 떨어졌을 겁니다.

당분간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하겠지요."
그는 오랜만에 찾아온 이철우를 진심으로 반기는 듯 줄곧 밝은 표정이었다.

더욱이 어제 저녁에는 경찰이 김원국의 근거지를 습격해서 성과를 올린 것이다.

안정태의 분위기에 이끌린 듯 이철우가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할 놈들이었어.빨리 끝나는 게 그놈들한테도 좋을 거야.

경찰 발표는 10여 명이 도망쳤다는데 그중 김원국이 김칠성이가 끼어 있겠구만."
"부상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시내의 모든 병원을 수색하고 있지요."
"최 경감이 끈질겨. 기어이 꼬리를 잡았단 말이야, 머리는 놓쳤지만‥‥‥‥ 
한모금 커피를 삼킨 이철우가 찻잔을 내려놓고 머리를 들었다.
"내가 오늘 찾아온 것은 자네와 상의할 것이 있어서인데‥‥‥‥ 
"네, 말씀하십시오."
상체를 세운 안정태가 선뜻 대답했으나 두 눈의 동자가 조금씩 흔들렸다.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정기욱의 조직을 인계받았지만 결산해 놓은 걸 보니까 엉망이야.

정기욱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식으로 생활하고 있었어."
안정태가 잡자코 머리를 끄덕이자 이철우가 말을 이었다.
"식구는 많은데 수입원이 신통치 않아. 겨우 부하들 월급을 주는 형편이야.

그래서 말인데, 구찌 클럽하고 엔젤 클럽, 청수 나이트 클럽을 내가 관리하려고 하는데."
 "OtOl,01. "
안정태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졌다.

머리를 끄덕여 보인 그는 한동안 눈을 깜박이며 탁자 위의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구찌 클럽은 박용근이 관리하다가 지난번의 수류탄 사건으로 안정태가 인수해 왔다.

엔젤 클럽과 청수 나이트 클럽은 박용근이 관리하는 업체였으나 두 개를 합쳐 봐도

구찌 클럽의 절반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저, 단장님께 우선 말씀 드려야 할 사항 같습니다만,

제 생각을 말씀 드리자면 구찌 클럽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
"고맙군. 그곳의 매출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래서 말하기가 조금 거북했는데 ."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그런 말씀 듣는 것조차도 부끄럽습니다

어차피 대장님이 전체를 장악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슨 말을, 자네도 이제 어엿한 관리자야.

나와 대등한 입장이지. 겸손해할 것 없네."
"저야 그렇습니다만 박용근이가 엔젤하고 청수를 쉽게 양보할까요? 저는 그것이 ‥‥‥‥ 
"자낼 만나고 박용근이를 찾아갈 작정이야. 그러고 나서 단장님께 보고를 드리겠어.

나는 우리 선에서 조정이 되면 단장님도 이의가 없으리라고 믿고 있어."
안정태가 머리를 」1덕였다.
"그러시겠지요. 저는 승낙한 것으로 알아 주십시오."
"고맙네. 이젠 자큼 사정이 조금 나아지겠구만.

난 부하들에게 주택 자금을 음자해 주고 싶네. 교육비도 지원해 주고 싶고."
"김원국이도 제법 부하들의 복지 문제에 신경을 쓴 모양이지만 체계적이지 못했어,

우리처럼 질서있는 생활 환경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

나는 조직의 부하들을 내식으로 관리할 생각이야."
자리에서 일어선 이철우가 안정태를 향해 웃어 보였다.
"고맙네."
"천만의 말씀입니다 "
호텔의 현관에까지 이철우를 배웅하고 난 안정태는 방으로 돌아오자 소파에 앉아 전화기를 들었다.
결재를 받으러 들어온 부하가 그의 얼굴을 보더니 믐을 돌려 방을 나갔다.

도무지 도장을 찍어 줄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사적의 조정 경기장에 고인 물은 배수구가 막혀 있어서

올림픽 경기가 끝난 지 8년째가 되는 올해초부터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물이 썩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근처 주민들이 몇 차례나 시에 진정서를 내었고 환경처에다도 고발장을 내었으나

예산이 부족하다면서 서울시에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정한 조정 경기장이었고 실제로 근처 주민들이라고는

몇 가구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조정 경기장은 여름에 연 날리기와 보트 타기,
그리친 잔디밭에 모여 앉아 바람을 쏘이는 시민들로 휴식처 몫을 해 냈지만

올 여름에는 시민들이 찾지를 않았다. 강물의 악취에 머리가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드디어 겨울이 되어서야 시에서는 아래쪽의 배수로를 파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일곱 대의 포클레인이 닷새를 작업하여 양쪽의 둑을 높이고 나서 물꼬를 텄다.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것은 및새째부터 였다.

미사리 쪽의 얕은 개천은 금방 강물이 되어 흘러내리기 시작했으므로 시민들에게는

쾌 그럴듯한 구경거리였다.
조정 경기장의 관리 책임자인 임재천은 출발 지점의 부서져 기-는
신호대 위에 서서 물이 빠져 나간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경기장은 이제 하류 쪽의 웅덩이에 물이 약간 고여 있을뿐 바닥의 개펄이 드러나 있었다.
"계장님, 계장닙 !"
소리쳐 부르는 소리에 그는 몸을 돌렸다.
부하 직원인 권용수가 시멘트 포장이 된 좁은 길을 자전거로 달려 오고 있었다.

언제나 덜렁거리는 사람이었으나 오늘은 유난히 더 그러는 것 같았다.

물이 없는조정 경기장의 관리자는 마치 짐승이 없는동물원의 관리자나 같을 것이다.

기분이 어제부터 언짢았던 임재천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덜렁거리기 시작하면 소리부터 지를 작정이었다.
"계장님, 사람이 죽어 있습니다, 세 사람이나."
자전거에서 내리지도 않고 헐떡이며 권용수가 말하자 임재천은 입을 쩍 벌렸다.

소리 지를 생각은 순식간에 없어졌다.
"뭐? 누가? 언제?"
정신없이 그가 묻자 권용수가 머리부터 저었다.
"모릅니다, 세 사람인데, 펄 속에 묻혀 있어서."
"이런 젠장맞을 놈."
그가 달려온 길을 바라보자 아래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임재천은 권용수의 자전거를 두 손으로 쥐었다.
"이리 내, 자전거. "
"제가 태워 드릴게요."
임재천이 뒷자리에 어설프게 앉자 권용수가 다시 페달을 밟았다.
"경찰에 신고는 했나?"
"예, 전병수가 갔어요, 신고하러."
"누가 발견했어?"
"포클레인 기사가요. 썩었어요, 시체가 모두 남자인데 "
"이런 염병할."
어쨌든 조정 경기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경찰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자 임재천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세 명이 한꺼번에 익사할 리도 없고, 도무지 이곳은 수영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가 빠개지듯 아파 왔다.
최순태가 미사리 조정 경기장의 시체 인양 소식을 들은 것은 경찰병원에서

어깨에 붕대를 감고 나왔을 때였다.
병원 앞에 주차시킨 차에 올랐을 때 운전사인 고 순경이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값룡 형사한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보고할 것이 있다고 했는 데요."
"호출해 봐."
고 순경이 카폰의 다이얼을 누르자 곧 이갑룡의 목소리가 나왔다.
"나야, 무슨 일이야?"
그가 묻자 이갑룡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들려 왔다.
"미사리에서 남자 시체 세 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조정 경기장치 물을 뺀 곳에서 펄 속에 묻혀 있었는데 몸에 돌덩이를 매달고 있었습니다. "
"타살이군, "
"예, 그리고 시체에 총알 자국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총을 쏴 죽이고 돌덩이를 달아 물 속에 넣은 겁니다 "
"수법이 잔인하군. 신원을 밝힐 수 있겠어?"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 팀이 보고 있답니다. 신문사에서도 야단 들입니다. "
"빌어먹을, 내일 아침에 보도되는 거야?"
"예, 아마‥‥‥ 아무래도 조직간의 싸움에서 죽은 자 같습니다만 "
이갑룡의 말투는 김원국의 조직을 의심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기는 이철우 쪽에서 상대방을 그런 식으로 처리할 이유도 없고 들어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신문을 내려놓은 안정태는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호흡마저 멈춘 듯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밖에서 나는 희미한 소음이 귀에 들려 왔다.

아래쪽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도 났다.
이윽고 안정태는 멈추었던 숨을 가늘게 뱉어내면서 탁자 위의 전
화기를 집어 들었다.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굵으나 보기 좋은
손가락으로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굵
은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청장님, 저, 안정태올시다. "
   "어이구, 이거 웬일이오? 안 부사장께서 전화를 다 주시고."
   "갑자기 전화 올려서 실례를 한 건 아닙니까?"
   전화선을 타고 들려 오는 박동호의 놀란 목소리가 마음에 걸린 안
정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아니오, 그저 놀라서‥‥‥‥
   그와는 이무섭과 함께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다.
   안정태는 수화기를 고쳐 쥐었다.
   "저, 오늘 아침 신문 보도를 보았습니다. 미사리에서 시체 세 구가
발견되었다는 것말입니다. "
   "아아, 그것, 지금 수사중이오."
   박동호의 목소리가 가벼워졌다.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서 오늘중으로 신원 확인이 될 것 같습
                                               세 구의 시체 209
니다. 펄이 진해서‥‥‥‥
"그렇습니까?그건 다행이군요.저는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우리
하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요?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 짓을 할 놈은 대
부i
 한민국에 김원국의 조직밖에 없지 않겠어요?"
    "네, 그런데 ‥‥‥‥
    "그런데 윌니까?"
    "그들이 우리 부하들인 것으로 신원이 드러난다면 아무래도 저나
여러 어른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 또 다시 여론의 표적이 될 것 같
아서 말입니다. "
     "지난번에도 언론의 표적이 되어서 골탕을 먹었는데 만일 그 사람
 들이 우리 부하라면 또 다시 우리가 부각될 것 아닙니까? 겨우 잠잠
 해졌는데 말입니다. "
     "301, =1것이 ‥‥‥‥
    "이건 대장님도 같은 생각이십니다. "
    "그렇다고 결과를 숨길 수도 없rl 않겠소? 더구나 김원국 조직이
 저지른 일이라면 말이오. "
    "청장님께서 손을 써 주십시오.만일 저희들이 다시 언론의 표적
이 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지난번 아주일보 사건을 생각해 보
십시오."
   그러자 박동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재영의 폭로 기사가 비록 가
명이었지만 박동호도 조연급 출연자였기 때문이다
   "부탁 드립니다, 청장님 ."
210 밤의 대통령 제2부 -lil
   "알겠소. 다시 상의합시다. "
   박동호와 통화를 마친 안정태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뿜
어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다시 손을
뻗어 전화기를 쥐었다 다이얼을 누르는 그의 얼굴 표정은 박동호와
통화할 때보다는 밝아져 있었다.
   "여보세요."
   신호가 떨어지자 이무섭의 목소리가 울려 왔다.
   "단장님, 접니다. 말씀 드릴 일이‥‥‥‥
    상체를 세운 안정태가 말하자 이무섭이 말을 잘랐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고 했어. 신문에 난 세 구의 시체, 총격으
로 사망해서 수장되었다는데 ."
   "네, 단장님, 제가 한 일입니다. "
   "서틀었어, 처리가."
   "지금 마악 청장에게 부탁했습니다. 신원 확인이 될 것 같다고 해
서요. "
    "어떻게 말했나?"
    "또 다시 언론이나 여론의 표적이 되면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모
두 군 출신으로 판명되면 우리와의 관계가 노출될 것이고, 아무리 김
원국이가 했다손 치더라도‥‥‥
    "좋아, 나도 부탁해 보겠다. "
    "죄송합니다, 단장님."
    "저쪽이 알게 되면 낭패다. 무슨 소린지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단장님 ."
                                               세 구의 시체 211
   전화가 끊겼으므로 안정태는 소파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저
쪽은 곧 이철우를 말하는 것이다.
   "지문 조회가 가능해서 다행입니다. 시체가 펄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부패 상태가 심하지 않았어요."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의 이경채 수사관리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지요,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머리를 」1덕인 최순태는 창가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상자와 약품들이 잔뜩 쌓여 있는 이 실험실은
한두 번 와본 곳이 아니다. 큰 사건마다 번번이 이용하는 곳이었지만
올 때마다 냄새와 분위기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언제나 조용한 것도
싫었고 흰 가운을 걸치고 잘난 척 이야기하는 수사관도 역겨웠다.
   그렇지만 수사 협조를 받으려면 할수없는 일이었다. 이놈들의 비
위를 상하게 하면 조사 결과를 얼마든지 늦출 수도 있어서 골탕을 먹
는 쪽은 이쪽이다.
   "최 경감님, 이번에 공을 세우셔서 진급하시겠더군요. 축하합니
다. "
   그에게로 다가온 이경채가 말했다.
   "굵직한 놈을 잡으셨다지요? 오함마라고."
   "예, 하지만 김원국이를 놓쳐서요."
   최순태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아침에 전화를 했을 때 오후에는 결과가 나온다고 했었다. 요즘의
컴퓨터 지문 조회는 예전같이 시간을 잡아먹지 않는다. 반나절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일인데도 저녁때가 되도록 늑장을 부리고 있는
212 밤의 대통령 제2부 -템
것이다.
   "우리는 밤낮으로 일을 해도 어디 인정이라도 받는 줄 압니까? 나
최 경감님이 부럽습니다. "                                    는
올 때마다 듣는 소리였으므로 최순태는 대답 대신 다시 시계를 내
려다보았다.
   오후 6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6시면 퇴근 시간이고 일이 다시 내
일로 넘어 간다. 최순태가 어깨를 부풀리며 숨을 들이켰을 때 방문이
열리더니 수사관 한 명이 들어섰다. 손에는 서너 장의 복사지를 들고
있었다.
   "나왔습니다 "
   다가온 그가 이경채에게 서류를 내밀자 최순태가 손을 벌렸다.
   "흠, 김원국의 조직이 한 짓이군요. 이 사람들은 모두 특수부대 출
신입니다. "
   이경채가서류를 넘겨 주지 않고 읽었으므로 최순태는 그의 옆으
로 붙어 섰다. 속이 부글거리며 끓었으나 우선은 궁금했기 때문이다.
   "모두 같은 부대 출신이군요. 오장팍, 이민상, 박채한, 계급은 중
사‥‥‥‥
    최순태가 손을 내밀어 서류를 가로채었다.
   "이 서류, 제가 가져 가겠습니다. "
   "그러시지요, 우린 이미 복사를 해놓았으니까."
   옆에 섰던 사내가 말하자 이경채가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곧 기자들이 몰려올텐데, 괜찮겠지요?그대로 발표해도."
언론이 앞질러 발표하면 수사에 지독한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최순태는 이경채의 얼굴을 갈겨 주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

그리고는 그를 따라 웃었다.
 "할수없지요. 숨길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우린 예산도 적고."
이경채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몸을 돌린 최순태가 발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실험실을 나왔다.

진급하게 되면 이곳 출입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현관 앞에 대기시켜 놓은 차에 오른 최순태는 카폰을 뽑아 들었다.

박동호도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이얼을 누르자 직통전화의 신호가 금방 울렸다.
"머보세요."
굵은 박동호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지자

앞에 앉아 있던 운전사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청장님, 저, 최 경감입니다. "
"그래 , 어떻게 되었어?"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청장님.시체의 신원은 전직 육군 특수부태 출신의 오장규 중사, 이민상 중사,

박채한 하사로 밝혀졌습니다.
모두 이철우씨, 안정태씨와 같은 부대 출신입니다. "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김원국 조직의 짓이로군."
"틀림 없습니다, 청장님 ."
"하지만 그대로 언론에 발표하였다가는 군 출신인 것이 부각이 돼.

이철우나 안정태가 지금 하는 일도 있고, 무슨 말인지 알겠나?"
최순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연구소에서는 그대로 발표할 모양이어서 
"누가? 어떤 놈이 그래?"
"이경채 수사관이라고 그 사람이 책임자입니다.

사정을 했지만 원체 막무가내라‥‥‥‥ 
"내가 소장한테 연락하겠어."
전화가 끊겼으므로 어깨를 늘어뜨린 최순태는 카폰을 제자리에 꽃아 넣었다.
"가자. "
그가 말하자 운전사인 고 순경이 뒤를 돌아보았다.
"집으로 가자. 오늘은 오랜만에 일찍 들어가 쉬어야겠어 ."
어깨가 아직도 묵지 근했고 신경을 많이 쓴 탓인지 머리도 무거웠다.

승용차는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밤거리로 달려나갔다.
차가 큰길에서 우측으로 꺾어진 아파트의 앞길로 들어서자

최순태는 몸을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호위 차량이 한 대 바짝 뒤에 붙어있을 뿐 뒤를 따르는 차량은 없다.

최순태는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편히 앉았다.
김원국 사건을 맡으면서 주변의 경비를 철저히 해왔다.

언제나 자신의 뒤에는네 명의 부하가탄호위 차량이 따랐고 비상 전화가

기등대와 연결되어 있어서 10분 안에 그들이 도착할 수 있도록 조처가 되어 있었다.
차가 아파트의 입구로 다가가면서 속력을 줄였다.

검문소가 있기 때문이다.

검문소에는 언제나 세 명의 경찰과 다섯 명의 전경이 상주 하면서 아파트로 출입하는

차량과 수상한 사람들을 점검했다.

이것도 최순태가 가까운 경찰서의 협조를 받아 설치시켜 놓은 것이다. 

 

새구의 시체  (2)

 

 

 

 밤 9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어서 차량의 통행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때이다.

검문소 앞에 서 있던 경찰관 두 명이 정지시켰던 승용차를 보내고는 다가오는 이쪽을 향해

붉은색 신호등을 저머 보였다 정지 하라는 신호였다.
고 순경이 혀를 차고는 짧게 경적을 울렸다.

밤이어서 이쪽을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다.

이쪽이 속력을 떨어뜨리지 않았으므로 순경한 명이 길의 복판으로 나와 신호등을 저었다.
"저런 망할."
속력을 늦추면서 고 순경이 투덜거렸다 최순태는 시트에 몸을 기댄 채 잠자코 앞쪽을 바라보았다.
멍국 같은 나라에서는 수상이 탄 차를 세우고 딱지를 뗀다고 언젠가 교육 시간에 들은 기억이 났다.

그때에는 모두 열심히 들었지만 만일 한국에서 장관이 탄 차를 세우고 딱지를 떼었다가는

첫째로 동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장관의 운전사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그 영향은 윗사람을 통해 딱지를 뗀 장본인에게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이봐, 눈 똑바로 뜨고 검문하라구. 이 차를 한두 번 봐?"
차창을 내린 고 순경이 다가선 순경에게 버럭 소리를 치자 최순태는

다른 한 명의 순경이 옆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손에 든 신호등을 버릇처럼 좌우로 흔들고 있다.
그러자 운전석 옆에 다가섰던 순경이 와락 두 손을 뻗어 고 순경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눈을 치켜뜬 최순태가 뒷자리에서 가슴에 찬 권총의 손잡이를 쥐었을 때

옆쪽의 문이 열리면서 순경의 상반신이 밀려 들어왔다.
"꼼짝 마라, 이 새끼야!"
최순태는 자신의 귀를 밀치는 권총의 써늘한 촉감을 느끼면서 온 몸을 굳혔다.

고 순경의 머리가 무엇인가로 강타당하고 검문 순경에 의해 차 밖으로 끌려 내려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뒤쪽에서 총소리가 났다.

한두 발이 아닌 여러 발의 연속 사격이었다.
됫차의 운전사가 브레이크를 늦게 밟은 모양으로 최순태는 차의 뒤쪽이 부딪치는 충격으로

상반신을 앞좌석에 부딪쳤다.

옆에서 권총을 쥐고 있던 사내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최순태는 재빨리

사내의 권총을 든 팔을 움켜쥐었다.

사내가 쥔 권총의 총구가 천장으로 향하면서 총성이 울렸다.
그러자 최순태는 옆쪽의 문이 열리는 기척을 느끼는 순간 관자놀이에 무겁고 거센 충격을 받았다.

두 눈에 하얀 불꽃이 튀었고 입을 따악 벌린 최순태는 자신의 외마디 소리를 들으면서 의식을 잃었다.
"야, 빠꾸로 히서 나가!"
조웅남이 버럭 소리를 치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부하가 기어를 바꾸더니

맹렬하게 뒤쪽을 앞세우고 달려나갔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모두 다섯 사람이었다. 최순태를 가운데
두고 뒷자리에 조웅남과 이강일이 탔고 앞쪽에 두 사람이다.

그리고 이쪽으로 헤드 라이트를 비치며 달려 내려오는 또 한 대의 차량에

손채석을 비롯한 네 명의 부하가 타고 있을 것이다.
두 대의 차량은 아파트 앞쪽의 큰길로 내려오자

숨을 가다듬는 듯 잠시 멈칫거리더니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달려나갔다.

그들이 사거리를 직진해 나아가자 오른쪽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경찰 차량들이 보였다.
조웅남은 머리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경찰 차량들은 우측으로 꺾어져서

아파트의 입구로 달려가고 있었다.
머리를 숙인 채 엎드려 있던 최순태가 가늘게 신음 소리를 내었다.

옆에 앉은 이강일이 최순태의 두 팔을 등뒤로 돌려 놓더니

호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묶어 놓을 모양이었다.
"내싸둬라, 묶을 필요 옳다. "
조웅남이 최순태의 등 위에 넓적한 손바닥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깨어나서 지랄허은 한 대 또 치은 된다. 그때는 바가지가 깨질 것01다. "
"예, 형님 ."
답답한 듯이 경찰 제복의 윗단추를 풀면서 이강일이 공손히 대답했다.
그로서는 조웅남과 작전에 참가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백동혁의 부하였다가 오늘의 작전에는 조웅남의 부하로 한몫을 한 것이다.

그는 조웅남과 같이 입을 약간 내밀면서 꾸욱 다물고는 턱을 들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승용차는 밤길을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최순태가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눈앞의 사물이 제대로 보이게 되었을 때는

그.3.부터 두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그는 흔들거렸던 차 안에서 끌려 내려져 방안의 나무 의자에 앉혀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앞쪽에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는 두 사내가 있었다.

오른쪽에 앉은 사내는 조웅남이었고 왼쪽은 김칠성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들의 사진은 수없이 보아 왔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대가리가 빳빳허게 슨 걸 봉게로 정신이 돌아온 모냥여."
조웅남이 입을 열었다.
"저것 봐라,눈깔도 똑바로 백혔다. "
맞대놓고 하는 소리였으나 최순태는 입을 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봐, 정신이 들어?"
김칠성이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들었다. 어쩔 작정이냐?"
턱을 치켜든 최순태가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낮았으나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죽일테면 어서 죽여라."
"아따 그 시키, 승질 드럽게 급허네, "
두 눈을 점벅이며 최순태를 바라보던 조웅남이 입술을 부풀리며 웃었다.
"때가 되은 우리가 알아서 척일틴디 ."
김칠성이 굳은 를굴을 들었다.
"네놈 하나 죽이는 것이야 문제가 아니다. 아파트 앞에서 죽일 수도 있었지.

하지만 우리 계획은 너와 오함마를 교환하는 거야, 네가 좋든 싫든 간에."
"글쎄, 그것이 뜻대로 될까?"
"두고 봐야지 ."
더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는 듯이 김칠성이 선뜻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형님, 나가십시다. "
"아니, 나는 쬐깨 더 있다가."
조웅남이 머리를 저었다.
"야허고 야그헐 것이 있어, 쬐끔. "
"손대지 마세요."
번쩍 머리를 치켜든 조웅남이 김칠성을 노려보았다.
"이런 지기미 씨발놈이 언지부터 나헌티 이려라 저려라 허게 되았어?"
"큰 형님 지시요. 형님이 큰형님 지시를 어기면 내가 형님을 어떻게 대할지 알고 계실 거요."
김칠성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끝매듭이 분명했다.
"오냐, 이 시키야, 그려, 맞먹어라. 너허고 나허고 친구허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조웅남이 눈을 치켜떴으나 그때는 김칠성이이미 몸을 돌린 후였다.

그는 문을 닫고 나갔다.
"아니 저런, 지기미 ."
할수 없다는 듯 조웅남이 부풀려진 얼굴을 이쪽으로 돌리더니

손바닥을 좌악 폈고 냅다 최순태의 뺨을 쳤다.

손바닥은 면적도 넓은 데
다가 두께도 두껌다. 떡메로 떡을 치는 소리와 함께 최순태의 상반신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윌 봐, 이 씨발놈아."
최순태가 입에 고인 피를 뱉으면서 웃었다.
"이젠 내분까지 일어나고 있구만.너희들 조직은 이미 끝장났어, 이 미련한 놈아."
다시 조웅남의 손이 날아왔는데 이번에는 주먹이다.
가슴을 찍힌 최순태는 얼굴이 하알게 되면서 상반신을 앞으로 기울였다.

의자에 몸이 묶여 있었으므로 의자와 합께 몸이 숙여졌다.
그는 피와 함께 먹은 것을 토해내었다.
"한 사람이라도 살어 있는 한 끝장이 아녀, 이 시키야."
다시 조웅남이 주먹을 움켜쥐고 한걸음 다가서자 겨우 상체를 세운 최순태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턱이 가슴 쪽으로 움츠러들어 있었다.
방을 나온 김칠성이 강가에 붙여 세워진 아래채로 내려가자 방안에 앉아 있던 김원국이 머리를 들었다.
"웅남이는?"
"예, 지금 최순태와 함께‥‥‥‥ 
머리를 끄덕인 김원국이 상 위에 놓여진 서너 장의 종이를 건네 주었다.
"읽어 봐라."
최순태의 주머니에서 빼낸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의 서류였다.
"세 명의 시체는 모두 특수부대 출신이었다는 신원 확인서다. "
"그렇다면 이철우나 안정태의 부하였군요."
서류를 넘기며 김칠성이 말하자 김원국이 찬찬히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
"물론입니다, 형님 ."
"세 명은 총을 맞고 몸에 돌덩이를 매달고는 물속에 버려졌어."
"저희끼리 죽인 것이다. "
"형님, 그렇다면‥‥‥‥ 
"정기욱이가 했던 말이 있었지.크리스틴 호텔에서 세 명의 사내가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고.

이철우의 가족을 인수하려고 말이다 "
김칠성이 잠자코 김원국을 바라보았다 강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맛살을 찌푸린 박동호는 수화기를 들었다 붉은색의 직통 전화 였는데

비상시에 연락용으로 쓰이는 것이다.
"여보세요."
"청장님이시오?"
박동호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이상한 물건인 것처럼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이렇게 말해 온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찰청장을 이렇게 부른 부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신 누구요?"
박동호가 묻자 이제 저쪽에서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이봐, 당신 누구야?"
"난 김칠성이야."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박동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위에 부하 직원들이 있다고 해도 놈을 잡을 수는 없다.
"김 칠성이라, 네가 감히‥‥‥‥ 
"최순태한테 당신 직통 전화 번호를 들었어.

경찰청이 쾌 법석을 떨고 있겠구만, 최순태가 납치당해서."
"건방진 놈 같으리."
수화기를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으면서 박동호가 렁거렸다.
"감히 나한테 전화를 하다니.

이봐, 네놈은 잡히면 사형당할 놈이야. 쓸데없은 수작 부리지 마라 "
"오함마와 최순태를 교환하자."
"뭐라고?"
박동호가 눈을 치켜뜨고는 버럭 소리를 쳤다.
"오함마와 최순태를 교환하자고?"
"그래, 너희는 오함마를 재판에 회부시켜서 구형하고 선고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린 지금이라도 최순태를 죽일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
"이런 건방진‥‥‥‥ 
"내일 아침에 다시 연락할 것이다.

정각 10시에,

그때 교환 장소를 알려 주도록 하지 거절한다면 최순태는 죽는다.

잘 상의해 보도록."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박동호는 한동안 벽을 바라본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최순태는 어젯밤에 집 앞에서 납치되었고 그 사건으로 경찰청이 떠들씩해져 있는 것이다.
놈들은 모두 총기를 휴대하고 있는 모양이어서 경찰 다섯 명이 모두 총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다시 전화기를 쥐었다.

우선 내무장관과 다음에는 당 대표로 있는 강한석 순서로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내무장관 박민평은 집무실에 있을 것이다.

한 시간 전에도 그에게 최순태 사건을 보고했던 참이어서 박동호는 신호음을 들으면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여보세요."
박민평이 전화를 받았다.
"장관님, 접니다. "
"웬일입니까?"
그의 목소리는 경계심이 깔려 있는 듯 낯설게 들렸다.
"저 , 조금 전에 제가 김칠성의 전화를 받았는데요,

김원국이 부하인 김칠성 말입니다. "
"그 사내가 청장에게 전화를 했단 말이오?"
"예, 제 직통 전화로. 최순태가 알려 주었답니다. "
"도대체 무슨 이야기요?"
"놈들이 최순태를 잡고 있으니 오함마와 교환하자고 합니다

내일 아침 10시에 다시 전화를 주겠다는데요."
"말도 안되는 소리 ."
박민평이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그럴 수가 있단 말이오? 우리나라 역사에 그런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지만‥‥‥‥ 
"안됩니다, 청장. 경찰의 체면이, 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되겠어요?"
"거절하면 죽인다고 합니다, 장관님. "
"글쎄 ."
그러면서 박민평은 말을 끊었는데 죽이거나 말거나 자신은 모르겠다는 말을 하려다 만 듯했다 
"장관님, 놈들은 잔인무도한 놈들입니다 충직한 경찰관 한 명의 목숨이 ‥‥‥‥ 
"청장,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놈들에게 오함마를 돌려 주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장관님, 방법을 찾아 봐야‥‥‥

그냥 대책 없이 거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무슨 대책이오? 그 사이에 김원국 일당을 완전 소탕하는 길이라도 있습니까?

내일 10시에 연락이 온다면서."
"그래도 장관님 ‥‥‥‥ 
박동호는 자신의 목소리가 자꾸만 가라앉아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장관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역시 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아니 어느 누가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대답은 마찬가지일 것 이었다.
서대식은 목을 늘어뜨리고 앞에 서 있는 소년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열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은 눈에 장난기가 가득 담긴 귀여운 얼굴이었다.
"야, 이걸 이철우 고운님께 가져다 드리라고 했단 말이냐?어떤 아저씨가?"
그는 손에 든 종이 봉투를 소년의 얼굴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붕투는 가벼워서 펄렁이며 접혀졌다.

종이 대여섯 장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예, 꼭 직접 전해 드리라고 했는데, 중요한 것이라구요."
"임마, 그러니까 누가?"
그러는데 고문실의 문이 열리더니 이철우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애가 가져온 봉투가 있다는데, 그거냐?"
그의 시선이 소년과 서대식이 손에 쥔 봉투로 번갈아 옮겨졌다.
 "예, 고문님, 하지만‥‥‥‥ 
"이리 내라."
이철우가 손을 내밀었으므로 서대식은 그에게로 다가갔고 소년은
몸을 돌렸다. 봉투를 받은 이철우가 서대식의 어깨 너머로 소년의 됫
모습을 힐끗 보았으나 이내 시선을 돌렸다 
"대장님, 윌니까?"
고문실 안으로 따라 들어간 서대식이 물었으나 이철우는 소파에 앉아 잠자코 봉투를 뜯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서너 장의 복사지 였다.

복사된 사진이 우측의 상단부에 박혀져 있는 것이 서 있는서 대식의 눈에도 보였다.
서대식은 소파의 앞자리에 앉아 이철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 장씩 종이를 넘기는

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종이를 모두 넘긴 이철우가 머리를 들었다.
낯선 사람을 보는 듯이 서대식에게 향해졌던 시선이 다시 종이 위로 떨어졌다.
"이건 며칠 전에 미사리에서 발견된 시체들의 신원 조사서야."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억양이 없었다.
"그렇다면 확인이 되었단 말입니까?

신문에는 신원 불명으로 판명 되었다고 났는데요,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 발표라고."
"이것이 그 연구소의 확인서를 복사한 것이다. "
이철우가 손에 든 서류를 흔들어 보였다 
"세 명 모두 501특수부대 출신이야.오장규 중사, 이민상 중사, 박채한 하사다. "
"안정태 부사장의 직속이지요.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고 들었는 데요. "
"총에 맞아서 펄에 묻힌 것이지, 돌덩이를 달고."
"김원국이가 했겠지요?"
"조금 전에 김칠성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 서류를 보냈다고."
"크리스틴 호텔 사건이 끝나고 행방불명이 되었던 애들이 이놈들01다. "
이철우가 손에 든 서류를 바라보았다.
"내가 찾지 못했던 이유를 알았다, 이제는.
"대장님, 그렇다면 누가?"
서대식은 이철우를 고문이라고 불렀다가 다급할 때는 대장이라고도 부른다.
이철우가 머리를 들었다.
"우리측의 손에 죽은 것이다.

그들은 경찰이나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 압력을 넣어 시체의 신원 확인이 안되었다고 발표하게 했다.
이 서류는 최순태가 가지고 있었던 거야."
"안정태입니다. "
서대식의 목소리도 한껏 낮아져 있었다.

그는 이제 안정태 부사장이라고 직함을 뒤에 부르지도 않았다.
"그놈이 세 놈을 시켜 크리스틴 호텔 앞에서 일을 일으키고 발설 될 것이 두려워서 죽인 겁니다. "
"대장님, 우리는, 아니 대장님은 철저히 이용당하셨습니다.

대장님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그만해."
손을 들어 서대식의 말을 멈추게 한 이철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소리가 너무 크다. "
"안됩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오."
강한석이 머리를 저었다.
"여긴 팔레스타인도 아니고 아프리카의 미개국도 아닙니다. 인질 교환은 있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대표님, 놈들은 거절하면 최 경감을 죽이겠다고."
박동호÷가 말끝을 흐리며 강한석을 바라보았다.

박동호는 내무장관의 전화통화를 마치고는 강한석이 시간이 나기를 기다려 여의도로 달려온 참이다.
그로서는 강한석 외에 털어놓고 부탁할 사람이 없기도 했다.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최순태는 제 심복이었습니다

그가 김원국의 조직을 분쇄시키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건 나도 알아요, 박 청장."
입맛을 다신 강한석이 말했다.
"하지만 요즘 나도 입장이 편치가 않아요.

각하와 총리가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어서 내가 조정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런 일까지 짊어지기에는 힘이 벅차요."
"내무장관에게 무슨 말씀이라도 내려 주시면‥‥‥‥ 
"인질 교환에 응하라고 말이오?"
"아닙니다.

시간이라도 끌게 며칠 동안만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보 라고 말씀해 주시면 제가‥‥‥ 
강한석이 이맛살을 지푸렸다.
"그 며칠 사이에 무슨 수라도 생길 것 같습니까?"
눈을 점벅이며 강한석을 바라보던 박동호가 시선을 내렸다.

처음부터 큰 기대는 걸고 있지 않았지만 강한석의 냉담한 반응에 맥이 풀린 것이다 
"청장, 사람은 포기할 때는 포기해야 합니다.

미련을 가지면 일을 크게 그르칠 수가 있어요."
부드럽게 말하는 강한석의 말투는 마치 어린애를 달래는 것처럼 들렸다.
"만일 놈들의 말대로 인질을 교환하려면 법을 무시한 것이 되고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대통령도 특별법의 한계 내에서 고심을 할 터이고, 청장이나 장관, 그리고 나까지 나서서

그런 부담을 짊어지게 된단 말입니다. "
"이 일은 지금 누구누구가 알고 있지요?"
"저와 장관, 그리고 대표님해서 셋밖에 없습니다. "
"그럼 우리 셋만 알고 끝냅시다. "
"내일 전화가 오면 단호하게 거절하세요.

최 경감의 가족에게는 후에 충분한 위로금을 전달해 주고 "
박동호가 번쩍 머리를 들었으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 입을 축인 강한석이 부드러운 표정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놈들이 떠들어 댄다면 모르지만 인질 교환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도 없었던 것으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청장의 부담도 덜어질 거요."
말을 마친 강한석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할말을 다했으니 이제 그만 나가라는 표시였다.

박동호는 소파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청장, 기운을 내요. 그리고 큰 것을 생각해요, 큰 것을 "
"저는 이만‥‥‥‥ 
강한석은 대표위원실의 밖에까지 따라 나와 그의 손을 잡고는 여러차례 흔들어 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박동호는 생각난 듯이 카폰을 빼어 들었다.

다이얼을 누르자 이내 신호가 갔다.
"여보세요."
"접니다. "
"아니, 청장님께서 웬일로."
이무섭의 목소리는 놀란 듯 조금 컸다.

그에게 박동호가 직접 전화하는 것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급한 일이 있어서요."
"말씀하시지요."
박동호÷가 인질 교환문제와 장관과 대표의 반응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마치고 나자

이무섭이 말했다.
"청장께서 어려운 입장이 되셨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도와드리지요. "
"글쎄, 그것이 상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어서요."
"오함마는 지금 경찰 병원에 있지요?"
"예, 어제 수술이 끝나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모양인데요."
"그것 참, 어떻게 방법을 찾아 봐야지요. 최 경감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
그러나그 방법이 문제인 것이다.

만일 상부의 허락도 없이 오함마에게 손을 댄다면 옷을 벗는 정I÷가 아니다

현행법으로 따져 몇 년 징역을 살아야 될지도 몰랐다.
박동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무섭의 말투는 고마웠으나 그쪽에서는 책임질 일이 없었으므로

말로 생색을 내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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