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밤의 대통령

8. 습격

오늘의 쉼터 2014. 12. 6. 08:39

8. 습격

 

 

 

회의실 안은 한동안 정적에 싸여 있었다.

방음 장치가 되어 있는 방이어서 바깥의 소음이 없는 대신 방안에서는

종잇장 넘기는 소리까지 들렀는데 지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이중섭이 상체를 세우자 의자가 부스럭거렸다.
"이 기사 내용대로라면 이철우와 이무섭의 배후에는 누군가가 있구만.

강한석 장관과 박동호 청장은 지원 세력이고. 그렇지, 기무사령관도 그 속에 끼어 있군."
그의 말소리가 넓은 회의실의 구석구석을 메줬다.
"그들은 평온한 밤의 세계에 일부러 풍파를 만들어 김원국의 조직을 붕괴시켰군.

이철우의 가족이 참살된 것도 그들 자신의 짓이고.
우리는 놈들에게 철저히 이용당했구만."
"각하."
첫기침을 한 강한석이 상체를 세우자 이중섭이 눈을 치켜였다
"잠자코 들어 ."
"네, 각하."
"자네는 그저 사건을 덮어 두려고만 했어. 우선 당 대표가 되고 보자는 생각이었지.

차기 대통령이 자네의 목표니까.신문이 정확하게 지적해 놓았군."
"경찰청장은 아예 놈들의 하수인 노룻을 했구만 하석재가 갑자기 물러난 것도

앞뒤가 맞고. 이게 누구야, 유혁근 경감이 템소니 사고로 죽은 것도 금방 이해가 가는구만."
"f13r. "
김동진 국방장관이 입을 열었다.
"신문 기사만 가지고는 판단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사를 쓴 이재영이라는 여자는 김원국 조직에게 매수를 당했거나 아니면‥‥‥‥
"이철우 조직으로부터 납치당하려다가 도망쳐 나봤다고 적혀 있구만, 여기에."
이중섭이 손가락으로 신문의 한쪽을 짚었다.
"그때의 시간과 상황, 증인들이 실명으로 적혀 있단 말이야."
김동진이 입을 닫자 이중섭이 옆쪽에 앉아 있는 이찬형을 바라보았다.
"자네는왜 아무 말이 없나? 신문에 안기부를 비판한 내용이 없어서 그런가?"
"각하,특별 조사단을 구성해서 이 일들의 진위부터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
회의실의 사람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이중섭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그가 말을 이었다.
"조사단은 군과 검찰, 경찰의 합동으로 하고 여야 의원들을 참관인의 자격으로 동석시켜서

철저하게 조사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
"그건 일단 이 기사를 인정하는 모양이 되는데요. 신템성만 더해 주는 결과가 됩니다. "
그렇게 말한 것은 법무장관인 장한규였다.

그는 버릇처럼 안경테를 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물론 각하께서 용단을 내리시면 따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민심은 더욱 소란스러워집니다. 그리고 조사 결과에 따라서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일단 강력하게 부정하고 나서 비밀 수사를 시키는 것이 ‥‥‥

물론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만."
김동진이 이중섭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받았다.
"부장님, 기무사에서 이철우나 이무섭에 대한 자료 제공을 보류시켰다가 최근에야

안기부에 주었다는데."
대통령 비서실장인 윤성하가 이찬형을 바라보았다.

그는 대통령의 심중을 읽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도대체 그런 내용을 이 여자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전에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장관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가 이중섭의 얼굴로 시선을 모았다.

그러나 이중섭은 신문을 노려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그때에는 나한테라도 이야기를 해주셨어야지."
김동진이 말하자 이찬형이 똑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김 장관이 말씀하셔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오히려 군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반발이 일어났겠지요."
"내 말은 최소한도 나는 알고 있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
"알고 계시면 무엇 합니까?모르고 계시는 게 약이지요."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중섭의 목소리가 쩌렁 방안을 울렸다.
"마치 정권 전체가 놀아났고,자네만충실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 것 아냐?"
"각하, 저도 여러 차례 각하께 보고를 드렸었습니다.

하지만 각하는 께서는 귀담아 들으시지 않으셨지요. 뿐만 아니라‥‥‥‥
"듣기 싫어."
이중섭이 눈을 치켜뜨고 이찬형을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정부를 혼란에 빠뜨리다니, 안기부는 그 책임을 져야만 해 "
다시 회의실은 정적에 싸였다.

모두들 숨을 멈춘 듯 움직이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 이중섭을 바라보았다.
"윤 실장."
이중섭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었다.
"네, 각하."
"한 대표한테 연락해서 당 삼억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해,
오늘 당장."
"알겠습니다, 각하 "
"이런 분위기에서는 당 대회를 치를 수가 없어. 연기해야 돼. "
"그리고 당 대변인이 강한 부정을 하도록 해. 아주일보의 기사 내용에 대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각하."
이중섭은 머리를 돌려 좌우에 앉아 있는 강한석과 이찬형을 바라보았다.
"이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겠어. 물론 비밀 수사를 하겠지만

그동안 해당자들은 수사에 적극 협조해 주어야겠지."
강한석과 이찬형이 머리를 숙였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지금이 어느 때라고."
탄식하듯 이중섭이 말하면서 어깨를 늘어뜨리자회의실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랄았다.
"각하, 외람됩니다만‥‥‥
입을 연 것은 국방장관 김동진이다.
"이렇게 군이 개입되어서 아직 무어라고 말씀 드릴 입장은 아넘니다만,

대다수의 군인은 국가에 충성하고 국방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 주십시오.

이 기사는 왜곡되고 조작된 것입니다 이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시기를 바람니다. "
"국방부에서도 기무사를 조사해야겠지."
"물론입니다, 각하. 제가 직접 지휘하했습니다. "
"이철우, 이무섭, 이 사람들에 대해서 철저히 알아보도록."
"알겠습니다, 각하."
이찬형의 시선이 이중섭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섯 달 전에 그가  자료를 만들어 이중섭에게 제출했었다.

그것이 강한석에게 보여겼고 나T에는 유야무야었던 일이었다.

"잘도 꾸며내었군. 소설같이 말이야."
이무섭이 머리를 들어 앞에 앉은 이철우와 안정태를 번갈아바라보았다.
"안기부의 고성섭, 이찬형이가 수사기관의 자료를 제공했고,

김원국이가 저쪽의 자료를 주었어. 그래서 이런 작품이 나온 거야."
"이거, 신문에 제 이름까지 나와 있어서 입장이 거북합니다. "
안정태가 찌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김원국이 이런 공작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채영을 가로채 가서는 이렇게 이용하다니."
"지금 청와대에서는 비상 각료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야.

당분간 정국이 시끄러울테니까 조신하고 있어야 돼."
"저희들이야 그럴 수 있습니다만 건드리는 건 저놈들 아님니까?"
이무섭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희미하게 옷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모아 담을 수 없어 우린 이미 기반을 굳혔고

우리의 지원자들하고도 단단히 밀착되어 있어.

시끄럽기는 하겠지만 곧 조용해져 ."
그러자 탁자 위에 내려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집어든 이무섭이 스위치를 올렸다.
"여보세요."
그의 시선이 앞에 앉은 이철우와 안정태를 臺고 지났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찾아뵙겠습니다. "
스위치를 내린 이무섭이 자리에서 일어셨다.
"일이 있어서 난 나가 봐야겠어. 자네들은 쉬어 가도록 해."
이무섭이 서둘러 방을 빠져 나가자 그들은 다시 소파에 랄았다.
이무섭이 사용하는 아파트 중의 하나였는데 자주 쓰지 않는모양인지 응접실에는

소파 한 세트만 놓여 있을 뿐 별다른 장식이나 가구가 없다
이철우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저녁 6시가 넘어 있었다.
"벌써 저녁때가 다 되었군요."
안정태가 입을 열었다.
"저,밖에 나가서 저녁 식사나 같이 하실까요? 제가술이라도 한 잔‥‥‥‥
"크리스틴 호텔에 애들을 보냈다고 적혀 있는데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철우가 입을 열었다.
"우리 쪽에서 세 명을 그곳으로 보내 내 가족을 인수한다고, 그러다가‥‥‥‥
"나 참, 대장넘도, 그것을 믿으십니까?"
않은 입술 끝을 비틀면서 안정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놈들도 고도의 교란 작전을 꾸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유혁근이도 당시에 그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유혁근이는 죽었어. 우리 손으로 죽였지. 그리고 그가 본 것은 고태석뿐이야."
"대장넘, 유혁근이는 김원국과 내통하고 있었던 놈입니다. "
"대장넘 말씀을 들으니까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 같습니다. "
"난 강만철뿐만 아니라 김원국의 처와 자식을 모두 죽였어."
이철우가 탁자 위에 놓인 담배갑에서 담배를 때어 물었다.
"지금도 김원국이, 조웅남이 둥이 내 눈 앞에 나타나면 가차없이 죽일 생각이야. 하지만‥‥‥‥
담배에 불을 붙인 이철우는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김원국의 처자식이 목표가 아니었어. 방해가 되어서 희생되었던 거야."
"그건 저도 압니다. 단장넘도 이해하시구요.

그래서 김칠성의 처를 풀어 주셨을 때도 아무 말씀 없으셨지요."
"나는 내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자식들을 한꺼번에 잃었어. 화가난 김원국의 부하들한테."
"저희들도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농들이 설마 그런 식으로 나을 줄은‥‥‥‥
"그놈들도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네. 우리 작전이 무모했던 것 같아."
"단장심도 후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
"지난 일이야."
이철우가 담배를 비벼 11며 말했다.
"단장넘의 작전에 내가 가타부타 말할 입장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지.

하지만 놈들, 교활한 수단을 쓰는구만."
"우릴 모함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지요."
"그럼 저녁이나 먹으러 가세."
자리에서 일어선 이철우가 말하자 안정태가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멋진 곳에서 한잔 대접해도 좋겠습니까? 오랜만에 회포도 푸실 겸."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뀌 보려는 듯 안정태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져 있었다.
날카롭게 쇠를 긁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더니 앞쪽의 야산 중택이 흙먼지와 함께 터져 올랐다. 그리고는 폭발음이 귀를 울렸다.
"째 잘 핀는군."
쌍안경을 내린 변상훈 준장이 황인규를 바라보았다.

155밀리 곡사포 사격이었다.

포탄은 둥근 원의 한복판에 연거푸 세 발째 명중되고 있었다.
"어때? 황 대령, 포 사격 소리를 들으니까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나?"
"후련합니다, 참모장넘 ."
"사무실에만 박혀 있어서 야전군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거야."
"아넘니다, 참모장넘. 저는 이것이 체질에 맞습니다. "
사단장인 이동혁 소장이 다가왔으므로 그들은 말을 멈추었다.
"이봐, 참모장, 탄착 지점을 좌로 백 미터 지점으로 바꾸라고 해."
이동혁이 지휘봉으로 좌측 계곡을 가리켜 보였다.
"좌측으로 백 미터 지점입니까?"
"=1래 . "
변상훈이 아래쪽 지휘소로 내려가자 이동혁이 힐끗 황인규를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체구였으나 단단한 몸집이었고 랫볕에 탄 피부에 눈빛이 날카로운 얼굴이었다
"나하고 내기할까? 다음 포탄이 정확하게 계곡으로 떨어지는가 아닌가로 말이야."
난데없는 말이어서 황인규가 주춤 그를 바라보았다.
"어때? 자네는 다음 포탄이 어떻게 될 것 같나? 빨리 말해, "
"계곡에 적중할 것 같습니다, 사단징심."
"왜?"

ㅁㅁ/////////

 "그쯤 이동하는 것은 기본 아님니까?"
그러자머리 위에 쇳소리가들렸고 계곡의 중심 부분에서 나무와 돌덩이들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이동혁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다시 한 발이 날아가 같은 자리를 때렀다.
"자네, 나하고 오 소장하고 동기생인 것 알고 있지?"
이동혁이 묻자 황인규는 몸을 굳혔다.
"알고 있습니다, 단장넘."
쇳소리를 내며 포탄이 그들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 계곡의 나무를 하늘로 뽑어 올렀고

폭음이 울렀다.
"국방부의 특명 조사단이 기무사를 뒤집고 있어. 자네는 용케 잘 fHol ."
쌍안경을 들어 계곡을 바라보면서 이동혁이 말했다.
"자네, 그 사건에 관계가 있나? 내 말은 아주일보에 난 그 사건을 알고 있느냐는 이야기야."
황인규가 머리를 돌렸으나 그는 앞을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사단장넘. 그래서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지요."
다시 포탄 한 발이 날아갔다. 그러나 그놈은 계곡과 원래의 탄착 지점의 중간 부분을 때렸다.
"그러면 그렇지."
괌안경으로 앞쪽을 바라본 채 이동혁이 소리쳤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사단장심, 서울은 흔란 상탭니다.

읽으셨다시피 우리 군인의 명예는 몇 사람에 의해서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
이동혁이 템안경을 내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어, 황 대령."
"이런 일은 달갑지 않아. 끼어들기 싫단 말이야. 알겠나?"
"알겠습니다, 사단장님 ."
"이무섭이는 내가 7E사단에서 대대장을 할 때 중대장을 했지. 일 년 가깝게 같이 있었어."
그러자 참모장인 변상훈이 그들에게로 다가았다.
"사단징심, 포 사격을 계속 할까요? 예비 포탄은 있습니다만 "
"그만, 됐어 ."
이동혁이 몸을 돌려 황인규를 바라보았다.
"자넨 이곳에서는 주변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야. 황 대령,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사단장넘 "
"난 야전으로 만족해 서울에 집착하지 않는단 말이야."
변상훈이 눈을 점택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망할 』柳들 "
갑자기 이동혁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쳤으므로 황인규와 변상훈은 몸을 굳혔다.
"포탄 한 발이 얼마인데 50미터나 빗나간단 말이야!"
산새 한 마리가 그들의 머리 위를 황급히 날아서 뒤쪽으로 사라져 갔다.
"정기욱이를 만나러 간 것은 확실해?"
박웅근이 얼굴을 찌푸리며 안재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비대한몸을 움직여 소파에서 상체를 세웠다.
"도대체 그놈이 정기욱이를 왜 찾아갔단 말이냐?"
"머리 회전이 빠른 놈입니다. 정기욱이하고도 거래를 맺으려고 했을 겁니다. "
안재일이 짙은 눈법을 치켜든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번 조웅남이 사건을 실패로 끝냈기 때문에 불안했을지도 모릅니다. "
"네 생각은 놈이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레오날드 콜럽에 들어갔지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부하들은 정기욱이가 모두 돌려 보냈구요."
"죽었나?"
"글쎄요, 그것이 ‥‥‥‥
안재일이 선뜻한 시선을 준 채 머리를 한쪽으로 눕혔다.
"정기욱이가 최장수와 원한 관계에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것이
"얘기하다가 싸웠을지도 모르지 ."
"두 놈이 사이좋게 클럽으로 들어갔답니다. 최장수의 부하들한테 들었습니다만."
"어했든 그놈은 우리를 배신한 것이야. 나 몰래 정기욱이를 만나 다니. 없어진 것은 잘된 일이다. "
결론을 짓듯이 박용근이 말하자 안재일은 눈을 깜박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그놈의 신문 기사 때문에 골치가 아프구만."
박용근이 혀를 랐다.
"대통령은 월 하고 있는 거야? 안기부장 놈을 당장에 구속시키지 않고. "
"국민학생이 봐도 그 일은 안기부가 김원국이하고 결탁해서 만든 일이야.

그런데도 아직 그대로 두고 있다니 "
"특별 조사 위원회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조처가 될 거라고 하더군요. "
"흥. "
코웃음을 친 박용근이 다시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들도 조사 위원들의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검찰과 경찰, 여야 의원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박용근의 조직뿐만 아니라

안정태, 정기욱에 대해서도 이틀째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꼬투리를 잡아낸 건수는 없다.

워낙 이쪽이 서류와 증거물을 철저하게 갖춰 놓은 데다가 조사단원들의 태도도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좌우간 조사가 발리 끝나야겠어. 이건 도무지 짜증이 나서."
"그것보다도 김원국이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번 신문 수송 트럭 일만 해도 놈들의 방해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이봐,호구 조사까지 하고 있는 중이야. 누가 알고도 이러고 있는 줄 알아?"
박용근이 짜증을 내었으므로 안재일은 말을 멈추었다.

그도 자신들의 위치가 이제는 물기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철우와 이무섭씨가 내일 조사를 받을 거야.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았어."
박용근이 입을 열자 안재일이 눈을 껌백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비록 비공개의 조사지만 그들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이다.
"어디서 말입니까?"
"고려 호텔."
"우리가 지원해야 하겠군요. 만일‥‥‥‥
"안돼, 그러지 말라고 하더군, 이철우가. 자기들 걱정은 하지 말라고."
"그러면 안정태가 합니까?정기욱이는 아니겠고."
"모두 아냐. 그들 직할 조직이 있으니까. 그리고 경찰이 새까맣게 깔리게 될 거야."
시계를 내려다본 박용근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벌써 저녁때가 다 되었군. 요즘은 바쁜 일이 많아서 그런지 시간이 잘 가."
그 시간에 안정태는 승용차의 됫자리에 굳은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다.
창 밖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서 차량들의 미등이 뚜렷이 드러났다.

승용차는 속력을 내어 올림픽 대로를 달려나갔다.

좌측으로 천호대교가 바라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부하가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부사장넘, 곧장 갑니까?"
"그래, 곧장 간다. "
던지듯이 안정태가 말하자 부하는 잠자코 머리를 돌렸다.

미사리로 가자고만 해놓았으니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뒤를 따르는 경호차도 없이 이렇게 차 한 대로 움직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부하의 불안한 마음을 읽었던지 안정태가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 마라, 저쪽에 가면 우리 식구들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부사징설 ."
얼마 전에 부사장으로 승진된 안정태였다.

사장은 전문 경영인 출신이었으나 이름만 걸어 놓았을 뿐 리즈 호텔을 비롯한

업체들을 실제로 관리하는 것은 안정태였다.

그의 승진도 자신이 스스로의 직급을 올려놓은 것이다.
승용차는 가로등도 없는 길을 맹렬하게 오르고 내리며 달려나갔다.

조정 경기장을 지나고 도로가 좁아진 지점에 오자 안정태는 몸을 내밀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저기, 오른쪽에 샛길이 있다. 그 길로 들어가."
셋길이 바로 앞쪽에 있었으므로 운전사는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오른쪽으로 헨들을 끈었다.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울통불통한 길이다
좌우는 이제 곁은 어둠에 덮여 있어서 사물의 윤곽만 회미하게 드러났다.

2關미터쯤 앞으로 나아가자 불빛에 허름한 민가 한 채가 드러났다.

얕은 동산 밑에 자리잡은 외딴 농가였다.

"저기에 세워라."
안정태가 상체를 세우면서 말했다.
"그리고 너희들은 차 안에서 기다려 ."
"부사정심 ‥‥‥‥
앞좌석의 사내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맛살이 찌푸려져 있었다.

차가 농가 앞에 멈추어 싫다.
"걱정하지 말라니판 그래."
그를 향해 옷어 보이고 안정태는 밖으로 나와 거침없이 농가를 향해 다가갔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나무 판자 문을 밀자 문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방안에 불이 켜져 있었고 방문 옆의 토방에 서 있던 사내가 안정태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대장님, "
"그래 , 다 왔나?"
"네,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안정태는 그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쳤다.

다섯 평쯤 되는 한옥의 온돌방이었지만 장판은 펄어져 너덜거렀고 방안에는 가구가 아무것도 없다.

그의 기척을 듣고 있었던 듯 두 명의 사내가 일어서 있다가 그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래, 그 동안 잘들 있었나?"
"네 , 대장넘 ."
안정태가 아랫목에 앉자 세 명의 사내는 그를 마주 보고 나란히 앉았다.

천정에 매달린 100와트 전구가 너무 환한 탓인지 안정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가 너희들을 고생시키는 것 같다. "
그들을 둘러보며 안정태가 말하자 왼쪽에 앉은 사내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아넘니다. 돈을 충분히 주셔서 이젠 식구들이 안정이 되었습니다. 다만‥‥‥‥
"다만. "
다음 말을 계속해 보라는 듯 안정태가 그의 끝말을 반복하자 그가 머리를 들었다.
"전처럼 대장넘 모시고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빈둥거리는 것은 싫습니다. "
안정태의 시선이 옆쪽의 두 사람에게로 향해졌다.
"너희들도 그러냐?"
"저는 대장넘이 기다리라고 하시면 기다립니다 "
그렇게 말한 것은 가운데 있는 사내였다.
"저는 이번에 가게를 차려서요, 당분간은 그 일을 해야‥‥
"세 명 모두 제각각이로구나."
안정태의 얼굴에 옷음이 떠올랐다.

끝이 위쪽으로 올려진 눈셉이 조금 아래쪽으로 눕혀졌다.
"요즘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지?"
"압니다. "
끝쪽의 사내는 세 명 중 선임이다.

그가 언제나 첫 대답을 했다.
"저희들이 했던 일이 얼마나중요했던 것인가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
웃음 띈 얼굴로 안정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을 부른 것이다. "
"저는 언제든지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대장님."
"고맙다. "
그는 옆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집에서 나을 적에 조심들은 했겠지?"
"물론입니다, 대장님. 저는 외국에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
가운데 사내가 대답했다.
"저도 친구한테 다녀오쳤다고 했습니다만."
옆쪽 사내가 말했다.
머리를 끄덕인 안정태가 자리에서 일어싫다.

여전히 웃음 띈 얼굴이었다.
"그럼 됐다. "
어느 사이엔가 가슴속에서 소음기가 끼워진 권총을 꺼낸

그는 우선 끝쪽의 사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마에 구멍이 雲린 사내가벌떡 뒤로 넘어졌고 다시 한 발의 총 알이

가운데 사내의 가승을 들었다. 그 사이에 왼쪽의 사내가 정기듯이 일어났으나

그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머리에 총알이 둘고 지나가는 바람에

그는 꼿꼿하게 선 채로 뒤로 넘어지며 죽었다.
業은 입술을 꾹 다문 채 한동안 세 구의 시체를 바라보던 안정태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갸웃 하더니 가운데 사내를 향해 다시 방아최를 당겼다.
이무섭은 옷음 띈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
"전 예편하고 나서 시골의 농장에서 사슴을 키웠습니다.

조시하셨다시피 사슴 농장에서 밖으로 나간 적이 없지요."
"사슴이 백 마리가 넘는군요."
홍인철 검사가 서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농장 종업원들의 증언과도 일치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철우씨하고 연락하신 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
얼굴의 웃음기는 지워지지 않았으나 이무섭은 피로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친구도 예편되고 나서 연락을 끊더군요.내가 어디 있는가도 몰랐을 것이고

설령 알고 있었다손 치더라도 찾아을 사람이 아넘니다. "
"댁이 배후의 조종자라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가 언젭니까?"
"글쎄, 농장에는 전화도 없고, 텔레비전이나 신문도 보지 않습니다.

그저 세상과 인연을 맺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걸 알게 된 것은 불과 며칠 전입니다.

사료를 가져다 주는 사람이 신문을 들고 왔더군요.

처음에는 이름이 비슷한 다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
홍인철이 옆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바로 옆에는 사복차림이었으나 한눈에 군인 티가 나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證은 머리에 端대 후반인데도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사내였다.
그러나 그는 굳게 입을 다물고 이무섭의 머리 위쪽 벽을 바라보고 만 있다.
"그럼 내가 한말씀 묻겠는데."
헛기침을 하고 상체를 세운 것은 맨 끝쪽 자리에 앉아 있던 야당인 정의당 국회 의원 박일룡이다.
"댁의 농장 종업원 여섯 명은 모두 택이 군대 시절에 데리고 있던 부하 아님니까?"
"그렇습니다, 의원님."
이무섭이 머리를 끄적였다.
"제대하고 나서 일자리를 찾지 못했지요. 그래서‥‥‥‥
"안정태씨를 아시지요?"
"압니다. "
"그가 별안간에 리즈 호텔의 부사장이 되었어요.

격투기 교관 출신이 말입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사람이 말이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능력을 인정받았겠지요."
"무슨 능력 말입니까?"
"글쎄요, 그것은 잘‥‥‥‥
"그가 리즈 호텔뿐만 아니라 수백 개의 업체들을 장악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는데."
"잠판만."
그의 말을 자른 것은 여당 국회 의원인 한성민이다.
"박 의원, 추측하는 말로 시간을 소비하지 맙시다. 증거에 기출해서 진행시킵시다. "
"증거야 만들면 되는 것이지, 한통속인데 "
박일룡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한성민을 흘겨보았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사를 해야 할 것 아님니까?"
"그렇다면 추측을 밀어붙여서 자백을 받으면 국민이 납득하겠소?
답답한 양반이시군."
"아니, 쥐요?"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르게 그들은 부및치고 있다.
홍인철이 나졌다.
"이무섭씨, 그렇다면 당신이나 이철우씨가 세간의 화제에서

주요 인물이 되고 표적이 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조작입니다. 군에 불만 세력이 있다는 것을 과대 포장해서

정권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반역적인 조작이오."
이무섭의 얼굴이 어느덧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앞에 앉은 네 명의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군과 정부, 또는 군과 민을 이간질시키려는 도당들이 나나 이철우를 제물로 삼은 겁니다.

나는 이제 이 일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
"묵과할 수 없다니요?"
"내 누명을 벗어야 할 것 아님니까?

이렇게 산속에만 있다가 매장 당할 수는 없습니다. "
"그렇다면 농장에서 나오시겠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결심했습니다. "
사내들이 서로 얼굴을 돌아보았다.
"떳떳하게 여러분 앞에 모습을 보이지요.

이젠 자존심을 따질 상황이 아님니다.

적극 해명하고 결백을 보여 드릴 작정입니다. "
"이철우씨하고도 만나시겠군요."
그렇게 물은 것은 박일룡 의원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마 자주 만나게 되겠지요.

그 사람은 무고한 가족들까지 참살 당한 가없은 사람입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절실할 겁니다. "
피곤한듯 홍인철이 어깨를 위아래로 비틀어 보면서 고재철 준장을 바라보았다.
"고 준장넘. 하실 말씀 있습니까?"
"없습니다. "
이무섭에게 시선을 준 채로 고재철이 머리를 저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이만 끝내고 수고스럽지딴 모레 다시 모이기로 하지요.

그동안 자료를 보완할 것도 있으니까요."
홍인철의 말에 한성민이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흥 검사, 시간 제한은 없지만 위에서 기다리고 계실텐데 말이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다리고 계신다고 해서 서둘러 마무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
"허, 이 양반이 ."
"그럼 모례 다시 모이도록 하고, 이무섭씨는 서울에 계실 것이지요
홍인철이 묻자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한성 호텔에 묵고 있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이철우씨를 만나시거나 연락하시면 안됩니다 "
"알고 있습니다 "
이무섭이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어서 수사가 끝나 그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서울에서요."
"한성 호텔이라고 그렸렀다. "
조웅남이 주먹을 움켜쥐자 밥그릇만한 사이즈가 되었다.
"그 씨발놈이 대장인 모양민디 그놈만 쥑이은 되겼다. "
방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그의 얼굴은 수염 투성이었고 입고 있는

옷은'기름기가 번질번질한 점퍼에 작업복 바지 차림이다.
"형님, 그러시면 한성 호텔로 쳐들어가시려고요?"
손채석이 넓은 얼굴을 쳐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넓게 벌어진 두 눈이 꿈벅거리고 있는 것이 가오리와 비슷했다.
"그려, 가서 쪽밭을 맹글어야지."
"형님, 쪽밭은 왜요?"
"이런 멍청헌 놈, 너는 대가리가 납작혀서 골이 부족헌 모냥여. 뇌가 눌렸등가."
"그 시키가 저 혼자 있렀냐?지 부하들허고 같이 있을텐디, 어뜨케 그놈 하나만 잡을 수 있렀냐?"
"형님, 경찰이 잔뜩 깔려 있다지 않습니까?"
손채석도 이번에는 녹녹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오산에서 발안으로 가는 중간 지점에 옛날에 새마을 회관으로 쓰던 밝은 건물이 있다.
산비탈에 세워진 단충집이었는데,지금은 폐가가 되어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김포에서 빠져 나와 곧장 이곳에 입주하였는데 근처 마을에서 자란 부하 한 명 덕분이었다
"경찰이 있으면 어뗘?최순태인가 그노무 시키가 있으은 더 좋겠다. 요절을 내버리게."
조웅남이 눈을 부름뜨고 말하자 손채석이 입맛을 다셨다
"형님, 이무섭이가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
"무신 소리 ,"
기가 막히다는 듯이 조웅남이 턱을 들고 혀를 참다.
"여당 대변 보는 놈이 말허는 거 못 들었냐?

절대로 그런 일이 음다고 혔잖여? 그런디 조사를 혀? 다 쇼다, 쇼여."
"이무섭이가 그것 때문에 호텔에 있다고‥‥‥‥
"이 씨발놈이 되게 말이 많고만. 너는 그것이 탈이여."
"신문에 그렇게 났잖여? 이무섭이가 조종혔다고. 이철우, 박용근이 , 그러고 그 누곤‥‥‥
"정기욱이 말입니까?"
"그렇지, 정기욱이는 이무섭이 한티서 직접 지시를 받은 놈이여 "
"그렇다고 정기욱이를 증인으로 내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큰형 넘 지시로 당분간은 우리가‥‥‥‥
"아이고 시끄러 ."
조웅남이 와락 얼굴을 찌푸리자 수염 끝이 좌우로 넓게 별쳐겼다.
"나는 만철이 복수를 혀야 헌다. 골치 아픈 얘기 말어라.

이무섭이가 있는 디를 알은 가서 척이는 거여. 간단혀."
"그 담에는 이철우, 이노무 시키 "
조웅남이 들어질 듯 노려보았으므로 손채석이 머리를 돌렀다.
"이노무 시키를 잡어서 간을 꺼내 먹을 거다. 냉장고에 넣고, 다 먹을 거여."
"형님, 식사 가져올까요?"
방바닥에서 엉덩이를 든 손채석이 물었다.

조웅남이 소리내어 침을 삼켰다.
마당으로 나온 손채석은 대문 앞에서 서성대는 부하 한 명을 손짓으로 불렀다.
"예, 형님 . "
다가온 부하의 어깨를 잡아 끌고 마당의 구석으로 간 손채석이 힐끗 안방을 바라보았다.
"너, 지금 해안 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가."
"예, 가지요. 그런데 왜요?"
부하가 긴장한 듯 한히 그를 바라보았다.
"왜긴 왜야, 이 자식아. 큰형님한테 가는 거다.
내가 방법을 알려줄테니까."
"큰형님이라면, 저 ‥‥‥‥
"김원국 형님이다. "
부하가 침을 끌어모아 삼켰다.
"인천 월미도에 가면 한국 첫집이라고 있어. 금방 찾을 수 있어."
"예, 형님. 거기에 계십니까?"
"아녀, 거기 가서 주성택이를 찾어. 거기 지배인이다. "
"예, 주성택이 , "
"걔한테 내 얘기를 해. 내 동생벨이니까."
"그러면 저하고‥‥‥‥
"맞먹어도 된다. "
"예, 형님 ."

"성택이는 내가 웅남 형님하고 같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놈한테 있는 대로 이야기를 해."
"해도 됩니까?"
"웅남 형님이 그놈이 연락책이라고 했다. "
"그러면 됩니까?"
"아니, 성택이가 백동혁이를 만나게 해줄 거야."
"아아, 개백정 형님. "
"백동혁이를 만나면 된다. 걔가 너를 데리고 큰형님한테 갈 거야. "
"알겠습니다. 가지요."
어깨를 활학 편 부하가 몸을 돌리자 손채석이 입을 적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야, 이 씨발놈아, 거기 서."
부하가 몸을 돌려 커다랗게 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요? 형님."
"이 시키야, 가기만 하면 월 해? 이 돌대가리야, 용건을 듣고 가야 할 것 아녀?"
"아, 용건, 그건 뭔데요?"
그러자 안방 문이 열리더니 조웅남의 거구가 나타났다.
"야, 밥 안 주냐? 밥 준다은서."
커다랗게 소리치자 부엌 앞에서 꾸물대던 두어 명의 부하들이 빨려 들어가듯

부엌 안으로 사라졌다.
"야, 채석아."
조웅남이 마당 구석에 서 있는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예, 형님 , "
"형님이 나를 찾으라고 수배혔다는디 애들 조심허라고 혀 ."
"예, 형님 ."
"나는 죽어도 되야. 만철이 웬수를 갚으은 말여. 그때는 느그덜은 큰형님한티 가야 헌다. "
‥‥‥‥예, 형님 ."
"밥 갖고 와, 빨랑."
조웅남이 방안으로 사라지자 부하가 손채석을 바라보았다.
"형님, 그래서요?"
"뭘 말이냐?"
"용건 말이오."
"네 71 rl . "
어깨를 늘어뜨린 손채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서 일 봐라."
"그럼 안 갑니까?"
"그래, 못 간다. "
부하가 대문 쪽으로 몸을 돌렸고 손채석은 휘적이며 부엌으로 다가갔다.

마을에서 사온 밝이 줄에 매여 있다가 비틀거리며 손채석의 발을 피했다.
열린 베란다쪽의 창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응접실로 휘몰려 들어 왔다.

소금기가 섞인 바람이었고 피부에 닿는 감촉은 서늘했다.

10월 하순이었다.
한낮의 태양이 비치고 있었으나 첫살은 무겁게만 느껴질 뿐 힘을 잃고 있었다.

응접실에 앉은 세 사내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고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방안의 어두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김원국이 상체를 세웠다.
"이무섭이는 한성 호텔에 있지만 이철우의 행방은 아직 알 수가 없다.

이무섭이가 한성 호텔에서 공공연하게 사람을 만나는 것과는 대조적이야."
오함마와 김칠성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는데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자신할 수가 없다.

놈들은 철저하게 증거를 갖추고 있다는 거야."
"특별 조사단이 모두 강한석의 일당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사하는 시능만 하는 겁니다. "
김칠성이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고 차장이나 이 부장과 연락할 수도 없어서

그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 수 없고‥‥‥‥
이찬형과 고성섭은 조사 활동이 끝날 때까지 경찰의 철저한보호를 받고 있었다.

권부의 핵 중의 하나여서 이찬형은 정책적인 사항에 접근할 수 있는 처지였으나

지금은 조사를 받고 있는 입장이다.
회사에서나 그가 퇴근하고 나서도 그의 주변에는 강력한 송수신
장치를 갖춘 차량이 따르고 있어서 전화를 해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것은 강한석이나 박동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었지만

그들은 분위기가 한쪽으로 쓸려 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아주일보의 폭로 기사가 오히려

이무섭과 이철우를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활보하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몰랐다.
"형님, 만일 결과가 이상하게 나온다면 저는 애들 끌고 나가서 몇 놈 죽이고 죽겠습니다.

저는 이대로 물러날 수가 없습니다. "
김칠성의 낮고 억눌린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이철우는 제 처자식이 그렇게 된 것으로 국민들의 동정을 받으면서 우리가 몰렸는데,

우리는, 형님은‥‥‥‥
"쓸데없는 소리 ."
퍼뜩 두 눈을 치켜뜬 김원국이 그를 바라보자 김칠성이 시선을 돌렸다.
"어줬든 저도 더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형님."
이번에는 오함마가 더듬거리듯 입을 열었다.
"저도 칠성이하고 같이 행동하려고 합니다.

이렇게만 앉아 있다가 김원국의 이맛살이 찌푸려겼다.
"바보 같은 놈들."
"저희들은 웅남이 형님이 부럽습니다. "
"웅남이는 너희들하고는 다르다. "
김원국의 말소리가 강해졌다.
"놈은 둔하고 단순하게 보이지만 위험을 직감하는 체질이야.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는다. "
"그렇다면 저희들은."
김칠성이 말을 하다 멈추자 김원국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각기 장점이 있지, 너희들에게도. 네 조직력과 함마의 우직성, ÷1
런 것들이 함께 뭉치면 천하무적이지."
"따로따로 놀지 말아라. 이것은 명령이다.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움직이지 마라. 알았느냐?"

"네, 형님 ."
먼저 대답한 것은 오함마였고 그가 머리를 돌려 김칠성을 바라보았다.
"알았습니다, 형님 ."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던 김칠성이 겨우 대답하자 김원국이 부드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재영씨는 어디 갔어?"
"집에 있던데요. 오늘은 쉬고 싶다면서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
오함마가 대답하자 머리를 』1덕인 김원국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배에서 함께 있었던 이후로 이재영은 특별히 부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있었다.

오함마와 김칠성은 이재영의 갑작스런 변화에 무관심했다

그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그 시간에 철원 근처에 있는 87사단의 참모장실에서는

황인규 대령과 고재철 준장이 마주 앉아 있었다.
참모장인 변상훈 준장이 그들을 위해 자리를 피해 주어서 둘만 있게 된 것이다.

고재철은 강원도 원통에서 사단 참모장을 하다가 참모 본부로 옮긴 지

일년이 안되는 야전군인이었다.

황인규로서는 그의 얼굴을 처음 대하는 것이다.
"대령, 담배 피울라나?"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문 고재철이 담배갑을 내밀자 황인규가머리를 들었다.
"아넘니다. 금방 피줬습니다. "
담배갑을 탁자 위에 던진 고채철이 불을 붙인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고는 길게 내뿜었다.
"어때? 전방 생활이?"
고재철의 말투는 입에서 단어 덩어리를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편합니다. 몸도 불었습니다. "
"나도 야전 생활만 20년 했어."
"들었습니다. "
"참모본부 생활이 맘에 안 들어."
..."
"이 일도 그렇고."
황인규가 힐끗 시선을 들었다가 내렸다.
"자네, 습격당할 떤했다지?"
신문 기사의 내용대로 묻는 것이다.

황인규는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렇습니다. "
"하지만 습격한 놈들이 없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고."
"습격을 막은 것은 김원국의 조직이라는데, 그들이 어떻게 알았 f1?"
이재영은 황인규가 고성섭에게 연락을 했었다는 사실은 쓰지 않은 것이다.
황인규는 머리를 들었다.
"아마 저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김원국의 조직이?그것 이상하군. 밤의 조직이 대한민국 군인을 보호하다니."
"자넬 배신한 놈이 누구야?모 영관급 장교라고만 나와 있던데."
"말할 수 없습니다. "
"이재영이한데는 말하고 나한데는 말 안한다구?"
"도움이 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자넨 오 소장과 안 준장, 그들이 이무섭을 비호하고 있다고 지금도 만나?"
"믿습니다. "
"증거가 있나?"
"제가 이곳으로 전출된 것이 첫째 증거입니다.

제가그들의 행동을 눈치했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이적 행위일까?"
"그렇습니다. 반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왜?"
"이무린과 이철우를 도와 밤의 세계를 장악하고 불만 세력을 조직하고 양성할 기틀을 잡습니다.

그들은 정치권에까지 손을 델쳐 권력의 획득만을 꿈꾸는 정치가를 도와 대권을 잡게 합니다.

그후의 결과는 상상하실 수가 있을 겁니다. "
고재철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으므로 황인규가 말을 이었다.
"안기부에서 이무섭과 이철우궤 대한 조사 협조 의뢰가 왔어도 참모장은 보류시키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제출한 서류는 원본과 다른 것입니다. 원본은 파기되었습니다. "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하지만 증거나 증인을 댈 수는 없습니다, 제 자신 외에는."
"그들은 암호 코드까지 교체시켰으니까요."
"자넨 군의 명예를 생각해 보았나?"
"물론입니다.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
고재철이 황인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군의 명예를 어떻게 지키겠나?"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넘니다. "
"잘못 판단했을 경우에도 말인가?"
"공정한 판단이라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
"이건 도무지."
고재철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했다.
"난 오늘 비공식으로 찾아왔어. 다시 조사관들과 함께 올 거야."
"나는 군을 대표해서 자네를 조사하지만 먼저 자세히 알고 싶었어,

나한테만 말할 것이 있으면 듣고."
황인규가 머리를 저었다.
"군의 명예를 몇 사람의 핵심 장교 위주로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장군님. 하지만 제가 매장되어서 군과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시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하지만 뭔가?"
황인규가 머리를 들고 물끄러미 고재철을 바라보았다.
"아님니다. 마음을 바됐습니다. 죽는 것보다 살아서 치욕을 받지요.

그들이 결백하다고 판결이 난다면 전 죽지 않고 매장당해서,

숨이 끓어지는 순간까지 그들을 지켜보면서 살겠습니다. "
"저는 확신합니다, 장군님. 그들은 반역하고 있습니다.

불만 세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
그러자 벌컥 방문이 열리고 이동혁이 들어싫다.

순찰을 마치고 오는 모양으로 구겨진 작업복 차림이었다.
"자네가 왔다는 소리를 참모장한테서 들었어."
일어서서 경례를 올려붙이는 고재철을 향해 이동혁이 말했다.
"사복 차림으로 경례를 하는 걸 보면 기분이 언짧아."
"저도 사복에 익숙지는 않습니다, 사단장님."
이동혁이 자리에 앉자그들도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잠판 몇 마디만 하고 가려고 왔네, "
이동핵이 고재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하고 오성국이는 동기야. 나는 야전에서, 그 친구는 본부에서 날렀지.

난 서울 근방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어. 일부러 피한 거지, "
고재철은 잠자코 그를 바라보고만 있다.
"내 소장 진급도 그 친구가 추천했다는 소문도 있어, 우스운 일이지만."
"이봐, 고 준장 "
"네 , 사전장심 ."
"철저하게 조사해, 오성국이고, 안영환이고. 그리고 여기 있는 황인규도 마찬가지야."
"이건 선배로서 충고야. 군의 명예는 자네에게 달려 있어.

파문 같은 것을 생각하면 안돼.

그리고 나라의 정치 상황이 어떻고 하는 놈들의 말에 넘어가서도 안되고. 알겠나?"
"알겠습니다. "
"왜냐하면 나 같은 야전 군인이 99퍼센트야,

나 같은 생각을 하는 군인이 . 그들이 자네를 주목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돼."
"알겠습니다, 사단징심 ."
"그럼 난 가겠어 "
자리에서 일어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이동혁의 몸에서 땀냄새가 맡아졌다.
커피숍에 앉아 있던 최순태는 그를 향해 다가오는 이갑룡 형사를 보고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웬일이야? 오늘은 쉰다고 했지 않아?"
"오늘 아침에 비상망으로 특별 지시가 떨어졌어요. 집에서 자다가 끌려 나았습니다. "
그는 부스스하게 일어서 있는 머리칼을 손으로 쓸었다
"잘되었구만, 심심하던 참인데 ."
이갑룡이 웨이터를 손짓하여 부른 후 커피를 시키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석에서 일본인으로 보이는 남a씨 같은 슷자의 여자들과 소근 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 커피숍은 한산했다.
"한 사람 경호하려고 30명이 넘는 경찰을 동원하다니요, 이건 너심하지 않습니까?"
"글쎄, 내가 아나? 위에서 시키니까 할수없는 일이지."
무최순태가 넌지시 그를 건너다보았다.

한달에 한번도 쉬지 못하다가 오늘 하루 쉬려던 참이었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그리고 로비에 서너 놈이 있어요.

손님들처럼 셔츠 차림으로 어정거리고 있었는데 이무섭씨 개인 경호원 같습니다. "
"그것도 할수없는 일이지. 김원국의 일당이 노리고 있을테니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판국인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이갑룡이 힐끗 최순태를 바라보았다.
말투가 예전의 이갑룡과는 조금 차이가 났고 이쪽의 최순태도 전과는 달리 기가죽어 있었다.

박동호 청장이 지금특별 조사단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은 경찰청 사람이면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최순태는 박동호에게 연락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봐, 자네가 왔으니까 내가 살겠어, 내가 사우나에 다녀을 동안 여기에서 지휘 즘 해줘."
최순태가 말하자 이갑룡이 머리를 끄덕였다.
"사우나에서 주무시지 마tl시오. 두 시간이면 되겠지요?"
"그럼 , 충분해 ."
최순태가 커피숍을 빠져 나가자 이갑룡은 커다량게 입을 벌리고 하품을 했다.

한성 호텔은 영동교 근처에 있어서 차량의 통행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최근에 세워진 일급 호텔이었다.
커피숍이나 로비, 칵테일 바는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으므로

대낮에도 아베크족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무섭이 투숙한 후로 손넘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는데

경찰이 호텔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복과사복의 경찰이 현관과로비,엘리베이터와 비상구,

그리고 이무섭이 투숙해 있는 6충의 복도에서 득실거리고 있어서

호텔측은 비명을 질러 대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난 이갑룡은 커피숍을 나와 로비를 둘러보았다.

구석에 놓여진 소파에 앉아 있던 세 명의 형사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이갑룡은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서성대고 있는

대여섯 명의 형사들을 보았다.

모두 양복이나 점퍼 차림이었지 만 이갑룡의 눈에는 마치 그들이 형사용 양복이나

점퍼를 입은 것처럼 표시가 났다.
비상구 근처의 플라스택 의자에 랄아 있는 두 명의 형사들에게 시선을 멈춘

이갑룡은 입맛을 다셨다.

1들은 아예 소설책과 잡지책을 읽고 있었는데 좋은 자리 다 놔두고 찬바람이 부는

비상구 옆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은 허리가 돈 사람 아니면 형사일 것이었다.
6충의 복도에도 서너 명의 형사가 있을 것이고 호텔의 현관에는
정복의 경찰이 대여섯 명 있었으니 이것은 대통령의 경호보다 못할 것이 없다.

그리고 이무섭은 개인 경호원도 딸려 있었는데 몇 놈인지 알 수도 없었다.
이갑룡은 발을 떼어 프런트로 다가갔다.

안쪽에 나란히 서 있던 프런트의 남녀 직원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이쪽이 경찰인 줄 알아채고 있었는지 얼굴에 웃음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이거 우리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많겠습니다. "
이갑룡이 프런트의 택에 팔을 기대며 그들에게 말하자
여자가 겨우 옷었다.

평범한 얼굴이었는데 웃자 흰 치아와 겹쳐 난 송곳니가
눈에 띄었고 그것이 그녀를 전혀 다른 여자로 보이게 했다.
"이해하시오. 우리도 할수없이 이 짓을 하는 것이니까."
"저희들이야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윗사람들이 조금‥‥‥‥
남자 직원이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특히 나이트 클럽이 손해가 많다고 해요.

소문이 나버려서 만회 하려면 시간이 째 걸린다고요."
"앞으로 우리 경찰들에게 마시러 오라고 하지."
"네 01. "
남자가 웃었는데 이갑룡은 여자의 웃는 얼굴만 보았다.
남자 직원이 턱을 쳐들고 킁킁거렸다.
"며칠 있으면 끝날 거요. 그때까지만 참아요. 저 사람도 나갈테니까. "
"저 사람,이무섭씨더군요, 신문에 나온.그런데 뭐 하러 여기 묵고 있습니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경비만 서라는 명령을 받아서."
남자 직원이 다시 택을 쳐들고 킁킁대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갑룡이 상체를 굽히면서 여자 직원을 바라보았다.

가승에 찬 이름표에 'KIM'이라는 영어가 적혀 있었다.
"미스 김, 하루종일 이렇게 서 있으면 다리가 아프겠어요.

그렇지 않습‥‥‥‥
"불이야!"
그때 엘리베이터 옆쪽의 식당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는 서너 명의 손넘이 먼저 뛰어나왔고 이어서 수십 명의 손님이 아수라장을

이루면서 로비로 쏟아져 나왔다.
"불이야! 불!"
그들은 저마다크게 소리를 질러 대면서 현관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이갑룡은 한동안 멍한 얼굴로 서 있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원 제자리 ! 제자리에!"
그러나 소란통에 자신의 목소리는 잘들리지도 않는다.

이갑룡은 손을 델어 프런트 안쪽에 놓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남자 직원이 수화기를 들고 다급하게 번호를 눌러 대는 것은 119인 모양이었다.
이갑룡이 605호실의 번호를 누르면서 머리를 들자

미스 김이 어=사이에 밖으로 빠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식당 쪽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천정을 가득 덮으면서 밀려 나왔다.

화재 경보기가 끊임없이 울어 대었다.

이갑룡은 이를 악물면서 이무섭이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이갑룡은 헐떡이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6층까지는 금방이라고 생각되었으나 4층까지 오르자 다리에 힘이 풀렀다.

5층의 계단에 이르자 세 칸씩 뛰어오르던 것을 두 칸씩으로 줄였다.

그를 스치고 투숙객들이 달려 내려가고 있었으므로 제대로 속력을 낼 수도 없다.
투숙객이 많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많았더라면 계단에서 구르고 밟혀 죽는 불상사도 틀림없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경찰들이 득실거려 투숙객을 줄인 것에 대해서 호텔측이 감사해야 할 것이었다.
"이봐, 방문 앞에 있어! 내려오지 말라고 했지 않아!"
뒤쪽에서 헐떡이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부하 형사의 목소리였다.
그는 무전기에 대고 6층에 있는 형사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황한 형사들이 내려오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이갑룡은 목에서 쇠를 긁는 소리를 내면서 6층의 복도로 뛰어들었다가 달려온

사내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눈에서 횐 섬광이 번책였고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는데

뒤에서 뛰어 올라온 형사 한 명이 그를 밀쳤으므로 건들거리며 넘어질 벨했다.

 겨우 눈의 초점을 잡고 나자 사내 한 명이 두 손으로 얼굴을 싸안고 주저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쌍놈의 새끼. "
그러면서 발을 들었던 이갑룡은 사내를 뛰어넘어 복도를 달렸다.
이제 복도를 뛰는 사람은 그들뿐이었는데 나머지는

그 사이에 비상구를 통해 내려간 모양이었다.
605호실 앞에 모여 선 네 명의 사내가 보였다.

그들은 모두 형사들이었는데 그 옆쪽에 몰려 서 있는 세 명의 사내는 낮이 설다.
그들은 이무섭의 개인 경호원이었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벌써 소방차가 도착한 것이다.
"불은 여기까지 안 온다 나갈 필요 없어."
방문의 손잡이를 쥐면서 이갑룡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위치를 지켜! 엘리베이터와 비상구로!"
그가 다시 버럭 고함을 지르자 형사들은 방문 앞을 떠났다.
이갑룡은 안으로 들어싫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던 이무섭이 몸을 돌렸다.
"일층의 식당에서 불이 났습니다.

식당의 입구가 엘리베이터와 가까워서 엘리베이터 사용은 안됩니다. "
"그럼 비상구로 올라오셨군요."
아직도 가쁜 숨을 내쉬는 이갑룡을 바라보면서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여긴 』총이니까 급하면 창 아래로 로프를 타고 내려갈 수도 있어요."
그는 방 가운데 놓여 있는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불이 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다니요?"
이맛살을 찌푸린 이갑룡이 묻자 그는 입술 끝으로만 웃었다.
"그저 내 생각입니다. 형사넘께서 오셨으니 그런 걱정도 필요 없겠지만 "
최순태와 함께 며칠 동안 그를 경호해 왔으므로 서로 안면은 익혔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저도 모르게 맥이 풀린 이갑룡은 소파로 다가가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어때요?시원한 것 드릴까요?"
이무섭이 옆쪽의 냉장고를 눈으로 가리키며 묻자 이갑룡은 머리를 저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불현듯 목이 타 아무것이나 마시고 싶었으나
머리가 저절로 저어진 것은 이갑룡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6충의 비상구를 지키고 셨던 김영배 형사는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발자국 소리는 무거웠고 철거덕거리는 쇳소리도 들렀으며 가쁜 숨소리도 섞여 있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강 형사와 임 형사도 그 소리를 듣고는 얼굴을 굳혔다.
강 형사는 허리춤에 찬 권총의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더욱 가까워지더니 5충의 계단을 돌아 올라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어깨를 늘어뜨린 김 형사가 옆에 선 강 형사를 돌아보았다.
"젠장, 소방관이야."
중세기의 로마인처럼 투구를 쓰고 몸에는 갑옷 같은 방화복을 걸쳤는데 등에 산소통을 멘

사람도 있다.

앞장선 사내는 손에 쇠갈퀴를 들었고 어떤 소방관은 도끼를 들었다.
그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형사들에게로 다가왔다.
"당신들 뭐 해요? 빨리 내려가지 않고?"
앞장선 사내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이제는 복도 저쪽의 엘리베이터 근처에 서 있던

형딴들도 이쪽을 바라보았다.
"가스관이 터진단 말이오! 빨리 내려가!"
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복도로 밀려 나왔다.

김영배는 비상구의 옆 쪽에 비껴 서서 소방관에게 길을 획어 주고 있다가 머리를 들었다.
커다란 체구의 소방관이었다.

머리통이 커서 투구는 꼭대기에 엄 혀져 있는 꼴이었고 희고 붉은 줄이 있는 은색의 방화복이

그의 체구를 더욱 크게 보이도록 만드는지도 몰랐다
시선이 마주치자 놀람게도 거인 소방관은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가늘게 눈이 좁혀졌고 흰 이가드러났는데 수줍어하는 듯한웃음이었다.

한편으로는 어색한 웃음 같기도 했다. 그러자 김영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방관은 제복이 제 옷이 아닌 듯 쪽스럽게 웃는 표정이었는데,

그것은 밤낮으로 들여다보던 조웅남의 사진과 같은 얼굴이었다.
김영배가 입을 적 벌린 순간 이미 때는 늦었다.

그의 손에는 문짝을 부수는 커다란 도끼가 들려져 있는 것이다.

김영배는 벽에 온몸을 밀착시킨 채 그 도끼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만

두 눈을 굴려 바라 보았다.
입맛을 다신 조웅남은 내려찍는 순간에 도끼의 날을 뒤집었고

방향이 조금 바뀐 도끼의 등이 김영배의 어깨를 찍었다.

어깨뼈가 부서진 김영배는 한숨과 같은 신음 소리를 내며 벽을 타고 주저않았다.
거의 같은 순간에 임 형사와 강 형사는 소방관의 기습을 받아 머리와 등짝을 얻어맞고 ◎굴었다.
조웅남은 한 손에 도끼를 쥐고 복도를 달려나갔다.

앞장선 부하들이 이미 복도의 중간 부근까지 달려나갔고 그때야

눈치를 친 형사들이 서둘러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거리는 4,5미터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이쪽은 달려가는 탄력이 있다.
"ffl!"
이제는 흥분한 부하들이 소리 높여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짐승 같은 부르및음이다.

그들은 제각기 쇠스랑이나, 도끼, 철근 지렛대를 높이 쳐들고 있었으므로 무시무시한

형상들이었다.
"f!"
총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러자 뒤쪽의 부하 한 명이 주춤 하더니 서너 걸음 뛰다가 복도에 무릎을 끊었다.
"탕, 탕!"
다시 총소리가 났다.
조웅남은 도끼를 움켜쥔 채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나갔다.

총을 쓴 사내들은 두 명이었는데 방안에 있다가 방문을 열고 론 것이다.
조웅남은 맨 뒤쪽 그룹이었는데 놈들과의 거리는 5,6미터로 좁혀졌다.

사내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렀다. 그 순간 조웅남은 들고 있
던 도끼를 그들에게 집어 던졌다. 도끼는팔랑개비처럼 회전하며 날아갔는데 그것을 보자

사내들은 문 안으로 몸을 숨겼다. 도끼가 문짝
에 맞더니 안으로 튀어 들어갔다.
부하 한 명이 뒤돌아 서더니 방안을 향해 등에 멘 소화기를 뿜어
대었다. 하얀 분말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고 조웅남은 방안으로 뛰어
들면서 분말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렇었다.

그러자충소리가 다시 났다.
방의 구석에 붙어 선 사내가 쓴 총이었는데 조웅남이 미끄러지는 통에 벗나간 것이다.

조웅남은 넘어진 채로 손을 철어 탁자를 집어
던졌다. 무거운 탁자가 뒤집어지면서 사내를 덮쳤고 순간 조웅남은 튕기듯이 일어셨다.
냄장고 옆에 싫던 사내가 거품 투성이가 된 얼굴을 손으로 비비면서 다시 총을 美았다.

총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자 조웅남의 머리끝이 곤두싫다.
의자를 집어 사내에게 던지면서 다가간 조웅남은 사내의 한 팔을 잡자 와락 끌어당겼다.

주먹으로 얼굴의 복판을 찍듯이 치자 주먹에 맥가 부서지는 감측이 왔다.
구석에서 탁자에 치어 있던 사내가 겨우 상반신을 드러내었다.

아직 손에 권총을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걸음에 다가간조웅남은 권총을 잡은 손을 비틀어 총을 떨어뜨리고

사내의 온몸을 번책 치켜 들었다.

그리고는 대뜸 발밑의 바닥으로 태질을 쳤다.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집어 든 그는 방을 뛰쳐 나봤다.

그러자 앞쪽의 방문을 부수면서 부하들이 몰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방이 驗5호실인 모양이었다 이쪽에서 놈들이 권총을 딘아 대는 바람에

조웅남은 경호원들이 있는 방으로 뛰어든 것이다.
뒤따라 뛰어든 조웅남은 방안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베란다의 창문이 열려져 있고 비상용 로프가 매달려 있었다.
"도망쳤어요! 없습니다!"
아래쪽을 내려다본 손채석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형님, 없어요!"
조웅남은 몸을 돌려 복도로 나갔다.

7,8명의 사내들이 쓰러진 사이로 소방관 제복을 입은 자신의 부하들이 보였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손채석이 다가와 다그치듯 물었다.
가람게 서서 올려다보고 있었으므로 그의 넓은 얼굴과 초점이 잡히지 않은

두 눈의 검은 동자가 사팔이 되어 있었다.

그러자 조웅남의 가습이 가라앉았다.
"가지 뭐 ."
그는 쓰러진 부하 한 명을 번책 들어 어깨에 메었다.
"불난 디 없응게 얼릉 가자."
그들은 다시 비상구를 향해 몰려 나갔고 벽에 기대 앉아 있던 김영배가

스쳐 지나가는 조웅남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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