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비중비(秘中秘), 구중천황비고(九重天皇秘庫)
천문제왕 하후린!
이 이름은 삽시간에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것 들어보지도 못했던 괴이한 성씨도 그렇거니와
그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미안,
거기에,
보물의 집산지라 일컬어지는 대 황금성의 후계자라는 직함은
그의 후광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따.
그리고 이제껏 가려졌던 그 이름이 벗겨진 것은 하나의 사건 대문이었다.
대대로,
대명이 건국된 이후,
대과의 급제자는 한 곳에서 배출되고 있었다.
<학림대서원(鶴林大書院)>
바로 그 곳이었다.
명조 유림의 총본산.
대륙 전역에서 엄신된 이십 인의 신동만이 입원할 수 있다는 천하석학들의 산실!
이곳에 든 자,
그것은 곧 대과장원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한데 그 불문율이 깨어진 것이었다.
하후린!
이 십오 세의 소년에 의해,
그리고 그에 대해 반론하는 학림 대서원의 십대 청학유생과의 설전이 벌어졌다.
그 결과,
-백학천유사(白鶴天儒師) 초사운(楚査雲)!
당대제일의 대석학이며,
학림 대서원의 원주인 그로부터 일언이 떨어졌다.
-하후린,
그는 능히 고금제일대문성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림십류를 하나로 모은 문의 제왕이다!
이론의 여지는 없었다.
그리고 만력제(萬歷帝)는 하후린에게 하나의 칭호를 부여하니.
그이름 천문제왕이었다.
천문제왕 하후린,
기억해야 하리라!
대륙인들이여......
"제기랄, 뭐가 이리 복잡해?"
하후린,
지금 그의 말을 유생들이 들었다면 땅을 치고 통곡하리라.
오... 저 저속한 말투!
"이제, 어엿한 대학사가 되셨으니 좀 점잖아져야 돼요. 린!"
정모는 연신 투덜거리는 하후린을 달래며 옷을 입히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능히 하후린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거칠 것이 없이 자라온 하후린이 아니었던가?
황금보전 내에서는 아예 옷을 벗고 있었던 적도 적지 않은 나날이었으니,
오오, 저 사모관대라니......
걸치는 것도 많고,
귀찮은것이 한두 가지랴?
입고, 조이고, 쓰고, 매고......
"내, 이번만은 참지만, 다시는 이따위 요상한 옷은 안 입을 거야!"
하후린은 중대한 결심을 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어느 덧,
그의 몸에는 정모의 꼼꼼한 손길에 의해 모든 것이 완벽히 갖춰져 있었다.
문을 나타내는 백학이 수놓아져 있는 관복을 걸친 하후린.
"아!"
일순 정모는 나직한 탄성을 발했다.
그녀의 봉목은 숨죽인 듯 몽롱해져 가고,
'린... 정말 .. 아름다우신 나의 어린 용!'
여인은 눈이 부실 정도로 황홀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옷이 날개라지만,
지금 하후린의 모습은 그대로 천하의 대유생다운 풍도가 어려 있었다.
"쳇! 그 두 마리 사슴을 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하후린은 연신 툴툴거리고 있었다.
"두 마리 사슴이라니요?"
"응? 빨간 사슴과 노랑 사슴이 자금성의 화원에 있다더군. 그걸 훔치러 가는 길이야. 몰랐어?"
"예?"
정모는 고개를 갸웃하며 봉목을 깜박였다.
"그럼, 다녀 올게! 정모 누님!'
하후린은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그대로 내실을 빠져나갔다.
빨간 사슴과 노란 사슴?
정모는 몰랐다.
그 의미를......
자금성!
대명(大明)의 천자, 황제가 기거한 대륙 최대의 중지!
하늘을 찌를 듯한 거각에,
거의 전능의 권한을 지닌 하늘의 아들.
지금,
그 천자라 불리우는 만력제는 몹시도 기꺼운 마음으로 한 인물을 맞이하고 있었다.
황금의 대관에.
곤룡포를 걸친 채,
호피가 덮인 용좌에 몸을 묻고 있는 중년의 호한(豪漢)!
그의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저 자연스런 귀품과 성기(聖氣)는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런,
보는 자 스스로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싶게 만들......
오직,
제왕으로 선택되어 탄생한 자만이 지릴 수 있는 제왕의 풍도, 그것이었다.
누군가?
만력제!
대명 중기의 중흥기를 다진 현군,
비록,
그 말년엔엔 지나친 장수로 말미암아 실정을 하고,
그 때문에 대명이 쇄약해지긴 하나,
그것은 수십 년 지난 뒤의 일이었다.
지금 대명은 드문 태평성세를 누리고 있었고,
그 주역은 황제 만력제였다.
"어서 오게! 과연, 인중룡이로다! 허허......"
만력제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한 인물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신, 하후린, 삼가 폐하를 뵈옵니다."
하후린,
바로 그였다.
당당한 체구에 여인보다 더 미려한 옥안을 지닌 당대의 기린아!
"하후씨라, 역시 인물 만큼이나 특출한 성씨군."
만력제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시선을 하후린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용재로군! 황족이었다면, 능히 천년 평화를 이룰 수 있으련만......'
그의 눈은 경이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것은 하후린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대륙의 주인다운 풍모!"
하후린은 내심 경탄하며 그 자리에서 대례를 올렸다.
"허허, 짐이 그대와 같은 천룡을 얻다니... 선황의 자비로다."
만력제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
그는 하후린을 가까이 오도록 손을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대대로 급제자에겐 하나의 청원을 들어 주는 것이 관례, 그래 무얼 원하는가?"
그의 말에 하후린은 곤혹스런 표정을 떠올렸다.
'제길, 제왕의 길로 들자니 사슴을 그냥 두어야 하고......'
황궁비고에 들 것이냐?
아니면 사슴을 취할 것인가?
그 기로였던 것이었으니.
"적미(赤眉)나 금미(金眉) 중 하나를 줄 수도 있네!"
만력제의 말!
그 일언에 하후린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자금쌍미려(紫禁雙美麗)!
그것은 두 마리의 사슴을 일컫는 말이었다.
붉은 사슴과 황금사슴,
적미공주 주약란(朱若蘭)!
금미고주 주소혜(朱素慧)!
만력제의 자신보다 더욱 소중한 보물들이 바로 그녀들이었다.
그녀들은 몹시 특이한 체질을 안고 출생했다.
일반적으로 눈썹은 검다.
한데,
그녀들, 쌍동이 공주들은 각기 적과 금색의 눈썹을 지니고 있었으니.
세인들은 당연히 궁금증을 품었다.
과연,
체모의 색깔은 어떨지?
'둘 다 준다면 몰라도!'
하후린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보다 황궁비고의 천서를 열람할 기회를 주시오면......"
"황궁비고를?"
의외인 듯,
만력제는 새삼스레 하후린을 직시했다.
"과연...... 허허허허!"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발했다.
"역시, 천문 제왕으로서 손색이 없도다! 좋다!
그대에게 황궁비고를 일주일 간 개방토록 하겠다. 그리고......"
"......"
"고 두 마리 여우 중 하나가 아니라 두 마리라도 좋으니 잡아가게."
만력제의 말은 하후린의 귓가로만 들릴 정도로 작았다.
순간,
"알겠습니다. 폐하!"
하후린은 희색을 발하며 허리를 굽혔다.
"흐흐, 여우든, 사슴이든, 둘 다......"
좋은 꿈은 나쁜 현실로 통하는 법......
하후린,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닌 듯 싶었다.
붉은 장미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고,
황금의 구미호는 영악하기가 하늘을 놀릴 지경이니......
그- 그그그긍-
육중한 오묵철강석으로 주조된 철문이 열렸다.
자금성의 지저에 위한 최대 중지.
<황궁비고>
바로 그곳이었다.
실상 대명의 모든 것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절대금역!
황조는 바뀌어도,
수천 년의 시공이 흐르는 동안 이곳만은
천하의 주인이 끊임없이 이어 받아온 곳이었다.
멀리는 진대로부터 대명에 이르기까지.
천하의 모든 서적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곳.
총 일백이십 칠만오천 권!
지상 그 어디에도 이토록 방대한 분량의 서적은 없으리라.
고대의 갑골문이 새겨진 귀피(龜皮)로부터,
이미
사멸어가 된 과두문에 이르기까지.
또한,
천축의 범불경과 선도계의 도경.
천하에서 실전되었다 알려진 절대비전에 이르기까지.
"......!"
하후린은 잘 정돈된 무수한 서가들을 지나쳤다.
먼지가 두텁게 내려앉은 케케묵은 고서들.
그 한 권이 실로 진경 아닌 것이 없었다.
유생들이 꿈에도 바라는 문경(文經), 고어(古語)는 물론,
무인들이 목숨과도 바꿀 절세 무급이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
하나.
이 시대 최고의 풍운아 하후린,
그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파라라가-
그는 각 서적마다 배치된 도서목록집만을 훑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지존천마보(至尊天魔譜)
-절대사황혈전(絶代邪皇血典)
-천자십검류(天子十劍流)
-불영탄공강결(佛影彈功畺訣)
-전진도비해(全眞道秘解)
-천환신술경(天幻神術經)
그런 파천의 비급명이 있는가 하면.
-만상진도총요(萬像陣圖總要)
-천기어록(天機語錄)
-괴이만수지(怪異萬獸誌)
-주서총해(周書總解)
유림에서 보물보다 더 가치있게 생각하는 갱서들 또한 부지기수였다.
한데,
"쩝! 황금성의 황금서림에서 웬만큼 본 것 분이군!"
하후린은 입맛을 다시며 목록을 집어넣었다.
"이곳에서 대체 무얼 찾으라는 거야?
또다른 비밀 동부가 있다니......
양부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고!"
하후린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대 황금성!
그 곳엔 또 하나의 천하대서고가 존재해 있었다.
-황금서림!
말 그대로 황금으로 이룬 서책의 숲!
죽은 귀신도 부릴 수 있는 것이 홍금일진대,
그 무엇을 못 사 모으겠는가?
지난 십 년,
하후린은 이미 그 곳을 섭렵한 지 오래였다.
우뚝!
하후린의 신형은 가장 후미진 곳에 멈춰져 있었다.
뽀얗게 쌓인 먼지,
그 양으로 보아 그 곳에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는 상당한 세월이 흘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서가에는 단지 너덜너덜한 한 권의 책자만이 뒹굴고 있었다.
"......?"
곰팡이가 필대로 힌 양피책자.
하후린은 무심코 그것을 집어 넘기다 문득 의혹의 빛을 떠올렸다.
기이했다.
양피책자에는 온통 난해하기 그지없는 필체가 난무해 있었던 것이다.
범문을 비롯,
과두문, 갑골문, 파사어 등......
고대의 중원문자는 물론,
이미 사멸어가 된 새외변국의 잡다한 문자들로 이루어진 서책!
그것은 모든 고문을 통달하지 못하면 읽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우라질! 무슨 이따위 책이 다 있지?"
하후린은 투덜거리면서도 기이함을 느끼며 해독을 시작했다.
이미,
황금제왕 나후제천의 안배에 이해 초빙되어진 변방학사들에게 모든 언어와 풍습을 통달한 하후린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 서책은 그대로 뜻을 풀어갈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이 글을 읽는자.
능히,
천추대문성(千秋大文聖)이라 불리우기에 손색이 없으리라.
그대만이 인연이 닿았도다.
천문의 극을 보려는가?
그대에게 길이 열리리라!>
한 줄의 서명도 없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문득,
"이... 이것은 진식(陣式)의 파해서(破解書)로군!"
하후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양피책자를 서가에 놓으려 했다.
순간,
푸스스슷-
양피 책자는 그대로 한 줌의 잿가루로 화해 부서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
하후린은 망연한 시선으로 그것을 보다 이내 신형을 돌렸다.
황궁비고의 천정.
그 곳엔 정확히 삼백육십오 개의 야광주가 박혀 있었다.
휘황한 빛무리가 흩뿌려지는 사이로,
하후린은 천천히 그 중앙으로 갔다.
"순행과 역행, 천원(天元)을 시작으로......"
츠- 팟!
하후린은 손끝에서 한 가닥 지풍이 올라 천원야명주(天元夜明珠)를 때리는 것을 시작으로.
츠- 팟!
피-이이잉-
"역구궁(逆九宮)... 반육합(反六合)... 극오행......"
스스슷-
휘이잉잉-
하후린은 비쾌하게 신형을 날리며 비고 안을 누볐다.
그리고,
"만류귀일(萬流歸一) 일천원(一天元)!"
한 순간 냉오한 대갈이 터지고.
피- 이잉-
팍-
그의 손끝에서 폭출된 지강에 천원좌의 야명주가 그대로 산산이 부서졌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지- 이이이잉-
천정이 십자로 균열되며 열리는 것이 아닌가?
"파앗!"
하후린은 지체없이 신형을 폭사시켜 암동으로 날아올랐다.
비중비!
황궁비고의 신비 속에 자리잡은 또 하나의 신비!
과연 그것은?
<구중천황비고!>
석실의 전면에 있는 편액엔 그런 고서체가 쓰여져 있었다.
장방형의 반듯한 석실.
이곳도 예외없이 빽빽한 책들로 사방이 메워져 있었다.
"......"
책머리를 헤집고 들어서던 하후린은 순간 흠칫했다.
노문사,
한 명의 학창의를 입고 학모를 쓴 선비풍의 노인이 단좌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후린은 한눈에 그가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시신임을 알아보았다.
노문사의 옷매무새는 고대의 신비복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오오...... 저 성스럽기조차한 혜광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좌화한 노문사의 전신.
그 시신에서는 눈이 시릴 정도로 맑은서광이 감돌고 있었으니.
배꼽까지 드리운 은염은 탐스럽기만 하고,
전신에 서린 위엄은 곧 대자연이었으니.
비중비, 구중전황비고!
이곳엔 과연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 성스러운 노문사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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