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77. 시장조사(2)

오늘의 쉼터 2014. 9. 25. 10:30

577. 시장조사(2)

 

 

(1741) 시장소사 -3

 

 

 

옌지에 도착했을 때 김금택은 제 차로 시내까지 가자고 했지만 조철봉은 사양했다.
 
김금택의 승용차가 한국산 에쿠스인 것이 조철봉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옌지에 호텔도 있었지만 조철봉은 여관급 숙소를 잡도록 이경애에게 지시했다.
 
명색이 시장조사 겸 민생탐방인데 고급 숙소에서 고급 음식을 먹으면서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철봉의 분위기를 눈치 챈 이경애는 여관에 투숙할 때 숙박비도 깎았다.
 
언성을 높이면서 나가는 시늉까지 하더니 250위안이었던 숙박비를 180위안으로 깎았다.
 
물론 침대 하나짜리 방이었다.
 
그러나 제법 깨끗하고 큰데다 방에 소파까지 놓여져 있었다.
 
방에 들어선 조철봉이 만족한 듯 머리를 끄덕였다.
 
청도의 호텔방은 딱 열배의 가격이었지만 이보다 별로 나은 것 같지가 않았다.

“식사하시겠습니까?”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은 표정으로 이경애가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한시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내에서 샌드위치 한 조각을 주었지만 조철봉은 손도 대지 않았다.

“여긴 조선족 식당이 많습니다.”

이경애의 말에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관광객이 드문 곳으로 가자구. 조선족들의 단골식당이 있을 거야.”

“찾아보겠습니다.”

이경애의 고향은 베이징이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베이징으로 이주한 덕분에 이경애는 베이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러나 이곳 지린성에 부모의 친척이 많았기 때문에 자주 들렀다고 했다.
 
이경애가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곳은 시 외곽의 허름한 식당이었다.
 
이곳은 개장국을 전문으로 판다는 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식당안의 손님들은 동네 주민 같았다.
 
이경애가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다가온 주인에게 개장국과 백주를 주문한 이경애가 조철봉에게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저 사람들, 사장님을 관광객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선을 내린 이경애가 말을 이었다.

“저는 현지에서 고용한 조선족 안내원으로 생각하겠죠.
 
그런 일이 많으니까요.”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홀에는 12개의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는데 건너 편의 두 테이블에 셋씩 여섯 명이 앉았다.
 
모두 허름한 차림의 중년 사내들로 한낮인데도 이미 얼굴에 술기운이 덮여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야채 절임 안주가 흩어져 있고 플라스틱 술병이 서너개씩 놓여졌다.
 
사내들이 자주 이쪽을 흘깃거리고 있었으므로 조철봉은 외면했다.
 
모두의 표정이 곱지 않았던 것이다.

적과 같게도 느껴졌다.
 
그때 주인이 술과 개장국을 가져오더니 테이블 위에 놓았다.
 
50대쯤의 사내였는데 검은 피부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중국어로 이경애에게 던지듯이 말했다.
 
머리를 든 이경애가 대답하자 사내는 몸을 돌렸다.
 
조철봉은 이쪽을 바라보던 옆쪽 테이블의 사내들이 조금 동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거나 수군거렸다.
 
그때 이경애가 술병 마개를 열면서 말했다.

“여길 왜 왔으냐고 물었어요.
 
여긴 관광객용 식당이 아니라고 하면서요.”

목소리를 낮춘 이경애가 말을 이었다.

“우린 관광객이 아니라고 했죠.
 
우린 부부고 제 고향을 찾아온 것이라고.”

“잘했어.”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백주가 담긴 사기잔을 들었다.
 
소주 같았지만 술이 조금 찰랑대면서 강한 술냄새가 맡아졌다.
 
한모금에 술을 삼킨 조철봉이 더운 숨을 뱉었을 때
 
옆쪽 테이블에서 사내 하나가 일어나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1742) 시장소사 -4

 

 

조철봉 앞에 다가선 사내는 도무지 나이가 짐작도 안 되었다.

 

얼핏 보았을 때는 얼굴이 주름 투성이어서 60대쯤으로 보였는데 눈앞에 드러난 피부는

 

볕에 탔지만 윤기가 났다.

 

입가도 맨들맨들했다.

 

사내가 가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백두산 가시지 않겠습니까? 싸게 해 드리지요. 두 분이 천원만 내십시오.”

천원이면 천위안이다.

 

조철봉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경애가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우린 백두산 안 갑니다.”

“북한에서 파온 고려자기 진품이 있습니다.

 

만불만 내시면 됩니다.

 

한국으로 가져가면 몇십배 장사가 되지요.

 

얼마전에도 제가 소개시켜준 사람이….”

“안 삽니다.”

이경애가 말을 잘랐지만 사내는 주춤했다가 말을 이었다.

“고려청자를 1만5천불에 사갔다가 한국에서 5억5천에 팔았다고 합니다.

 

이건 북한 땅에서 가져온 진품입니다.”

“미안합니다.”

이번에는 조철봉이 정중하게 사양했다.

“전 그런 거 관심 없습니다.”

“그럼 추사 김정희 그림은 어떻습니까?”

“안 사요.”

그때 이경애가 와락 소리쳤으므로 식당 안이 조용해졌다.

 

눈을 치켜뜬 이경애가 손가락을 권총처럼 만들더니 사내의 코끝을 가리켰다.

“당신, 우릴 뭘로 보고 이따위 수작을 부리는 거야?

 

내가 공안에다 전화 한 통만 하면 어떻게 되나 볼까?”

이경애의 목소리가 쩌렁거리며 식당 안을 울렸다.

“옌지시 공안부에 내 사촌오빠가 있어. 당신들도 알 거야.

 

이철상이라고. 어때? 불법 물품을 강매하려 했다고 지금 신고해 볼까?”

조철봉은 코끝이 겨눠진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뭔가 말하려고 두 번이나 입을 딱 벌렸다가 도로 닫았다.

 

이경애의 기세에 압도당해 버린 것이다.

 

공안에 사촌오빠가 있다는 말에 기가 질렸는지도 모른다.

 

옆쪽 테이블의 사내들도 쥐 죽은 듯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

 

그때 식당 주인이 다가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지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다가선 주인이 사내의 어깨를 거칠게 밀었다.

 

사내가 비틀대며 사라지자 주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식사를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어서 드시지요.”

옆쪽 테이블의 사내들이 주섬주섬 일어서더니 식당을 나가고 있었다.

“됐어요.”

이경애가 아직 분이 덜 풀린 듯이 사내들의 등을 흘겨보며 말했다.

“우리가 얼빠진 관광객인 줄 알았나 본데 내 아버지 고향이 여기예요.

 

내 사촌들은 아직도 여기 살고 있다구요.”

“저놈들은 북한을 오가는 밀수꾼들인데 저는 얼굴도 잘 모릅니다.

 

가끔 이곳에 들러서 술이나 퍼마시고 가지요.”

“관광객을 상대로 밀수품을 팝니까?”

조철봉이 묻자 주인이 우물거렸다.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으므로 조철봉은 빈 잔을 권하고는 백주를 따라 주었다.

“앉으세요. 이야기나 좀 하십시다.”

잔을 든 주인이 이경애의 눈치를 살피더니 자리에 앉았다.

 

이제는 사근사근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요즘 중국 경기가 호황인데 여긴 어떻습니까?

 

우리 조선족 동포들도 살림이 좀 나아졌겠지요.”

조철봉이 묻자 주인이 멀뚱한 얼굴로 두어번 눈을 껌벅이더니 대답했다.

“글쎄요. 모두 간뎅이가 부은 것 같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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