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 저런인생(6)
(1377) 저런인생-11
조철봉이 한랜드 지방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는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러시아에는 일제시대에 이주해온 조선인 후손이 수십만명이나 되었는데 이른바 고려인이다.
중국땅의 조선족과 마찬가지로 동화되어 살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한국어를 잊지 않았고
풍습도 지켜왔다.
따라서 한랜드에 고려인 이주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한랜드를 임차할 때 러시아 정부와 합의한 내용이기도 했다.
한랜드를 고려인 자치주 형식으로 개발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사무실로 들어선 조철봉의 얼굴은 활기에 차 있었다.
어제까지 한랜드의 이주민은 25만명 가깝게 되었는데 그중 10만명 정도가 고려인이었다.
러시아계도 10만명 정도였고 한국인 이주민은 2만명,
그리고 중국땅에서 넘어온 조선족과 탈북자가 2만명 가깝게 되었다.
“고려인 이주민 비율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앞쪽 자리에 앉은 김재석이 보고했다.
고려인 이주민은 러시아 국적이었으므로 한랜드 입국과 이주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한랜드 당국에 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하게 파악이 된다.
김재석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조선족과 탈북자의 숫자가 파악된 것보다 두배 이상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른바 그들은 밀입국자인 것이다.
한랜드 당국은 밀입국자에 대한 단속을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유입이 많아지는 실정이라 대책 수립이 시급했다.
그때 잠자코 앉아 있던 건설본부장 이동호가 입을 열었다.
“건설현장에는 탈북자 출신이 절반 이상입니다.
위험한 일은 거의 대부분 탈북자들이 맡고 있지요.”
러시아인이나 고려인 이주자들은 위험한 공사 현장일을 꺼린다는 말이었다.
그때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먼저 공사현장의 탈북자들에게 주민증을 발급해 주도록 해요. 하지만.”
조철봉의 시선이 행정 책임자도 겸하고 있는 김재석에게로 옮아갔다.
“민감한 문제니까 비공식으로 처리해야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김재석이 머리를 끄덕였다.
만일 북한측이 알게 된다면 강력한 항의를 해올 것이었다.
한랜드 임차후에 북한측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회의를 마치고 조철봉이 방에 혼자 남았을 때는 오후 5시 반이었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울리더니 비서가 몸의 절반쯤만 방안에 넣었다.
“사장님, 박 사장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조철봉이 머리만 끄덕이자 곧 박경택이 들어섰다.
경택이 인사를 하더니 조심스럽게 앞쪽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서류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어 조철봉의 앞에 한 부를 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유경미씨는 32세로 25세까지 무역회사 근무를 했습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박경택이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26세 때 공금 횡령과 사기로 1년간 교도소에서 형을 살았습니다.”
놀란 조철봉이 눈을 크게 떴고 경택은 다시 서류를 읽었다.
“27세에 결혼, 아들 이혁을 낳고 1년 만에 이혼했습니다.”
“남편하고 이혼을 해?”
조철봉이 묻자 경택은 서류를 다시 보고 대답했다.
“예. 그러니까 전 남편 이칠복은 지금 대구에서 택배 서비스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 거짓말이다.
도대체 이 여자들의 거짓말은 어디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1378) 저런인생-12
그때 박경택이 계속해서 서류를 읽었다.
“유경진은 이혼 후에 다시 사기와 사문서위조 혐의로 구속되어 2년형을 받았는데
그때는 동생인 유경미도 공범으로 1년형을 받았습니다.”
“으으음.”
이제는 조철봉의 입에서 헛기침 소리만 났다.
놀랍지도 않은 것이다.
경택의 말이 이어졌다.
“동생 유경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백화점에 채용되었는데 거기에서
공금을 횡령한 전과가 있습니다.
6개월 형을 받았지요.”
“나아, 참.”
마침내 조철봉의 입에서 탄식이 울렸다.
어느 것 하나 맞는 것이 없다.
“남자 관계는?”
하고 조철봉이 내던지듯 물었을 때 경택이 머리를 들었다.
두 눈이 생기를 띠고 있었다.
“유경진 자매하고 인연이 있었던 남자들 이름을 한국에서 한랜드로 이주한
남자들의 입국자 명단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둘이 나왔습니다. 유경진 자매하고 같이 형을 살았던 남자들이고 애인 사이입니다.”
“으으음.”
“유경진의 애인이었던 장상규는 폭력, 절도, 강도 혐의로 3번이나 복역한 자인데
지금 뉴 코리아 호텔의 식당 지배인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흡을 고른 경택이 말을 이었다.
“유경미의 애인 오준석은 한랜드 제5구역 경비대 보좌관입니다.
경찰 출신인데 이 자도 해직된 후에 유경진 일당과 일하다가 잡혀서
형을 살고 여기에 같이 온 것이지요.”
“그렇다면.”
“쓰레기들이 몰려온 것입니다.”
경택이 거침없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정색했다.
지금까지 경택이 이렇게 감정적인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경택이 말을 이었다.
“새로운 땅에 새로운 꿈을 품고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고
이곳으로 도망쳐 오는 쓰레기들도 많습니다.
이들이 그런 부류입니다.”
“그렇군.”
“한랜드 입국시에 전과 조회를 할 수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
“어제 유경진의 근로자 아파트에 두 놈이 찾아와서 자고 오늘 아침에 나갔습니다.”
“그들이 한랜드에 입국한 지는 얼마나 되었지?”
“15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넷이 같은날 같이 입국했으면서도 남처럼 따로 떨어져서 숙소를 정한 것도 수상합니다.
여기서도 작업을 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최사장님한테 보고해서 넷을 추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만.”
작심한 듯 경택이 얼굴을 굳히고는 조철봉을 보았다.
경택은 조철봉이 유경진의 아파트에서 하룻밤 자고 나온 것도 알고 있는 것이다.
경택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재미있구먼. 다른 내용은 없나?”
“유경진 자매는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지요.
머리는 좋아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더군요.”
“…….”
“유경진만 초급대 전산과를 나왔습니다.”
조철봉은 저도 모르게 긴 숨을 뱉었다.
경진은 경미가 초급대 연기과를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경진이 전산과라니,
거기에다 방의 벽에 걸린 사진은 뭐란 말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거짓말이다.
필요 없는 말도 다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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