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 저런인생(5)
(1375) 저런인생-9
그러자 경진이 움직임을 멈추고는 잠자코 조철봉을 보았다.
어느새 두 손은 철봉에서 떼어져 있다.
“그럴 수도 있죠.”
이윽고 경진이 입을 열었다.
길게 숨을 뱉은 경진이 말을 이었다.
“사장님은 좀 보수적이시네요.”
“그런가?”
“제가 식당을 할 적에.”
경진이 몸을 일으켜 옆쪽에 반듯이 누웠다.
그러고는 천장을 향하고 말했다.
“술 마시러 온 남자들이 저희들에게 치근대었죠.
그때 남자들 대부분은 경미를 원했는데.”
“…….”
“경미 분위기가 남자들을 끄는 것 같았어요.
어둡고 말수가 적은데다 남자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분위기를 풍기거든요.”
“…….”
“그런데 경미는 한번도 남자들하고 잠자리를 하지 않았죠.
이것저것 핑계를 대거나 무슨 수단을 부렸는지 남자들을 저한테 넘겼어요.”
“…….”
“어쨌든 오늘밤도 경미가 수단을 쓴 것이 분명해요.
사장님이 경미한테는 별로 시선도 주시지 않았지만 끌리고 있다는 건 느낄 수가 있었으니까요.”
“…….”
“우린 자매예요.
분위기가 통한다고요.
걔한테 보내는 주파수를 제가 눈치 챈다니까요.”
“경미는 진짜로 남자한테 배신을 당한 거야?”
불쑥 조철봉이 묻자 경진이 3초쯤 가만있다가 대답했다.
“아뇨.”
“그런 줄 알았어.”
조철봉이 차분하게 말했다.
경진과 함께 조철봉도 천장을 바라본 채 반듯이 누워 있다.
“분위기가 너무 그럴 듯해서 오히려 꺼림칙했어.
연기 잘하는 배우 같다는 느낌이 들더란 말야.”
“걘 거짓말을 잘해요.”
정색한 경진이 말을 이었다.
“나중엔 제 거짓말을 제가 믿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거짓말로 누구한테 피해를 입힌 적은 없어요.”
“저 얼굴에 몸매라면 TV탤런트를 해도 될텐데. 연기를 잘 할테니까 말야.”
“그랬어요. 그런데 어디 외모나 소질만 있다고 다 탤런트가 되나요?
전문대 연기과를 나왔지만 한 삼년 빌빌거리다가 그만두었죠.”
“그렇군.”
“그러고는 제 식당일을 돕다가 여기로 같이 온 거예요.”
“그렇다면 식당을 하면서 남자를 꽤 만난 것 같은데.”
머리를 돌린 조철봉이 경진을 보았다.
“아이 아버지 사고가 난 후에 식당을 차렸나?”
“그래요. 반년쯤 지난 후에. 하지만 석달 만에 문을 닫았어요.
식당 영업은 안하고 남자들하고 술만 마셨으니까.”
“…….”
“잊으려고 섹스를 했지만 끝나면 더 허전하고 더 괴로웠어요.”
“…….”
“식당 문닫고 다시 반년 동안은 집안에 박혀 있었죠.
혁이만 없었다면 벌써 약을 먹었든지 목을 매든지 했겠죠.”
조철봉은 잠자코 천장을 보았다.
저녁때 한정식당에서 경진은 세상에 혈육은 경미하고 혁이까지 셋뿐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이곳 경미의 방에서 서울에 남겨둔 부모의 사진을 본 것이다.
그러나 경진은 제가 식당에서 한 말도 잊어버린 것 같다.
거짓말을 해놓고 이렇게 태연하다니
(1376) 저런인생-10
다음날 아침,
조철봉은 경진이 흔드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벽시계가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희들은 10시에 출근하면 되지만 사장님은 8시에 모시러 온다고 하셔서요.”
경진이 말끔한 얼굴로 말했다.
“아침을 준비해 놓았으니까 씻고 식사하세요.”
“이런, 아침까지.”
침대에서 일어나 앉은 조철봉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어제 양주를 혼자서 한병쯤 마셨지만 안주를 잘 먹은데다 경진과 꽤 오래 이야기하고
잤기 때문인지 머리가 맑았고 컨디션도 좋았다.
섹스를 안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했다면 대포를 쏘지 않았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중노동을 한 것처럼 온몸이 찌뿌드드했을 테니까.
방을 나오자 경미가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맞았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언니한테 들었지? 어젯밤 언니도 안녕했다는거 말이야.”
불쑥 조철봉이 말하자 경미가 흐응 웃고 나서 말했다.
“네, 들었어요.”
“감상이 어때?”
“언니가 서운한 것 같아요.”
“경미는?”
“전 기쁘구요.”
“허어.”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시선이 주방에 서있는 경진에게로 옮겨졌다.
경진의 표정도 밝다.
조철봉이 씻고 나왔을 때 식탁에는 아침상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혁이도 식탁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의젓했다.
경진이 시켰겠지만 머리를 까닥이며 인사까지 했다.
식탁에는 된장국에 김치, 멸치볶음에 계란프라이뿐이었지만
조철봉은 밥 한 공기를 금방 비웠다.
찬이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찬을 가져온 건가?”
숭늉을 마시면서 조철봉이 묻자 경진이 웃었다.
“재료만 사서 제가 만들었죠.”
“과연 식당을 할 만하군.”
“한식밖에 할 줄 몰라요.”
그때 경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어젯밤에 그냥 주무셨어요?”
마치 반찬 하나는 왜 안 먹었느냐고 묻는 것 같았으므로 조철봉이 풀썩 웃기부터 했다.
옆에 앉은 경진도 따라 웃었다.
“그냥, 가끔은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어젯밤의 경진의 말을 흉내내며 조철봉이 대답했지만 경미의 표정은 진지했다.
정색하고 또 묻는다.
“그게 안 되었어요?”
“안 되다니?”
“안 섰느냐구요.”
“언니한테 물어봐.”
그러자 경진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섰어, 그리고….”
힐끗 조철봉에게 시선을 준 경진이 말을 이었다.
“엄청 컸어.”
“그런데 왜?”
“정말 이 자매는 문제가 있는데….”
눈을 가늘게 뜬 조철봉이 둘을 노려보는 시늉을 했다.
“아침부터 대화를 이상하게 유도해가고 있는데 말이야.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 거야?”
“이어가고 싶어서요.”
여전히 정색한 경미가 조철봉의 말을 받았다.
“사장님을 놓치기 싫거든요.”
“어떻게 잇는다는 거야?”
“언니가 거북하시다면 제가 상대해드리고 싶어요.”
그러고는 경미가 덧붙였다.
“지금까지 다 언니한테 넘겼지만 여기선 내 몫도 갖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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