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꿈을 깨다(11)
(1249) 꿈을 깨다-21
“나 미치겠어, 당신을 죽여줄거야.”
하고 김병문의 생기띤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을 때 최갑중이 녹음기의 버튼을 눌러 껐다.
그러자 방안은 무겁고도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상석에 앉은 조철봉은 재미없는 영화를 본 관객처럼 입맛을 다셨으며 좌우에 앉은
최갑중과 박경택은 서로 외면했다.
그래도 역시 방안의 정적을 먼저 깨뜨린 사람은 조철봉의 영원한 심복 갑중이다.
“둘은 커피숍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핑크호텔 304호실에 들어가서 2시간40분만에 나왔습니다.”
갑중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과장이 섞인 태도였다.
“박 사장이 직접 따라갔지만 제가 도청은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이만하면 증거 자료가 넘치니까요.”
그러고는 갑중이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진행하겠습니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시골 할머니도 기다리고 계셔. 영일이 받을 준비는 다 되었다.”
조철봉의 어머니가 상경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 일산의 정원이 딸린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는 조철봉이 서경윤과 갈라선다고 하자
또 지랄병이 도졌느냐고 하면서 들은 척도 않다가 영일을 데려온다는 말을 듣더니
두말도 더 않고 상경했다.
영일을 당신이 키우겠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혼자 사는 이모에다가 집안 일을 거들게 하려고 먼 친척뻘 되는
아줌마까지 한꺼번에 셋이 몰려왔다.
그러나 철저히 입단속을 시켜놓았다.
“그럼 난 오늘부터 출장이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전화기를 들자 둘은 다시 긴장했다.
버튼을 누른 조철봉이 곧 입을 열었다.
“응, 난데.”
지금 서경윤과 통화를 하는 것이다.
“나, 지금 출발해.”
조철봉이 말하자 경윤이 물었다.
“이번에는 며칠 예정이야?”
“글쎄, 삼사일 정도.”
“그럼 주말에는 돌아오겠네.”
“그렇겠군.”
“잘 다녀와.”
“응.”
“밥 잘 챙겨먹고.”
“알았어, 전화 끊어.”
“안녕.”
서경윤의 ‘안녕’할 때의 목소리는 밝았으므로
전화기를 내려놓은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한테 바람피우지 말라는 말은 안하는구만.”
갑중과 경택을 둘러보며 말했지만 둘은 딴전을 보면서 응답하지 않았다.
“하긴 밥 잘 챙겨먹고 내가 건강해야 한 밑천 챙길 수가 있지.”
그때 경택이 전화가 온 모양인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더니 귀에 붙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으로 다가가 듣고는 돌아와 앉았다.
“저, 조금전에 김병문이 경동용역에 일을 맡겼다고 합니다.”
둘의 시선을 받은 경택이 말을 이었다.
“경동용역 대표는 이수동이란 놈인데 직원 둘을 데리고 있지요.
돈만 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놈입니다.”
그 사이에 병문이 조철봉의 약점을 캐내려고 경동용역이란 업체에 일을 맡겼다는 말이었다.
“흐음.”
조철봉 대신으로 갑중이 코웃음을 쳤다.
“잘 되었다. 아주 뿌리를 뽑아 줄테니까.”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시늉을 한 갑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님은 가만 계십시오. 우리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요.”
(1250) 꿈을 깨다-22
커피숍 안은 혼잡했고 시끄러웠다.
대학가 근처에 위치해 있었지만 손님은 중년 남녀로 대부분이 근처 부동산 사무소
직원과 손님들이었다.
저녁 7시5분.
조철봉은 지금 10분째 최성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최성희한테서는 세번 전화가 왔지만 적당한 핑계를 대고 약속을 미루었다.
그런데 오늘,
서경윤과의 결별 작전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고영민이 아니었다.
김병문의 처인 최성희였다.
조철봉이 연락을 하자 성희는 깜짝 놀라면서 반겼는데 지금 일하는 식당 근처의 이 곳으로
약속장소를 잡은 것이다.
조철봉은 미지근한 커피를 한모금 삼키고는 길게 숨을 뱉었다.
옆쪽 테이블에서는 부동산업자가 마주앉은 두 중년 부부를 사장님과 사모님으로 부르면서
상가를 설명하는 중이었다.
남편은 솔깃한 것 같은데 마누라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마누라 주장이 더 강해서 일이 잘 안될 것 같았다.
“기다리셨어요?”
옆에서 말하는 소리에 조철봉은 머리를 들었다.
성희가 수줍게 웃음띤 얼굴로 서 있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꾸벅 머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일하다가 나와서요.”
앞에 앉는 성희한테서 돼지갈비 냄새가 맡아졌다.
그러나 얼굴은 생기에 차 있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조철봉이 눈부신 듯한 표정으로 성희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런 표정은 여자 꼬일 때 항상 썼지만 오늘은 마음에서 우러나왔다.
“이거, 나 때문에 일도 못마쳐서 일당이 줄겠는데.”
“괜찮아요.”
성희가 웃음띤 얼굴로 대답했다.
“엄마한테 오늘 늦는다고 했어요. 애는 잘 자니까 걱정없구요.”
“잘됐네.”
“여기, 너무 시끄럽죠?”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한 성희가 조철봉을 보았다.
“우리 나가요, 사장님.”
“그래. 그리고 말야.”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지그시 성희를 보았다.
“지금부터는 날 오빠로 불러.”
“예, 오빠.”
성희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에 두 볼이 금방 상기되었다.
진국이다.
조철봉은 갑자기 가슴이 뛰었으므로 헛기침을 했다.
오늘 성희를 불러낸 것은 혼자 지내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첫째 이유다.
그리고 같은 입장이라는것이 둘째 이유가 될 것이다.
김병문이한테 보복하려는 목적은 없다.
그러려면 진즉 해치웠다.
성희 옆에 있으면 뭔가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커피숍을 나왔을 때 성희가 팔짱을 끼었으므로 조철봉은 약간 긴장했다.
그때 성희가 말했다.
“오빠, 저는 다 정리했어요. 그 작자하고 완전히 끝났다구요.”
“어, 그래?”
눈을 크게 뜬 조철봉이 성희를 보았다.
“잘 되었네, 그렇지?”
“그럼요. 그 작자가 웬일인지 막 서두르더라구요.
그제는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까지 끝냈다구요.”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경윤하고 합치려면 그래야 할 것이다.
“오빠, 오늘은 좀 멀리 가요.”
성희가 조철봉의 팔을 끌었다.
“응?”
조철봉은 자신에게 향해 있는 성희의 두 눈을 보았다.
남자는 이런 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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