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25. 꿈을 깨다(9)

오늘의 쉼터 2014. 8. 20. 18:17

325. 꿈을 깨다(9)

 

 

 

 

(1245) 꿈을 깨다-17

 

 

다음날 오후 5시 정각이 되었을때 서경윤은 압구정동의 샹젤리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카페는 이름 그대로 프랑스식이었는데 벽에는 샹젤리제 대로 주변의 거리가 모자이크되어 붙여졌고

 

안쪽에는 샤를 드골광장과 개선문의 입체사진이 희미한 조명속에 떠 있어서 분위기가 살아났다.

“여기.”

서경윤의 모습을 보자 벽쪽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김병문이 반색을 하며 손을 들었다.

 

여기는 커피 한잔값이 만원도 넘어서 호텔보다도 비쌌지만 손님이 꽤 많았다.

 

경윤이 앞쪽 자리에 앉자 병문은 눈웃음을 쳤다.

“역시 자기는 눈에 팍 띄는구만.”

“뭐가?”

경윤이 머리를 조금 기울이며 물었다.

 

오늘 경윤은 우아한 크림색 투피스 차림이었는데 캐서린 강의 작품이었다.

 

캐서린 강의 정장은 최소가가 5백만원인 것이다.

 

거기에다 유명브랜드 가방에 신발은 이태리제 수제화를 신었으며

 

목에 건 목걸이는 1천만원이 넘었다.

 

이 정도는 압구정 사모님들의 평균 수준밖에 되지 않았지만 병문의 눈이 둥그레질만은 했다.

“나, 6시에 동창들하고 약속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돼.”

팔목시계를 내려다보는 시늉을 하면서 경윤이 말했다.

“자, 여기.”

가방에서 봉투를 꺼낸 경윤이 병문에게 내밀었다.

“1억이야, 다시 말하지만 자기는 우리 엄마한테서 이 수표를 받은거야.

 

엄마한테 빌려준 돈을 받은거란 말야.”

“글쎄, 알았다니까.”

희색을 감추려고 입술을 앙다물었지만 병문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여기 차용증 써왔어.”

이번에는 병문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경윤에게 내밀었다.

“내가 빌리는 거야. 꼭 갚을 게.”

“글쎄, 우리 사이에 이런건 필요없지만.”

하면서도 경윤이 봉투에서 차용증을 꺼내 꼼꼼하게 읽었다.

 

그 사이에 병문도 봉투 안의 수표를 확인했다.

“자, 됐어.”

차용증을 다시 봉투에 넣은 경윤이 지긋한 시선으로 병문을 보았다.

“내가 이걸 빼내려고 어젯밤 얼마나 봉사한지 알아? 마치 몸을 파는 기분이었다구.”

눈을 흘긴 경윤이 말을 이었다.

“그 작자는 정신없이 달려들었지만 난 그것 할때 자기 생각밖에 안났어.”

“정말 미치겠네.”

병문이 눈을 치켜뜨고 경윤을 보았다.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 할거야? 누구 가슴 터지는꼴 보려구 그래?”

“누가 그런데?”

“나한테는 그 자식하고 그짓 다시는 안한다고 했지않어?”

“그래두.”

쓴웃음을 지은 경윤이 눈을 가늘게 뜨고 병문을 보았다.

“그거 빼내려고 어쩔 수 없었어.”

“나, 이것 가져가기 싫어.”

병문이 아직도 탁자위에 놓인 돈 봉투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내 기분이 어떤지 알기나 해? 마누라 돈 받고 팔아먹은 기분이라구.”

그 순간 병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어머.”

놀란 경윤이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병문에게 건네주었다.

“자기야, 그만. 왜 그래?”

하지만 경윤의 두 눈에도 눈물이 맺혔고 목소리까지 떨렸다.

 

 

 

 

(1246) 꿈을 깨다-18

 

 

도로가에 선 김병문은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주차장을 향해 발을 떼었는데 발에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가벼웠다.

 

압구정동 거리는 서울에서 눈요깃거리가 가장 많은 곳 중의 하나이다.

 

쭉쭉빵빵한 아가씨들도 지천으로 널려 있었으므로 평소의 병문 같았으면

 

이쪽 저쪽 해찰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서경윤을 방금 배웅하고 돌아선터라 아직도 가슴이 감동으로 먹먹한 상태였다.

카페 옆쪽 주차장으로 들어선 병문은 구석에 세워진 자신의 낡은 중형차를 보고는

 

먼저 차부터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고나서 양연미한테 방 얻으라고 1500만원을 줄 작정이었다.

 

양연미의 얼굴이 떠오르자 병문의 가슴은 다시 뛰었다.

 

연미하고 4박5일쯤 해외여행을 다녀 오는 것도 기분전환이 될 것이다.

요즘 서경윤과 제주도에서 보내느라고 열흘 가까이 떨어져 있어서 연미는 삐친 상태였다.

 

차로 다가간 병문의 머릿속에 문득 와이프 최성희의 얼굴이 떠오른 것은 창문에 붙여진

 

경보장치 스티커 때문이었다.

 

경보장치를 부착하지도 않았는데 최성희가 스티커를 얻어다가 붙인 것이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병문은 입맛을 다시고는 차 문을 열었다.

집에 들어가지 않은 지가 두달 가깝게 되어서 아들녀석 얼굴도 가물가물했다.

 

경마장에서 만난 백씨 말마따나 안보면 자식이고 마누라고 다 정이 떨어져 나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병문이 차에 타려고 엉거주춤 몸을 구부렸을 때였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갑자기 목덜미를 잡혀 목이 들려졌고

 

다음 순간 뒤통수에 격렬한 충격이 왔다.

“껙!”

병문은 자신의 입에서 터져나온 신음을 제 귀로 듣고는 두 다리를 버둥거려 보았지만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때 다시 뒤통수에 충격이 왔고 이번에는 신음도 뱉지 못한 채 병문은 늘어졌다.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여보쇼, 여보쇼.”

병문은 누군가 몸을 흔드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이 차앞좌석에 엎어져 있는 것을 알았다.

 

두 다리가 차 밖으로 나와 땅바닥에 늘어진 상태였다.

“아이고.”

머리를 들었던 병문은 뒤통수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받고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손을 뻗쳐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뒷머리가 계란 두개를 나란히 놓은 것처럼 부어 있었지만 깨진 것 같지는 않았다.

 

피는 만져지지 않은 것이다.

 

그때 뒤에서 사내 하나가 물었다.

“괜찮으시오?”

그러자 겨우 머리를 돌린 병문은 둘러선 사람들을 보았다.

 

건물 경비도 섞여 있었는데 대여섯명이 된다.

 

그 순간이었다.

 

온몸에 전기가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병문이 손을 뻗쳐 가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입을 쩍 벌리고 소리쳤다.

“아이고, 내 돈!”

소리치자 뒷머리가 다시 터질 듯 아팠지만 머리를 치켜든 병문이 악을 썼다.

“내 돈! 내 돈!”

“무슨 말이여?”

사내들이 주춤 물러서더니

 

그 중 한 중년 사내가 경비원 하나에게 물었다.

“돈 잃어버린 거 아녀?”

“글씨.”

경비원이 반걸음쯤 더 물러서더니 입맛을 다셨다.

“차 안에 이상허게 엎어져 있어서 와봤더니 강도를 당헌 것 같구만.”

그러자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뭐, 큰 돈은 아니겄지. 저런 똥차 타고 있는 주제에 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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