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열망(4)
(1175) 열망-7
조철봉은 머리를 저었다.
“만나기는.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말야.”
“갑자기?”
의심쩍다는 듯이 이영철의 눈썹 사이가 좁혀졌다.
“인마, 갑자기 16년전에 차인 여자가 생각나? 그래서 2년만에 날 불러서 물어봐?”
“이 새끼한테는 말도 못하겠네.”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며칠 전에 소문을 들었는데 걔가 죽었다고 해서.”
“뭐? 죽어?”
놀란 듯 영철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소리나게 혀를 차고는 앞에 놓인 소주잔을 들었다.
“아깝구만, 괜찮은 애였는데.”
“괜찮기는 뭐가 인마.”
“너야 차인 놈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야, 인마. 지금 내놓으면 그까짓 기집애 손도 안 댄다.”
“야, 걔, 괜찮았어.”
정색한 영철이 소주를 한모금 삼키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내가 걔 찾아갔었지 않냐? 네가 차였다고 징징 울고 다닐때 말야.”
“울긴 내가 왜 울어? 이 미친놈이.”
“그래, 그때 네가 실성한 놈 같았지.”
여전히 정색한 영철이 옛일을 떠올리려는 듯 눈을 다시 가늘게 떴고 조철봉도 숨을 죽였다.
바로 이것이다.
놈한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영민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해줄수록 놈의 대우는 좋아질 것이다.
그때 영철이 말을 이었다.
“지금에야 이야기하지만 그때 걔가 그러더라.
네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야.
그래서 내가 무슨 소리냐고 그랬지. 철봉이는 쌈도 잘한다고.”
“….”
“그랬더니 아니래. 용기가 없대.
뭣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말을 안하더구만.
그래서 너한테는 걔가 그냥 싫다고만 하더라고 말해주었지.”
안 먹어서 그런 것이다. 그놈의 임질.
“아주 쌀쌀맞더라구. 너한테는 조금도 미련이 없더라구.”
“….”
“그런데 뭘로 죽었대냐?”
“교통사고로.”
“어허.”
“즉사를 했다는구만.”
“저런 쯧쯧.”
“그런데.”
다시 술잔을 든 조철봉이 지그시 영철을 보았다.
“걔 괜찮았냐? 객관적으로 봐서 말야.”
영철이 눈만 껌벅였으므로 조철봉이 다시 물었다.
“난 기억도 잘 안나서 그러는데. 걔, 지금 네 기준으로 말해봐라.”
“흥, 죽은 자식 나이 센다더니.”
쓴웃음을 지었지만 영철도 조철봉의 분위기에 이끌린 듯 진지해졌다.
술잔을 입에 대었다 뗀 영철이 입을 열었다.
“지금 생각해도 괜찮은 애야.
난 그때 속으로 너같은 놈한테 웬 복이냐고 질투가 났었으니까.”
“흥, 개자식.”
“성격도 괜찮았고 남자 관계도 깨끗했어.
너하고 헤어진 다음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말야.”
“흥.”
“네가 차인 건 당연했지. 걔 수준이 너보다는 높았다. 미안하지만.”
“지랄.”
“어쨌든 죽었다니 아깝네.”
그러자 조철봉이 팔목시계를 보았다.
“나가자. 내가 룸살롱에서 한잔 사지.”
(1176) 열망-8
룸살롱으로 옮기자 이영철은 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 고기처럼 생기를 찾았다.
목소리는 더 활기를 띠었고 눈빛도 강해졌다.
늘 얻어먹는 놈들은 만성이 되어서 미안하고 고마운 줄도 모른다.
계산할 때만 잠깐 견디면 돈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철은 지금까지 조철봉과 어울릴 적에 술값은 물론이고 팁값과 이차값까지 얹혀갔다.
조철봉이 대부분 계산을 한꺼번에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 친구의 팁값하고 이차값은 빼고 계산서 가져오라는 말은 차마 못한다.
조철봉의 약점을 노리는 것이나 같다.
거기에다 시간이 지나자 모략까지 했다.
조철봉과 룸살롱에 가기로 약속을 잡으면 미리 룸살롱에다 연락을 해서
괜찮은 아가씨를 찍어 놓는 것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룸살롱 마담이나 지배인에게 조철봉은 ‘내가 데리고 다닌다’는
분위기를 심어놓으려고 발광을 해왔던 것이다.
실로 피눈물 나는 노력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산전수전 다 겪은 룸살롱 마담이나 아가씨,
또는 지배인 등은 그냥 한눈이면 영철이 빈대라는 것을 간파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술값 내는 조철봉 위주로 아가씨가 배분되고
영철에게는 남는(?) 아가씨가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영철은 그것을 시정하려고 모략을 일삼아왔다.
단골 룸살롱 중 하나인 ‘수양’의 마담한테는 조철봉이 또 다른 단골인 ‘영원’에 가려는 것을
억지로 끌고왔다는 거짓말로 생색을 냈다.
또 ‘영원’의 마담한테는 오늘밤 술값은 제놈이 조철봉한테 빌려준 돈으로 지불하게 했으니까
알아서 저를 잘 모시라고도 했다.
나중에는 밑천이 떨어지자 약속 시간보다 한시간쯤 일찍 나와서는 대기시킨 아가씨들을
제가 먼저 선을 보고 우격다짐으로 조철봉의 파트너를 제 옆에 앉도록 만들기도 했다.
나중에는 학질을 뗀 룸살롱 마담들이 조철봉한테 다 일러바쳐서 내막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래서 한번은 얄미워서 조철봉이 영철의 이차값을 계산에서 빼고 나갔더니
한참 공사를 진행할 적에 호텔방으로 전화가 왔다.
영철과 이차 나간 아가씨였다.
제놈의 이차값도 조철봉이 계산한 줄 알고 마음놓고 옷을 벗었던 영철이
아가씨가 돈부터 내라고 하자 전화를 걸게 한 것이다.
“여기 사장님이 이차값 정말 안내셨느냐고 물으시는데요?”
하고 아가씨가 말했을때 조철봉은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만일 정말 안냈다고 확인해준다면 저놈은 어떻게 처신할지 몰라도 이쪽은
두번 다시 보지 말아야 될 것 같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저놈한테 퍼준 술값, 오입값이 수천만원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몇십만원 가지고 그것을 다 허물어뜨리다니,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조철봉은 말했다.
“야, 계산은 이따 하고 넌 차비나 받아.”
다음날 알아보았더니 영철은 일 다 보고는 차비도 안주고 아가씨를 보냈다.
그러나 그런 놈이 다 잘 되겠는가?
지금까지 영철은 따라다니면서 얹혀 오입한 것 외에는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 보았다.
이차 나갔던 아가씨하고도 두번 다시 만나지 못했으며 나이트도 몇번 데려갔지만
단 한번도 성사가 되지 않았다.
다 그런 것이다.
수백억이 있으면 뭐 하는가?
거지 근성이 밴 놈은 금방 티가 난다.
놀아본 놈이 논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이다.
조철봉은 앞에 앉은 영철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웃었다.
영철은 지금 옆에 앉은 영계에게 홀딱 빠져있었다.
하긴 조철봉이 아니면 누가 이런 곳에 데리고 오겠는가?
이놈은 2년 만에 처음 룸살롱에 온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흥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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