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68> 7장 새옹지마(3)

오늘의 쉼터 2014. 7. 25. 22:42

<68> 7장 새옹지마(3)

 

(134) 7장 새옹지마-5

 

 

 

 인천공항에는 오정미가 배웅 나와 있었으니

 

이번 추석 귀경사업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5번 게이트 안에서 기다리던 오정미가 서동수를 보더니 환하게 웃는다.

 

밝다. 오후 3시 반 공항 건물이 다 환해지는 것 같다.

“일 잘 끝냈어?”

다가선 오정미가 묻는다.

 

서동수를 향한 시선이 뜨겁다.

 

뜨거운 밤을 보낸 연인의 눈빛은 대번에 표시가 난다.

 

깊고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식, 쾌락에 대한 기대,

 

자지러졌을 때의 연상 등등이 섞여져 있는 터라 본인만 모를 뿐이다.

 

아니 자신을 돌아볼 정신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오정미가 그런 셈이다.

 

서동수가 손바닥으로 오정미의 볼을 살짝 쓸었다.

 

보톡스를 맞았거나 비싼 크림을 덕지덕지 칠한 여자라면 질색을 했겠지만

 

오정미는 서동수의 손바닥을 잡아 제 볼에 붙여 누른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나와줘서 고맙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 할 일도 없어.”

오정미가 맑은 눈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서울 오면 연락할 거지?”

“그럼.”

“내가 중국 가면 마중 나와 줄 거야?”

“당연히.”

서동수가 지그시 오정미를 보았다.

 

오정미는 32세, 이른바 돌싱녀다.

 

결혼 1년 만에 이혼하고 돌싱녀가 된 지 3년,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했다.

 

3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하고 결혼했는데 갈라선 이유는 성격차이라고만 했다.

 

서동수가 오정미의 손을 쥔 채 발을 떼었다.

“잘 지내, 내가 자주 연락할 테니까.”

“헤어지더라도 몇 번 더 만나고 싶어.”

서동수의 손을 힘주어 쥐면서 오정미가 말을 이었다.

“상처가 남더라도 자기를 내 가슴에 심어놓고 싶다는 뜻이야.”

“알았어, 그럼 네가 중국에 와,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니까.”

오정미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눈에 힘을 주었다.

 

눈으로 말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경우다.

 

서동수가 발을 떼면서 오정미를 응시하며 눈으로 말한다.

“널 안고 싶어. 아주 세게.”

“나두 그래. 나, 지금 달아올랐어.”

그렇게 오정미가 맞받는다.

 

아마 뜻있는 사람이 그들을 보았다면 둘의 머리 위쪽에서 둥근 원이 빛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 오후 6시경이 되었을 때 서동수가 칭다오의 아파트로 들어섰다.

“아저씨.”

반가운 나머지 조은희의 딸 백미현이 한국어로 소리쳐 맞는다.

 

서동수는 벨을 누르지 않고 열쇠로 문을 연 것이다.

 

오늘 온다고 했기 때문에 비행기 시간을 아는 둘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오세요?”

조은희가 다가오며 인사를 했는데 원피스 차림에 얼굴에 화장까지 했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는 순간 눈빛으로 말한다.

“난 언제나 가다리고 있어요.” 

 

서동수가 면세점에서 산 화장품 박스를 조은희에게, 백미현에게는 한국산 시계를 건네주었다.

 

기뻐서 눈이 동그래진 백미현이 제 방으로 들어갔고 서동수의 방으로는 조은희가 따라 들어왔다.

 

조은희도 딸하고 고향인 옌지에 다녀온 것이다.

 

서동수의 뒤에서 저고리를 벗기면서 조은희가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서동수가 추석 보너스로 5천 위안을 준 사례를 하는 것이다.

 

저고리를 받아든 조은희가 이제는 바지 벗기를 기다리며 서있다.

 

서동수는 소리 죽여 긴 숨을 뱉는다.

 

이것은 만족한 한숨이다.

 

 

 

(135) 7장 새옹지마-6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서동수는 예상했던 대로 이인섭이 회사를 그만둔 것을 알았다.

 

이인섭이 화란을 통해 사직서를 보내온 것이다.

 

사직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인섭은 하급(下級)의 방법을 택했다.

 

상급(上級) 방법은 본인이 직접 사직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에게 사직서를 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야 본인도 당당하고 상대도 뒤가 개운하다.

 

그리고 그날, 화란이 비정기 인사에서 대리로 승진해 총무과 2인자가 되었다.

 

인사는 사내 게시판과 사고(社告)로 컴퓨터에서 발표되었기 때문에 못 본 직원들이 많아서

 

조용했다.

 

오전 10시, 승진 인사를 하려고 책상 앞으로 다가와 선 화란에게 서동수가 물었다.

“이 대리한테 업무 인계인수 절차를 밟지 않아도 문제 없겠지?”

“예, 대충 설명을 들었어요.”

화란의 얼굴은 상기되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화란은 머리를 숙였다.

“진급, 감사합니다.”

“권한과 책임이 같이 따르는 거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특히 후원사업신경을 써야 돼.”

“그건 제가 원했던 일이니만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생산부에 있다는 네 후배를 불러.”

“예, 보스.”

화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모습이 눈부셨으므로 서동수는 외면했다.

 

그로부터 30분쯤이 지난 후에 서동수는 회의실에서 화란의 후배인 소천(素川)과 마주 앉아 있다.

 

소천은 긴 머리를 뒤로 묶어 올려서 목이 드러났는데 날씬한 체격의 미인이다.

 

쌍꺼풀 없는 맑은 눈이 반짝였고 도톰한 입술은 꾹 닫혀 있다.

 

이미 화란으로부터 내막을 들은 터라 온몸을 던지듯이 열중한 자세다.

 

소천은 생산부에서 자재관리를 맡고 있었는데 입사경력 2년, 화란의 대학 2년 후배가 된다.

 

서동수가 소천에게 물었다.

 

물론 영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한 네 생각을 듣자.”

그러자 소천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대답했다.

“배울 점도 있지만 버릴 점도 있습니다.”

유창한 영어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다시 묻는다.

“배울 점, 버릴 점을 한 가지씩만 말해 봐.”

“배울 점은 기업 경영이고, 버릴 점은 금전만능 사상입니다.”

또박또박 말한 소천이 똑바로 시선을 주었으므로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소천은 직선적인 성품 같다.

 

서동수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물었다.

“그 예를 하나만 들 수 있나?”

“야근을 시켜도 수당만 많이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설명이 부족했기보다 문화의 차이다.

 

아직 중국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지 않다.

 

인간적 관계가 우선이다. 서동수가 다시 물었다. 

 

“회사에서 너한테 그렇게 일을 자꾸 시키면 어떻게 할 건가?”

“하지요.”

거침없이 대답한 소천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열심히 일하면서 회사 분위기를 바꿔 나가겠습니다.

 

제가 승진을 하면 그만큼 영향력도 늘어날 테니까요.”

서동수는 슬그머니 어금니를 물었다.

 

이건 화란보다 더 물건인 것 같다.

 

양자강 뒷물이 앞물을 친다고 했던가?

 

하지만 네가 흡수될 것인지 이쪽이 바뀔 것인지 어디 두고 볼까?

 

서동수가 소천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매력 있는 놈이다.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70> 7장 새옹지마(5)  (0) 2014.07.25
<69> 7장 새옹지마(4)  (0) 2014.07.25
<67> 7장 새옹지마(2)  (0) 2014.07.25
<66> 7장 새옹지마(1)  (0) 2014.07.25
<65> 6장 중추절(12)  (0) 201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