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31] 3장 오염(11)

오늘의 쉼터 2014. 7. 25. 17:49

[31] 3장 오염(11)

 

 

 

(61) 3장 오염-21

 

 

방 안은 아직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

 

신음과 뜨겁지만 의미 없는 말로 가득 찼던 방 안에 이제는 둘의 숨소리만 울린다.

 

정액 냄새가 밴 눅눅한 공기를 거침없이 호흡하면서 서동수는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옆에 구겨지듯이 누운 김혜진의 숨소리에 조그맣게 앓는 소리가 섞여 있다.

 

그것이 음악소리 같다. 목구멍에서 울리는 악기(樂器), 그러고 보니

 

뜨거운 숨결이 어깨에 닿고 있다.

 

김혜진은 절정에 올랐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움츠러들었다가 결국

 

마음껏 사지를 뻗으며 폭발했다.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만족감이 배어 있을 것이다.

 

서동수는 이 순간이 좋다.

 

만족한 여자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표정을 보면 자신감이 생성된다.

 

어느덧 엉켜 있던 김혜진의 다리에서 찬 기운이 느껴졌다.

 

땀이 밴 피부가 금방 식었기 때문이다.

 

서동수가 팔을 들어 김혜진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김혜진이 순순히 머리를 서동수의 가슴에 붙인다.

 

그 순간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신선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여자들은 이런 경우에 일어나 씻으러 간다.

 

서동수가 머리를 돌려 김혜진을 보았다.

 

볼을 서동수의 가슴에 붙이고 있던 김혜진이 시선을 받는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붙어 있고 얼굴은 아직도 상기돼 있다.

 

물기가 밴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있다.

“너, 참, 맘에 든다.”

어깨를 조금 당겨 안으면서 그렇게 말했을 때 김혜진이 눈을 크게 뜨더니 곧 웃는다.

“정말요?”

“그렇다니까.”

“저, 좋았어요?”

그 순간 서동수가 다시 웃었다.

 

김혜진은 칭찬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할 수 없다.

“그래. 좋았어.”

“선생님도 좋았어요.”

김혜진이 서동수에게 파고들 듯 안기면서 말을 잇는다. 

“너무. 너무.”

어느새 김혜진의 다리가 빈틈없이 엉켜져 있다.
 
서동수는 천장을 향해 만족한 숨을 내쉰다.
 
그러나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 느낌이 드는 것은 머릿속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아직 크게 남아 있는 좌절과 배신의 상처, 미련과 그리움,
 
그리고 외로움의 잔해가 기억의 창고 한쪽에서 떠돌고 있다.
 
다 잊고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빈말이다.
 
그럴 수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뿐으로 남아 있어야 정상이다.
 
그래서 서동수는 이렇게 다시 시작한다.

“네가 이곳까지 어떤 작정을 하고 언니를 따라 왔는지 모르겠다.”

김혜진은 시선만 주었고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물론 돈을 벌려고 왔겠지. 네 계획을 듣자, 언니하고 어떻게 이야기했어?”

“가게에서 하루 다섯 시간, 노래하고 춤추는 값으로 한 달에 6천 위안 받기로 했어요.”

김혜진이 고분고분 말을 잇는다.

“언니 집에서 먹고 자기로 했는데 방값, 식비는 받지 않는다고 했구요.”

“그리고?”

“옷값이나 용돈은 가게에서 일하면 팁이 생긴다고 했어요.
 
한 달에 5천 위안은 보장한다고….”

말을 그친 김혜진이 물끄러미 서동수를 보았다.
 
어느덧 가라앉은 표정이 돼 있다.
 
서동수가 김혜진의 이마에 붙은 머리칼을 쓸어 올려주었다.
 
아마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날부터 이차 요구가 들어올 것이었다.
 
장연지가 은근하게 부탁하면 거절할 방법이 없다.
 
서동수는 어금니를 물었다.
 
충동을 억제하는 것이다.

 

(62) 3장 오염-22

 

 

오후 7시 반, 서동수는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신호음이 세 번 울리고나서 응답소리가 들렸다.

“아, 서 과장.”

공장장 윤명기다.
 
이미 약속을 한 터라 윤명기가 대뜸 말한다.

“들어와.”

“예, 그럼.”

핸드폰을 덮은 서동수가 어깨에 멘 배낭을 힘들게 추스르고는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섰다.
 
윤명기의 아파트 앞에서 전화를 한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렸더니 옆쪽 아파트 문을 열고 윤명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대형 아파트라 엘리베이터는 1개 층에서 2개 아파트만 사용한다.

“어서 들어와.”

윤명기의 표정은 밝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사모님이 활짝 웃는 얼굴로 반긴다.
 
사모님은 얼굴에 화장까지 했다.

“어서 오세요. 서 과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사모님.”

허리를 숙여 절을 하다가 등에 멘 배낭이 무거워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인사를 마친 서동수가 배낭을 소파 옆에 놓고는 윤명기와 마주 앉는다.
 
사모님이 재빠르게 커피잔을 앞에 놓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늘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들린다.
 
윤명기는 회사 일을 모두 와이프한테 말해주는 스타일 같다.
 
서동수와는 정반대 스타일이지만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같은 경우는 거북하다.
 
사모님이 방으로 들어가 준 것이 다행이다.
 
상반신을 세운 서동수가 윤명기를 보았다.

“공장장님, 대금 가져왔습니다.”

윤명기는 머리만 끄덕였고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120만 위안에서 경비로 10만 위안을 뺀 110만 위안입니다.”

서동수가 옆에 놓아 둔 배낭을 손바닥으로 두들겨 보이고는 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아파트 매각 서류를 카피해 왔습니다.”

“이 친구야.”

마침내 쓴웃음을 지은 윤명기가 서류를 받더니 보지도 않고 탁자 위에 놓았다.

“어쨌든 수고했어.”

서동수는 친구 우명호를 시켜 안명규한테서 빼앗은 아파트 한 채를 매각한 것이다.
 
배낭 안에는 1만 위안권 뭉치가 110개 넣어져 있다.
 
그때 윤명기가 말했다.

“안에 110만 위안이 있다고 했지?”

“예, 공장장님.”

“반만 꺼내라.”

“예?”

“반만 내놓고 나머지는 네가 갖고 가.”

“아닙니다.”

정색한 서동수가 손까지 저었을 때 윤명기가 눈을 치켜떴다.

“잔소리 말고, 빨리, 앞으로는 절반을 떼고 갖고 와.”

그래서 10분쯤 후에 서동수는 절반을 덜어 내어 한결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아파트를 나온다.
 
아파트 앞으로 나왔더니 기다리고 있던 택시가 다가와 섰다.
 
“일찍 나오셨습니다. 선생님.”

운전사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리쳤다.
 
이제는 이쪽 물정에 익숙해져서 일이 있으면 조선족이 운전하는 택시를 대절해서 타고 다닌다.
 
택시 뒷자석에 오르자 운전사가 묻는다.

“댁으로 모실까요?”

“그러지.”

손목시계를 보았더니 8시 10분밖에 안 되었다.
 
술 마시기 좋은 시간이었지만 우선 돈가방을 집에 놓고 나와야 된다.
 
택시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 서동수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래, 내가 다 오염시킨다.”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33] 4장 한국인(2)  (0) 2014.07.25
[32] 4장 한국인(1)  (0) 2014.07.25
[30] 3장 오염(10)  (0) 2014.07.25
[29] 3장 오염(9)  (0) 2014.07.25
[28] 3장 오염(8)  (0) 201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