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98) 일장춘몽 <41~43회> 종결

오늘의 쉼터 2014. 7. 5. 12:00

 

금병매 (198)

 

 

일장춘몽 41회 

 

 

 

 그 서찰을 자기 방의 탁자 위에 놓아두고, 소조는 꼭두새벽

 

아직 문지기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현관문을 살그미 열고 정원으로 나갔다.

 

그리고 홍아각의 바깥 출입문인 뒷문을 통해서 밖으로 빠져나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서문경의 죽음이 알려진 것은 날이 밝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아침 식사 준비가 다 됐는데도 전옥대감께서 세수를 하러 나오는 기척이 없고,

 

몸종인 소조도 주방에 식사를 가지러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서

 

홍아각의 관리 책임을 맡은 관원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싶어 대감의 거처로 가봤더니,

 

천만뜻밖에도 침실의 침상 위에 전옥 대감이 시체가 되어 이불에 덮여있는 것이 아닌가.

 

 

 




홍아각이 발칵 뒤집힌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곧 소조의 서찰도 눈에 띄어 전옥 대감 죽음의 원인이 밝혀져서 더욱 경악들을 금치 못했다.

소조의 서찰에 대해서 그 내용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틀림없이 현장이 그렇게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양향이만이 혼자서 속으로 미약이 어떻게 해서 전옥 대감의 손에 들어갔는지 이상하다 싶었다.

봉지를 보니까 틀림없이 자기 삼촌이 소조에게 건네준 그 미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곧 소조가 오빠에게 준다던 미약을 전옥 대감에게 드렸는가보다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 역시 소조가 그 미약으로 전옥 대감을 살해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서찰 내용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그 미약의 출처에 대해서는 절대로 입을 나불거리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랬다가는 공연히 자기와 삼촌에게 화가 미칠 게 뻔하지 않은가.

나라에서 제조 판매를 금하는 미약이니 말이다.

관원들이 등청을 하자,

제형소도 발칵 뒤집히다시피 되고 말았다.

간밤에 전옥 대감이 미약을 과용하여 정사를 다섯 차례나 치르고서 숨을 거두었다니,

모두들 어처구니가 없어서 수군덕거렸다.

곧 전옥의 죽음은 지사에게도 통보되어 현청도 온통 술렁거렸다.

제형소의 전옥이 미약 과용으로 사망했다니,

 수치스럽게 짝이 없는 일이어서 지사는 제형소의 부전옥과 의논해서

전옥의 죽음을 직무 과로로 인한 급사(急死)로 상부에 보고하기로 하고,

모든 관원들에게도 그렇게 훈시하여 함구령을 내렸다.

그리고 방을 붙여 백성들에게도 그렇게 알려서 애도(哀悼)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소문을 막을 길은 없었다.

이미 소문은 발 없는 말이 되어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서문경의 본가도 발칵 뒤집혔다.

그 소식을 들은 정실 오월랑은 너무나 날벼락 같은 일에 방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배안의 유복자(遺腹子)를 가진 그녀의 슬픔은 간절하고도 절절한 것이었다.

 

 

일장춘몽 42회 

 

 

 서문경의 장례는 칠일장(七日葬)으로 치러졌다.

 

청하현에서 둘째가라면 섭섭할 그런 부호인데다가 제형소의 전옥이기도 해서

 

그의 장례는 성안이 온통 들썩거릴 정도로 성대히 거행되었다.

부와 권세를 한 몸에 지니고 온갖 영화와 쾌락을 누리며 여색(女色)을 위해서는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그도 마침내는 응보(應報)의 손길을 피하지 못해

 

땅 속으로 들어가는 덧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는데,

 

그 때 그의 나이는 서른세 살이었다.

 

아직 인생의 가운데 토막에 해당되는 나이에 아무도 모르는

 

비명(非命)의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서문경의 장례식이 거행되어 그의 시신이 땅에 묻히던 날이었다.

청하현의 변방을 휘감아 흐르는 강이 있는데,

그 강가의 어떤 나루터에 주막이 하나 있었다.

그 주막에 남정네가 대여섯 사람 앉아서 나룻배를 기다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수염이 너불 너불한 노인과 초립(草笠)을 눌러쓴 조그마한 머슴애도 하나 끼어 있었다.

그들의 화제도 오늘이 서문경의 장례날이어서 그에 관한 얘기였다.

“억울해서 어떻게 땅 밑으로 들어갈까.

그 많은 재산과 감투까지 버리고 말이야”

“그것뿐인가. 계집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반금련이하고 이 뭐라더라···

그 두첩이 죽고도 아직 여편네가 넷이라잖아.

게다가 지난 가을엔 관기를 여덟명이나 뽑았고···

그게 다 서문경이의 첩과 다름이 없었다는 거야.

매일밤 갈아가며 하나씩 데리고 잤다지 뭔가”

“그러니까 미약을 안 쓰고 되겠어.

제가 아무리 정력이 물개 같다 하더라도

그 많은 여자를 거느리려면 미약 힘이라도 빌려야지. 안 그래?”

“맞다구. 그런데 미련하게도 미약을 얼마나 먹었길래 죽기까지 하느냐 말이야”

“잘 뒈졌다구.

그런 놈은 좀더 일찌감치 뒈졌어야 옳아.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했어”

동행인 듯한 중년의 두 남정네가 술잔을 기울이며 주고받는 말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스무살 남짓 되어 보이는 젊은이가 불쑥 입을 연다.

“그 양반만큼 복이 많은 사람도 드물다구요.

비록 서른세 살에 죽기는 했지만,

인생을 굵고 화끈하게 살았지 뭐예요.

부호인데다가 감투까지 쓰고서 술과 여자 속에서 묻혀 살았으니,

그 보다 더한 복이 세상에 뭐가 있어요.

난 사람이라구요.

아무나 그렇게 못한단 말이에요.

나도 한번 그 양반의 절반이라도 좋으니까 굵고 화끈하게 살아보고 싶어요.

비록 서른세 살에 죽어도 좋으니까요.

구질구질하게 오래 살면 뭘 해요.

짧아도 굵게 사는 게 좋죠”

 

 

일장춘몽 43회 

 

 

 

 찻잔을 앞에 놓고 앉아서 말없이 듣고만 있던, 수염이 너불버불한 노인이,

“여보게 젊은이, 자네 그거 진심으로 한 소린가?”

 

 




하고 묻는다.

“예, 하도 어렵게 사는 미천한 몸이라,

그 양반이 부러워서 하는 소리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사람을 부러워해서는 못 쓰네.

그자는 사람이 아니라구.

사람의 낯가죽을 썼을 뿐이지,

짐승보다도 못하다구.

남이야 어떻게 되든 제 한몸만 생각하고 못된 짓만 골라가면서 했다 그거야.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살인도 서슴지 않은 자라구.

난 그자가 언젠가는 천벌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미약을 너무 많이 먹고 죽은게  그게 바로 천벌이 아니고 뭐겠어”

유난히 반질거리는 눈으로 노인을 가만히 바라보며 듣고 있던 초립동이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떨군다.

“굵고 짧게 사는 것도 좋고, 화끈하게 사는 것도 나쁠 게 없지만,

그러면서도 사람이란 선하게 덕을 쌓아서 인심을 얻어가며 살아야 되는 거라구.

부와 권세가 있으면 얼마나 인심 얻기가 수월한가 말이야.

조금만 후하게 하고, 조금만 너그럽게 하면 백성들이 떠받들어 모신다 그거야.

그런데 서문경이는 그걸 모르고, 정반대 짓만 했거든.

그런 인간은 아무 값어치가 없는 거라구.

죽은 뒤에도 두고두고 욕을 얻어 먹는다구. 알겠어?”

너무 옳은 말은 별 흥미가 없는 듯 젊은이는 시들하게 웃고는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노인은 초립동이에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내 말이 맞나, 틀리나?”

“지당하신 말씀이고 말고요.

서문경이 그 놈 잘 뒈졌다구요.

천벌을 받은 게 틀림없어요”

초립동이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그러자 중년의 남정네 하나가 문득 이상하다 싶은 듯 불쑥 입을 연다.

“아니, 너 목소리가 꼭 여자 같네.

미소년이다 싶더니··· 너 여자 아냐?”

“아니라구요”

초립동이는 약간 당황하듯이 대답하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출입문 쪽으로 가더니,

“나룻배가 왔어요”

하고 소리를 지른다.

다름 아닌 소조, 즉 영아였다.

홍아각을 빠져나온 그녀는 혹시 붙들릴까 두려워서 초립동이로 가장을 하고,

어린 시절에 살았던 이웃 양곡현으로 살길을 찾아 피신을 가는 길이었다.

잠시 후,

나그네들을 실은 나룻배는 서서히 노를 저어 거무칙칙한 겨울물이

무겁게 흐르는 강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한가롭게 떠서 땅위의 인간사(人間事)를 그저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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