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94) 일장춘몽 <21~25회>

오늘의 쉼터 2014. 7. 5. 10:52

 

금병매 (194) 일장춘몽 21회 

 

 

 

 서문경은 이튿날도 그다음 날도,  

 

줄곧 이렛동안을 하룻밤도 거르지 않고 소조를 불러들여 동침을 했다.

 

그러니까 새로 채용한 관기 여덟명을 이제 모조리 점검을 해본 셈인데,

 

그 가운데서 소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처녀들은 대체로 이삼일이었고 한두 사람 나흘이나 닷새를

 

계속한 게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여덟 계집애 가운데 숫처녀는 여섯명이었다.

 

두 계집애는 이미 남자가 많이 건드린 몸뚱어리였다.

 

그중에서도 한 계집애는 영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서문경은 그런 허벅허벅한 몸뚱이는

 

하룻밤 일회전으로 끝내고 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숫처녀인 여섯명 가운데서도 소조가 가장 서문경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서문경은 그녀의 교성이 유달리 야릇해서 매료되었다.

첫날밤에는 별로 그렇지도 않더니 관계가 거듭될수록 몸뚱어리가

차츰 제대로 눈을 뜨는 듯 내지르는 교성이 날로 이상야릇해져 갔다.

우는 것 같은가 하면 웃는 듯한 소리로 바뀌었고

그러다가는 끙얼끙얼 앓는 것 같은 비음의 신음소리로 변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소조는 춘매와 계저, 그리고 죽은 이병아를 합쳐놓은 것 같은 그런 여자였다.

춘매는 울었고 계저는 웃었으며 이병아는 야릇한 코맹맹이 소리가 특색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구미에 맞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물리는 법이다.

이렛동안 줄곧 소저를 데리고 즐기자 이제 싫증이 나서 서문경은 다른 일곱 관기들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계집애를 다시 불러들여 동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조는 묘하게 심사가 꼬이는 듯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시새움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었다.

결코 서문경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정반대로

가슴속 깊이 저주를 간직하고서 남몰래 속으로 증오의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으면서도

다른 계집애를 데리고 자는 게 못마땅하고, 질투를 느끼다니 묘한 심리가 아닐 수 없었다.

서문경의 품에 안겨보기 전에는 그가 다른 계집애들을 차례차례 데리고 자도

질투는 고사하고 오히려 그녀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기도 언제 그런 신세가 될지 알 수가 없어서 마냥 심란하기만 했었다.

그래서 서문경의 침실쪽에서 계집애의 찢어지는 듯하나 야릇한 비명이 들려올라치면

놀라 으스스 몸을 떨며 두 손으로 귀를 막아버리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제 소조는 귀를 막아버리기는 고사하고 서문경의 거실로 통하는

문에 가 붙어 서서 거실 안쪽 침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엿듣기 일쑤였다.

 

 

일장춘몽 22회 

 

 

 

 남자와 여자가 교합(交合)하면서 지르는 이상야릇한 소리를 엿들으며

 

소조는 공연히 부아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못견디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아는 으레 증오로 변하여 그녀는 바드득 이를 악물며 속으로,

“죽여야지. 저 짐승 같은 놈을 죽여 버리고 말아야지”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질투를 견디지 못해 죽여버려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저주 때문인지 잘 분간이 안되는 그런 심리였다.

아마도 그 순간만은 그 두 가지가 한데 뒤엉켜 고개를 불끈 쳐든

그런 묘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문경이 다른 관기들과 동침을 하는 밤뿐 아니라,

낮으로 제 방에 혼자 있을 때도 소조는 문득문득 그를 죽여버려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곤 했다.

어떻게 살해하는 게 가장 현명할까 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대체로 세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와 처음으로 동침한 날 밤 코를 골며 잠든 그의 곁에 앉아 주먹을 번쩍 쳐들어 봤던 것처럼

칼로 찔러 죽이는 방법이 있고, 둘째는 칼 대신 밧줄 같은 것을 사용해서 자고 있는

그의 목을 옭아 콱 조여서 죽일 수도 있으며,

세 번째는 그가 먹는 음식이나 술에 독약을 타서 죽이는 방법이었다.

칼을 가슴패기에 푹 내리 꽂아서 온통 시뻘건 피를 내뿜으며 뒈지도록 하는 게

가장 통쾌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방법은 그를 살해한 다음 그 자리에서 자기도 칼로 자결을 하거나

붙들려서 죽을 각오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할 생각이라면

도저히 가망 없는 일로 여겨졌다.

한번 칼질로 즉사할지도 의문이고,

그 비명소리에 사람들이 깨어 일어나 몰려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며,

설령 도망을 친다 하더라도 필경 자기 몸도 온통 피투성이가 될 터인데

그런 몰골로 안잡히고 무사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두 번째 방법인 목을 졸라 죽이는 일도 속 시원하기는 칼로 살해하는 것과 비슷할 듯했다.

그러나 그 방법 여기 위험 부담이 컸다. 아무리 잠든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연약한 자기의 힘으로 삼십대인 서문경의 굵은 목을 쉽사리 숨이 끊어지도록 조를 수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잘못하면 비명소리를 내지르기는 칼로 찔렀을 때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제대로 일을 끝내지도 못하고 도리어 그에게 자기가 역습을 당할

위험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소조는 그 두 가지 방법은 아예 생각지도 말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장춘몽 23회 

 

 

 

 그렇다면 결론은 세 번째 방법인 독살이었다.

독살을 했을 경우도 죽으면서 고통을 견디지 못해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지를게 뻔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리를 못 지르도록 입을 틀어막을까.

 

입을 틀어 막혀 가지고 서문경이 가만히 있을까.

 

마지막 발악을 할게 아닌가.

 

그렇다면 그 방법도 위험 부담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남몰래 독약을 서문경이가 먹을 음식이나 술에 집어넣어 놓고서

미리 도망을 쳐버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무사히 도망칠 가능성은 많지만,

서문경이 틀림없이 그 음식이나 술을 마시고 죽는다는 보장이 없질 않은가.

소조는 서문경이가 처참하게 숨을 거두는 마지막 꼬락서니를 기어이 보고 싶었다.

그래야 가슴속 깊이 응어리진 저주가 풀릴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마지막 장면도 목격하고, 무사히 도망칠 수도 있는 것일까···

아무리 궁리를 해도 이렇다 할 좋은 방도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런데 애걸을 하다시피 하여 관기로 뽑혀 홍아각에 들어와서 전옥 대감인 서문경을

곁에서 모시는 몸종이 된 소조가 왜 서문경을 그토록 저주하며,

어째서 죽이려고까지 벼르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그녀는 누굴까.

소조는 국주라는 이름으로 관기에 응모하여 채용이 됐지만,

그 이름도 실은 가명이었다.

그녀의 본명은 다름 아닌 영아(迎兒)였다.

반금련의 손에 독살당한 난쟁이 행상 무대의 딸 영아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키가 그렇게 작았던 것이다.

무대가 비명에 갈 당시 열세 살이던 영아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열여덟 살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이를 열여섯 살로 속여서 관기로 뽑힌 것이다.

아버지가 독살 당한 뒤,

영아는 반금련에 의해서 도화촌에서는 제일 부자인 복숭아집에 팔려서 양딸로 들어가

얼마 전까지 그 집에서 진짜 딸 노릇을 하며 살았다.

그런데 지난 봄 어느 날, 영아는 참으로 놀라운 소식을 알게 되었다.

복숭아밭에서 일을 거들다가 점심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동네 어귀에 웬 방문이 붙어 있었다. 그 방문을 읽어본 영아는,

“어머나!”

자기도 모르게 그만 비명에 가까운 그런 소리를 내질렀다.

너무나도 놀라운 내용이었던 것이다.

천만 뜻밖에도 무송을 체포하라는 방문이 아닌가.

 

 

일장춘몽 24회 

 

 

 

 방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맹주 땅으로 유형(流刑)을 간 죄수 무송이 같은 유형수인 내왕이라는 자와

 

그곳에서 탈주하여 청하현으로 잠입해와서 ○○일 밤에 산동제형소 서문경 전옥의

 

사저에 침입하여 반금련 부인을 살해하고 도주하였음.

 

그 두 살인자는 승려로 가장을 하고 있음.

 

붙들어서 관가에 넘겨주거나, 은신처를 제보하기 바람.

 

체포한 사람에게는 일금 일백냥을,

 

제보하자에게는 일금 오십냥을 상금으로 줄 것임.


                                                                                                                   청하현지사』

 





그 방문 앞에 서서 영아는 복받쳐 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어쩌지 못해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그날밤 영아는 이슥토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다.

생각할수록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던 것이다.

한번 가면 살아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알려진 그 생지옥과 같은

맹주 땅에서 삼촌이 무사히 도망쳐 돌아와서 기어이 서문경이네에 집엘 쳐들어가

반금련을 죽이고 달아났다니 기쁘기 한량없었다.

남편을 독살하고, 남의 남자의 첩이 되어 간 독부(毒婦)인 반금련을 죽여 없앤 것은

통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어떻게 되어 서문경이는 죽이질 못했는지,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원통했다.

원흉은 바로 서문경인데 그놈을 처치하지 못했으니,

진짜 목수는 못한 셈이 아닌가 말이다.

반 분이나마 풀고 도망을 친 삼촌이 앞으로 무사할지 어떨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기도 했다.

이번에 붙들이면 틀림없이 사형을 당하고 말게 아닌가.

오년전 서문경이네 집에 쳐들어갔다가 붙들렸을 때는 현지사의 배려로

사형이 유배형으로 감형되어 맹주 땅으로 귀양을 갔었지만,

이번엔 사정이 그때와는 생판 다른 것이다.

삼촌에 대한 걱정과 함께 오년전 그해에 우연히 사냥을 갔다가 돌아가는 삼촌을

만났던 일이 생각나서 영아는 아련한 그리움이 가슴 속에 고여 오르기도 했다.

억울하게 죽은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 목숨을 걸고 두 번이나 서문경이네 집엘

쳐들어간 삼촌이 영아는 한없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비록 서문경이란 원흉을 처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영아는 돌아가신 불쌍한 아버지 생각이 새삼 간절하게 가슴에 다가오기도 해서

모든 게 슬픔의 덩어리로 변하여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고 또 울면서 그녀는 속으로, 삼촌이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진짜 원수

서문경이는 내 손으로 없애야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어이 복수를 하고야 말아야지,

하고 굳게 다졌다.

 

 

일장춘몽 25회 

 

 

 

 그 뒤 영아는 삼촌이 부디 붙들리지 않고,

 

멀리멀리 도망쳐 무사하기를 빌며,

 

한편 자기가 어떻게 서문경이를 없앨 것인가,

 

그 복수의 방법을 생각해 보곤 했다.

자기는 여자의 몸이니,

 

더구나 키도 남달리 작고 연약한 터이니,

 

삼촌처럼 그 집엘 쳐들어가 힘으로써 복수를 기도할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었다.

 

가능한 길은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았다.

 

한 가지는 그 집의 하녀로 스며들어가는 방법이었고,

 

둘째는 기녀가 되어 서문경이가 즐겨 다니는 기방에 발을 붙이는 길이었다.

 

어떻게든지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죽일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다싶었다.

 




 

하녀가 되어 그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일면식도 없고, 아무 연줄도 없는 자기 따위 보잘 것 없는 계집애를

하녀로 받아들여줄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녀가 되어 접근하는 방법은 어쩌면 가능할 성 싶었다.

 스스로 깜찍한 데가 있는 계집애라는 것을 아는 터이라,

영아는 그 길을 택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일단 서문경이의 곁으로 다가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살해 방법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될 문제였다.

그렇게 마음을 굳히기는 했으나, 영아는 쉽사리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오년 동안이나 양녀가 되어 살아온 집을 훌쭉 떠나는 일이 그렇게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났다.

그런데도 삼촌이 붙잡혔다는 소문은 들려오질 않았다.

그런 소문은 대번에 퍼져서 귀에 들려오게 마련인데 말이다.

멀리멀리 무사히 도망을 친 게 틀림없는 것 같아서

영아는 이제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그럭저럭 여름이 가고,

가을로 접어든 어느 날,

영아는 동네 어귀에 나붙은 방문을 보고 눈이 번쩍 띄었다.

제형소의 홍아각에서 일할 관기를 모집한다는 내용이 아닌가.

옳지, 때가 왔구나,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싶으며 영아는 좋아서 못 견디었다.

그 관기 모집에 응모해서 기어이 채용이 되어 서문경이의 곁으로 다가가야지,

하고 굳게 결심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양부모에게 사실을 알리고 응모할 것인지,

아니면 모르게 집을 뛰쳐나갈 것인지 하는 일이었다.

알릴 경우 반대할 게 뻔했다.

돈을 주고사다가 양딸로 삼았는데, 순순히 내보내줄 턱이 없었다.

생각한 끝에 영아는 서찰을 남겨놓고 집을 떠나기로 했다.

관기에 응모했다가 만약 낙방이 되었을 경우에는

이 기회에 기녀의 길로 들어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서문경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찾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