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97) 일장춘몽 <36~40회>

오늘의 쉼터 2014. 7. 5. 11:42

금병매 (197)

 

 

일장춘몽 36회 

 

 

 

 액체 미약이 거의 가득 담긴 그릇을 소조는 일단 침상 머리맡에 있는

 

조그마한 탁자 위에 놓는다.

 

손까지 흔들거려 잘못하면 약이 쏟아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어서 약, 약···”

 




“예, 가져왔어요. 대감님, 일어나 앉으셔야죠”

소조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온다.

서문경은 두 손으로 침상의 이부자리를 짚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는다.

그러나 곧 또

“으이그- 어지러워”

하면서 비실 쓰러진다.

안되겠다 싶어서 소조는,

“그럼 대감님, 누워서 입을 딱 벌리시라구요. 제가 약을 입에다가 부어드릴께요”

하고 말한다.

서문경은 몸을 꿈틀거려 무겁게 뒤집어서 반듯이 드러눕는다.

그런데 그만

“으윽 으윽 윽-”

심히 구역질을 해대더니 냅다 입에서 시큼한 것을 좌르르 쏟아낸다.

“어마나, 어이구-”

소조는 이맛살을 짠뜩 찌푸리며 이걸 어쩌나 하고 잠시 망설인다.

서문경의 입에서는 우르륵 우르륵 계속 쏟아져 나온다.

먹은 것을 다 토해낼 모양이다.

까짓것 어차피 죽을 판인데, 토하거나 말거나 무슨 성관인가 싶었으나

소조는 당장 구역질이 올라오려 해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 물로 입을 가시게 하고 토한 것도 닦아낸 다음에 미약을 먹이는게 순서일 것 같았다.

그래야 서문경도 약을 잘 넘길게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문득 그녀는 지금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홍아각 안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들었는지

어떤지 그 점이 궁금했다.

만약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자기가 서문경이를 미약으로 살해할 때

일어날지도 모르는 비명소리를 듣고서 달려오기라도 한다면 큰일인 것이다.

홍아각을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붙들리고 말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는 바짝 긴장이 되며 등골에 소름이 가볍게 흐르기까지 했다.

소조는 얼른 침실을 나선다.

주방으로 물을 가지러 가는 것이다.

그러나 복도로 나간 그녀는 곧바로 주방으로 가는 게 아니라 모두 잠들었는지 어떤지

살펴보려고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를 죽여 홍아각 안을 한바퀴 돈다.

현관 쪽 문지기의 방에 불이 켜져 있다.

아직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지 않았으니 문지기는 잠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다른 방은 다 불이 꺼졌다.

 

 

일장춘몽 37회 

 

 

 

 전옥 대감의 거처는 홍아각의 가장 깊숙한 안쪽에 있어서

 

현관의 문지기는 방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복도를 두 번이나 꺽어 돌기도 했다.

 

그러니까 방문을 굳게 닫아놓으면 거기서 어지간한 비명소리가 일어나도

 

문지기의 방까지 들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혹시 알 수 없는 일이어서 소조는 가능하면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서

 

문지기도 현관문을 닫아걸고 불을 끄고서 잠든 다음에 미약을 서문경이의

 

입에 부어넣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미약을 이미 침상 머리맡 탁자 위에 갖다놓기까지 했으니,

 

그가 토한 입을 가시고 나면 당장 약을 마시려고 들 터인데 말이다.

 




아양을 떨며 잘 설득을 해서 우선 한두 모금만 마시게 하는 게 어떨까.

그러면 미약 기운이 올라서 틀림없이 덤벼들 게 아닌가.

더럽지만 마지막으로 몇 번이고 욕망이 솟구치도록 오히려 이쪽에서 유혹을 해서

실컷 즐기며 시간을 끈 다음 북소리도 울리고,

문지기까지도 깊이 잠든 한밤중이 되었을 때 미약을 한꺼번에 다 마시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술에 지치고, 색에도 지칠 대로 지친 몸이라,

미약이 쉽사리 독약으로 작용할 게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작정을 하고서 소조는 주방으로 가 커다란 대야에 물을 들고 침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침실로 들어간 그녀는 그만,

“어머나”

깜짝 놀라며 주춤 멈추어 선다.

대야의 물이 출렁거려 얼른 방바닥에 내려놓으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서문경에게서 떨어지질 않는다.

뜻밖에도 서문경이 일어나 앉아서 침상 머리맡의 탁자 위에 놓아둔 미약 그릇을

두 손으로 들고 벌죽벌죽 들이켜고 있었던 것이다.

소조가 들어서자,

서문경은 초점이 흐려서 희멀건 두 눈으로 멀뚱히 바라보더니,


“이 약이 맛이 좋디 뭐야”

하면서 히죽이 웃는 것이 아닌가.

소조는 약간 어이가 없고, 얼떨떨하면서도 까짓놈의 것 제 손으로 마셨으니

오히려 썩 잘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바짝 긴장이 되어 얼른 뭐라고 말이 나오지가 않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만 있다.

서문경은 다시 입을 약그릇으로 가져가며,

“무슨 약인디 맛이 너무 좋다니까”

하고는 벌죽벌죽 마저 마셔댄다.

후다닥 소조는 거실로 뛰어나가서 닫힌 방문을 다시 바짝 당겨 닫고는

고리를 안으로 걸어 버린다.

그리고 돌아와서 침실 문도 콱 닫아 버린다.

 

 

일장춘몽 38회 

 

 

 

 그릇에 담긴 미약을 다 마시고난 서문경은 그르륵 크게 트림을 한다.

 

마치 뱃속의 것을 토해내느라 거북하던 속이 쑥 내려가는 것처럼 말이다.

 

기분도 묘하게 좋은 듯 얼굴에 은은한 미소 같은 것이 어리기까지 한다.

그릇을 도로 탁자 위에 놓더니,

 




“아으으-”

하고 이제 살겠다는 듯이 두 팔을 쭉 내뻗어 기지개까지 켠다.

너무 긴장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조그만한 두 주먹을 발끈 쥐고

가만히 지켜보고 서있던 소조는 뭐이래, 싶으며 그만 어이가 없어진다.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든다.

양향이가 말했던 대로라면 벌써 눈알을 뒤집어 까며 죽어가야 될 게 아닌가.

 미약을 한꺼번에 대여섯 알을 먹으면 눈깔도 뒤집혀서 죽고 만다고 했으니,

 대여섯 알이 아니라,

열대여섯 알도 더 먹은 셈이니까 말이다.

 으깨어 물에 타서 액체로 만들긴 했지만 결국 마찬가질 게 아닌가.

가짜 미약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소조는 분한 생각과 함께 그만 온몸에서 맥이 탁 풀린다.

어쩌면 가짜 미약이 아니라,

 속을 다스리는 위장약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저렇게 속이 쑥 내려가는 것처럼 기분 좋아지는 걸 보니 말이다.

그러나 소조는 잠시 후,  

“아하”

하고 다시 놀란다.

두 팔을 내뻗어 기지개까지 켜며 시원한 표정을 짓던 서문경이

정신이 몽롱해지는 듯 멀뚱히 앉아있더니,

그만, 안색이 새하얗게 변하며 온몸을 덜덜덜 떨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심한 학질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으으으으···”

하면서 턱을 와들와들 떨고,

두 손과 두 무릎을 후들후들 마구 떨어댄다.

그러다가 그만 무너지듯이 비실 쓰러져 버린다.

쓰러져서도 냅다 떨어대며 온몸을 오그라 붙인다.

“무, 무, 무···”

혀도 이제 굳어질 대로 굳어진 듯 ‘물’이라는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가 않는다.

그제야 소조는 싸늘한 웃음을 떠올리며,

“흥!”

코방귀를 뀐다.

그리고 서슴없이 뇌까린다.

“물 좋아하네. 서문경아, 이 놈아, 잘 들어라 내가 누군지 아느냐?”

그러자 귀는 아직 제대로 들리는 듯 서문경은 오그라들어서

덜덜덜 떨어대면서고 희멀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노려보듯 바라본다.

그 눈이 어찌나 섬뜩한지 소조는 자기고 모르게 찔끔 목이 움츠러든다.

그러자 그녀는 곧 아랫배에 발끈 힘을 주며 입을 연다.

 

 

일장춘몽 39회 

 

 

 

 “이놈아, 놀래지 말어라.

 

내가 바로 네놈이 죽인 무대의 딸이다.

 

무대가 누군지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네놈이 반금련이를 시켜 독살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서문경의 두 눈이 더욱 휘둥그래진다.

 

와들와들 턱을 떨면서도 입도 절로 크게 벌어진다.

 




“이 나쁜 놈아, 내가 억울하게 돌아가신 불쌍한 우리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렇게 네놈의 곁으로 온 거라구. 알겠느냐?

우리 삼촌 무송이 네놈의 집에 쳐들어가서 반금련이만을 죽이고,

네놈을 죽이지 못하고서 사라졌다는 소문을 듣고서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느냐?

그 때 네놈은 내손으로 기어이 죽이고 말겠다고 결심을 했었다구.

그런데 지난 가을에 용케 관기 모집이 있어서 응모를 했더니,

네놈이 고맙게도 뽑아서 몸종으로까지 삼아줬지 뭐야. 하하하···”

소조는 냅다 그만 까르르 웃어댄다.

그리고 다시 뇌까린다.

“이놈아, 내가 몸종으로 있으면서 보니까

네놈은 여전히 나쁜 짓만 골라가면서 하더라구.

옥에 갇힌 여자를 끌어다가 묶어놓고 겁탈까지 하더니,

오늘밤엔 또 남의 소실이 탐이 나서 음모를 꾸미더구나.

그 집에 가서 실컷 대접을 받고 와놓고서 말이야.

천하의 둘도 없는 나쁜 놈. 악질. 너 같은 놈이 전옥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지”

그러자 서문경은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는 듯 벌떡 몸을 일으키려 하며,

“너 이녀-”

하고 소리를 지른다.

 ‘년’ 이라는 발음이 제대로 되지가 않아

마치 무슨 늙은 짐승이 내지르는 소리 같다.

“뭣이 어째? 이놈이 뒈져가면서도 그래도 곧 호령이네.

이놈아, 너는 곧 뒈진단 말이야.

알겠어? 네가 마신 약이 그게 뭔지 알어?

이 멍청한 놈아, 바로 독약이라구.

미약이라고 하는 독약이라 그거야.

미약도 많이 먹으면 독약이 된다구.

그런 줄도 모르고 벌컥벌컥 잘도 마셔대더구나.

이 멍청한 놈···”

“으으으, 이년-”

턱을 덜덜 떨어대면서도 서문경은 이빠디를 허옇게 악물며 냅다

소조를 움켜잡으려는 듯이 두 손을 내뻗으려 한다.

그러나 이미 팔도 뻣뻣하게 오그라들어서 잘 뻗어지지가 않는다.

“이놈이 뒈지면서도 곧 악을 쓰네. 에라 이놈아-”

소조는 후다닥 그만 침상 위로 뛰어오른다.

그리고 서문경이를 타고 앉아 조그마한 두 손으로

그의 목줄기를 냅다 사정없이 콱콱 조여댄다.

 

 

일장춘몽 40회 

 

 

 

 “윽, 윽, 윽···”

아가리를 쩍쩍 벌리면서도 서문경은 몸을 일으켜 보려고 팔다리를 버둥거린다.

 

그러나 이미 과량의 미약 기운이 독이 되어 전신을 돌며 마비시키고 있는 터이라,

 

아무리 악을 써도 버르르 버르르 떨리기만 할 뿐,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뒈져라! 뒈져! 이놈아! 이놈아!”

“윽, 윽, 윽 ···”

“악질! 악질!”

“윽, 윽···”

소조는 빠드득 빠드득 이까지 갈아내며 두 손에 발끈발끈 힘을 준다.

마치 작은 몸집의 사나운 짐승이 덩치 큰 짐승을 쓰러뜨리려고

달려들어 사정없이 마구 물어뜯어대는 것만 같다.

마침내 서문경은 두 눈알이 허옇게 뒤집어지며 입도 한쪽으로 삐딱하게 비틀어진다.

그리고 피거품을 지르르 흘리며 바르르 바르르 마지막 경련과 함께

팔다리가 축 늘어지고 만다.

소조는 얼른 두 손을 거두고, 후다닥 침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렇게 미약의 힘을 빌려 손쉽게 서문경의 목숨을 앗은 소조는

두려움과 무서움에 와들와들 떨리기까지 했으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그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나.

현장을 그대로 놓아두고서 도망을 쳤다가는 아무래도

자기가 살해한 게 탄로가 날 것 같았다.

서문경이가 스스로 미약을 과용해서 죽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뒷수습을 감쪽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먼저 토해낸 것을 말끔히 치웠다.

그리고 시체에서 옷을 모조리 벗겨 알몸을 만들어서 이불을 덮었다.

미약을 먹고 나서 정사를 거듭했다는 증거로 말이다.

그러고 나서 소조는 자기 방으로 가 액체로 된 미약이 아직 조금 담겨있는

병과 환약 그대로 절반가량 남아있는 봉지를 가지고 와서 탁자 위에 놓았다.

미약을 담아 마시게 했던 그릇도 그 곁에 놓았다.

그리고 차가 담긴 자기 주전자와 찻잔도 갖다 놓았다.

이제 누가 보아도 서문경이 미약을 먹고 정사를 즐기다가

숨을 거둔 것으로 알게 아닌가 말이다.

자기 방으로 돌아간 소조는 두려움에 떨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을 거듭했다.

문득 그녀는 서찰을 적어놓고 자취를 감추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에게 주는 서찰이 아니라,

간밤의 일을 해명하는 거짓 내용의 서찰을 떨리는 손으로 적었다.

지난밤에 자기가 아무리 말려도 술에 취한 전옥대감께서 미약을 거듭 사용했고,

그 약기운 탓인지 무려 다섯 차례나 정사를 나누었으며,

그리고 자기는 방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한 소리가 나서 가봤더니 대감께서 숨을 거두더라는 것.

몸종으로서 마치 대죄(大罪)를 지은 것 같아 면목이 없어서

이 글을 남겨놓고 사라진다는 그런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