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50) 불륜(不倫) <41~45회>

오늘의 쉼터 2014. 7. 3. 09:04

 

금병매 (150)

 

 

불륜(不倫) 41회 

 

 

 

 그러자 말없이 앉아있던 한도국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제 동생이지만 그놈은 아주 덜돼먹은 놈입니다.

 

어릴 때부터 싹수가 노란 망나니였지요.

 

열아홉 살 때는 노름을 하다가 사람을 칼로 찔러서 일년 동안  옥살이까지 했지요

 

그 뒤 병정에 나가있다가 이번에 돌아왔는데, 글쎄 돌아오자마자

 

또 그런 못된 짓을 저질렀지 뭡니까.

 

그놈을 이번에 단단히 좀 벌을 줘 주십시오. 그리고 저...”

 

 




“어서 말해보게”

“제 여편네는 이웃에서 알아주는 현모양첩니다. 정말입니다.

그런데 그놈이 그만 강제로 때려눕혀 가지고... 동네 망신을 시켰지 뭐예요”

그 말을 받아 응백작이 덧붙여 설명을 한다.

“우리 형수는 내가 잘 알지만,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여잘세.

시동생과 그런 짓을 할 여자가 절대로 아니지.

그런데 그만 그 녀석 때문에...

오늘 이웃사람들에게 붙들려서 둘이 같이 제형소로 넘겨졌지 뭔가”

“음- 그래?”

서문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대감 나리, 제 여편네는 정말 억울합니다.

겁탈을 당한 사람까지 벌을 받는데서야 말이 됩니까.

부디 좀 방면해 주십시오”

“알았어. 내가 내일 사실을 알아보고, 정말 그렇다면 방면해 주고 말고”

서문경은 시원시원하게 응답을 하고는,

“자, 걱정 말고... 한잔 하게”

불쑥 한도국에게 잔을 내민다.

큼직한 감투를 쓴 상전답게 호기를 부리는 셈이다.

“예, 예, 정말 감사합니다”

한도국은 살짝 의자에서 궁둥이를 들고 고개를 굽실거리기까지 하면서

공손히 두 손으로 그 잔을 받는다.

응백작이 부탁의 마무리를 하듯 말한다.

“형수 이름이 왕육일세”

“왕육아라... 응, 알았어”

서문경은 또 점잖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튿날 등청을 한 서문경은 해당 부서의 부하 관원을 불러,

어제 왕육아라는 여자가 그 시동생과 함께 붙들려 왔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렇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는 질문에 그 관원은,

“간통을 했다는 겁니다. 이웃에서 그 사실을 알고 현장을 덮쳐서 묶어 끌고 왔습니다”

“그래, 강간이 아니라, 간통인가?”

“글쎄요. 아직 문초를 안해봐서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만,

끌고 온 사람들의 말은 간통이라고 했습니다”

“음-”

서문경은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불륜(不倫) 42회 

 

 

 

 “왕육아라는 그 여자를 이리 데리고오라구”

서문경의 분부에 관원은,

 

 




“예, 알겠습니다”

깊이 머리를 숙여 절을 하고는 부전옥의 집무실을 나간다.

“아니, 잠깐... 그만두게. 내가 직접 한번 옥엘 가보지”

“아,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제가 안내를 하지요”

관원의 뒤를 따라 서문경은 방을 나선다.

부전옥으로 부임한 지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서문경은

아직 한번도 죄인들이 갇혀있는 감옥 안에 직접 발을 들여놓아 보지는 않았다.

그저 바깥에서 여기는 미결수가 갇혀있는 곳이고 저기는 기결수의 옥사,

하는 식으로 지나치면서 부하 관원의 설명을 들었을 뿐이었다.

이 기회에 왕육아를 만나볼 겸, 직접 한 번 감옥이 어떤 곳인지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안내하는 관원의 뒤를 따라 미결수들이 갇혀있는 옥사 안에 발을 들여놓은 서문경은

절로 이맛살이 찌푸러졌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던 것이다.

흡사 짐승의 우리 속에서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구리터분한 냄새와 함께 후덥지근한 공기가 얼굴과 목을 왈칵 휘감는 듯해서

 숨이 턱 막히고 메스껍기까지 했다.

“아이구 이거... 음”

서문경은 멈추어 서서 얼른 한손으로 코를 막는다.

어둠침침해서 옥사 안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도로 나갈까 싶었다.

그러나 자기 입으로 가보자고 했고 부하 관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터이니

상관의 체통상 그럴 수는 없었다.

옥지기는 부전옥이 들어선 것을 알자,

웬 일인가 싶어 약간 놀라며 옥사안의 죄수들을 향해 냅다 큰소리로 호령을 한다.

“부전옥 대감께서 오셨다- 모두 단정히 열을 지어 앉아라-”

그러자 칸칸이 이어져 있는 수없이 많은 감방 안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누웠거나

앉아있던 죄수들이 뭐라고 한마디씩 투덜거리기도 하면서 열을 지어 앉느라

수런수런해진다.

“조용히들 하고 빨리 빨리...”

곧 옥사 안이 조용해진다.

서문경은 도리 없이 코에서 손을 떼고 콧등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점잖게 걸음을 떼놓는다.

감방들 앞을 천천히 지나가면서 흡사 짐승의 우리 같은 어둠침침한 그 속에

가득가득 줄을 지어 앉아 있는 죄수들을 힐끗힐끗 살피다가 뒤따르는 옥지기에게 묻는다.

“왕육아라는 여자는 어디 있나?”

“예, 여죄수들은 저쪽입니다”

옥지기가 얼른 앞장을 선다.

 

 

불륜(不倫) 43회 

 

 

 

 여죄수들이 갇혀있는 감방도 꽤 많다.

 

그중 한 감방 앞에 서문경을 안내해 간 옥지기는,

“이 안에 있습니다. 저기 저 여잡니다”

 

 

 




하고 아뢴다.

서문경은 말없이 팔뚝만한 굵기의 통나무로 된 창살 앞으로 다가선다.

얼른 옥지기가 감방 안을 들여다보며 큰소리로 말한다.

“왕육아, 일어서봐. 부전옥 대감이시다”

그러자 열을 지어 앉아서 두려운 눈길로 창살 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죄수들 가운데서 한 여자가 머리를 푹 숙여 버린다.

물론 왕육아다.

“어서 일어서!”

그제야 왕육아는 얼굴을 떨군 채 두 팔로 앞가슴을 가리고서 부스스 일어선다.

치마만 입었을 뿐 윗도리는 알몸이다.

“아니, 저고리는?”

어찌된 영문이냐는 듯이 서문경이 옥지기를 돌아본다.

“어제 옥에 넘겨졌을 때부터 저랬습니다”

옥지기의 대답을 받아서 부하 관원도,

“동네 사람들에게 끌려올 때부터 남자와 여자 둘 다 아랫도리만 입고 있었지요.

가슴에다가는 각각 형수, 시동생이라고 써붙였더군요”

하고 아뢴다.

“그래/ 음-”

서문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이른다.

“저고리를 구해다가 입히도록 하라구”

그리고 왕육아를 향해,

“고개를 들어봐” 하고 말한다.

왕육아는 마지 못하는 듯 가만히 고개를 들며 힐끗 서문경을 바라본다.

순간 서문경은 하마터면 아,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올 뻔했다.

왕육아의 용모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자고 일어나 세수를 안해서 얼굴도 꾀죄죄한 편이며,

약간 수척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둠침침한 감방 안이라 그런지 묘한 아름다움이 물씬 풍겼다.

특히 힐끗 바라 보는, 수치감이 가득 담긴 듯한 그 눈매는 섬뜩하도록 고왔다.

몸매도 늘씬했고 두 팔로 싸안고 있는 앞가슴도 풍만해 보였다.

어둠침침해서 잘 분간할 수는 없지만, 윗도리의 살결이 그다지 희지 않은 것 같아

오히려 야성미가 넘치는 듯 했다.

“음-”

서문경은 잠시 뭐라고 말이 나오지가 않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

왕육아는 또 살짝 고개를 떨구어 버린다.

 

 

불륜(不倫) 44회 

 

 

 

 한도국에게 저런 아내가 있었다니, 정말 뜻밖이다.

 

저렇게 매력이 넘치는 형수니까

 

그 시동생이 탐낼 만도 하다고 생각하면서 서문경은 불쑥 묻는다.

“한도국이가 남편인가?”

 

 




“...”

“왜 대답이 없지?”

“예”

왕육아는 들릴 듯 말 듯 대답하고는 더욱 고개를 떨군다.

“지금 몇 살이지?”

그러자 왕육아는 얼른 고개를 들어 힐끗 서문경의 표정을 살피듯 바라본다.

나이를 묻다니, 좀 묘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옥지기가 나무라는 듯한 어투로 재촉한다.

“몇살이냐고 물으시잖아, 어서 대답을 하라구”

“서른둘이에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다시 고개를 떨군다.

“서른둘이라...음-”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내가 누군지 아는가?”

하고 묻는다.

자기도 모르게 왕육아는 얼른 또 고개를 들어 힐끗 서문경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예”

“누구지?”

“부전옥 나리십니다”

“그것뿐인가?”

그러자 순간,

왕육아의 두 눈가 어린다.

그러나 그 미소는 얼른 사라지고, 수치감이 짙게 어리며 낯을 들고 있을 수가 없는 듯

도로 고개를 숙인다.

서문경은 그녀의 그런 눈빛의 변화가 몹시 매력적이고 재미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한도국이가 우리 전당포에서 일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당신네 주인이기도 하지. 안 그래?”

하고 곧 웃음이 나올 듯한 어조로 말한다.

“예, 맞습니다”

왕육아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한다.

“됐으니까 앉아있어”

서문경은 부하 관원에게 한번 더,

“저고리를 구해다가 입히도록...”

하고 이른다.

그리고 성큼성큼 옥사의 출입문 쪽으로 걸음을 떼놓는다.

바깥으로 나온 서문경은 이제 살 것 같은 듯 가슴을 활짝 피며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웬 냄새가 그렇게 지독하지? 죄지은 것들한테서는 냄새가 더 나는 모양인가...”

 

 

불륜(不倫) 45회 

 

 

 

 집무실이 있는 청사 쪽으로 걸어가다가 서문경은 뒤따르는 부하 관원을 돌아보며 이른다.

“아까 그 왕육아라는 여자 잠시 후에 저고리를 입혀가지고 내 방으로 데리고 오라구”

 

 




“예, 그러지요, 문초를 하시려고요?”

“문초라기보다도 내가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자 눈치 빠른 관원은 아까 그 여자가 서문경의 눈에 들었다는 것을 알아챈 터이라,

약간 망설이는 듯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 대감님, 그러시다면 밖에 데려다가 물어보시는 게...”

“밖에?”

“예”

자기도 모르게 관원의 입에서 히히...하고 나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웃음소리를 서문경이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약간 당황하듯 관원은 두 손을 앞에 모아 쥐며 공손하게 아뢴다.

“대감님, 저... 전옥 대감께서도 때때로 밖에 마음에 드는 여죄수를 데려다가...”

“아, 그래?”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는 듯이 서문경은 빙그레 웃음을 떠올린다.

“장소는 흥아각이지요. 전옥 대감께서도 늘 그곳에서...”

“좋아, 그렇게 하지. 허허허...”

서문경은 매우 기분이 좋은 듯 껄껄 웃는다.

그날 퇴청을 한 서문경은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고, 한참 앉아 쉰 다음,

밤에 혼자 말을 타고 흥아각을 찾아갔다.

흥아각은 제형소에 딸려있는 요정으로, 외래 귀빈을 접대하고,

소내 고위 관원들의 연회장으로 쓰이는, 말하자면 관영 기방인 셈이었다.

제형소의 구내 깊숙한 한쪽에 우거진 숲이 있는데, 그 속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관기도 몇 사람 상주하고 있었다.

서문경이 당도하자,

낮의 그 부하 관원과 요정 관리인이 현관에서 정중히 맞이했다.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문경은 두 사람의 안내를 받아 깊숙한 내실로 들어갔다.

“오호, 벌써 와 있었군”

서문경은 약간 놀라듯이 빙그레 웃는다.

방 한 쪽 구석에 왕육아가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서문경이 들어서자,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며 나붓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래, 앉으라구”

그러나 그녀는 두 손을 앞에 모아 쥐고 살짝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