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19) 유령 <26~31회>

오늘의 쉼터 2014. 6. 30. 17:14

 

금병매 (119)

 

 

 

유령 26회 

 

 

 

 "너희들 뭘 하는 거야? 왜 그래?"

손설아는 월미와 춘매를 번갈아 바라보며 좀 큰소리로 꾸짖는다.

 

월미의 방에서 서로 다투는 듯한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인가 싶어 와봤던 것이다.

 

 




월미와 춘매는 거의 동시에 입을 다물어 버린다.

"왜 싸우지? 뭐 죽이고, 뒤집어씌우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응?"

둘 다 아무 대답이 없다.

서로 입을 땠다가는 잘못하면 공연히 큰 화를 자초하겠다싶은 것이다.

월미는 살짝 고개를 떨군다.

"춘매야, 너는 네 방으로 돌아가거라. 왜 여기 와서 싸우고 야단이야. 시끄럽게..."

"예, 돌아가겠어요"

춘매는 얼른 일어나서 방을 나가버린다.

춘매가 돌아가자,

손설아는 월미에게 무엇 때문에 싸웠느냐고 캐묻다시피 했다.

반금련과 견원(犬猿)의 사이인지라,

몸종인 춘매까지가 못마땅해서 그 계집애가 찾아와 월미와 싸운게 어쩌면

자기와도 연관이 있는 일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 꽤 기분이 안좋았던 것이다.

월미는 끝내 싸운 까닭을 밝히지 않았다.

그저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아무일도 아닌  걸 가지고 공연히 감정이 상해서

그만 언성이 높아졌다고 얼버무렸다.

손설아는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난 또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지"

하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월미는 혼자서 독한 고량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불안하고, 괴롭기도 해서였다.

지금까지 월미는 송혜련을 죽인 일에 대해 조금도 가책을 느끼거나 후회를 해본 적이 없었다.

시체가 발견된 뒤에도 모두가 자살로 믿으니,

이제 일은 무사히 끝났다고 오히려 속시원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춘매와 다툰 뒤로 바짝 불안해지고,

한편 괴로움이 슬그머니 머리를 쳐들기도 했다.

춘매의 입에서 혹시 네가 범인이 아니야는 그런 말까지 나왔고,

서문경도 자살이 아닌 것 같다고 한다니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또 송혜련이가 유령이 되어 나타났다고 하니

그게 사실이라면 무섭기도 하면서 슬그머니 후회가 되기도 했다.

저승으로도 못 가고, 유령이 되어 이승을 떠돌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내가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가책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었다.

불안하고 괴롭기까지 하니 절로 술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술을 곧잘 마시는 월미는 밤이 이슥해져도 잠이 오질 않자,

주방의 다락방속에 있는 고량주통에서 술을 한 병 담아가지고 와

마른 안주와 함께 혼자서 마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독한 고량주여서 여느 때 같으면 두어 잔 마시면 더는 생각이 없을 터인데

오늘밤은 홀짝홀짝 연거푸 마셔댄다.

눈앞이 아리아리해지자, 자책감 같은 것은 사라져 버렸으나,

어찌된 셈인지 불안감은 오히려 더 짙어지는 것만 같았다.

 

 

유령 27회 

 

 

 춘매가 자기를 범인으로 의심하듯이,

 

어쩌면 서문경도 송혜련의 죽음을 자기의 소행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아닐까,

 

춘매와 서문경이 그런 의견을 서로 주고받은 것일까...

 

생각할 수록 월미는 심란하고 두려웠다,

 

술기운이 온통 속을 뒤숭숭하게 휘저어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예 보따리를 싸가지고 도망을 쳐버릴 것인가,

 

아니면 시치미를 뚝 떼고 돌아가는 기미를 살피며 가만히 있어볼 건가.

 

보따리를 싸가지고 도망을 쳐버리면 곧 송혜련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자기가 죽였다는 것을 공표하는 결과가 되는 셈이 아닌가.

 

가만히 있으면 별일 없이 그대로 자살로 가라앉을지도 모르는데,

 

지레 겁을 집어먹고 경솔하게 도망을 쳤다가 붙잡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자기는 살인자로 끝장이 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월미는 시치미를 뚝 떼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어 보는 게 옳을 것 같았다.

죽였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혹시 서문경의 추궁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끝내 부인을 하면 될 게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작정을 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불안한 생각이 가시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춘매의 방에 오늘밤도 서문경이 찾아든 게 아닐까,

같이 자면서 자기와 싸운 얘기를 듣고 서문경이

자기에 대한 의심을 짙게 가지는 것이나 아닌지...

그런 생각 끝에 월미는 술만 마셔대고 있을 게 아니라,

한번 가서 살펴봐야겠다 싶었다.

잔에 남은 고량주를 마저 홀짝 마셔버리고,

월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약간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물론 술기운 탓이었다. 달이 좀 있는 밤이어서 바깥이 어둡지는 않았다.

월미는 곧잘 헛디뎌지려는 듯한 발길을 조심조심 옮겨 회랑을 춘매의 방 쪽으로 걸어갔다.

춘매의 방 앞에 이르자,

월미는 불이 꺼진 창문 곁으로 살그머니 다가섰다.

그리고 한쪽 귀를 바싹 갖다대고 숨을 죽이며 방안의 동정을 살핀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깊이 잠이 든 모양이다.

그런데 춘매가 혼자 자고 있는지,

아니면 서문경이 찾아와서 둘이 같이 자는지 알 수가 없다.

잠시 후 춘매가 몸부림을 치는 듯,

"아아 으응 음-"

하면서 돌아눕는 기척이 난다. 그리고 곧 이어서,

"뭣이 어째? 야, 내가 보기에는 네가 죽인 것 같은데... 네가 죽였지? 맞지"

하고 중얼거린다.

잠꼬대에서까지 자기를 몰아붙이는 터이라 월미는 몹시 기분이 안좋다.

"저년이... 썩을 년"

월미는 혼자서 창문에다 대고 눈을 흘긴다.

 

 

 

유령 28회 

 

 

 

 잠꼬대가 멎더니,

 

이번에는 코 고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흥, 저년 코까지 골아대네"

 




월미는 공연히 코방귀를 뀌며 투덜거린다.

잠시 후 코 고는 소리도 잠잠해진다. 다시 조용하다.

남자가 자고있는 듯한 기척은 조금도 느낄 수가 없다.

그제야 월미는 서문경이 찾아오지 않은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리고 돌아서서 다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조금 가면 건물 모서리를 도느라 회랑이 꺾여지는 데가 있다.

그곳을 돌아간 월미는,

"아니..."

하면서 멈칫한다.

저만큼 앞에 누군지 사람이 하나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달이 좀 있는 밤이기는 하지만 지붕밑이라 어렴풋이

여자의 뒷모습이라는 것이 느껴질 뿐 누군지 알 수가 없다.

누굴까, 이 밤중에... 싶으며 월미는 그 여자의 뒤를 밟듯 숨을 죽이고 조심조심 걸어간다.

자기 방 앞에 이르자 여자가 멈추어 서더니 방문을 열고 스르르 사라지듯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머나"

월미는 약간 당황한다.

누구길래 이 밤중에 함부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가 말이다.

아마 손설아 마님인가보다 싶으며 월미는 얼른 가서 뒤따라 방으로 들어선다.

"아니, 어찌 된 일이지?"

눈이 휘둥그래진다.

방안에 촛불이 그대로 켜져 있다.

그런데 아무도 없질 않은가.

방금 방안으로 들어간 여자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방안에 숨을 만한 장소라고는 침상 밑뿐이다.

혹시 싶어서 월미는 침상 밑을 들여다본다.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해진 월미는

잠시 뭣에 홀린 것처럼 멀뚱히 서 있다가 창변의 탁자 쪽으로 가서 털썩 앉는다.

그리고 먹다가 남은 술병을 집어 들고 쪼르르 잔에 따르면서,

"내가 뭘 헛본 것일까. 그런 모양인데..."

하고 중얼거린다.

술에 취하면 더러 헛것도 보인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월미는 남은 고량주를 홀짝홀짝 마저 마셨다.

그리고 일어나 비틀거리며 겉옷을 벗고,

내의만 입은 채 침상으로 기어오르려다가 비실 방바닥에 넘어졌다.

천장이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히히히... 내가 왜 이러지. 많이 취했나봐"

몸은 흐느적거렸으나,

아직 정신은 남아있는 듯 월미는 이렇게 혀 짧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비틀비틀 일어나 이번에는 침상위로 기어오르는 데 성공한다.

 

 

 

유령 29회 

 

 

 

 이부자리 속에 기어드는둥 마는둥 쓰러져서 그

 

대로 잠이 들려던 월미는 취중에도 정신은 남아있어서,

"참, 불을 꺼야지. 큰일 날뻔했네"

 




하면서 다시 흐느적거리며 일어나 촛불을 향해 훅- 입김을 분다.

촛불이 침상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도 꺼지질 않고 나불거린다.

여느 때 같으면 대번에 꺼졌을 터인데, 취해서 입김도 헛불어지는 모양이다.

"히히히... 왜 안꺼지지? 훅- 훅- 훅-"

여러번 만에야 겨우 팔락 꺼진다.

창 밖에 달이 좀 있기는 하지만, 방안은 어둡다,

어둠속에 월미는 다시 비실 쓰러지듯 드러눕다가,

"어머나!"

깜짝 놀라며 도로 벌떡 일어나 앉는다.

여자가 서있었던 것이다.

촛불이 켜져 있을 때는 안보이던 여자의 모습이 불이 꺼지고

방안이 어둠에 잠기자 희끄무레하게 비쳐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한쪽 벽에 붙어서 흐늘흐늘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고-"

월미는 절로 비명소리가 터져나온다.

유령이라 싶었던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불이 꺼지고 어두워지자 보이며,

저렇게 높다랗게 떠있을 수가 있는가 말이다.

형용도 희끄무레해서 자세히는 보이지가 않으나,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 같은데,

어쩐지 얼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아랫도리 쪽은 흐릿해져서 두 발은 보이지도 않는다.

치맛자락 같은 것이 흐늘흐늘 흐릿하게 흔들리는 느낌이다.

질겁을 한 월미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침상에서 뛰어내렸다.

취해서 흐느적거리던 몸이 너무 놀라는 바람에 긴장이 되어 그런지

조금 전과는 달리 동작이 잽쌌다.

도망을 치려고 방문 쪽으로 후닥닥 다가가는데,

이번에는 앞은 가로막듯이 여자의 유령이 바로 방문 앞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으악-"

냅다 비명을 내지르며 월미는 그만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만다.

그러나 정신을 잃지는 않고,

그 유령을 피하려고 마구 방 한쪽 구석으로 뿔뿔 기어간다.

그런데 방문을 가로막고 섰던 유령이 어느새 방 구석쪽에 와서

이번에는 조그맣게 웅크리고 않아 있었다.

"아이고머니나- 사람 살려-"

월미는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침상 쪽으로 가 기어오른다.

그리고 허겁지겁 이부자리 속으로 파고든다.

"이크! 으으으으..."

그만 월미는 숨이 넘어갈 듯이 부들부들 마구 떨어댄다.

바로 이부자리 속에 여자의 유령이 반듯이 드러누워있질 않은가.

월미는 가물가물 정신이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며 마침내

침상에서 방바닥으로 비실 무너지듯 굴러떨어지고 만다.

 

 

 

유령 30회 

 

 

 

 이튿날 새벽녘에 월미는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방바닥에 늘어져 누워 있었다.

 

몸이 나른하고, 골이 띵했다.

 

코에서는 아직도 고량주 삭은 단내가 솔솔 풍기고 있었다.

간밤의 일이 마치 악몽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어쩌면 꿈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가만히 정신을 가다듬어 보니 결코 꿈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렇게 침상에서 굴러 떨어져 정신을 잃고 방바닥에

 

늘어져서 밤을 새우지 않았는가 말이다.

 




월미는 부스스 일어나 않아 간밤에 여자의 유령이 맨 처음 나타났던 벽 쪽을 바라보았다.

그 벽에 자기의 옷이 길다랗게 걸려 있었다.

월미는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어쩌면 저 옷이 유령처럼 보인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유령이 벽에 붙어서 흐늘흐늘 떠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그 위치가 바로 옷이 걸려있는 곳과 같았다.

술에 너무 취해서 그렇게 헛보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다가 월미는 고개를 가만가만 내젓는다.

설령 만취가 되면 물건이 헛것으로 보이는 수가 있다 하더라도

불이 꺼져 방안이 깜깜해진 다음에 보이다니, 말이 되지가 않는다.

방문과 한쪽 구석, 그리고 침상의 이부자리도 살펴본다.

그 세 곳에도 유령이 나타났었는데,

거기에는 옷 같은 것이 걸려있거나 놓여있지가 않다.

그렇다면 뮛을 헛본 게 결코 아닌 것이다.

월미는 나른한 몸에 한기가 일며 등골을 싸늘한 기운이 좍 훑어 내린다.

아침을 먹으면서 월미는 손설아 마님에게 그 얘기를 했다.

그러자 손설아는 두려우면서도 호기심이 어리는 듯한 그런 표정을 지으며,

"어머나, 간밤에는 귀신이 월미한테 나타났구나"

하고 혀를 살살 내둘렀다.

그 소문은 곧 집안에 퍼졌다.

물론 손설아의 입을 통해서였다.

서문경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래? 흠-"

오월랑도 호기심이 동해서 몸종인 옥소를 불러,

"어서 가서 월미를 이리 데리고 와. 주인어른이 부르신다고..."

하고 일렀다.

옥소로부터 전갈을 받은 월미는 대번에 안색이 변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 했다.

송혜련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하고 있다는 서문경이

 아마도 그 일에 대해 추궁을 하려고 부르는가보다 싶었던 것이다.

도둑이 제발이 저리다는 격으로 말이다.

옥소의 뒤를 따라가면서 윌미는 어금니를 야무지게 물었고,

아랫배에 발끈발끈 힘을 주곤 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로 자기는 죽인 일이 없다고 딱 잡아떼야 된다고

단단히 마음을 다지는 것이었다.

 

 

유령 31회 

 

 

 

 월미가 서문경에게 혼자서 불려가기는 비녀(婢女)로 들어온 뒤로 처음이었다,

 

오월랑의 거실로 옥소의 뒤를 따라 들어서는 월미는 조금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거실에 서문경과 오월랑이 함께 있었다.

 

서문경은 차를 마시고 있었고, 오월랑은 어린 딸 향림(香林)이의 머리를 빗어주고 있었다.

 




"월미 데리고 왔습니다"

옥소가 아뢰자,

"응, 됐어. 옥소는 네 방에 가있고..."

서문경은 옥소를 내보내고서 가만히 월미를 눈여겨본다.

호기심과 함께 흑은함이 내비치기도 하는 그런 눈길이다.

자기가 놀라 기절까지 한 유령을 간밤에는 월미가 겪었다고 하니 말이다.

"월미야, 이리 와 앉아봐"

서문경의 눈길이 험하지가 않고, 또 말투도 부드러워서 월미는 조금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되지 하고 아랫배에 지그시 힘을 주며

서문경이 차를 마시고 있는 탁자 쪽으로 가서 맞은편 의자에 조심스레 궁둥이를 내린다.

"어젯밤에 유령을 봤다면서?"

"예"

"어디 자세히 얘기를 좀 해보라구"

"저... 밤이 깊도록 잠이 안와서 애를 먹다가 소변을 보러 갔었는데,

 돌아오면서 보니까 앞에 웬 여자가..."

월미는 고량주를 마시고 취했었다는 말은 빼고,

춘매의 방을 살피러 가본 것을 소변을 보러 갔다고 슬쩍 바꾸어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월미의 입에서 간밤의 유령 얘기가 나오자,

오월랑도 바짝 호기심이 동하는 듯 머리를 빗어준 향림이를 바깥에 나가 놀도록 내보내고서

얼른 탁자 쪽에 와서 앉았다.

월미의 유령 얘기를 들으며 서문경은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고,

오월랑은 입을 딱 벌리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까 글쎄 방바닥에 그대로 늘어져 누워있지 뭐예요"

월미의 얘기가 끝나자 서문경은,

"호,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군"

하고 측은하면서도 대견한 듯한 그런 눈길로 바라본다.

"정말 이거 무슨 일이지? 우리 집안에..."

오월랑은 근심스런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서문경이 월미에게 묻는다.

"그런데 말이야 그 유령이 송혜련이 아니었나?"

'송혜련'이라는 말이 나오자, 월미는 절로 긴장이 된다.

"글쎄요, 누군지 그것까지는 모르겠던데요.

얼굴이 확실히 보이질 않고 희끄무레하기만 했어요"

"그래? 흠-"

자기가 겪었던 것과는 좀 차이가 있어서 서문경은 또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