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52) 보물상자 <11~1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6. 19:42

 

금병매 (52) 

 

 

 

보물상자 11회 

 

 

 

“남편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라, 아내로서의 의리 때문이라는 거야.

 

애정이야 있든 없든 좌우간 남편이 붙들려갔는데,

 

그 아내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지”

서문경의 말에 오월랑은 더욱 알 수가 없는 일이라는 듯이 묘한 눈길로 바라본다.

 

이병아가 자기 남편의 친구에게 그런 말까지 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 여자 좀 모자라는거 아니예요?”

불쑥 묻는다.

“모자라다니... 어째서?”

“그런 말까지 당신에게 하니 말이에요.

자기 남편의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너무 똑똑해서 탈이더라구”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똑똑한지 어떤지 당신이 어떻게 알죠?”

서문경은 속으로 아차, 싶다.

자칫하면 오월랑이 의심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능청스럽게 지껄인다.

“말하는 걸 들어보면 대뜸 알지 뭐. 여간내기가 아니더라니까.

여자가 통도 크고... 글쎄 뇌물을 얼마나 쓰면 되겠느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선뜻 삼천냥을 가져다가 탁자 위에 죽 쏟아놓더라구.

그러면서 그걸로 화자허를 책임지라는 거지 뭐야”

오월랑은 가만 가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여전히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어서 묻는다.

“그런데 자기 남편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라, 의리 때문이라는 그런 말은 왜 나왔죠?

묻지도 않는데 그 여자가 먼저 그런 말을 꺼냈을 턱은 없고...”

“얘기를 주고 받다가 무슨 말끝에 불쑥 그런 말을 하더라니까”

“혹시 그 여자 당신한테 생각이 있는게 아니예요?”

“별소릴 다... 생각이 있으면 남편의 석방을 책임져달라고 매달리겠어”

“그거야 여자로서 우선은 그럴 수 있는 거죠. 좌우간 아리송하니까 조심하시라구요.

만약 그 여자의 유혹에 빠지면 큰일이잖아요”

“큰일은 무슨 큰일?”

“어머, 그럼 큰일이 아니란 말이에요?

친구의 아내와 그런 관계가 된다면 남들한테 무슨 소리를 듣겠어요.

그리고 만일 나중에 화자허가 석방되어 돌아와서 알게되는 날은...”

“쓸데없는 걱정 말라구. 내가 그런 몰염치한 사람 같애?

아무리 여자를 좋아해도 친구 마누라한테까지 손을 대겠느냐 말이야.

만약 그 여자가 그런 기미를 보이면 단단히 나무라주지 뭐. 허허허...”

서문경은 유들유들하게 웃어 제친다.

며칠 뒤, 아침을 먹고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수춘이가 찾아왔다.

“서문 대관인님, 우리 마님이 이 서찰을...”

그것을 받아 펼쳐본 서문경은 코언저리에 히죽이 웃음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보물상자 12회 

 

 

 

 그 서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궁금해서 붓을 들었습니다.

오늘 점심때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군요.

저녁에 오시지 말고, 꼭 점심때 와주시기 바랍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병아 드림.

 

 

 

 

서문경의 코언저리에 히죽이 웃음이 떠오른 것은

‘저녁에 오시지 말고, 꼭 점심때 와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왜 굳이 저녁에 오지 말라고 했는지, 그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던 것이다.  

“흥, 저녁에만 위험하고, 낮에는 안심이란 말인가? 어디 두고보지”

서문경은 속으로 중얼거리고 나서 재미있다는 듯이 불쑥,

“알았어. 너희 마님한테 가서 점심때 간다고 여쭈어”

수춘이를 향해 내뱉는다.

일부러 서문경은 며칠 동안 이병아를 찾아가질 않았었다.

끝내 정사를 거절한 것이 괘씸해서라기보다도 그녀의 몸뚱어리에 욕망의 수분(水分)이

흥건히 고이기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되면 도리없이 만나고 싶은 생각이 고개를 쳐들 것이고,

또 남편의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도 궁금해서 아마도 틀림없이 그쪽에서 먼저 만나자는

기별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기별을 받은 다음에 찾아가면 체면도 서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에 예상 했던대로 이렇게 만나자는 연락이 오지 않았는가.

비록 화자허의 건으로 점심때 오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정사를 거절한 체면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

심리의 밑바닥에는 다른 욕구도 틀림없이 굼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정사란 반드시 밤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병아인들 모를 턱이 없으니까.

점심때가 꽤 지나서 서문경은 이병아를 찾아갔다.

일부러 방문 시간을 좀 늦춘 것이다.

기다리는 초조감을 맛보게 하는 게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저쪽에서 다가올 때는 이쪽에서 뒤로 젖히는 것이 엽색술(獵色術)의 한 방도라는 것을

서문경은 익히 알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반찬이 다 식었지 뭐예요”

이병아가 살짝 눈을 흘기면서 말한다.

바로 그런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기를 기대했던 터이라,

서문경은 싱그레 웃음을 떠올린다.

“반찬이 다 식었으면 새로 데우면 되잖소”

“식은 것을 다시 데우면 맛이 덜하단 말이에요”

“좀 맛이 덜하면 어떻소. 당신이 만든 음식이면 그만인 것이지.

어서 점심을 차려요. 시장하다구”

 

 

보물상자 13회 

 

 

 

 “술도 한잔 하셔야죠?”

“물론이지. 국화주 아직 남아있소?”

 

 

 

 

“아직 많다구요. 큰 항아리에다 담갔거든요”

이병아가 주방 쪽으로 사라지자,

서문경은 창변에 즐비하게 놓인 국화분들을 바라본다.

처음 이 거실에 왔을 때는 꽃들이 한창 싱싱하게 피어오르며 향기를 내뿜고 있었는데,

어느덧 조금씩 시들어져 가고 있다.

 멀지 않아 겨울이다.

하필 추위가 닥쳐오는데 화자허가 붙들려가서 안됐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잠시 후, 육모형의 탁자 위에 점심과 함께 국화주가 차려지고,

 서문경이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다소곳이 앉아 술을 따라주며 지켜보고 있던 이병아가 입을 뗀다.

“그이가 그저께 동경으로 압송되어 갔어요”

“나도 알고 있소”

“동경에 연락을 하셨는지요?”

“어제 사람을 보냈소. 뒤따라가듯이 할 거니까 염려 말아요”

서문경은 하인들 중에서 처자가 있는 건장한 젊은이 두 사람을 골라 동경의 양제독에게

서찰과 금화 천냥을 전하도록 어제 출발을 시켰다.  

뒤따라가서 화자허가 동경에 가 닿는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해서 도착하도록 말이다.

처자가 있는 하인을 두 사람 고른 것은 혹시 가지고 가는 것이 금화 천냥인 줄을 알고서

이런 횡재가 어디 있느냐고 중도에 그것을 들고 튀어버릴까 염려가 되어서였다.

처자가 있는 몸이면, 더구나 두 사람이 함께 가면 절대로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터이니

마음을 놓을 수가 있는 것이다.

서찰에는 화자허라는 내 친구가 이러 이러한 일로 고소를 당해서 압송되어 가니

아무쪼록 힘을 써서 석방이 되도록 해달라는 말과, 금화 천냥은 그 비용으로 보내는 것이니

양제독께서 알아서 사용하시라는 사연을 적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기 전에라도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일차 기별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문경은 이병아에게 뇌물로 천냥을 보냈다는 말은 빼고서 서찰 내용까지

자세히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이병아는 이제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리고 술병을 들어 잔에 찰찰 넘치도록 따르며 말한다.

“정말 고맙지 뭐예요.

당신 아니었으면 돈이 있어도 어떻게 써볼 재간이 없잖아요”

“세상 일이란 여러 가지가 다 잘 맞아야 되는거요.

한 가지만 가지고는 안되는 법이니까”

“그렇다구요”

“이제 우리가 할일은 다한 셈이니까 결과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운도 맞아야 되는 법이니까.

나는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구.

사람의 힘을 다한 다음에는 하늘의 결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단 말이야”

만약에 일이 제대로 안됐을 경우를 생각해서 서문경은 미리 그런 말을 해둔다.

 

 

 

보물상자 14회 

 

 

 

 식사를 마친 다음 서문경은 이병아에게 묻는다.

“여보, 점심을 먹었으니 이제 갈까, 어떻게 할까? 할 얘기도 다했고...”

 

 

 

 

 그 말에 스며있는 뜻을 이병아가 알아차리지 못할 턱이 없다.

그러나 담담한 표정으로 말한다.

“좀 앉아 쉬었다 가세요. 밥이 좀 내려가거든...”

“그럼 그렇게 하지. 그런데 말이야 여보, 난 식사 후에는 꼭 누워서 쉬거든.

그래야 소화가 잘되는데 어떻게 하지?”

“그러시라구요”

“침실에 가서 누워있어도 되겠어?”

“예”

“혼자 누워있으란 말이야?”

“소화를 혼자서 시키지, 그럼 둘이서 시키나요?”

“혼자서 누워있긴 적적하잖아. 둘이서 같이 누워있자구”

“당신 심뽀를 모를 줄 알아요?”

이병아는 살짝 곱게 눈을 흘긴다.

그 고운 눈매를 보아서 그녀의 몸뚱어리 속에 욕망이 고개를 쳐들고있는 게 틀림없으니

의외로 간단하겠다 싶어 서무경은 여유 있는 웃음을 떠올리며 내뱉는다.

“오늘은 당신 맘대로 안될거야. 전번에는 내가 져주었지만,

오늘은 당신이 져야 된다구. 알겠어?”

“흥! 누구 맘대로요”

그녀의 고운 눈매가 금새 싸늘한 냉소를 머금고 만다.

“그럼 오늘도 기어이 고집을 부리겠다는 건가?”

“내가 말했잖아요. 남편이 고생하고 있는 동안에는 안된다구요.

그게 아내의 도리니까. 당신도 이해해 달라구...”

“그 생각에 지금도 변함에 없다 그건가?”

“변함이 없죠. 한 번 먹은 마음이 며칠이 지났다고 변하나요”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했는데...”

“나는 절대로 갈대와 같은 그런 여자가 아니라구요”

“어디 두고보자구. 오늘은 안될걸...”

서문경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혼자서 성큼성큼 침실 쪽으로 간다.

이병아는 가만히 그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침실로 들어가 침상에 벌렁 드러누운 서문경은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강제로 꺾어버리는 일이고,

다른 한가지는 어디까지나 설득을 하고 유혹을 해서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방법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힘으로 냅다 끌어다가 눕혀놓고 홀랑 벗겨서 짓이기고 싶었으나,

그럴 경우 정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슬그머니 두려웠다.

설마 그렇게야 안하겠지만,

좌우간 지난번에 그럴 경우엔 자살을 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 않았는가 말이다.

 

 

 

보물상자 15회 

 

 

 

 사람의 감정은, 특히 여자의 그것은 때로는 단순하고 맹목적일 수도 있으니,

 

충격을 못이겨 만에 하나라도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러 버린다면 큰일이 아닌가.

 

아무래도 강제 수단은 피하는 수밖에 없다고 서문경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스스로 옷을 벗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어떻게 설득을 하며 유혹을 할 것인지 막막했다.

 

이미 말로써 설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이만저만 고집이 센 여자가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유혹을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데,

 

도대체 관계를 여러 차례 가져온 여자를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또 유혹을 해야 하다니...

 

싱겁기도 하고, 같잖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 유혹을 할 것인지도 막연하고...

 

 

 

 

오늘 오후에 별다른 볼일도 없으니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우선 낮잠이나 한숨 자고 보자고 서문경은 억지로 기지개를 크게 한번 켰다.

그리고 잠을 청한다.

그러나 묘하게 아랫도리에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고,

또 그 욕망의 상대가 거실에 있어서 그런지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는다.

한참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던 서문경은,

‘옳지, 그것 참 재미있는 방법이로군’

탁! 혼자서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난다.

희한한 유혹의 방법 한가지가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침상에서 내려선 그는 살그머니 가서 거실 쪽을 내다본다.

이병아는 의자에 기대앉아서 뜨개질에 여념이 없다.

겨울이 다가오니 털실로 아마 무슨 내의를 뜨는 모양이다.

그 모습이 보기에 썩 괜찮다.

여자가 다소곳이 혼자 앉아서 수를 새긴다든지 뜨개질을 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고 흐뭇하다.

서문경이 묻는다.

“여보, 뜨개질을 하고 있구려”

“예, 주무시는 줄 알았죠. 낮잠을 한숨 주무시고 가시라구요”

이병아가 얼굴을 살짝 들어 나긋한 눈길로 바라본다.

“누구 것을 뜨는거요?”

“그이 내의라구요. 겨울이 닥쳐오잖아요”

“음-”

서문경은 ‘그이 내의’ 라는 말에 그만 또 기분이 슬그머니 뒤숭숭해진다.

내의를 짠다고 해서 입힐 수도 없는 일인데,

그것을 한바늘 한바늘 정성들여 뜨고 있다는 것은

곧 그에 대한 간절한 애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내의 의리만으로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좋아,

머리에 떠오른 희한한 유혹의 방법을 당장 서슴없이 실천에 옮겨야지 하고

서문경은 마음먹는다.

침실의 문을 닫고,

서문경은 그 자리에 서서 훌렁훌렁 옷을 벗기 시작한다.

윗도리는 물론이고, 아랫도리까지 몽땅 벗어던진다.